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자료

가톨릭 용어해설(ㄱ~ㅁ)

대 덕 2025. 5. 10. 14:23

가경자
성덕이 높은 그리스도 신자 사후에 기적이 일어나거나 성덕을 인정하는 여론이 계속되면 그 지방 주교가 시복조사위원회를 결성하여 그의 언행, 생활, 기적 등을 엄밀히 조사하고 교황청 예부성성에 보냅니다. 성성에서는 조사 후 추진할 만하다고 인정되면 교황에게 보고하고 교황이 그의 성덕을 인정하는 교서를 발표하면 비로소 가경자라 부르게 됩니다.

가난
가난, 그 자체는 내세워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풍부함이 하느님의 선물이며 축복의 상징이었다. 그리스도 역시 가난 자체를 축복하지는 않았다. 그는 가난을 견디는 마음과 그 안에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축복한다.

하느님을 외면하고 자신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인간의 부자유스러운 마음에 비하여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할 수 있는 의지는 참으로 복되다. 그리스도 자신은 그 가난을 사랑했다.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가난을 필수적 덕행으로 요구했음이 틀림없다.

가시관
복음서에는(마르 15,16-20, 마태 27,27-31, 요한 19,1-3) 빌라도의 군사에 의해 예수께 씌워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사건은 총독관저에서 일어났는데 그 장소는 시외 서부에 있는 헤로데왕의 궁전이거나 신전의 북서부의 안토니아로 추정된다. 헤로데왕의 군사들에 의해 조롱받는 장면이 루가 복음 23장 11절에 기록되어 있고, 마르꼬 복음 14장 65절에는 대사제의 시종들에 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들은 모두 한 사건에 대한 기록으로 그들 모두에게 조롱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시관에 쓰인 나무는 당시 예루살렘 지역에 흔했던 대추나무의 일종인데 그 뒤 이 나무는 '그리스도의 대추나무'라고 불리고 있다. 이 가시관은 수세기동안 유물로 예루살렘에 보관되어 오다가 1063년에 비잔틴으로 옮겨졌고 1238년에 볼드윈 2세가 이를 프랑스 성 루이에게 전하였다. 1248년 이 유물을 공경하기 위해 프랑스의 생사펠(Sainte-Capelle)이 세워져 그곳에 보관되고 있다.

가슴치기

고백의 기도를 할 때 하느님과 사람앞에 죄가 많음을 고백하면서 "내탓이요 내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하며 오른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동작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려는 동작으로 하느님과 사람을 가로막는 장벽 즉 이기심, 욕심, 미움, 교만 등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이웃과 나, 하느님과 나 사이를 터놓고 싶은 심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계획

가족계획을 세우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그 계획과는 다른 경우가 생길 때는 하느님의 안배하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신자다운 자세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교회가 산아제한을 금한다고 생각하는데 교회는 산아제한을 하는 방법이 그릇될 때 그 방법을 금합니다. 즉 피임기구나 낙태, 임신중절 등을 금합니다. 교회가 권장하는 방법은 인체생리주기에 따른 자연법 또는 빌링스법 등이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각 교구 행복한 가정운동 본부로 문의하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톨릭(catholic)

'보편'이라는 어원을 가진 이 말을 처음에 사용한 사람은 2C 초 스미르나의 성 이냐시오입니다.

그 '보편성'에 대해 처음으로 정의를 내린 사람은 2C 말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인데 "온 세상에 퍼져 있고,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지식이 포함되어 있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이를 신앙에로 이끄는 까닭이라고 밝힙니다.

가톨릭을 천주교라고도 하는데 이 까닭은 가톨릭을 우리보다 먼저 전래받은 중국에서 하느님을 천주라 불렀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

가톨릭이란 말 자체가 지닌 뜻은 보편적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처음 쓰신 분은 2세기 초 스미르나의 성 이냐시오 주교인데 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퍼져있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를 모두 일컬어 하나의 교회 즉 가톨릭이라 사용한 이래 널리 이용된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특징은 크게 네가지로 보는데

첫째 ,하나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들은 옛부터 여러 종파가 있었지만 가톨릭은 전세계 어디서나 다같은 하나의 교회입니다.

같은 교리를 믿고 같은 방법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며 한 목자인 교황의 지도아래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둘째,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신자 모두가 거룩하다는 뜻보다 거룩함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교회안에 계시고 신자들이 하느님의 은총속에 말씀에 사랑으로 응답하며 거룩하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세째, 공번되다는 것입니다.

모든이가 구원받기를 바라신 주님에 뜻에 따라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든이를 구원에로 초대한다는 구원의 보편성을 말합니다.

네째,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뽑으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로 세상 마칠 때까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간직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가톨릭 농민회

농민 스스로의 단결과 협력으로 농민의 권익을 위하고, 인간적 발전을 도모하며 사회정의의 실현을 통해 농촌사회의 복음화와 인류공동체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여 1954년 유럽의 8개국 18개 운동단체들이 가톨릭 농민회 국제연맹을 창설하였습니다. 1958년 교황청의 인준을 받았고 현재는 정회원국이 5대륙에 걸쳐 있으며 4년마다 국제총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국제 본부는 벨기에 루뱅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 10월에 창설되었고, 1970년 9월 정회원국으로 가입하였습니다. 1976년 3월 한국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았습니다.

간접계시

계시(啓示)는 '열어보인다'는 뜻으로 아직까지 볼 수 없었던 그 내부를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지능으로는 알아내지 못하는 진리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아무도 거치지 않고 직접 계시를 받는 경우를 직접계시라 하고 하느님의 사자를 통하여 계시받는 경우를 간접계시라 하는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직접계시를 받은 사람들이고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간접계시를 받는 것입니다.

간린

재물을 지나치게 탐하고 재물모으기에 급급하여 지나치게 인색한 태도를 말합니다. 7죄종의 하나로 물질을 수단이 아니라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태도로써 하느님과 이웃을 망각하고 재물 모으는 과정에서 많은 덕목을 거스릴 계기가 되기도 하며 냉혹함, 권세욕, 부정등을 추구하게 됩니다.

