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과 희년은 토지와 경제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집약시켜 놓은 제도였으며, 이 제도의 기본정신은 "자유와 평등"이었다. 안식년과 희년은 이스라엘의 정치, 사회, 경제, 종교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제도였다. 가나안 정복 이후 하나님께서는 12 지파에게 땅을 분배해 주셨으며, 각 지파는 이것을 기반으로 해서 경제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 토지는 자손 대대로 물려주었고, 사거나 팔 수 없었다. 왜냐하면 토지의 소유주는 하나님이셨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작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지 그 땅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빈부의 격차가 생길 수 있었다. 왜냐하면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이 있고, 가뭄, 질병, 전쟁 등으로 아무런 소산을 얻지 못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 사람들은 논과 밭을 팔거나 몸을 팔고 종이 되어야 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둑질한 경우에 들키면 훔친 물건의 4배를 갚아야 했는데, 갚을 것이 없는 경우에는 자기 몸을 팔아야만 했다.
하나님께서는 후손이 없이 죽은 경우에는 가까운 친척이 그것을 이어받을 수 있게 하셨고, 고아나 과부는 그 친척이 돌볼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러나 친척 중에서도 기업을 무를 사람이 없으면 할 수 없이 밭이나 몸을 팔아야만 했다. 하나님께서는 종된 자들을 이러한 일에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안식년과 희년을 허락해 주셨다. 안식년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토지도 쉬었다. 그리고 그 해에 그 땅에서 맺힌 열매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이 먹을 수 있었다. 안식년과 희년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제도였다.
1. 안식년.
안식년은 안식일의 연장이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7일째에 안식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제 4 계명에서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었다. 그들은 매일 아침에 그 날 먹을 만나를 거두어야 했다. 그러나 제 6일에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이틀 분의 양식을 거두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킬 수 있도록 제 6일에 이틀 분의 양식을 허락해 주셨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양식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안식년은 바로 이러한 안식일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 7년째에 안식함으로써 토지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그 소산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였던 것이다.
가. 안식년은 사람도 안식하고 토지도 안식하였다(레 25:1-5)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6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6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제 7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레 25:1-5).
하나님께서는 제 7년째 되는 해에는 땅을 갈지 말고 묵혀 두라고 명하셨다. 당시와 같이 땅에 줄 비료가 없을 때에는 이러한 땅의 휴식이 소산을 증대시키기 위한 좋은 방법이었다.
나. 안식년은 토지의 소유주나 토지가 없는 자가 다 같은 입장이 되어 생활했다(레 25:6-7)
"안식년 소출은 너희의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하는 객과 네 육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산으로 식물을 삼을지니라"(레 25:6-7).
안식년 기간에는 토지 소유자나 땅이 없는 사람 모두 같은 입장에서 생활했다. 안식년 기간에는 토지 소유자라고 해서 독점적인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이 기간에는 땅의 주인이나, 종, 나그네 심지어 들짐승까지도 모두 평등하게 그 소산을 먹을 수 있었다.
다. 안식년에는 6년간의 모든 빚을 탕감 받고 종은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출 23:1-2, 10-11, 신 15;1-6)
"매 칠 년 끝에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무릇 그 이웃에게 꾸어준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 해는 여호와의 면제 년이라 칭함이니라.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인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 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치리 할지라도 너는 치리 함을 받지 아니하리라"(신 15:1-6).
신명기에 나타난 안식년은 "면제년"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제 7년은 채무자들의 모든 빛을 탕감해주는 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에게는 이러한 법이 적용되지 못했다. 안식년의 기본 정신은 모든 소유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데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수로 인해 자기의 소유나 재산을 팔고 남의 종이 된 경우에 7년마다 정기적으로 회복할 기회를 주셨다(출 23:1-2).
