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아가페] 하나님의 사랑과 필레오(우정), 그리고 에로스

대 덕 2025. 3. 15. 13:10

아가파오(ἀγαπάω)는 '사랑하다'
필레오(φιλέω)는 '우정을 나누다'
우리말과는 달리 외국어는 동사의 변화나 여성, 남성과 같은 성별에 따라 변화하는 단어 등 독특하면서도 우리 말에는 없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것이 외국어를 배우는데 있어서 우리에게는 낯설뿐만 아니라,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로 '사랑'이라는 단어도 세 개나 된다는 사실이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그래서 주석을 참고하여 그 단어들을 정리해 보았다.

• 아가페 사랑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 4:8)

'사랑'의 헬라어 '아가페'는 요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들 중의 하나로서, 하나님 편에서 선수권(先手權)과 주도권(主導權)을 가지고 인생의 연약함과 죄성을 끝없이 감싸 안으신다고 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본성이다(요일 4 : 8).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그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그리고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의 생애를 보면 우리는 그 사랑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사랑은 결코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성격의 것이며 막연한 이론이나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응분(應分)의 대가를 아낌없이 지불하는 것이다.

"이(생명)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 10:18)

*참고/ '아가파오'(ἀγαπάω)는 '사랑하다'이다. 아가페가 '사랑'이라는 명사라면, 아가파오는 '사랑하다'라는 동사이다.

• 필레오(φιλέω)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요 5:20)


여기 "사랑하사"란 말은, 헬라 원어로 필레오(φιλέω)이다.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 신적인 사랑, 숭고하고 헌신적인 사랑, 완전히 이타적인 사랑을 가리킨다고 보며 펠레오는 인간적인 사랑, 조건적인 사랑, 친근하고 우정에 가까운 사랑을 가리킨다고 본다.

영어에서 철학을 뜻하는 필로소피(philosophy)는 필로(philo)와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sophia)의 합성이다. 즉 철학이란 '지혜를 사랑하다'는 의미이다.

아무튼, 요 5:20의 성부와 성자의 사랑을 필레오로 묘사한 것은 그분의 인간을 향한 사랑은 아가페이지만, 삼위 하나님의 위격간의 사랑은 친근한 우정에 가까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본질적 관계의 바탕은 '사랑'이다.

*참고/ 아가페의 동사형이 아가파오인 것처럼 필로의 동사형이 필레오(φιλέω)이다.

*베드로에게(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

아마, 이 본분 만큼 성경에서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 의미를 탐구하고 논쟁을 불러일으킨 본문도 드물것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랑하느냐?'고 물을 때 사용한 단어는 '아가파오'였는데 베드로는 '필로'를 사용하여 대답하였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흔히 전자는 하나님의 사랑, 신적인 사랑, 숭고하고 헌신적인 사랑, 완전히 이타적인 사랑을 가리킨다고 보며 후자는 인간적인 사랑, 조건적인 사랑, 친근하고 우정에 가까운 사랑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런데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위의 두 단어가 동일한(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아니면 위에서 구분한 대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는가이다. 혹자는 두 단어가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보아,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물었는데 비해 베드로는 자신이 실패한 경험도 있고 해서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고 단지 그보다는 다소 차원이 낮은 사랑 즉 인간적인 우정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대답했다고 해석한다(Lenski).

그러나 다른 학자는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 두 단어를 구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3:16;5:20;14:21;16:27)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렇게 보는 또 하나의 이유는 베드로가 예수의 물음에 대해 '그러하외다'라고 대답함으로써 질문에 대해 변경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두 견해가 다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갖는다. 그런만큼 하나의 견해가 전적으로 옳고 다른 하나의 견해가 전적으로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절에서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베드로가 비록 실패를 하기 했지만 아직도 예수에 대한 애정과 열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사랑하느냐?"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7)

앞의 두 번의 경우와 달리 여기서는 '사랑'을 '필레오'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베드로가 계속해서 사용한 단어이다. 이것은 베드로의 진실성과 주님에 대한 그의 사랑을 수용(受容)하겠다는 마음의 표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주님께서 베드로의 친근한 사랑(성부와 성자 간의 사랑처럼)을 확인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이것과 관련하여 Living Bible은 본절을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진정 나의 친구이냐?" (Simon, Son of John, are you even my friend?)로 번역하고 있다.


* 참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아가페의 사랑을 주문하였는데, 베드로는 솔직하게 필레오(우정)의 사랑을 대답했다고 보는 견해와, 예수님은 아가페와 필레오의 정확한 의미를 구분하여 물었다기 보다 포괄적인 의미(헌신적 사랑과 우정을 다 포함하는)을 담아 두 단어를 모두 사용해서 물있다는 견해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는 독자의 자유인 것 같다. 아무래도 더 은혜와 감동이 되는 쪽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본다. 그러나 어떠한 것을 취하든 큰 차이는 없어보인다.

• 에로스
보통, 에로스(eros)는 육체적인 사랑, 주고받는 수준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선정적이라 할 때의 에로틱(erotic)이란 말이 거기서 나왔다. 성경에는 에로스 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골 1:8)

골로새 교인들이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열매를 맺으며 자란다는 것의 한 가지 증거는 그들에게서 사랑이 생겨났다는 것이다(골 1: 4). 이 사랑은 그 동기와 출처가 인간에게 있는 '에로스'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즉 '아가페'이다. 칼빈(Calvin)은 이것을 '영적인 사랑'이라고 해석하였다.

