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로 사는 삶

주님의 섭리

대 덕 2025. 9. 27. 13:05

한번쯤 이러한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주님을 믿는 나에게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불신자에게서 이러한 말도 심심치 않게 들어봤을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전쟁이나 살인, 강간같은 이런 잔인한 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게 분명해."

나와 직접 연관된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간에 우리는 종종 예상치 못한 일들로 인해 당황하기도 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인지 고민하며 그 원인을 찾아내려 애를 쓰다가도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내 존재 자체를 부정했던 하나님을 향해 원망을 쏟아 내기도 한다. 진정 살아계시고,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면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냐고 따져 묻는다.

그렇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불신자 뿐만 아니라 주님을 믿는 천국 백성일지라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뜻 모를 일들의 원인을 찾아내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어떤 일들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좀 더 본질적인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섭리이다.


주님의 섭리에 대한 정의
“섭리”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미리본다” – Providence (Pro앞서+Videre본다) – 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미리 앞을 내다본다는 뜻이 아니다. 되려, 영원의 개념을 소유한 절대 주권자가 그의 의도와 뜻 안에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님의 섭리”라는 말은 우연히 생겨난 일을 주께서 미리 아신다는 개념이 아니다. 반대로, 완전한 계획 아래 모든 일을 미리 준비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계획을 실행하시어, 궁극적으로는 계획하신 일을 온전히 성취하시는 모든 과정을 지칭한다 (엡1:11). 정리하자면, 섭리는 영원 안에 계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다스림을 가리킨다.

또한, 주님의 섭리 안에서 발견되는 주님의 계획과 의도는 세상이 말하는 우연의 연속성 또는 그러한 발생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는 지구와 생물, 인간의 탄생과 마지막 순간, 그리고 한 나라의 흥망성쇠와 같은 일들이 주님의 섭리 안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죄인이 구원받아 영화의 순간까지 긴 여정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주권적 보호하심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벧전1:5). 즉, 섭리는 우연을 거부한다.


주님의 섭리와 자유의지
신학적 개념들 중,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것을 하나 꼽자면, 그건 아마도 주님의 섭리와 자유의지의 관계성일 것이다. 물론, 유한한 우리 인간이 무한하신 주님의 뜻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주께서 계시하신 성경을 통해 우리는 이 오묘한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이는 곧 주께서 허락(주님이 명령하신 것은 아니시지만)하신 “악”과 “인간의 죄”,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욥1:12). 욥기를 보면, 한가지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탄을 대면하시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사탄이 욥을 시험하는데 주님의 허락하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허락을 자칫 오해하면 주께서 죄를 방조하시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오히려 사탄의 열등을 선포한다. 곧, 사탄은 주님의 권세 아래 있는 열등한 존재일 뿐이다. 정리하자면, 사탄 활동에 대한 주님의 허락은 죄와 전혀 무관하며, 인격적이시며 전능하신 주권자의 일시적 내버려둠 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옳아 보인다.

그러므로 악한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은 사탄 그 자신에게 있음이 분명하다 (욥1:9-11). 달리 표현하자면, 악을 선택한 당사자인 사탄에게 그 책임이 전적으로 있는 것이다. 곧, “자유 의지”가 “주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맞지만, 자유 의지에서 나온 행동의 책임은 그 행위의 주체자에게 있다. 이는 아담이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었지만, 그 죄악을 선택한 아담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자유 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본인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주님의 섭리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한다. 욥기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사탄은 실패하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아니하신다는 진리를 선포한다. 욥의 믿음을 뒤흔들어 어둠 속으로 밀어넣으려 했던 사탄의 계략은, 결국 주님의 선하신 계획 앞에 무릎을 꿇는다. 욥은 고난 속에서 자신의 교만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 깨닫게 되었다. 그는 말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42:5). 사탄이 예상하기에, 욥에게 닥친 수많은 시련들은 그가 믿음을 버리도록 만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욥은 되려 더 큰 믿음을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무엇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악을 이긴다.



믿는 자에게만 보이는 주님의 섭리
불신자는 주님의 온전하신 계획을 결코 깨달을 수 없다. 하나님의 계획과 통치와 성취는 오직 믿음의 눈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 왜 그런 것인가? 주님의 섭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만 적용되는 원리이며,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볼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자기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과 성격과 목적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해하기 불가능하다. 시공간의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한계 투성이인 인간에게 드넒은 우주를 탐구하는 것과 같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이 점점 더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아니라, 그 상황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의 선하심이다. 바울은 말하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그렇다.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마음이 힘들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한순간 떠날 수가 있다. 갑작스러운 질병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삶이 고달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때로는 원치 않는 시련과 배신으로 두려움에 휩싸여 밖에 나가기가 참 버거울 수 있다. 분명 믿음 안에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주님은 약속하셨다. 주께서 이를 통해 결국 을 이루실 것을 말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롬8:29). 영원 속에서 계획하신 주님의 뜻은 한치도 흐트러짐 없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 위해서 주권자의 섭리는 항상 선하게 역사할 것이다.


결론
세상의 주권자이시며,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결코 실수가 없으시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가슴에 품으며, 매일 삶 속에서 그분을 조금씩 닮아 가길 바란다. 아버지의 섭리라는 위대한 역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의 능력을 통해 풍성히 경험하고 누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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