라.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안식년을 지키는 자에게 양식을 주신다(레 25:18-22).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히 거할 것이라. 땅은 그 산물을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히 거하리라.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 칠 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하여 제 육 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 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 너희가 제 팔 년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곡식을 먹을 것이며, 제 구 년 곧 추수하기까지 묵은 곡식을 먹으리라"(레 25:18-22).
하나님께서는 안식년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제 6년에 3년 쓸 것을 주심으로, 안식년을 지키고 그 다음 해에 씨를 뿌리고 다시 추수할 때까지 먹을 영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므로 안식년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필요했다.
2. 희년(8-17)
(레 25:8-17, 23-55)에 나타난 '희년'이란 용어는 영어의 'Jubilee'를 번역한 것이다. 영어의 'Jubilee'는 히브리어의'요벨( )'을 음역한 것으로서, '요벨'은 '수양'이나 '수양의 뿔'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출 19:13,수 6:6,8). 개역 성경과 공동 번역 성경은 이를 모두 "양각 나팔'로 번역하였다. 이 단어에 '희년'이란 명칭이 붙게 된 것은, 제 50년째 해인 7월 10일 '대 속죄의 날'에 수양의 뿔로 된 양각 나팔을 온 땅에 불었기 때문이었다. 양각 나팔에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보통 절기 때에 제사장들이 불었던 굽은 양 뿔로 된 '쇼파르' 이었고, 다른 하나는 '희년'이나 특별한 때 불었던 곧은 양 뿔로 된 '요벨'이었다.)
가. 희년의 명칭
가) 희년의 해(레25:, 27:, 민36:4-)-a jubilee, the jubilee-
나) 50년의 해(레25:10-11)-제 50년에 지키는 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 되돌리는 해-공동번역-(겔46:17)-이 해는 빚으로 빼앗겼던 재산들을 돌려주는 해였으며, 노예가 된 형제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는 해였다.
라) 은혜의 해(사61:2)-이 해는 모든 죄악과 빚으로부터 탕감을 받은 은혜의 해였다.
마) 면제년, 면제의 해(신 15:9)-빚을 면제해 주는 해.
나. 희년법의 전문(8-17)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 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 구 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 지며,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 찌며, 그 오십 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갈지니라(레 25:8-13)
전문에서는 "희년을 계산하는 방법"과 "기본 성격", 그리고 "희년에 취할 기본적인 행동"이 설명되고 있다. 희년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때를 기점으로 해서, 일곱 번째 맞는 안식년 다음 해, 즉 제 오십 년째의 해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제 50년째 해의 신년일(7월 10일)-대속죄일-에 수양의 뿔로 만든 곧은 양각 나팔을 불어서, 그 땅에 자유를 공포하고 기뻐하며 거룩하게 지키라고 지시하셨다.
다. 희년의 성격(10)-대 사면의 해-
* 그 땅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라(10절).
* 그 땅의 모든 사람들은 다 각자 자기의 '유업의 땅'으로 돌아가라(11절).
라. 희년을 지키는 이유
* 너희 형제를 억압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을 경외하라(17절).
전문에 나타난 희년의 핵심적인 내용은 (레 23:10)에 나타난 대로 "자유의 선포"이다. "자유"란 히브리어로 "데로르( )"인데, 이 말은 "해방"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레 25:10)이 말하는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고 할 때의 "자유"는 "노예 해방"과, "재산권 복귀"와 관련된 용어이다.
이 말은 이스라엘의 형제들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불가피하게 어려움을 당하여 노예가 되었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했을 경우 사면해 주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가 선포되었을 때에, 가난하게 되어 몸을 팔아 노예가 되었던 사람은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서 자유인이 되게 하고, 빚 때문에 토지나 가옥을 팔았던 사람은 재산을 되돌려 주라는 것이었다.
마. 토지(땅) 문제 (23-28절)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23절).