간음

간음은 자기 배우자가 아닌 남자나 여자하고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 행위는 자기 배우자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십계명의 제6계명에서 금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계명을 확대시켜 합법적인 부부는 생존하는 동안에 이혼을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감도

교회는 성서에 대해 얘기할 때 하느님께서 저술한 사람들에게 그 책을 쓰게 하고 비추시고 인도하셨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성서 저자들이 받은 성령의 비추심과 인도를 신학전문용어로 감도라고 합니다.

제 목 : 감목과 감목 대리

감목은 주교를 가르키며 양을 치는 목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식 교구의 주교가 아니라 포교지의 교구장으로서 대목구의 대목, 지목구의 지목을 말한다. 또 감목대리란 감목대리구를 담당하는 사제를 말한다.

제 목 : 갑빠

성체강복, 장례예절, 행렬 등의 예식 때의 사제가 입은 만또형 제의의 일종으로 제의 색에 따라 다른 색의 깝바를 사용합니다.

제 목 : 각고

대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영혼이, 지복을 직관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악마와 더불어 그 죄의 영원한 벌을 받는 고통을 뜻한다.

제 목 : 각혼

17-18세기에 중국으로 부터 한국에 들어온 [영언여작]을 통하여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천주교 용어의 하나로서 '사람과 동물의 감각하는 힘'을 지칭한다. [영언여작]은 라틴어 'Anima'에 관하여 나누어 논술한 책으로 추정되는데 그중 생혼, 각혼, 영혼으로 구분하여 풀이하고 있다.

생혼은 식물의 혼으로서 식물적인 기능의 원천을 말하며 영혼이란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영적인 실체를 말한다. 그리고 각혼이란 동물만이 갖고 있는 영혼을 말한다.

제 목 : 간구

하느님의 오묘한 이치와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도록 간절히 구하며, 자신과 타인의 구원과 행복을 위하여 간절히 청하는 것을 말한다.

제 목 : 강복

복을 빌어줌.

하느님은 당신이 만드신 만물을 축복하시고 모든일이 당신의 뜻대로 잘 되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이웃에게 복을 내려주시도록 빈다. 사제는 미사가 끝날때마다 또는 신자가 청할 때마다 손으로 십자가 형상을 그리며 축복해준다. 부모된 이들도 준성사는 아니나 필요할 때에 자녀들에게 축복하는 힘을 하늘에서 받는다.

때문에, 신자라면 누구나 남에게 복을 빌어줄수 있다. 미사중에 "진심을 축복합니다" 하는 평화의 인사는 바로 이를 말해준다.

제 목 : 강생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우리 구원을 위하여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어 세상에 내려오심을 말한다.

즉 하느님의 구원사업의 절정이라 말할 수 있다. 당신 자신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써 인간은 죄를 용서받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그리스도의 강생은 신앙의 신비로서 신앙의 신비에 속하는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믿는 것이 바로 교회고 그것을 부정할 때에 우리는 교회의 모든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제 목 :구(9)일 기도

개인이나 공동체가 특별한 은총을 받기 위하여 9일동안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서에서는 사도들이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 승천 후 성령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하였던 데서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9일 기도는 수세기 동안 교회에서 장려되어 왔는데, 특히 17세기초에는 교회 축일을 앞두고 그 준비로서, 또는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많은 신자들이 즐겨 바쳤습니다.

보통 9일 기도는 규정된 기도문과 함께 고백성사, 영성체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제 목 : 공동참회(고백)

참회자들이 모여 참회를 공동으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 죄는 하느님과의 개인적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관계에 커다란 흠을 낸 것이다. 그러므로 죄의 용서를 받고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 초대교회는 공동체적인 참회를 했었다.

공동참회는 고백성사를 위하여 필요한 성찰, 통회, 정개 등을 참회의 전례로서 공동으로 이행한 참회자가 고백신부에게 개별적으로 죄를 고백한다음 고백을 들은 신부가 그들 모두에게 사죄를 베푸는 것을 말한다. 공동참회는 개별고백없이 혹은 개별사죄를 받기 이전 준비과정으로도 행해진다.

제 목 : 공미사

미사의 독서와 기도문만 봉송하고 성찬의 전례부분을 생략한 미사, 공미사를 봉헌한 기록은 9세기 프루덴시오(Prudentius) 주교의 예식서에 처음 나타나며 13세기 윌리엄 두란드 주교가 이의 타당성을 논의한 적이 있었다. 종교개혁이전시기에 혼인미사, 위령미사의 경우에 국한되어 공미사가 많이 봉헌되었고 항해중인 선박안에서도 공미사가 봉헌되었었다.

제 목 : 개종

종래의 종교를 버리고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임을 말한다. 개종이란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나 성공회의 신자가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불교나 유교신자가 가톨릭 신자로 되는 과정은 입교라고 표현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비가톨릭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경우에는 개종이란 말을 쓰지 않고 "교회의 완전한 교류로 들어간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제 목 : 거양성체

미사성제에서 축성하여 성체와 성혈로 변화된 면병과 포도주의 형상을 신자들이 쳐다보고 경배할 수 있도록 높이 올려보이는 행위를 말한다.

성체와 성혈을 거양하는 의미는 육신의 음식과 음료에 불과한 면병과 포도주가 축성의 말씀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였음을 주지시키며,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제물이 되신 예수께 대한 감사를 드림에 있다.

제 목 : 관면혼배

신앙은 현세의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결혼생활로 인해 신앙생활이 피해를 입으면 안된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신자끼리의 혼인을 권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은 다종교 국가에서는 신자가 아직 소수이므로 비신앙인과 결혼할때에는 특별한 조건을 갖추고, 다음 두 사항에 서명날인을 하면 혼인이 성사되는데 이를 관면혼배라 한다.

서약의 내용은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자녀를 입교시키겠다는 약속과 비신자는 배우자의 신앙을 방해하지 않고 자녀를 입교시키겠다는 약속이다. 이때 양쪽 모두의 증인이 필요하며 만일 관면혼배를 하지 않고 외교인과 혼인때는 외교인조당에 해당된다.

