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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가지 대죄

대 덕 2024. 8. 23. 06:57

그리스도교의 윤리관에서는 사람이 지은 수많은 죄악속에 일곱가지 근원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일곱가지나 되는 죄의 근원들.
이 죄들은 단테의 <신곡>이나 밀턴의 <실낙원>에도 등장한다.
중세 사람들은 인간을 영원한 파멸로 이끄는 이런 악덕들마다 각기 대응하는 동물이 있다고 믿었다.
이를테면 탐식은 돼지나 염소, 탐욕은 늑대, 교만은 박쥐나 공작새, 질투는 여우, 나태는 당나귀에 해당한다.
중세시대에는 주요한 고대 서사시에 나오는 신들이나 영웅들이 각각 특정한 윤리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보는 알레고리적 해석으로 판이나 디오니소스, 에로스와 같은 신들과 사티로스, 켄타우로스와 같은 종족, 사이렌과 고르곤, 메두사와 같은 괴물들이 인간들에게 악영향을 준다고 여겨졌다.
이 일곱가지 죄는 초기 기독교 시대에 그리스의 수도사 에바그리오 도 폰토에 의해 처음 체계화되었다고 한다.
당시 처음에 죄가 여덟가지였는데 인간이 그르치기 쉬운 부정적 성향들을 정의하고 있다.
에바그리오가 꼽은 목록에서 가장 심각한 죄악이 탐식이라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죄악들 모두 지옥에 떨어뜨릴 수 있는 것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16세기에 이르러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이 목록에 '질투'를 포함시키고, 기존의 '교만'과 '허영'을 하나로 합쳤다.
17세기에 이 목록은 다시 수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멜랑콜리아(우울증이라는 뜻)을 더 이상 죄에 포함시키지 않는 대신 '나태'가 새로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 교만(pride)
중세의 종교적 관점에서 '교만'은 도를 넘어선, 신에 대한 사랑보다도 우위에 서고자 하는 거만함, 무례함을 의미한다.
오만하고 자만심에 대한 열망이 천사들의 반란을 부추기고 루시퍼(대천사였으나 천국에 추방당하여 지옥을 다스리는 마왕. 라틴어로 '새벽별')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교만의 죄는 치명적인 죄악의 목록 중에서도 최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교만한 자는 자신의 재능과 아름다움, 부와 권력, 지식에 대한 우월감으로 남을 깔보거나 불손한 태도를 지닌다.

교만의 예는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의 교만함에 대한 신의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홍수 심판 이후 번성해진 노아의 후손들이 동방으로 옮겨 가다가 시날 땅에서 마음을 합하여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아서 '인본주의 사회 나라'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의 심판이 다가올지라도 탑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으면 심판을 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 닿으면서 자신들의 이름을 알릴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바벨탑은 인간의 자만의 상징이자 탐욕의 징표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이 이를 분노하여 이들에게 또다른 벌을 내렸는데 하나였던 그들의 말을 여러언어로 혼잡하게 하였고, 하루 아침에 말이 통하지 않게 된 이들은 더 시상 탑을 세울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바벨은 '뒤죽박죽', 혼란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다.

교만함에 관한 내용은 구약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의 왕 웃시야와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웃시야는 오직 사제만이 만질 수 있는 성물 중 네뿔이 달린 번제단을 만지자마자 돌림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느부갓네살도 마찬가지인데 황금머리와 은으로 된 몸, 동으로 된 다리, 철로 된 발을 가진 우상이 나타나는 꿈을 꾼 이후 교만해져 다니엘의 친구들을 죽이려다 실패하여 어느 날 짐승과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

느부갓네살과 웃시야말고 다른 이가 있었다. 바로 사울 왕이었다. 사울은 왕이 되고 난 이후로 교만해져 결국 악령에게 시달리게 되는데 그 결과 길보아에서의 전투에서 죽고, 그 이어 다윗이 왕위를 이어받았다고 한다.

* 교만에 관한 성경구절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언 29장 23절)