이는 희년에 나타난 토지 조항의 기본정신이었다. 토지의 원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누구든지 토지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스스로 땅을 취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선물로서만 소유할 수 있었다. 성경에서는 땅을 주시는 분은 여호와 한 분이심을 거듭하여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토지를 영원히 파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단지 소작인에 불과하였다. 사람들이 생활을 하다가 불가피하게 토지를 팔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원주인인 이상, 영원히는 팔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토지를 매매 할 때에는 다시 되 돌려 받게 될 희년을 기점으로 하여 값이 매겨졌다. 즉 소출을 거둘 횟수가 많이 남아 있으면 그 토지는 비쌌고, 적게 남았으면 토지의 가격은 쌌다.
그러므로 희년 바로 다음 해가 땅 값이 가장 비쌌으며, 제 48년째에는 가장 쌌다. 왜냐하면 그 해에는 그 땅을 1년밖에 경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는 토지를 매입할 때에 그 땅이 아니라 그 땅에서 나는 소출을 팔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제든지 그 땅의 소출만큼의 돈을 지불할 수만 있다면 그 땅을 도로 찾을 수 있었다.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무를 힘이 있거든,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거든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24-28절).
자신이 그 땅을 다시 살 여력이 없을 때에는, 그 친족 중 하나가 대신하여 그것을 살 수 있었다(24-25절). 성경에서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고엘"이라고 불렀다. 이 경우에 가장 가까운 친족이 그 땅을 사서 그 땅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그 친족 중에서 아무도 그것을 사려고 하지 않는 경우에는 할 수 없이 희년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찾아야만 했다.
이와 같은 제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토지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정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조상에게 받은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러한 좋은 예를 (왕상 21:3)에 나타나 있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 발견할 수 있다.
"토지는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
바. 주택 문제(29-34절)
가) 일반인 주택(29-31절)
(레 25:29-31)은 일반인의 주택에 대해서, 그리고 (레 25:32-34)은 레위인의 주택 및 토지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주택 문제에 있어서도 기본적인 방법에 있어서는 "토지 무르는 법'과 별 차이가 없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성곽 안에 있는 주택과, 성곽밖에 있는 주택사이에 구별을 두었다는 것이다.
즉 성곽 밖의 주택은 희년 법을 적용하여 희년이 되면 팔렸던 집을 자동으로 원상 복귀하게 되어 있으나, 성곽 밖의 집은 1년 이내에 무르지 못하면 영원히 무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아마도 성곽 안에 있는 주택이 희년 법을 적용 받지 못하는 것은, 희년 법이 목축이나 경작에 사용되는 땅(farm land)하고만 관계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 레위인의 주택(32-34)
그리고 또 다른 예외가 레위인들에게 적용되었다. 레위인의 집은 언제든지 팔았다가 다시 무를 수가 있었으며, 희년이 되면 희년법을 적용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성읍의 사면에 있는 밭은 팔 수가 없었다. 그들은 땅 분배를 받을 때에 원래 48 곳의 성읍을 분배받았으며, 레위인들에게는 그 성읍이 그들의 가진 전 재산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 재산을 팔게되면, 그들의 고유한 재산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파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는 마치 일반 사람들의 재산이 영원히 팔릴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이 성읍이 레위인들에게 전 재산이었기 때문이었다.
사. 이자 문제 (35-38절)
본문은 얼핏보면 희년과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레 25:35)을 시작하는 도입 문장이 조건절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자 문제 역시 "희년법"과 "무르는 법"과의 관련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경제적으로 옹색하게 되어 동족끼리 서로 도울 때에 이자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식 행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돈을 빌려주는 것과 관련한 이자(interest)이며, 둘째는 먹는 것을 빌려주고 받는 장리(increase)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모두 다 형제끼리는 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제도는 가난한 사람들이 무거운 이자로 인해 점점 더 가난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모두 다 같이 출애굽을 한 형제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형제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이식을 취하기보다는 "넉넉히 도와주고", 최소한 "심한 이자는 받지 않고" 빌려 줄 수 있어야 했다.
