사망에 이르는 죄
많은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분명한 바른 분별과 조명이 없어서 마음에 어려움과 두려움을 격고 있기에 이번 글을 통하여 바른 성경적인 진리를 알아보고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성경 요한일서 5장에는 사망에 이르는 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일 5:16) 어떤 사람이 자기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짓는 것을 보거든 그는 간구할 것이요, 그러면 그분께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아니하는 자들로 인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데 나는 그가 그것으로 인해 기도하라고 말하지 아니하노라.
(요일 5: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느니라.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선입견에 따라 단어를 함부로 바꿔서 읽거나 이해하고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요한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음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흔히 이 구절을 읽는 때 사망이란 단어를 지옥이라고 이해하고 해석하거나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망은 지옥도 아니고 구원의 상실도 아닙니다. 사망은 어디까지나 사망이며, 죽음이란 뜻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질병이 죄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많은 죽음이 죄의 결과란 사실도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로 인해 약하여 병들기도 하고 잠들기도 합니다.
(고전 11:29)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를 위하여 정죄를 먹고 마시느니라.
(고전 11:30) 이런 까닭에 너희 가운데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많도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게 빚지지 아니하였느니라.
(롬 8:13)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이는 말 그대로 형제들 즉 구원받은 성도들이 육신을 따라 살면 육신 곧 육체가 죽는다는 뜻입니다.
죄의 결과는 첫째 영적 죽음이요, 둘째 육신의 죽음입니다.
우리의 몸은 언젠가 죽습니다. 이는 죄의 결과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들입니다.
우리는 형제들이 죄를 지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죄로 인해 병든 형제들은 회개하고 깨끗함을 입어야 합니다. 장로들을 청하고 서로 잘못을 고백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그것들을 용서받으리라.
(약 5:16)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의로운 자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
그러나, 어떤 죄는 그런 과정이 필요치 않습니다. 바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어떤 형제는 죽여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고전 5:5) 그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육체를 멸하게 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바울 사도가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도록 기도한 것이 아니라 죽여 주시도록 기도한 사람의 죄는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형제” 입니다.
이런 죄가 바로 사망에 이르는 죄에 해당합니다.
(고전 5:1) 너희 가운데 음행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알려졌는데 그런 음행은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 곧 누가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것이라.
또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딤전 1:20) 그 중에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는데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넘겨준 것은 그들이 배워서 신성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이 죽음에 이르도록 기도한 두 번째 사람은 선한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서 파선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법을 배우는 더 큰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죽여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이 죄는 바로 죽음에 이르는 죄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사망에 이르는 죄 짓는 형제들의 예를 바울이 보여 준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를 사망에 이르는 죄로 규정하고 그들의 몸을 죽음에 넘겨주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형제들을 속인 것이 아니라 성령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실상은 남모르게 은밀한 죄를 짓고 있으면서 그의 형제들에게는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고 있는 것처럼 꾸민다면 그는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보다 사람들 앞에서 더 거룩한 것처럼, 경건한 것처럼 종교적 위선을 꾸미는 일을 하지 않도록 삼가야 합니다. 다행히 이 시대에 주님은 수많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추종자들을 죽이지 아니하시고 살려 두시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베드로처럼 그런 자들을 모두 죽음에 넘겨주었다면 교회는 장사 치르느라 예배를 보기도 힘들 상황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었을 때, 우리는 그 형제를 위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형제의 죄를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 형법이 정하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을 때, 우리는 사면을 위해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면 그렇지 않는 죄라면 간절히 함께 기도하여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고, 죄를 씻음 받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많은 죄들로 멍들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사망에 이르는 죄가 아니라면 함께 기도해서 회복하게 해야 합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라면 지금 속히 하늘로 데려가 버리셔서 다른 형제들에게 두려움과 떨림이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한번 쉽게 정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성도들이 짓는 작은 죄들이며 사망에 이르는 죄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짓는 큰 죄를 말합니다.
그 죄로 인해 육체의 죽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큰 죄를 지은 성도의 죄는 그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나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망의 이르는 죄 범한 성도를 죽게 하였습니다. 그
러나 우리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작은 죄들에 대해서도 쉽게 생각하고 간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