제 목 : 경교

시리아 유프라텐시스에 있는 제르마니치아 원주민인 네스토리우스에 의하여 창출된 교리를 신봉하는 종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위격적 결합이 아니라 외형적 결합이라 하여 그리스도안에는 두 인격이 있다는 주장을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제 목 : 구마

사람이나 사물에서 악마나 악의 감염을 구축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서에서 보면 예수는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을 돕기 위하여 여러 차례 구마를 시행하였습니다.

구마는 고대 아시리아나 이집트 등지에서도 시행하던 풍습으로 여러 문화권에서 여러 형태들이 있으나 성서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예수의 활동과 그의 세상에 오심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서를 통하여 보면 악마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며 인간을 죄악으로 유혹함으로써 불행과 죽음에 떨어지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영입니다.

인간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하러오신 예수는 악령의 세력을 억누르고 추방함으로써 당신이 구세주이시며 세상에 구원이 도래하였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마는 궁극적으로 구세주 예수가 죄악에 대해 승리하셨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되어 있고 그의 파견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한 것과 같이 악의 세력을 제어하고 악령을 쫓아내는 힘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인간이 악령에 사로잡힐 가능성을 인정하고, 믿는 이들은 구마를 합니다. 구마는 사람이나 사물에서 악령을 추방해달라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기도하는 형식으로 행해지며 이때 구마식 집전자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신앙에 근거를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얻어 집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령에 사로잡힌 듯한 현상이 사실은 악령과 무관하고 심리적 요인이나 질병에서 연유될 수 있으므로 구마식을 거행하기 전에 그 현상이 악령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판명해야 합니다.

이와같이 신중성을 기하기 위해 교회는 구마식을 공적으로 행하기 전에 주교에게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 목 : 구약성서(舊約聖書)

구약은 46권으로 되어 있는데 39권은 히브리어로, 나머지 7권을 그리스어로 씌여졌습니다. 원본이 그리스어인 토비트,유딧,지혜서,집회서,바룩,마카베오 상 하 그리고 에스델서와 다니엘서의 일부를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 하며 정경으로 인정치 않는 반면 가톨릭에서는 382년 로마 주교회의 정경목록을 트리엔트 공의회(1546)가 재확인 하였으며 계속 제2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 목 : 글로리아

'영광'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전례용어로는 영광송을 지칭합니다.

1) groria in excelsis(글로리아 인 엑스첼시스) : 대영광송(freat doxology)라고 번역됩니다. 예수가 탄생할 때 천사가 부른 찬미의 노래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천사의 노래(Hymnus ; 힘누스)라고도 불리며 그 내용은 성삼위의 찬미입니다.

4세기경의 문서인 [사도헌장]에서 그 원형을 찾아 볼 수 있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씌여진 5세기의 문서에 나오는 것은 오늘날의 것과 상당히 가깝습니다.

라틴어로 된 오늘날의 글로리아는 9세기경 지어졌다고 하나 저자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로마식 전례에서는 6세기 경부터 미사에 사용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주일과 순교자의 축일에 주교만이 노래부를 수 있었고, 부활절에만 사제도 노래부를 수 있었으나 11세기 이후 이런 구별이 사라지고 모든 축일미사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입당 기도 후 본기도 전에 불리우는데 평일, 대림절, 사순절 미사와 죽은 이와 관련된 미사에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2) gloria parti(글로리아 빠르띠) : 그냥 영광송이라고 합니다.

제 목 : 기리에

자비를 구하는 기도, 그리스어의 Kyrie eleison(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의 준말로, 미사때에 참회예절 때, 대영광송 전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를 향한 간구입니다. 초대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있어서 Kyrios(주님)는 신의 이름이고 성부와 동등하시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고유한 칭호였습니다.

제 목 : 기적

초자연적인 계시의 표지로서 하느님이 비범하게 역사하시는 감지할 수 있는 사건, 기적은 치유하고 구원하는 하느님의 종말론적 능력을 미리 계시하는 것이라는 의미와 이 계시를 모든 사람들이 깨닫기 쉽게 하기 위하여 감지할 수 있으면서도 비범하게 표현된 것이라는 표징적 기능을 지닙니다.

기적은 질병의 치유와 같은 물리적 기적과 예언의 경우처럼 지적 기적 및 사도 바울로의 개종사례와 같은 윤리적 기적으로 구분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과 신약에 와서는 예수로부터 하느님의 기적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기적은 회개와 신앙을 일깨워주려는 의도를 지닙니다. 그러나, 믿기 위하여 그분의 기적에 너무 의지하는 것은 불완전한 신앙의 표현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내 성인들의 빛나는 업적 안에서 볼 수 있는 윤리적 기적들과 루르드의 기적같은 물리적 기적 등은 하느님의 말씀에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없으면 기적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제 목 : 까논(canon)

가톨릭의 기본 지침이 되는 규칙들. 즉, 교회에 의해 정식으로 승인된 성서와 같은 영감적인 저술들, 교리적 진리에 대한 정의, 성찬기도, 교회 음악 형식, 미사 전문의 판형, 수도회의 회헌 등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제 목 : 강론

전례 때 성서나 교리를 설명하여 신자들의 삶을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제 목 : 강생구속

4대교리 중의 하나로 인간이 범죄로 인하여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으나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어 인간의 죄를 대신 보속하였으므로 누구든지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입니다.

제 목 : 개두포

사제가 미사때 입는 제의 중 제일 먼저 입는 것으로서 아마포로 만든 네모난 보자기 형입니다. 고대 로마인들의 목도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제는 이것을 어깨 위에 걸치면서 '주여 내 머리에 투구를 씌우사 마귀의 공격을 막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즉 개두포는 '구원의 투구'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 목 : 개신교

프로테스탄티즘이라고 하며 16C 소위 종교 개혁운동으로 생긴 종파들을 총칭합니다.

