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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Aram)

대 덕 2025. 4. 3. 08:59

1. 아람(Aram-수리아)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성경 속 아람인들의 탄생은 셈 자손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알려준다(창 10:22-23). 이에 관한 실질적 증거들은 아무데도 없지만 어쨌든 셈계 민족들 중 하나로 지금의 시리아 지방부터 유프라테스 강 가까지 널리 퍼져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 상 팔레스타인 가나안 원주민들이나 페니키아(뵈니게) 주민들과도 유서깊은 관계가 있으며 동방으로부터 큰 공격을 받을 때에는 자주 협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시리아 지방에 출현하여 살게 된 것은 확실하게 주전 14세기 이후이며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주전 2000년경, 원아람집단(Noth)에서 갈라져나와 메소포타미안과 계속 접촉을 가졌고, 또 거기로부터 새로운 집단들이 도착하여(이삭과 야곱처럼)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큰 세력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2. 족장시대의 아람(Aram-수리아)
아람 사람들과 아브라함 家는 굉장히 가까웠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을 밧단 아람(창 15)이라 불렀다. 하란에 거주하던 아람 민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도 아람 사람 리브가를 얻어다 주었다(창 24). 야곱이 에서의 분노를 피해 달아난 곳도 아람인 라반의 집이었다(창 28~). 이를 향해 모세도 야곱을 유리하는 아람사람이라 불렀다(신 26). 또한 가나안 정복시기 아람의 하맛은 최북단 정탐도시였다.

3. 사사시대의 아람(Aram-수리아)
시간이 흐르고, 아람 민족은 현재의 미합중국과 같이 소도시들을 세우고 집단 지도 체제를 이루었다. 그 중 가장 강한 세력으로 불리웠던 성읍은 다메섹이었다. 다른 소도시들은 소바, 돕, 그술, 헬람 등이 있었다.

4. 왕정시대의 아람(Aram-수리아
이스라엘이 통일 왕국을 이루자 아람과 엄청난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아람의 소바 왕은 사울 왕과 수 번의 전쟁을 치루었다. 다윗치세에도 암몬이 이스라엘과 긴장관계에 들어가자 아람민족 도시들의 원조 약속을 받아내었다. 다윗과 요압은 이에 후방을 노리던 아람의 소도시 연합군과 싸워 겨루어 이겼다(삼하 10). 이후 조공을 바치며 통일왕국 이스라엘에 복속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지자, 아람은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다메섹의 벤하닷은 북이스라엘을 큰 곤경에 빠트리게 했다. 이에 오므리왕은 아람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을 폈으며 아합왕 치세에는 두 나라간 큰 전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벤하닷은 크게 패배하고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하여 아합과 벤하닷은 서로 전략적 동맹을 맺게 되었다. 이 행동은 선지자들의 큰 격노를 불러왔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동맹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 3세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앗시리아 군이 수리아 일대를 휩쓸기는 했지만 4,5년 가량 저지당하며 상당히 애를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 동맹은 아합과 유다의 동맹으로 다시 적대적인 관계로 돌입....그리고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의 나아만 장군에 의해 북이스라엘-유다 연합군은 크게 패하고 아합 왕은 전사한다.

이후 벤하닷은 자신의 군관인 하사엘에게 암살당하며 권력을 넘겨주게 되었다. 그러다 살만에셀 3세의 2차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메섹이 수 시기 동안 포위되었으나 끝내 수리아 연합군들의 방어에 함락되지는 않았다. 대신 살만에셀 3세는 우회-남진하여 남쪽으로는 하울란, 서쪽으로는 페니키아(뵈니게) 해변까지 침공했다. 살만에셀이 국내 문제로 물러나자 하사엘은 북이스라엘을 즉시 침공하였다. 북이스라엘은 요단 동편 전지역을 잃게 되었다(왕하 10:32).

그러나 이러한 아람의 약세는 앗시리아의 강력한 서진정책으로 인해 힘을 잃게 되었다. 다메섹 왕 르신은 주전 770년경부터 앗시라가 위협적으로 수리아 지방을 흔들자 이스라엘의 베가와 다시 동맹을 맺어 대항하였다. 하지만 이 동맹은 앗시라를 향한 거의 자살행위였고 카르카르전투에서 괴멸당한 후 사르곤 2세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고 만다.

5. 신약시대의 아람(Aram-수리아, 다메섹)
주로 바울의 다메섹 회심 사건, 전도여행과 관련되어 주로 언급되었다. 명칭은 수리아주로, 로마의 지배 아래에 놓여있으며 이들의 자랑거리였던 아람어는 헬라어로 완벽히 대체되었다. 또한 이 지방에 안디옥 교회가 세워져있다(비시디아 안디옥과는 당연히 다르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복음전파가 수리아지방까지 퍼져나갔다고 기록되어있다(마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