아. 노예 해방 문제(39-55절)
마지막으로 희년법은 노예 해방에 관하여 말한다. 이 내용의 주된 사상은 이스라엘인 형제와 동족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노예(종)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형제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기 몸을 팔았을 경우에(노예가 된 경우에)는 그를 종처럼 대하지 말고 "품꾼이나 식객"처럼 대우해야 했으며, 주인된 사람은 그의 가족들도 돌보아 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여 낸 "여호와의 종들", 즉 "특별한 백성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다 여호와의 종이므로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경제적인 곤궁으로 인해서 노예가 된 히브리인들을 품꾼이나 식객처럼 대우하다가 희년이 되면 자유인의 몸이 되게 하라고 지시하셨던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행함으로서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
가) 이방인은 종으로 삼거나 상속할 수도 있었다(44-46절)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으로부터는 종을 살수 있었다(44절). 그리고 이들은 주인의 재산이 되어 상속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희년법은 이방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42, 55절).
나) 이방인에게 팔려 종이 되었을 경우에 속량하는 방법(47-55절)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잘못하여 이방인에게 팔리게 되면, 그들은 노예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경우에는 가능하면 그들을 속량하라고 하셨다.
이스라엘인이 이방인에게 노예가 되었을 경우에 그들이 해방 받을 수 있는 길은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그의 형제나 삼촌, 사촌, 또는 가까운 친척이 대신하여 속량해 주는 경우였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제가 이방인에게 종으로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친족들이 그를 속량하라고 지시하셨다. 여기에서 그 형제를 속량하는 근족을 가리켜서 "고엘'이라고 불렀다(48-49절).
둘째는 자신이 몸값을 벌어서 속량하는 경우였다(49-53절).
셋째는 이 두 가지가 모두 불가능할 경우에 희년까지 기다렸다가 희년에 이르러서 자동으로 사면을 받게 되는 경우였다(54절).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해야 할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품꾼이므로 사람들의 종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품꾼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나의 ,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55절). 그러므로 희년법의 기본정신은 '하나님 경외 사상"(레 25:17, 36)과 "출애굽 신앙"(레 25:38, 42, 55), 그리고 자유와 평등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 희년 법의 의미
가)모든 기본 자산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희년의 첫째 의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 자산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기본 자산을 영구히 팔 수 없으며, 하나님의 것을 자기 소유, 또는 사유화하여 무한정 극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지, 가옥, 그리고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소유요 선물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기본 자산은 빼앗길 수도 없으며, 또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각자에게 주신 것을 법적 용어인 "기업"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기업은 절대로 영구히 양도할 수 없는 것이다.
나) 주기적인 회복을 통해서 사회 문제를 해결함
그러나 인간들의 나태함과 무기력함은 이러한 자산들을 유지하지 못해서 빈부의 차이가 심해지게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들을 주기적으로 회복시켜 줌으로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강제 구조의 모순으로 오는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다) 원상 회복의 의미
이와 동시에 희년법의 의미는 원래의 상태를 회복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희년법의 각 조항들에 나오는 계산법을 보게되면, 기본 자산보다는 거기에서 나오는 소출, 즉 곡식, 가옥의 사용 값, 노동력 등이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인간의 기본 자산이 병드는 것을 막아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려는 인권의 회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주기적인 회복이 없다면, 기본 자산들은 소수의 손에 넘어가고, 나머지들은 농노와 같은 신세로 전락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년 제도는 능력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자들에게 자비로운 행동을 요구함으로써, 경제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제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크신 은총이다.
차. 예수 그리스도와 희년(눅4:16-21)
예수님의 공생애를 여는 취임 설교를 안식일 날 회당에서 하셨다. 누가는 안식일 날에 유대인 회당에서 말씀을 읽기 위해 단 위에 서신 예수님의 말을 통해서 메시야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읽으신 말씀은 (사 61:1-2)과 (사 58:8)을 인용한 것이었다(눅 4:16-21 참고). 이 말씀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가난한 자들과 소외되고 억눌린 자들이 바벨론 포로로부터 해방될 것을 선포한 것이다.