'항의한다'는 뜻인 프로테스탄트란 그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와 제도와 생활 등을 개혁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주장을 분명히 하였다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들의 성전례는 성만찬과 견진을 포함한 세례 의식만 있고 또,이들은 신도중심의 자치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인간이 자기행위와 공로의 도움없이 복음을 믿음으로써만 의롭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성서가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주류를 이루는 분파는 독일 루터에 의한 루터 교회와 스위스 쯔빈글리, 칼빈에 의한 개혁교회, 영국의 성공회, 자유교회 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884년 황해도 송천에 서상륜에 의한 교회당이 최초로섰고, 미국 장로교인이며 의사인 알렌에 의해 1885년 4월 광혜원이 개원되어 의료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와 미국 감리교 아펜젤러 등이 한국에 선교를 시작하였고 차례로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안식교, 침례교 등이 들어와 복음선포와 의료, 교육, 사회사업 등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제 목 : 견진성사

성세성사를 받은 신자에게 성령과 그의 선물을 주어 신앙을 성숙시키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는 성사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도록 특별한 은혜를 주시는데 슬기, 통달, 의견, 지식, 효경, 두려워함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함은 그리스도의 직무면서 교회의 직무인 예언직, 사제직, 왕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예언직이란 하느님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전하는 것이며 사제직이란 사제이셨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제사에 참여하고 제물이 되사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일상 삶, 노동과 기도, 고통과 기쁨을 바치는 것입니다.

왕직이란 착한 목자이며 왕이셨던 그리스도를 닮아 이웃과 세상에 봉사, 즉 모든이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사랑의 봉사를 통해 세상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일생에 한번만 받게되는, 견진성사는 성세성사처럼 인호를 받게 되며 통상적으로 집전자는 그 지역 주교이나 특별한 경우 사제도 집전할 수 있습니다.

견진성사의 대상자는 성세받은 신자로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연령에 도달한 자이며 견진 대부 대모는 만 16세 이상의 견진성사를 받은 신자로서 견진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내적, 외적 준비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제 목 : 계약

라틴어로는 Testamentum이라고 하며 약속, 유언의 뜻을 지닌 이 말은 두 대상이 서로의 관계를 정하는 것으로 언어나 상징적인 행위로 맺게 되는데 계약당사자들 사이에 구속력을 갖게 됩니다. 구약에 보면 하느님께서 한 인간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시며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고 모세를 시켜 에집트를 탈출한 후엔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시나이산에서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계약으로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시어 그들을 보호해 주시고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그분께 예배를 드리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은 사랑으로 약속에 충실하신 하느님께 반해 인간들은 계속적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그분의 뜻을 거부하며 계약을 깨곤 하였습니다.

결국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는데 이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인간들의 죄를 기워갚고 그 피로 새 계약을 맺으심으로써 예수가 그리스도, 구세주임을 믿고 그분을 따르는 모든이를 영원한 생명의 땅으로 인도해주십니다.

구약은 상징과 암시에의한 불완전한 계약인 반면에 신약의 계약은 최고사제이신 예수가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영원히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셨기 때문에 완전한 계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목 : 계시(啓示)

1) 계시(啓示) : 계시(Revelation)란 말은 라틴어 'Revelum'에서 나왔습니다. 이 단어는 두 단어가 합하여 된 것으로, 're'는 '다시', '제거하다', velum'은 '휘장'이란 뜻으로, 즉 '휘장을 열어 보인다' 는 뜻입니다. 따라서 계시란 인간지능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를 하느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것을 말합니다. 이 계시에 바탕을 둔 종교를 계시종교라 합니다. 계시는 하느님이 직접 알려주시는 직접계시와 인간이 대자연을 통해서, 또 양심을 통해서 아는 자연적 계시(간접계시)가 있습니다. 세상의많은 종교는 계시종교와 자연종교로 나눌 수 있는데, 계시종교로는 그리스도교, 자연종교로는 유교와 불교를 들 수 있습니다.

2) 율법서 : 모세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율법서 또는 토라(Tora)라고 합니다. 오경(五經)은 라틴어로 펜타테우쿠스(pentateuchus)라고 하는데, 원래는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을 5개의 두루마리(penta)로 나누어 5개 항아리(teuchus)에 넣어 보존하였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모세가 앞에 붙여 모세오경이라 하는데 모세를 오경의 저자로 믿는데서 기인합니다. 그런데 오경의 저자에 대해서는 12세기부터 많은 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가톨릭 학자들은 모세가 다 쓴 것이 아니고 모세로부터 오는 전승(예:십계명)을 토대로 삼아 모세오경이 씌어졌다는 뜻에서 모세를 저자로 본다는 견해입니다.

3) 예언서 :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 말씀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을 예언자라고 합니다. 예언서는 예언자들이 직접 쓴 것이 아닙니다. 예언자들의 말이 구두전승(口頭轉承)으로 보존되었고 후대에 와서 영감을 받은 저자들이 전승된 말씀을 기록하고 정리한 것입니다.

제 목 : 고백성사

세례를 받은 신자가 세례받은 이후에 지은 죄에 대하여 하느님께 용서를 받고 교회와 화해하도록 해주는 성사입니다.

인류를 교회로 불러 모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간은 세례를 통하여 원죄와 그동안에 자신이 지은 죄 즉 본죄의 사함을 받고 교회 안에 하느님의 자녀로 탄생합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이후에도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죄를 짓게 되므로 예수님은 고백성사를 세워 당신의 죄를 사하는 권한을 12사도들에게 주시어 인간을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습니다. 사도들의 이 사죄권은 다시 그 후계자인 주교와 그 협조자인 신부들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고백성사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죄를 생각해 내고 그 죄를 깊이 뉘우친 후 다시는 이같은 죄에 빠지지 않을 결심을 합니다. 고백신부님께 겸손되이 죄의 고백을 하면 사제는 죄를 용서해 주고 보속을 주시는데 그것을 실천하면 됩니다.

고백성사는 우리 구원에 꼭 필요한 성사이므로 위급할 경우에는 고백성사를 받으려는 원의를 가짐으로써 성사를 실제로 받는 효과를 얻게 됩니다.

통회에는 죄로 인해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린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상등통회와 지은 죄로 인해 받게 될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는 하등통회가 있는데 고해성사를 받기 위해 통회는 꼭 필요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연령에 달한 모든 신자는 일년에 적어도 한번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을 의무가 있습니다.(교회법 제 989조)

제 목 : 고백의 기도와 통회의 기도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하루하루를 살 수 있으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하루를 살면서도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는 생각과 말과 행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이웃까지 끼친 누에 대한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죄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없게 하고 세상살이도 무질서하게 만들어 불행을 초래하며 나아가 이웃과 관련이 없는 죄는 없습니다. 따라서 무슨 죄이든 하느님의 영광에 손상을 끼치고 하느님의 분노를 사고 하느님의 은총을 감소 혹은 단절하여 하느님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합니다. 더 나아가 내 안에는 하느님 대신 악이 자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촌각을 다루어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 죄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고백과 통회가 필요합니다. 이 통회의 기도을 도와주는 기도움이 '고백의 기도'와 '통회의 기도' 입니다.

