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관련자료

성령님의 7중 사역

대 덕 2023. 4. 28. 09:13

우리가 옛 사람일 때, 율법 안에 있을 때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다고 바울 사도는 말했습니다. 율법의 저주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는 7관점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어둠, 속박, 비참, 쉼이 없는 수고, 불모, 헐벗음, 무력함입니다.

결국에는 영원한 파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율법 안이 아니라 은혜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님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 언약의 언약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새 언약의 은혜를 7가지 포인트로 요약할 수 있는데 7중 축복이라고 합니다.


1. 조명(illuminate)

흑암의 권세에 있는 우리들에게 성령님의 진리의 빛을 '조명'해 주십니다.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을 우리의 어두운 마음에 비추어 주셔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십니다.

그 은혜의 풍성과 자비하심을 알게 하시고, 그분의 사랑과 아름다움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감각을 살아나게 하셔서 그것에 반응하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아름다움과 은혜에 매료가 되게 하는 것이 성령님의 일루미네이션에 의해서 성령님으로 거듭난다는 말을 합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보화가 세상의 보화보다 훨씬 탁월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우리들의 욕망과 가치관과 삶의 우선순위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해 주십니다.


2. 자유(ilberate)

자유함의 은혜입니다. 사단이 우리를 속박하는 유일한 무기와 권세는 거짓말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그 어떤 다른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그 무엇인가 다른 것을 믿는다는 것인데 그 다른 것은 항상 비 진리이고 거짓말이고 왜곡된 진리입니다. 그 배후에는 사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진리의 빛이 비추어오면 거짓말로만 지탱되는 우리안의 사탄의 왕국이 붕괴되고 자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습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하셨습니다.

북한체제가 폐쇄되었기에 거짓말로 지탱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개방되어 서방의 모든 정보들이 밀려오게 되면 북한이라는 체제가 지탱되지 못합니다. 거짓말로 지탱되는 우리안의 어둠의 왕국에 진리의 빛이 비치게 되면 어둠의 권세가 무너지게 되고 우리는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3. 치유(heal)

죄의 속박가운데 망가진 인생, 비참한 인생이 성령의 은혜로 치유함을 얻게 됩니다. 온전함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메시야로서 대표적인 사역 3가지는 복음을 전하시고, 귀신들린 이들을 자유케 하시고, 병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이 3가지가 사도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우리들에게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에 특별히 주님이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는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유대인들이 시비를 걸줄 아시면서도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는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안식일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시고 좋은 창조를 축하하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망가져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비참한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병자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주심으로 원래 창조하신대로 온전한 상태로 회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해주신다는 의미에서 안식일을 골라서 병자들을 고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을 회복해주시는 분이라는 진리를 전시적으로 알려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신 것은 우리 주님이 육신으로서의 사역을 다 끝내시고 이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시는 사역, 전인적인 치유, 심령의 치유를 예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치유가 심령의 치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성령이 육신을 치유하십니다. 그러나 치유를 받아도 또 약해지고 병 들었기에 온전한 치유는 종말에 가야 완성됩니다.

육신의 치유보다 더 중요한 치유는 심령의 치유입니다. 우리 모든 교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마음이 병든 사람이 많습니다. 마음이 심히 아픈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죄의 결과는 정신 분열증보다 더 심각한 심령 분열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령이 완전히 파쇄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생명의 근원으로 부터 끓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리된 것이 지옥입니다. 우리 심령에 지옥의 권세가 임한 것입니다.

사탄의 억압에 짓눌린 마음의 상태,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이 우리를 주관하는 세력입니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들도 인간의 실존의 특성은 불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삶의 특성은 평강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새 언약의 내용이 돌 판에 새겨진 하나님의 법을 우리의 마음 판에 성령님이 심어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 육신의 굳은 마음, 하나님과 원수 된 마음, 불손중하는 마음을 제거하여 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순종하는 마음, 부드러운 마음을 창조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법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 질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심령이 변화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의 심정이 다시 연합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심령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에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생수의 강이 흐르는 물댄 동산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4. 안식(rest)

그러면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평안한 가운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열매를 맺게 되고 최대의 능률이 오르게 됩니다. 설교를 잘하는 비결은 평안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목회를 잘하는 비결도 평안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성령님이 바로 평강의 영이십니다.

우리들에게 이런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과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평안한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5. 번성(flourish)

번성함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면 9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면 아름다운 사람,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6. 아름답게 하심(beautify)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를 아름답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어떤 목사가 좋은 목사이고 훌륭한 목사입니까? 영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목사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교인들에게 보여줌으로 그것을 본받도록 목회해야 합니다.