2. 탐식(gluttony)
탐식은 과도한 식욕으로서 음식에 지나치게 탐닉해 있거나, 육신이 음식에 점령당한 상태를 말한다. 중세에는 탐식을 5가지 형태로 분류했는데, 너무 빨리 먹는 탐식(praepreopere), 너무 비싼 음식을 먹는 탐식(laute), 너무 많이 먹는 탐식(nimis), 너무 오래 먹는 탐식(ardenter), 너무 거하게 먹는 탐식(studiose)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인들은 중세인들보다 신에서 벗어나 속세의 삶을 추구한다. 하지만 음식과의 관계에서만큼은 어찌보면 더 큰 사회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다이어트나 몸매에 대한 우리의 비이성적이고도 열정적인 태도는 '탐식'에 대해 어찌보면 중세인들보다 더 엄격한 심판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처음 '일곱가지 죄악'을 체계화한 그리스의 수도사 에바그리오는 '탐식'을 가장 심한 죄악으로 꼽았다. 당시 먹을 것이 늘 부족하던 시기였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또한 배가 부르면 게으르고 나태해져 다른 악덕들이 침투하기 쉬운 상태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3. 정욕(sexual)
성경에 정욕에 대한 구절들이 많은데 왜 성경이 그토록 '정욕의 죄'에 매달리는지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욕은 질투심에서 비롯된 죄로서,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이 자신의 만족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기 전에 잠자리에 은밀히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다시 깨어난다. 정욕은 음란, 외설, 호색, 음탕함이며 난잡함을 말한다. 정욕에 대한 종교적 해석은 한마디로 '육체의 성족 욕구'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대개 바지 속에 감추어진 육체의 일부가 느끼는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순진한 소녀들이나 나이든 아주머니, 성 범죄자, 성폭력 가해자들이 그렇듯이 선량한 종교는 육체의 일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안흐며,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종교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정욕은 '더러운 마음의 표출'인 것이다. 그래서 사제들이 대대로 '정욕의 죄'는 영원한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뜨린다고 설교해 왔다. 당시에는 수백년 동안 지저분한 성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고 한다.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그린 <성 안토니의 유혹>은 극단으로 검약한 생활을 추구하며 사막에서 수행하는 성 안토니의 이야기이다. 사탄이 그를 타락하기 만들기 위해 아름다운 반라의 아가씨로 변해 찾아와 유혹했지만 안토니는 육신의 유혹을 물리쳤다. 그는 수도원을 건립, 수많은 행적을 쌓았고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정욕과 관련된 사건은 다윗이 통치하던 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윗에게는 17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장남인 암논이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겁탈한 사건이 발생한다. 암논으로부터 겁탈당한 다말은 오빠인 압살롬에게 말하자 압살롬은 분하여 암논을 연회장에 불러들여 죽이게 했다. 그 결과 다윗은 분노하여 압살롬을 쫓아내자 압살롬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라 자청하고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4. 분노(angry)
'분노'가 무엇인지에 관해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분노는 반사적인 감정이다. 카톨릭에서는 분노를 불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연기가 나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는 사탄과 연관된다. 지옥의 불구덩이처럼 분노는 한번 타 오르면 모든 것을 태워버릴 만큼 강렬하다. 하지만 분노란 통제된 감정일 뿐 사람의 어깨 위에 앉아 성질만 내는 악마가 아니다. 분노와 관련되 성경구절은 어디에도 없지만 대부분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등 예언서에 신의 분노가 표출되어 있었다.

5. 질투(envy)
질투의 죄는 대개의 경우 시샘하거나 감탄하는 불만족의 감정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다른 누군가의 소유물이나 업적, 또는 개인덕 자질에 대해 시샘하거나 감탄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불만이다. 이런 시기심 때문에 사람들은 결국 남이 가진 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질투의 죄를 성경에서는 '비열하고 졸렬한 죄악'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타락천사 루시퍼가 신에게 반역을 일으킨 이유는 자만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도 포함되어 있다고 전설에서 전해져 왔다. 또한 질투와 관련된 일은 카인과 아벨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아담과 이브의 자식인 카인은 농사를 짓고, 아벨은 양치기를 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신에게 제물을 올리게 되었다. 카인은 자신이 수확한 농작물을, 아벨은 새끼 양을 제물로 바쳤다. 그러나 신은 카인의 제물 대신 아벨의 제물을 택하자 카인은 이유를 따지자마자 돌로 아벨을 죽이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신은 아벨을 찾으려고 카인에게 물었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있느냐?"
그러자 카인이 모른다고 하자 신은 그에게 저주를 내리고 난 후 에덴으로부터 동쪽인 놋땅으로 추방했다. 그리하여 카인의 후손들이 사악하여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노아만 방주에 몸을 실어 살게하고 대홍수를 일으키자 지상의 모든 인간들은 멸망하게 되었다.

6. 탐욕(greed)
때로는 욕심으로도 일컬어지는 '탐욕'은 치사하고 인색한 노랭이 같은 구두쇠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에 환전상과 고리대금업자는 탐욕의 의인화로 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테이블에 앉아 금화들을 살펴보며 무척 만족스러워한다. 손가락으로 그것들을 만지작거리며 그토록 많은 물질적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에 대단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소유'와 '탐욕'은 엄연히 다르다.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탐욕은 물질에 대한 사랑, 즉 소유한 물건을 즐기는 것이라기보다는 단지 소유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필요하지도 않는 차 한대 더 사거나 거실에 좋은 텔레비전을 두고도 안방에 한 대 더 틀어놓는 것은 '소유'를 즐기는 것이다. 또한 탐욕스러워지는 것, 즉 욕심을 부린다는 것은 소유물을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직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소유의 욕망을 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남이 소유한 물건에 대한 욕망을 가리키도 한다.

7. 나태(sloth)
일상적으로 나태는 일하기 싫어하거나 능력발휘를 꺼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왜 카톨릭에서는 나태를 '7개의 죄악'의 목록에 집어넣기 위해 그토록 애썼는지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중세의 유럽은 모든 사회가 교회의 통치를 받던 시대였다. 신이 인간들에게 시간을 주었고, 당시 성직자들은 사람들의 이 소중한 시간을 충실한 노동에 바치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다. 바로 교회나 성당을 짓는 데 필요한 세금과 노동력을 헌납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예를 들어 십일조나 면죄부) 그래서 당시 성직자들이 조금의 게으름도 엄청난 죄라며 과장하게 표현했었다. 이들은 게으름에 대해 '정신과 감정, 영혼을 마비시키는 상태'라고 정의를 내렸다.

카톨릭에서는 일곱가지 대죄를 일곱 명의 악마와 연관시켰다. 교만은 루시퍼, 탐욕은 마몬, 음란은 아스모데오, 분노는 사탄, 탐식은 바알세불, 질투는 리바이어던, 나태는 벨페고르가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일곱가지 대죄는 만화의 소재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인간에게는 아담이 지은 원죄보다 수많은 죄악을 저지르지만 악행은 그저 악마가 꾸민 것이 아니다.
모든 악행의 원인은 인간에게서 비롯되어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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