<고백의 기도에 담긴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능하시어 나의 마음까지 알고 계신 하느님과 희노애락을 같이 하며 나의 성장과 말과 행위로 많은 애덕을 거스렸고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며 생활하였기에 이를 고백합니다. 나는 내가 범죄하게 된 원인을 어느 누구의 탓으로 돌려 원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범죄한 나 자신을 미워하고 스스로 내 가슴을 치면서 뉘우칩니다.

하지만 나는 죄인이로서 감히 하느님 대전에 용서조차 빌 면목이 없으니,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은총의 전달자들은 나를 대신하여 나를 위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십시오. 전능하신고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용서를 간구하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어 의노를 거두시고 죄를 사하시어 은총중에 살게 하시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통회의 기도에 담긴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피조물인 나는 당신의 뜻에서 벗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주께서는 나를 당신을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상의 제물로 희생시키는 크나큰 사랑을 베푸셨고, 온갖 성사와 말씀과 은총으로 나를 당신께로 이끌시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외면하고 게으름과 사욕과 세상의 유혹에 빠져 당신을 배반 하였습니다. 이제 나의 잘못으로 당신께 누를 끼쳤음을 깨달아 뉘우치며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이제 자비하신 하느님 당신을 알고 내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깊이 깨닫아 나에게는 죄 사함의 길이 되고 당신께는 나로 인해 손상된 당신의 영광과 위엄을 되찾도록 보상하기 원하오며 전선미의 근원이신 당신만을 사랑할 것과 또 다시 당신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할 것을 굳게 결심합니다. 이 결심을 깨뜨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 당신과 함께 영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당신의 은총으로 도와주십시오.

미사중에는 고백의 기도를 마땅히 해야 할 것이지만 죄를 범한 후에나 하루를 반성한 후, 혹은 고백성사 전에 이 기도를 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비로운 용서를 청합니다. 그리고 통회의 기도도 함께 합니다. 어떤 경우에든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통회가 요구됩니다. 진정한 통회에는 진실한 고백과 새 생활을 하고자 하는 결심이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통회는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요한 8,11)는 용서의 말씀을 듣게 합니다.

제 목 : 고성소

예수 그리스도가 강생하여 세상을 구원하시기까지 옛 의인들이 천상의 완전무결한 행복의 경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광의 날을 기다리면서 머물던 곳입니다.

이곳은 초자연적인 행복은 누릴 수 없지만 자연적 상태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곳으로 믿었습니다.

교회는 고성소의 존재를 명확히 정의한 적은 없으나 여러번 간접적으로 지지를 표명하였습니다.

또 어떤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부활로 고성소가 사실상 없어졌다고도 합니다.

제 목 : 그레고리오력(Gregorian calendar)

지구가 스스로 한 바퀴 회전하면 1일, 그러면서 태양 둘레를 한 바퀴 돌면 1년, 달이 지구 둘레를 돌면서 그 차고 기우고 다시 찰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1개월이라고 한다. 이렇게 지구와 달과 해의 독립된 운동 주기를 결합시켜 놓은 것을 역법(曆法)이라 하며, 인류의 역사는 어느 시대에나 그 정확한 역산법이 요구되었다.

1년 365,2425일이고, 4년마다 윤년 즉 2월 29일로 한다. 그러다가 4로 나누어지지만 100으로도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평년 즉 2월 28일까지로 하며, 그 중에서 400으로도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다시 윤년이 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이른바 양력으로서 1582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제정하고 공포했기 때문에 그레고리오력이라고 한다. 4백년 전에 만들어진 역법이지만 전세계가 사용하고 있고, 실제의 태양년 즉 365.2421949일과 별고 차이가 없어 3300년에 하루가 틀리는 정도로서 그 우수성을 입증받고 있다.

교황은 1576년 73cm높이의 바람의 탑을 짓고 내부에 별자로 그림을 그려 놓은 다음, 벽면 5cm 높이의 구멍을 뚫어 정오 태양빛이 해당 별자리에 떨어지면 그날은 춘분(3월 21일)으로 정해왔는데, 그 차이가 나는 것을 보고 달력 개정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춘분이 그리스도의 부활절과 대축일의 날짜 계산과 관계가 깊었고, 정확한 날짜에 부활 예식을 거행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신앙과 과학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제 목 : 꼬미시움

레지오 마리애 조직 단위의 하나로 몇 개의 꾸리아로 이루어지며 이 꼬미시움이 몇개 모이면 세나투스를 구성하게 됩니다.

제 목 : 꼰칠리움

꼰칠리움 레지오니스라고 하며 레지오 마리애의 세계 본부를 가르킵니다. 이는 레지오의 최고 관리권이 부여된 중앙평의회로서 현재 에이레의 수도 더불린시에 있습니다.

제 목 : 공관복음서

마태오, 마르꼬, 루가 이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합니다.

세 복음서를 비교해보면 소재는 물론 낱말에 이르기까지 서로 일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르꼬 복음서의 총절수 661절 중에 660여절이 마태오 복음서에, 350여절이 루가 복음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 마르꼬에는 없지만 루가와 마태오 양편에만 수록된 것이 240여절에 달합니다. 이렇게 세 복음서 안에는 깊은 연관이 있으므로 공관복음서라고 부릅니다.

독일의 언어학자 라흐만 이후의 신약학계에서는 마르꼬는 서기 70년경 예수님의 말씀과 이야기 전승들을 모아 역사상 처음으로 복음서를 집필하였고 이보다 10년 내지 20여년 앞서 시리아지방의 무명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말씀만 모아서 '예수 어록'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마태오와 루가는 서기 80-90년경에 복음서를 집필하였는데 그들은 마르꼬복음서와 예수어록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하였고 입으로 전해지던 고유한 사료들을 수집하여 각기 각각의 복음서를 집필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제 목 : 공로

공로는 두가지로 구분되는데 자연공로와 초자연적 공로입니다.