7. 능력 있게 하심(empower)

마지막이 우리에게 능력을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능력을 부여 받음으로 그들이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 안에 일어난 자유의 역사, 생명의 역사가 많은 사람 안에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생명의 재생산의 사이클이 일어날 수 있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복음사역자들이 성령ㄴ미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말과 이론만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새 창조의 강력한 능력이 동반해야 교회가 새로워 질수 있고 교인들이 변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파하는 새 언약의 복음에 분명히 새 언약의 7중사역이 함께 한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고 이러한 놀라운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간절히 바라면서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교회는 기도의 향이 가득한 교회

성령님으로 충만한 교회는 말씀이 풍성한 교회인 동시에 기도의 향이 가득한 교회입니다. 구약의 성전의 구조를 보면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이 임하고 그리고 분향 단에서 향이 계속 올라가고 구름이 내려오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분향이 끓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내 기도가 분향 향 같아서 라고 했습니다. 분향은 지금의 기도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성전이고 주님의 집인 교회는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계속 올라갈 때 그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의 임재, 말씀, 성령의 능력이 우리들에게 이슬비처럼 임합니다.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지 않습니다. 말씀도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말씀도 효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의 두 축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교회를 세워가는 두 기둥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약해지니 다른 방법 또는 그에 대한 어떠한 대처할 방법을 찾으며 이상한 성령님의 운동을 자꾸 기웃거립니다. 그러나 성령님 안에서 말씀과 기도사역을 온전히 감당하게 되면 놀라운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치유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새로워지며, 기적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본질적인 것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만으로는 목회가 안 된다고 하는 목사도 있는데 말씀으로 제대로 안하니 안 되는 것입니다. 정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목회하는 것이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목사

성령님으로 충만함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님으로 충만한 목사는 어떤 목사입니까? 탁월한 설교은사를 가졌다고 그 목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교만하고 자아가 충만한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아주 뛰어난 은사와 능력을 가졌다고 성령님으로 충만한 목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의 증거는 은사에서 찾아서는 안 되고 열매에서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닮은 성품의 열매에서 찾아야 합니다. 열매를 맺는 것이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입니다.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재생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 안에 성령님을 내재하게 하신 목적입니다.

한국교회의 성령님 운동은 가장 중요한 열매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특히 은사, 초자연적인 은사에 너무 치중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은사운동에 대한 반발로 전통적인 교회는 은사를 또 평가 절하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은사의 남용을 보고 또 다른 극단으로 치우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의 증거는 우선적으로 은사에서 찾아서는 안 되지만 그러나 성령님으로 충만의 온전한 증거는 열매 플러스 은사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으로 충만한 교회는 열매와 은사가 풍성한 교회입니다. 성령님의 열매와 은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의 은사는 열매를 구현하는 하나의 방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열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능력과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밑천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사랑을 하려면 은사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교인들을 참으로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목사는 설교의 은사, 가르침의 은사, 목회의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은사가 없어서 교인들을 영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어 놓는다면 아무리 목사가 인간적으로 교인들에게 잘해준다고 해도 참으로 교인들을 사랑하는 목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설교와 가르침과 목회의 은사가 없이는 교회가 성장할 수 없고 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숙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역자들은 열매뿐만 아니라 은사도 추구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1절에 바울 사도가 더 큰 은사를 간절히 구하라고 명했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 속에 푹 잠기게 됩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으로 점점 물들어 갑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전인을 계속 관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빛을 우리의 마음과 인격 속에 계속 투사해 주심으로 우리 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형상이 점점 찍혀 나오게 합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형성되게 합니다. 그래서 쇳덩이를 용광로에 집어넣으면 불이 쇠를 관통해서 얼마 후에 불과 쇠가 한 덩어리가 됩니다. 이것처럼 성령님으로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성령님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영을 계속 관통하고 투사해서 주 예수님의 인격과 형상을 계속 찍혀 나오게 하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상에도 주 예수님의 온유함과 진실함과 거룩함이 배어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면 우리의 몸도 주 예수님의 육체와 같이 이동하는 성전이 됩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것 같이 우리의 몸이 성령님의 은혜가 흘러나가는 출구가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입을 열면 은혜와 진리가 흘러나오고 눈빛에서는 사랑과 긍휼이 흘러나오는 것 같이 우리가 입을 열면 은혜로운 권세 있는 말씀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우리의 눈빛에서 뭔가 영적인 것이 전달됩니다.

눈빛에서 사랑도, 미움도, 사람을 깔보는 것도, 비웃음도, 의심하는 것도, 경계하는 것도 신비하게 전파됩니다. 눈빛으로 은혜도 전파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면 얼굴빛과 인상도 달라집니다. 잘 알려진 로보트 머레이 매케인는 29살에 별세했습니다. 그가 설교하기 위해 강당에 올라오면 교인들이 그 모습만을 보아도 주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아서 은혜와 감동으로 울곤 했다고 합니다. 이정도 되면 목회하기 쉬울 것입니다.


성령님의 교제와 은사활용

성령님으로 충만한 교회는 교제가 풍성한 교회입니다. 성령님은 교제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합해서 하나님을 섬길 때 그 가운데 충만히 임재 하십니다.

현대교회의 문제는 진정한 교제를 누리기가 어렵습니다. 공동체를 체험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교제의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소그룹 운동을 활성화 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신도의 피동성이 교회의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이 청중과 관람객과 학생의 위치에서 신앙 생활하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와 잠재력을 교회를 세우는데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와 탈렌트를 활용해서 교회를 섬기고 서로를 섬길 때 그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교인들이 그런 봉사의 일을 할 때 더 기도를 하게 되고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구하게 되고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설정한 평신도의 위치를 회복해주어야 합니다. 교인들을 작은 목자, 작은 사역자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은 특권이자 의무

마지막으로 성령님으로 충만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인 동시에 의무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재하는 이유는 우리를 항상 인도하시고 우리를 항상 충만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충만케 하는 역사를 방해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으로 충만함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들은 간헐적으로 성령님의 감동과 성령님으로 충만함의 은혜를 받습니다. 설교할 때 성령님의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문제는 성령님으로 충만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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