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예수님 당시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유월절, 칠칠절(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으며, 얼마나 성대하게 절기를 지켰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유대인들은 이 세 절기를 ‘성전으로 올라가는 절기 (shelosheth ha-Regalim)’라고 불렀다.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당시의 유월절 상황을 기록하였다: Cestius는 대제사장에게 ‘로마 황제인 네로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유월절 예루살렘에서 희생 양으로 잡는 양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묻고 있다. 요세푸스는 유월절 희생 제물로 예루살렘에 도착한 양의 숫자를 256,500 마리라고 기록하였다. 학자들은 희생 양의 숫자에 근거하여 절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를 대략 짐작한다. 양 한 마리 당 10명이 나누어 먹었을 경우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수는 대략 2백만 명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예루살렘 인근 마을로부터 이렇게 많은 수의 양들이 유월절을 위해 준비되었다. 요세푸스는 절기를 위하여 2,700,000명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고 기록하였다 (JW II, 14:3). 물론 학자들은 요세푸스의 기록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예루살렘 주변으로 안식일에 걷기 알맞은 거리에 많은 마을들이 세워졌다. 이들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절기를 위해 예루살렘에 온 순례자들에게 숙박과 희생 양 그리고 의식에 필요한 그릇들을 제공하였다. 성경에 기록된 베다니, 벳바게 같은 마을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 마을들이다.
누가는 유월절 마지막 주간을 간단하게 언급하였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 . . 백성들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눅 19:47). 특히 솔로몬 행각은 초대 기독교인들의 복음을 전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눅 19:47-48, 행 3:11, 5:12). 예수님 당시의 요하난 벤 자카이 (Johanan Ben Zakkai)는 습관적으로 성전 입구에 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르쳤다고 기록한다. 탈무드는 말하기를 벤 자카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이곳 외에 다른 곳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으며 또한 그는 성전 입구에서 가르치는 것을 크게 즐거워하였다고 기록한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마지막 주간에 하신 설교와 비유는 하나님의 포도원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책임과 관련이 깊다. 예수님은 당시 종교적인 지도자들을 책망하셨다. 화려하게 건축된 성전 맞은편 감람산에 앉으신 예수님은 세상 종말과 자신이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다 (마 24, 막 13, 눅 21).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리고 헤롯당은 예수님의 말씀에 꼬투리를 잡고 체포하려 했지만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실패하였다.
헤롯 당원과 바리새인들은 정치적인 문제를 갖고 예수님께 질문하였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라고 묻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그들은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다. 당시 데나리온에는 Tiberius Caesar Divi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 의미는 ‘신령하신 황제 디베리우스’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험하는 자들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것을 피하시고 동전에 새겨진 화상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 22:15-22, 막 12:13-17, 눅 20:20-25).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님께 돌리고, 가이사가 자신의 것이라 선언한 것에 대해서도 그리하라는 의미이다 (동전에는 로마 황제의 상과 그에 대한 글이 새겨져 있었다). 이 사건 이후 복음서는 저희가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기이히 여겨 잠잠하니라고 기록하였다.
니산월의 중요한 날인 유월절 세데르 (Seder)가 임박하였다. 유월절이 시작되기 한달 전부터 팔레스틴의 모든 길과 다리들은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절기가 시작되기 2주 전에 양무리에서 제사장들을 위하여 십일조가 구별되었으며 성전 금고는 비워 두었고 무덤이 있는 장소들은 하얗게 회를 뿌려 무덤에 닿아 부정하게 되는 일을 금하였다. 요한은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다 (요 11:55). 만약 절기를 지킨 사람이 지체하지 않으면 제사장이 공적으로 선포한 희생양 고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확히 유월절은 니산월 14일 저녁부터 시작되지만 무교절은 니산월 15일부터 시작하여 7일간 즉 21일까지 계속되었다. 이 두 절기는 서로 분리할 수 없으며 성경은 하나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요세푸스는 유월절을 8일 절기라 기록하였다.
두 개의 중요한 절기가 있다. 첫 번째 잔치는 니산월 14일에 있는 희생 제사로써 같은 날 저녁의 유월절 잔치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두번 째는 니산월 15일의 festive offering으로써 요한복음 18:28절의 유월절 잔치를 암시하는데 그 내용은 유대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고 되어 있다. 많은 기독교 학자들은 이 구절에 근거하여 유월절 잔치를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인 금요일로 이해하고 있다.
유대인인 Alfred Edersheim 박사는 복음서에 서로 일치되지 않는 기사들을 보면서 이것들을 억지로 짜 맞추려는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주께서는 유대인들의 관습에 반대하여 유월절 음식을 나누기 전에 유월절 잔치로 참석하신 적이 없다. 왜냐하면 유월절 음식을 먹는 시간은 니산월 14일 저녁이기 때문이다. 산헤드린 공의회는 유월절 잔치를 목요일 저녁에서 금요일 저녁으로 연기하였다. 이것은 잔치의 첫 번째 날에 따라오는 안식일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유월절 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날인 금요일 저녁에 먹었다.
요한이 18:28절에 기록한 히브리말인 pasha은 니산월 15일의 잔치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어떤 인간적인 해석을 내릴 수가 없다. 히브리어로 세데르(seder)는 유월절 잔치를 의미한다. 탈무드의 기록을 참고하면 저녁에 이르러 그러나 자정을 넘기지는 않는다고 기록한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만찬과 오늘날 세데르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보편적인 잔치이다. 세데르를 준비하는 사람은 다섯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했다: 잔치를 치를 장소, 음식을 함께 나눌 최소한의 10 명을 선정하는 일, 희생양으로 잡을 양을 결정하는 일, 그리고 잡은 양을 취하여 석류 위에서 구웠다.