초자연적 공로는 하느님 앞에 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데 이러한 공로를 쌓기 위해서는 세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의지적인 노력으로 선행을 해야 합니다.

둘째, 그 선행이 인간적인 동기에 있지 않고 하느님을 위한 초월적 지향이 있어야 하며,

세째, 은총 상태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대죄를 지은 자는 고백성사를 통해 은총의 상태로 회복해야 합니다.

이러한 공로개념은 하느님 홀로 구원자라는 신앙에 모순된다는 전제아래 루터는 신앙만이 인간을 의화시킨다고 공로의 가치를 전적으로 부인했습니다. 이에 대해 트리엔트 공의회는 인간행위의 가치를 재검토하였는데 인간은 의화에 의하여 본질적으로 변화되며 의화된 자는 하느님 눈에 가치있는 행위를 할 수 있고 공로를 쌓을 수 있는데 인간은 성화은총으로 인해 하느님의 상대자가 되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또 공의회에 의하면 공로는 먼저 은총과 선물로 다음으로 성생에 대한 보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인간은 혼자 힘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공로에 참여함으로서 공로 행위를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제 목 : 공번되다

이말은 가톨릭의 특징을 드러낸 말로 공평하게 모든 사람들 즉 시대, 장소, 인종,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여 모두에게 해당되며 누구든지 다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까닭입니다.

제 목 : 공복재

이는 공심재라고도 합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성체에 대한 존경과 영성체를 준비하는 마음에서 적어도 영성체하기 전 한시간동안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과 약은 언제든지 들 수 있고 고령자나 병자, 병자를 간호하는 이들은 음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제 목 : 공심판

세상 종말에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그리스도가 행하는 최후의 심판을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원자로서 구원사업을 완성시키는 행위요 하느님이 인간 역사에 마지막으로 간섭하는 사건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산이와 죽은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공심판의 대상은 모든 사람 즉 남녀노소, 산 이와 죽은 이 모두를 포함하며 공심판의 시기는 세상 종말일 뿐 정확한 날짜는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공심판때의 심판관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사도행전 10, 42에 말씀대로 하느님께서 그 아드님 예수를 산 이와 죽은이의 심판자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느냐 안했느냐가 의인과 악인의 기준이 됩니다. 공심판의 상황은 주님의 재림과 육신의 부활과 함께 묵시록에 생생히 묘사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는 위대함을 설명한 것이며, 성령이 인간에게 임하시어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도록 하셨듯이 공심판도 인류에게 종말적 변화를 시키는 결과를 내는 방식으로 임할 것입니다.

제 목 : 공의회

공의회는 교황이 소집하는 전세계 모든 주교들의 공식 회의로서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힘입어 교회의 신앙과 도덕에 관한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교회의 회의입니다.

사도들이 교회의 긴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회의를 시작하였습니다. 교회는 이 회의안에 성령의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기에 신앙교리나 도덕적인 것을 공의회에서 결정하여 교황이 공포를 하면 오류가 절대 없다고 믿습니다. 공의회는 일반적으로 개최지의 이름을 따게 되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21차 공의회입니다.

제 목 : 과망

망덕에 위배되는 죄악으로 하느님의 은혜없이 자기의 힘만으로 또는 자기의 노력없이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는 자신의 악한 행위나 지향을 하느님이 도와주실 줄 믿거나 하느님의 인자하심을 구실삼아 범죄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 목 : 과성은혜

인간의 본성을 더욱 완전하게 하는 하느님의 은혜입니다. 원죄를 범하기 이전 아담과 이브가 고통과 죽음을 당하지 않고 탐욕에 지배되지 않은 은혜를 누리던 상태를 두고 말합니다.

제 목 : 과월제

유월제 혹은 파스카라고도 합니다. 파스카를 참조바랍니다.

제 목 : 관면

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경우 법률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관면은 법규정의 폐지나 법규정의 준수를 해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될 때 일시적으로 법규정의 의무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특별법에 의거하여 영원히 법규정으로부터 해방되는 특전과는 구별됩니다.

관면은 법 개정자, 그의 후계자, 그의 장상 또는 그들로부터 관면권을 부여받은 자에 의해 베풀어지는데 교황은 교회의 최고 입법자로서 모든 교회법에 관면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법에 대해서도 모두 관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 목 : 관상

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의 본성에 참여하여 친밀한 친교를 누리도록 부르시고 있습니다. 그 완전한 친교는 천국에서 지복직관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그 직관능력의 씨앗을 받았습니다.

관상은 그 씨앗을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싹트게 하며 꽃피우는 것입니다. 관상은 염경기도나 일반적 묵상기도와 달리 단순하게 직관으로 본질을 터득하는 데서 오는 것으로 직관의 기도라고도 합니다.

관상자는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 즉 말, 생각, 감정, 상상등을 모두 침묵시키고 단순히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과 친밀한 친교를 체험하는 가운데 사람은 자신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존재가 본질적인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때 하느님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도달해야 할 목적이라기보다는 삶의 주체요 내용이요 생명의 원리가 되기에 이릅니다. 관상은 이에 도달하는 양식에 따라 수득적 관상과 주부적 관상으로 나뉘는데 개인적인 노력으로 직관의 능력에 도달하는 것을 수득적 관상이라 하며 하느님의 은헤로 인하여 신적 영역을 체험하고 신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는 것을 주부적 관상이라고 합니다.

관상은 완덕에 도달하는 하나의 수단이지 완덕 자체는 아닙니다.

제 목 : 관상수도회

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행위인 관상을 목적으로하여 고독과 침묵 속에서 계속적으로 기도하며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려는 자들의 수도공동체 생활을 말합니다.

갈멜회, 글라라회, 시토회 등이 있습니다.

