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로마의 박해와 베드로의 순교

대 덕 2024. 6. 22. 05:43

갈릴리 벳세다의 어부 출신으로 요나의 아들이자 안드레의 형인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으로 예수님의 12제자 중 수제자로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전반에 걸쳐 활동한 인물로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때까지 유대인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태복음16:16)로 고백함으로서 기독교적 신관을 확고히 하였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당시 그의 스승이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세번씩이나 부인하였지만 자살한 가룟유다와는 달리 회개함으로서 새로운 삶의 전환기를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기둥으로 성장하였던 것입니다

죽은자를 살리고 물위를 걸었으며, 앉은뱅이와 소경을 고쳐준 많은 기적을 끊임없이 베풀었던 베드로의 복음은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고 신앙할 정도의 초능력적인 기록의 연속이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주후 60년경, 네로의 기독교 박해시에 십자가형을 당하면서 그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처형을 당할 수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도 많이 살고 있었지만 로마시에서 가장 많은 인구는 역시 유대인이었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는 로마로 부터 유대인을 추방하려 시도 했으나 그 수효가 너무 많아 혹여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여 취소했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 가운데 기독교 신자들이 급속하게 증가하여 유대인이 아닌 신자가 로마교회를 주동하게 되었으며,  네로 황제때에는 그 수효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되어 로마시의 인구를 150~200만명에 이르게 하는 초유의 국가적 도시로 성장하게 하는 요인으로 등장하였습니다 

네로(Nero)는 로마제국의 제 5대 황제(주후 37년 12월 13일~68년 6월9일)이자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로서 본래 이름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Lucius Domitius Ahenobarbus)이며 황제가 되어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로 칭하였습니다.   흔히 네로 황제라고 하면 정신 이상자 내지는 폭군으로 생각하지만, 그의 재위 기간 동안 로마의 문화는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네로 항제는 신이 자신에게 로마문화를 발전시키라는 명령을 했다는 근거를 네세워,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하여 시, 노래, 건축 등 예술분야에 집중 지원하였으며, 지금도 네로 시대 당시 지어진 화려한 건축물중 일부가 남아 그 당시의 화려함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주후 54년경, 글라우디우스황제가 사망하자 의붓동생이자 클라우디우스의 친아들인 어린브리타니쿠스를 제치고 황제로 취임하여  정치 철학가인 세네카와 근위군단 장교 부루스의 보좌를 받아 치세 초기에는 선정을 베푸는 황제였습니다  그러나 주후 55년,  이복동생이며 정적인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하는 잔인함을 드러내더니(그의 모친의 소행이라는 의견도 있슴) 이어 59년에는 직간접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친어머니 소 아그리피나를, 62년에는 아내 옥타비아를, 그리고 65년 세네카를 자살 명령이란 죄목으로 살해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나타내었습니다

주후 64년 7월 18일, 로마시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6일 동안 진화작업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으며, 이로 인하여 로마시 14구 가운데 3구는 완전히 전소되었고 7구는 소실되었으며, 겨우 4구만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로마의 역사가 타키루스는 기름창고에서 실수로 일어난 화재가 도화선이 되어 큰 참상을 가져 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타키루스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을 로마 방화가 아닌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기독교인들의 배덕행위와 로마는 물론 모든 인류를 범죄자로 취급하고 증오했다는 종교적 범죄가 중요한 요인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사악한 미신", "반(反)종교적 성향을 가져 미움받는 자", "로마제국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던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사회혼란을 해결하려는 희생양으로 탄압하기 시작된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는 당시 화형으로 처형당함으로서 기독교 설립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화재를 모면한 두 구역에는 유대인과 기독교인 거주지역이 많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는 화제 당시 안데움에 거하다가 자기의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환급히 로마 시내로 달려와 진화작업을 지휘하였으나 그의 속셈은 화재의 참상을 보기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로마의 대화재는 네로가 일으켰다는 소문이 시민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지기 시작하자 네로가 자신의 죄를 면하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에게 전가시긴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주후 54년경 다기도(Tacitus)사가의 기록으로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 기록에는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연구로 죄를 받게 된 것이 아니라 방화죄로 죄를 받게 된 것이라고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호도하여 선전하였던 것입니다