성전의 제사장들은 30명이 그룹을 지어 돌아가면서 근무하였는데 30이란 수는 하나님의 수와 완전 수가 합쳐진 것이다 (3 X 10). 지금도 사마리아인들은 유월절 양 잡는 희생제사를 고대 방법 그대로 지키고 있다.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유대인들은 유월절 희생 양을 더 이상 잡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구별된 제사장과 성전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아침 기도 시간을 빌어 이를 상기하면서 성전과 희생 제사를 다시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속죄일에 정통 유대인들은 닭을 희생함으로 희생제사를 상징적으로 지키고 있다.
유대인들은 잡은 닭을 유대인들의 머리 위에 돌리면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반복한다: “이것이 나에게 유익이 되기를 바랍니다. 닭은 사망으로 들어가고 나는 영생과 평화를 누리게 하옵소서.” 일부 유대인들은 이런 관습이 바벨론 이방 제사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여 배척하기도 한다.
유대인들 각 가정 역시 나름대로 유월절을 위하여 준비한다. 가정의 여인들은 니산월 13일부터 바빠지기 시작한다. 손에 촛불을 들고 그릇을 세밀히 살피고 집안 구석 구석 곰팡이나 누룩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바울 역시 묵은 누룩을 버리라고 말하였다 (고전 5:7, 출 12:15). 지금도 유대인들은 거의 1주일간 매일같이 곰팡이를 없애기 위하여 물로 집안을 청소한다. 그들은 낮에 직장에 출근하기 때문에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 같은 외국인들에게 불편을 줄 정도로 소음을 내며 밤늦도록 청소를 한다. 이 같은 전통은 모세의 율법과 스바냐 1:12과 관련이 있다.
그 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무릇 찌끼 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무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 거하지 못하며 포도원을 심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렘 48:11 참고).
누룩과 곰팡이는 죄와 고통을 상징한다. 랍비 엘리에셀(Rabbi Eliezer)에 의하면 가정은 완전히 청결을 유지해야 하며 심지어는 염색장이의 천, 서기관의 아교도 깨끗해야 했다. 니산월 14일은 저녁 만찬을 위하여 금식함으로 시간을 보냈다. 여인들은 쓴나물, haroseth 소스, 땅콩, 알몬드, 건포도 등을 식탁에 마련하였다. 그리고는 이것들을 한곳에 섞었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진흙을 구운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식탁에는 음식을 깊이 담가 먹기 위해 소금물 또는 식초를 마련하였는데 이것은 노예생활을 하면서 고통에 눈물 젖은 세월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니산월 14일이 시작되기 대략 2시간전 약 오후 12시 30분 경에 hagigah festive offering이 마련되었으며 사람들이 유월절 양을 준비할 시간을 주었다. 복음서 역시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베드로와 요한은 유월절을 위한 방과 유월절 양을 준비할 책임이 주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막 14:13-14). 하지만 물을 긷는 일은 주로 여인들의 몫이었다. 제자들을 인도한 집 주인은 마가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분명하다 (눅 22:7-13, 행 12:12).
수년간 계속된 고고학적 발굴로 말미암아 다락방에 대한 가능한 장소를 추정할 수 있으며 여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들이 마련되었다. 카톨릭 학자인 Bargil Pixner은 자신의 글에서 시온산의 에세네 사람들을 위한 넓은 구역을 기록하였다. Bargil Pixner은 말하기를 예수님 당시 요세푸스와 필로는 바리새인들의 수를 약 6천명, 에세네 사람들은 약 4천명으로 추정하였다. 주전 37년 쿰란이 파괴되었을때 헤롯은 시온 언덕에 그들의 정착지를 마련하기까지 광야에 일시적으로 공동체를 마련할 것을 허락하였다. 시온산을 발굴한 결과 두꺼운 벽으로 두른 많은 방들은 정결을 위한 그리고 순례자들을 위하여 마련되었음이 드러났다. 물동이를 이고 갔던 남자는 아마도 실로암 연못에서 정결의식에 필요한 생수를 길어 나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일부 비평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에세네
사람들이 마련한 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의식을 행하였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였는데 에세네 사람들이 사용한 달력은 유대 월력에 비하여 2일 앞서는데 그렇다면 목요일이 된다. 당시 유대인들의 주류는 누구였는가? 바리새인들 아니면 에세네 사람들 아니면 사두개인들 이것 역시 연구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당시 보편적인 월력은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월력이었으며 그러므로 비평학자들이 말하는 에세네 사람들의 달력 즉 다른 달력에 준하여 유월절을 지켰다는 것은 신빙성이 적다. 아무튼 에세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도 유월절 세데르는 마련되었다. 그리고 발굴의 결과 사도행전 2:41에 언급된 3천명이 세례를 받은 사실에 주목하여 에세네 사람들의 장소에서 행해졌을 것이다. 이 장소는 후에 기독교의 중요한 장소로 이용되었다. 구속에 대한 예수님의 공적인 사역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갈릴리 가나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참포도나무라 하셨다. 이제 그분은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면서 예수님은 새 언약을 주신 분으로서 포도나무의 열매를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마무리하셨다 (요 15).
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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