제 목 : 교계 제도

그리스도의 신비체요 하느님의 백성인 성교회 안에서 가르치고, 성화하고, 다스리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목자들의 집단을 의미합니다. 성직자는 그리시도의 인성을 대리하는 자로써 교황과 주교. 사제. 부제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이 말은 하느님의 정하심에 따라 각기 소임을 맡은 9개의 천사군을 의미했으나 교부시대로부터 각 품계에 임명된 성직자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으며 넓게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교회조직 전체를 의미합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교계제도는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체제의기본이며 신품전에 의한 것과 재치전에 의해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신품전에 의한 교계제도는 미사집전과 관련되는 주교, 사제, 부제 세 계층으로 나눌 수 있고 재치권은 교회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입법, 사법, 행정권과 관련되는 것으로 교황과 주교의 권한을 말합니다.

이러한 재치권은 사제와 부제에게도 부분적으로 위임될 수 있기에 교회의 교계제도는 모든 계층의 성직자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 목 : 교무금

교회 유지를 위하여 교우들이 의무적으로 바치는 헌금을 말하며 그 기원은 구약의 십일조에서 유래합니다.

교무금은 개인이 아니라 가정을 단위로 해서 정해지며 소속본당을 통해 정기적으로 징수되어 교구에 전달되는데 교구장은 이를 교회유지와 교회사업을 위해 사용합니다.

교무금에 대한 의무는 모든 교우에게 부여된 것으로 이 의무를 실행하지 않으면 교회법적으로 교구장은 제재를 가할 수 있습니다.

제 목 : 교부

일반적으로 신앙이나 교회생활에 큰 영향을 준 분을 가르키나 가톨릭 신학에서는 다음 네 조건을 갖춘 분들을 의미합니다.

첫째, 그 가르침이 사도들의 설교에 일치하는 정통성을 지녀야 하고 둘째, 사도들의 교회에 시기적으로 가까운 분들이며 세째, 그 생활이 모범적이어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었던 분이라야 하며 네째, 교회가 전통적으로 교부라고 인정해온 분이어야 합니다.

교부들은 일반적으로 라틴문화권의 교부, 즉 라틴 교부와 그리스문화권의 교부 즉 그리스교부로 구분되는데 사도들의 시대에 가까왔던 분들 이라는 조건에 비추어 볼때 라틴교부는 그레고리오 성인이나 세빌리아의 이시도로 성인에서 끝나고 그리스 교부는 요한 다마쎄노 성인으로 끝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교부라는 단어는 초세기 교회에 사목하는 주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사이에 성립되는 부자관계를 적용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교부들은 복음과 사도들의 설교가 새로운 문화권에 접촉하면서 발행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그 시대의 문화와 언어로 정확히 표현 하였기에 교의의 창시자라고도 합니다.

제 목 : 교의

성서와 성전에 기초를 둔 믿을 교리를 의미하는 용어로서 교회가 그리스도께 받은 권한으로 신자들에게 믿으라고 가르치는 진리들입니다.

복음이 지니고 있는 진리를 역사안에서 그 시대의 요구에 따라 표현하고 고백하는 것이며, 이는 교회가 그 시대의 용어와 사상을 이용하여 가르치고 표현하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제 목 : 교의 신학

계시된 진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하느님 자신을 출발점으로 하여 인간 구원의 경륜을 거쳐서 궁극적으로 하느님께 돌아가는 도식으로 배열합니다.

즉 계시론, 신론, 창조론, 그리스도론, 구원론, 교회론, 성사론, 종말론의 8개 분야로 이것은 전통적으로 교의 신학의 내용을 이루는 것들입니다.

이밖에도 신학적 인간학, 역사신학, 정치신학 등 여러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제 목 : 교적

신자 각 개인의 신앙생활 기록표입니다.

가족관계, 신상명세 등의인적 사항과 세례, 견진, 판공, 혼배 등의 성사관계 및 신앙경력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적은 한국 교회 고유의 제도로서 신자가 소속해 있는 본당이나 공소에 가구주별로 작성되며 세속의 호적과 같은 구실을 합니다.

제 목 : 교황

교황은 로마교구의 교구장 주교입니다.

로마는 초대교회 당시 로마문화의 중심지로서 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인 베드로의 활동으로 초대교회의 중심이 되었으며 베드로가 순교한 후 서방가톨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은 세계주교단의 단장으로서 현세 교회의 최고 사목자입니다. 또 로마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기도 합니다.

교황은 주교단의 단장이긴 하지만 각 지역 주교들의 고유한 사목권한을 배제하거나 축소, 대행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직무인 예언직, 사제직, 왕직에 따라 교도권, 신품권, 통치권을 행사합니다.

교황은 신앙과 도덕에 관한 주요문제가 발생할 경우 문제해결을 위해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고 공의회의 결의 사항은 교황의 동의를 받아야만 교회 전체에 대한 보편적 사목지침이 됩니다.

교황의 권한은 전교회에 관한 것이며, 성직자, 평신도 모두에게 해당되며 직접 모든 면에 관여하고 필요하면 언제 어디서나 발휘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제 목 : 교황 선거

교황선거법은 계속 수정 보완되어 왔는데 그 핵심 요소는 3가지입니다.

교황선거의 안정성을 위해 추기경단으로 선거요원이 한정되고 이상의 다수결 선출방식과 콘클라베 즉 열쇠가 잠겨진 방이라는 뜻으로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선거회의장이 일체 외부와 단절되는 선거법이 정해졌습니다.

교황선거는 교황서거 15일 이내에 열리도록 되어 있고(필요에 따라 3일 더 연장 가능) 만장일치 또는 위임 등의 방법이 있으나 보통은 비밀투표로 결정됩니다.

오전 오후 두번의 투표로 3분의 2의 다수결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며 선서결과는 투표용지를 태운 연기를 통해 외부로 알려지는데 검은 연기이면 미결이라는 뜻이고 흰연기이면 새 교황이 탄생되었음을 뜻합니다. 새로 선출된 교황이 교황직을 수락하면 그 즉시로 교황이 되어 새 교황의 이름이 발표되고 추기경들의 순명선서가 있은 후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로 나와 교황 첫 강복이 내려집니다.

제 목 : 교회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야훼의 백성'(Qahal Yahwe)이라 부른것을 70인역 그리스 성서가 '하느님의 백성'(ecclesia )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단체를 구약의 하느님의 백성의 계승자라는 의미로 Ecclesia 로 부른 것이 오늘날 교회의 어원입니다. 즉, 교회란 하느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구약시대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로 성립되게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빠스카 신비에서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손수 교회를 창립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으며 곧,교회는 바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것입니다.