우매한 백성들은 네로의 거짓 선전에 현혹되어 기독교 신자들을 무차별 폭력적으로 박해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로마를 비롯한 대내외적으로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는 일순간에 질풍노도와 같이 이루어 졌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피난처를 찾지 못한채 죽음을 맛보았으며 이 때 죽은 기독교인들이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참한 만행과 학살이 지속적으로 자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주후 68년 네로 황제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친위대까지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타라콘네시스 속주 총독 갈바가 일으킨 내전이 일어나 확전되기에 이르렀으며 이에 각지의 총독들이 동조하여, 마침내 원로원으로부터 “국가의 적”으로 선고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네로 역시 정신병력증 증세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서 불행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네로황제(주후54~68년)의 박해로 인하여 순교하게 된 기독교 역사의 별중의 별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비단 로마에 의한 것 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헤롯왕과 산헤드린 공회에 의하여 기독교는 편법적이고 교활한 수법으로 박해의 강도를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시작된 기독교의 불씨는 박해로 인하여 순교하는 숫자만큼 확장되고, 그 불씨는 더욱 거세졌으며, 세계 전역으로 확산 되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순교에 대한 기록은 클레멘의 서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베드로를 불의한 자로 몰아세워 수차례에 걸쳐 고난을 받게 되었으며,  마침내 그가 받아야 할 영광은 주께로 돌아갔습니다 (클레멘서 5장)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박해를 심하게 받던 중 로마성을 빠져 나가 도망하려 했는데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을 하고 다시 로마로 되돌아 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의 근거는 테둘리안의 기록에 남아 있는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는 말은 오리겐이 기록한 것입니다  유세비오스는 이 두사도의 명단이 그때까지 로마의 무덤 묘비에 남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군인 황제플라비우스 황조네르바-안토니누스 황조난립기세베루스 황조군인 황제테트라키아콘스탄티누스 황조발렌티니아누스 황조테오도시우스 황조서로마 제국동로마 제국

아우구스투스 (기원전 27년 - 기원후 14년) 티베리우스 (14년 - 37년) 칼리굴라 (37년 - 41년)클라우디우스 (41년 - 54년) 네로 (54년 - 68년)  
갈바 (68년 - 69년) 오토 (69년) 비텔리우스 (69년)
베스파시아누스 (69년 - 79년) 티투스 (79년 - 81년) 도미티아누스 (81년 - 96년)
네르바 (96년 - 98년) 트라이아누스 (98년 - 117년) 하드리아누스 (117년 - 138년) 안토니누스 피우스 (138년 - 161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161년 - 180년) (공동 루키우스 베루스 161년 - 169년) 콤모두스 (180년 - 193년)
페르티낙스 (193년)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19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193년 - 211년) 카라칼라 (211년 - 217년) (공동 게타 211년-212년)마크리누스 (217년 - 218년) 엘라가발루스 (218년 - 222년)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222년 - 235년)
막시미누스 트락스 (235년 - 238년) 고르디아누스 1세고르디아누스 2세 (238년) 푸피에누스발비누스 (238년) 고르디아누스 3세 (238년-244년) 필리푸스 아라부스 (244년-249년) 데키우스 (249년-251년) (공동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251년) 트레보니우스 갈루스 (251년-253년) (공동 호스틸리아누스, 251년) 아이밀리아누스 (253년) 발레리아누스 (253년-260년) 갈리에누스 (260년-268년)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268년-270년) 퀸틸루스 (270년) 아우렐리아누스 (270년-275년)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275년-276년) 플로리아누스 (276년) 프로부스 (276년-282년) 카루스 (282년-283년) 카리누스 (283년-284년) (공동 누메리아누스, 283년-28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284년 - 305년) (공동 막시미아누스 286년 - 305년,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 293년-306년, 갈레리우스 293년 - 311년)) 콘스탄티누스 1세 (306년 - 337년) (공동 갈레리우스,리키니우스 308년 - 324년), 막시미누스 308년 - 313년)
콘스탄티우스 2세 (337년 - 361년) (공동 콘스탄티누스 2세 (337년 - 340년), 콘스탄스 337년 - 350년) 율리아누스 (361년 - 363년) 요비아누스 (363년 - 364년)
발렌티니아누스 1세 (364년 - 375년) (공동 발렌스 (364년 - 378년) 그라티아누스 (375년 - 383년) (공동 발렌티니아누스 2세 (375-392) 마그누스 막시무스(383년 - 388년) :제위 찬탈 서방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 (379년 - 395년)
호노리우스 (395년 - 423년) (공동 콘스탄티우스 3세, 421년) 발렌티니아누스 3세 (425년 - 455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455년) 아비투스 (456년 - 457년) 마요리아누스 (457년 - 461년) 리비우스 세베루스 (461년) - 465년) 안테미우스 (467년 - 472년) 올리브리우스 (472년) 글리케리우스 (473년 - 474년) 율리우스 네포스 - (474년 - 475년/480년)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475년 - 476년) - 오도아케르와 동고트 왕국으로 이어진다.
아르카디우스 (395년 - 408년) 테오도시우스 2세 (408년 - 450년) 마르키아누스 (450년 - 457년) 레오 1세 (457년 - 474년) 레오 2세 (474년) 제논 (474년 - 475년) 바실리스쿠스 (475년 - 476년) 제논 (복위,476년 - 491년) - 비잔티움 제국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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