이 구절은 메시야 대망을 예언하는 유명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두 구절의 말씀을 읽고 나서 "오늘 이 성경이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예수님의 세대와 더불어 그 동안 성경에서 예언된 모든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이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역은 (레 25:10)에 나타난 희년의 궁극적 해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그의 공생애 초기의 안식일에 회당에서 선포하셨던 것이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메시야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에 임하신 일을 언급하고 있다. 주님께 인한 성령께서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사역을 위한 것이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희년은 원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의 해였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모든 빚이 회복되는 기회였으며, 부자들의 토지를 통해 나오는 소출을 얻을 수 있는 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메시야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신다고 하셨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은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로 볼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죄 지은 가난한 심령들에게 구원의 길을 주신다는 것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우리 주님께서는 가난하고 불쌍한 심령들을 물리치지 않으셨다. 주님은 이러한 심령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과 같은 이방인 죄인들도 주님 안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나)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전파하며.
희년에는 노예가 되었던 사람들이 해방되었던 날이다. 그리고 빚을 진 사람들이 모두 탕감을 받았던 날이었다. 바로 우리 주님께서는 이 희년의 주인공이 되셔서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시려고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마치 죄를 지어 사단의 노예가 되었는데, 이는 마치 전쟁에서 패배한 군인이 그 적국의 포로가 된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그 세력을 물리치시고 우리를 그 종 된 자리에서 해방시키시고, 우리를 얽매었던 죄와 사망의 세력으로부터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해방시키셨던 것이다. 즉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던 것이다.
다) 눌린 자를 자유케 하며
여기서 말하는 눌린 자는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산산이 부숴진 자를 말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영혼들과 사람들을 자유의 몸이 되게 해주신다. 그리고 또한 율법의 짐에 눌려있던 우리의 영혼을 자신이 그 모든 법을 이루심으로서, 우리를 율법의 짐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셨다. 우리는 이제 주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라)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함이라"(눅 4:16-21).
"주의 은혜의 해"는 바로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들을 위하여 제정해 주신 희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희년이 임했음을 전파하신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모든 죄와 빚이 탕감되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즉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이제 우리의 모든 문제들과 죄의 짐이 완전히 해결되게 되었음을 분명하게 전파해 주셨던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친히 사단을 정복하심으로 우리의 원수를 갚아 주시고, 또 자신의 피를 흘려 우리의 죄의 빚을 갚아 주심으로서, 친히 우리의 "고엘"이 되셨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공적 사역을 통해서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해방시키시고, 우리를 율법과 죄악의 종의 신분으로부터 원래의 하나님의 자녀의 위치로 돌리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사역이 시작된 지금, 이 예언이 그들에게 응하였다고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파하고 있는 복음의 내용은 바로 이 시대를 향한 희년 선포와도 같은 것이었다. (마18:21-35)예수님께서 해주신 '탕감의 비유'가 이 법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레 25:39-55.)
마) 결론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희년은 신자들이 죄와 사단의 종살이에서 해방되고, 자신의 기업을 회복하는 신약시대를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희년은 장차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자유가 주어질 신약시대의 모형이며, 그리스도는 실체인 참 희년을 가져온 종말론적인 메시야이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희년에 타인으로부터 빚과 종살이에서 자유를 누렸던 것과 같이, 신약시대의 신자들도 죄와 사망의 율법의 종 되었던 것에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게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기업으로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자유는 예수님의 초림 때에 시작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부분적인 자유가 완전한 자유와 기업의 회복으로 변화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참 희년은 인간의 혁명을 통해 사회에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위로부터 오는 것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 새로운 질서였다. 위로부터 오는 새로운 질서, 즉 종말론적인 새로운 법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참된 자유와 해방을 맛보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데에 최우선의 관심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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