한편 본 서신 전체에서 성령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곳은 본문이 유일하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 안에서'라는 표현은 '너희 사랑'이라는 말의 본질적 의미를 밝혀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골로새 교인들이 지니고 있던 사랑은 다름 아닌 성령께서 일깨워 준 것이었다(Vaughan). 이처럼 '성령'으로 말미암는 영적 사랑이 넘쳐나는 곳, 그곳이 바로 이상적인 교회의 모형이다.

네 종류의 사랑(에로스,스테르고,필레오,아가페)의 의미

신약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그리스어에는 사랑에 대한 네 가지 단어가 있었다. 이 네 단어는 네 종류의 사랑을 나타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다고 생각한다. 

1) 에로스( Έρως)라는 그리스어는 '성적인 사랑'(sexual love)이다. 그리스 문화에서 이 단어는 '육체의 성적인 욕구를 만족시킬려는 정욕적이고 육적인 충동을 나타낸다'(sensual, carnal impulse to satisfy or gratify the sexual desires of flesh). 에로스(eros)라는 단어는 에라오(erao)라는 단어와 같은 어근을 가진다. 에라오는 '요구하고, 구하고, 수요한다'(ask, beg, demand)의 뜻이 있다. 그래서 에로스는 주는 형태의 사랑이 아니라, 성적인 것을 요구하는 사랑이다. 그것은 주어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킬려는 육적인 요구의 사랑이다.특이한 것은 신약 성경에는 이 에로스라는 단어가 한 단어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 문화에 있어서도 에로스 사랑은 성적인 충족을 위한 저급하고, 낮고, 천한 사랑을 나타낸다. 신약 성경에 있어서는 우정이나 형제애나 남여 사랑에 있어서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집중하는 아가페 사랑을 가질 것을 모든 신자들에게 권면한다. 왜냐하면 에로스는 '자기-만족, 자기-추구, 자기-즐거움의 성적인 욕망'(a self-satisfying, self-gratifying, self-seeking, self-pleasing type of sexual appetite)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2) 스테르고(στέργω)

스테르고 사랑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과 혹은 가족 구성원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the love that exists between parents and children or the love that exists between members of a family)을 의미한다. 한 학자는 가끔 말했다. "스테르고라는 단어는 통치자에 대한 백성의 사랑이나 혹은 주인에 대한 개의 사랑을 묘사한다"(the word stergo portrayed the love of a nation for its ruler or even the love of a dog for its master). 결과적으로 스테르고의 참 뜻은 헌신이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말세의 징조로 한국어 성경에서는 "무정하며"로 번역되어 있으나(디모데후서 3장 3절), 원어의 뜻은 스테르고의 부정의 접두어가 붙어 있어서 "가족의 사랑이 없으며"이다. 말세에는 가정이 깨어지고 가족의 사랑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3) 필레오(φιλέω)

필레오는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 사이에 느껴지는 애정이나, 두 친구가 나누는 친분을 나타낸다. 그것은 두 사람 이상이 느끼는 잘 어울리고 맞는 개념이다. 필레오가 우정을 표현하지만 아가페와 같은 최고의 사랑은 아니다. 필레오는 여러 합성어가 있다.

예를 든다면 필라델피아(philadelphia:brotherly love), 인류애(philanthrophia),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philosophia:philosophy) 등이다. 

4) 아가페(αγάπη)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신약 성경에서 사용한 단어이다. 아가페 사랑은 더 높고 더 훌륭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최고의 사랑인 것이다. 이 아가페 사랑을 번역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아가페 사랑은 한 개인이 한 물건이나 사람의 가치를 보고, 인식하고, 이해하고,

귀중히 여겨서, 관찰자가 그 물체나 사람을 아주 존경하고, 경외하고, 숭배하고, 경이롭고 그리고 진실로 귀중하게 여길 때에 일어난다.'(Agape occurs when an individual sees, recognizes, understands, or appreciates the value of an object or a person, causing the viewer to behold this object or person in great esteem , awe, admiration, wonder, and sincere appreciation.) 관찰자의 마음에 큰 존경심이 일어나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을 거절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류를 보실 때에 비록 타락한 상태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너무나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구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온 세상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한복음 3장 16절). "이처럼 사랑하사"의 사랑은 아가페이다. 아가페 사랑은 너무 사랑하여 멀리, 넓게, 높이, 깊이에 있어서 제한이 없다. 필요하면 아가페 사랑은 깊이 사랑하는 물건이나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아가페 사랑은 최고의 사랑이다. 에로스는 자기를 구하는 사랑(a self-seeking love)이며, 스테르고의 사랑은 자기 가족에게만 제한된 사랑이고, 필레오 사랑은 상호 만족에 기초한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은 아무 조건이 없다. 그것은 무엇을 얻을까를 찾지 않고 무엇을 줄까를 찾는다. 아가페 사랑은 보답에 관계 없이 사랑하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이런 사랑이다. 인간이 죄에 빠져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할 수 없을 때에 어떤 사랑의 응답도 기대하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면은 사랑의 보답을 받지 않아도 상처나 절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의 보답을 위하여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3장 16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희생했으니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위와 진실로 사랑하라"(요한일서 3장 18절)고 가르쳤다.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1절에서 "사랑을 추구하라"고 권면했는데, 여기에서 '추구'한다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디오코'(dioko)인데, 사냥하는 사람이 사냥하는 동물을 잡을 때까지 끝까지 따라가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다. 뜨겁게 추구하는(to hotly pursue) 것을 의미한다. 

이기적이고, 제한적이고, 조건적인 사랑은 세상에서 많이 볼 수 있으나,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최고의 사랑은 아닌 것이다. 성경은 최고의 사랑인 아가페 사랑을 열심히 추구하며, 목숨을 걸고 실천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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