교회의 구조는 가시적 구조와 비가시적 구조로 나뉠수 있습니다. 즉,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것처럼 교회도 신자들의 공동체이며 또 이들을 인도하는 가시적 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성사를 통하여 인간을 성화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목적은 하느님나라이며 사명은 구원을 위한 복음선포이고 직무는 예언직, 사제직, 왕직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심으로서 하느님과 인간사이에 위격적 관계가 성립되었고 이 위격적 관계는 영생속에서도 흡수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것입니다. 위격과 위격이 일치하기 위해선 사랑이 필요하며 한계를 지닌 인간에게 사랑은 십자가를 동반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교회 신앙의 뿌리요 부활은 신앙의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로서 성령에 의해 역사 속에서 역사를 초월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정화하며 걸어가는 신비체입니다.

제 목 : 교회법

교회법은 하느님 백성의 선익과 신앙의 성장과 성성의 증신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교회가 교회의 목적과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교회공동체가 이행할 규정을 정해놓은 법으로 인정법입니다.

교회법은 신자들의 행동을 외적, 사회적 질서로 다루기 때문에 교회법을 거스리면 죄가 되며 외적 판결과 법적 제재가 따르게 됩니다.

현행 교회법은 총 1752조로 되어 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3년 1월 25일에 선포하여 1983년 11월 27일부터 발효되었습니다.

신도들을 위한 규정으로는 주일과의무적 축일에 미사에 참례하고 적어도 1년에 한번은 고백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할 것이며 교회가 정한 혼인법을 준수하고 교회의 유지비를 능력껏 부담할 것이며 정한 날에 단식재와 금육재를 지킬 것 등이 있습니다.

제 목 : 교구장․대주교․관구장

 -교구장 : 개별교회인 교구 사목 최고책임자

 -대주교 : 대교구 사목…대체로 관구장 겸해

 -관구장 : 관구산하 교구 감독 …통치권 없어

교구와 교구장 주교, 대교구와 대교구장,  관구와 관구장. 이 말들의 뜻은 무엇이며 또 교회법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정진석 대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착좌를 계기로 이 용어들의 개념과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 교구와 교구장 : 가톨릭교회는 일반적으로 보편교회와 개별교회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보편교회란 전세계모든 가톨릭교회를 통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보편교회는 통상적으로 교황과 보편 공의회(세계공의회), 주교대의원회의, 추기경단, 교황청, 교황사절 등의 기구나 조직에 의해 통치된다.

그런데 이 보편교회는 보통 '교구'라고 부르는 다양한 개별교회들로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개별교회가 보편교회의  하급  행정 단위는 아니다. 개별교회들도 그 자체로 유일하고 단일한 완전한 가톨릭교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별교회는 보편적인 가톨릭교회를 지역적인 차원에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개별교회인 교구를 사목하는 최고책임자를  교구장이라고 한다. 교구장은 주교품을 받은 이어야 한다.

교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하느님 백성의 일원인 신자 공동체와 그 신자 공동체를 맡아 사목하는 주교, 즉 교구장이 있어야 한다. 교구장은,교회법으로나 또는 교황의 교령으로 교회의 최고 권위나 기타 권위에 유보되는 문제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에게 맡겨진 교구에서 사목직무 수행에 요구되는 모든 권한, 즉 입법권과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행사한다. 주교는 자기에게 맡겨진 교구 안에 상주할 의무를 지니며 그 교구에 한 성당을 지정해 주교좌(교구장좌)를 두어야 한다. 이 성당을 주교좌성당이라고 한다. 주교좌란 원래 주교가 의식을 거행할 때 앉는 의자를 말하는데, 주교좌성당의 제대 옆, 신자들이 잘 보이는 곳에 설치돼 있다. 교구장에 임명을 받은 주교는 자신의 주교좌에 착좌하는 예식을 통해 교구장 취임을 공적으로 선포한다.

■ 대교구와 대주교: 대주교가 사목하는 교구를 말한다. 주교들 사이에 상하위계가 생기게 되면서 보통 주교들보다 더 큰 권위와 명예를 갖는 주교를 대주교라고 부르게 된 데서 연유한다. 대주교는 관구장을 겸하는 것이 보통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교황청의 몇몇 기구들의 책임자나 각국 교황대사들은 대주교가 임명되는 것이 관례다.

그래서 대주교를 관구장좌 대주교와 단독 대주교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 대교구의 경우도 관구 대교구가 아닌 단독 대교구도 있을 수 있다. 단독 대교구를 사목하는 대주교는 관구장좌 대주교가 아닌 단독대주교이다.

■ 관구와 관구장: 관구란 일정한 지역을 경계로 그 지역 내의 여러 교구들이 결합된 것을 말한다. 개별 교회인 교구들이 사회적 또는 지역적 환경에 따라 공동사목 활동을 증진하고, 교구장들의 상호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도록 하나의 관구로 결합되는 것이다.

관구는 대주교인 관구장이 관할하며, 관구장은 교황에 의해 관구장좌로 지정되거나 승인된 교구의 교구장이 맡는다. 관구장은 관구 산하의 교구들에 대해 신앙과 교회들이 정확히 준수되도록 감독하고, 관하 교구의 교구장좌가 비었을 때 정한 기한 내에 교구장 직무대행이 합법적으로 선출되지 않을 경우 교회법 규정에 따라 교구장 직무대행을 선임하는 일을 수행한다. 그러나 관구장 주교는 산하 교구들에 대해서는 그밖의 아무런 통치권도 지니지 못하며, 자신의 교구에 대해서는 여느 교구장 주교와 동일한 직무를 수행한다.

관구장은 주교 축성을 받은 후 3개월 이내에, 또는 이미 주교 축성을 받았으면 교회법적 서임 후 3개월 이내에, 몸소 또는 대리인을 통하여 교황에게 견대(빨리움)를 청구할 의무가 있다. 양털로 짠 이 견대는 관구장 주교가 관구 내에서 장엄한 예식을 거행할 때 제의 위에 걸치는 둥근 띠로, 관구장 주교가 관구내에서 법률상 부여받은 권위를 상징한다.

제13대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정진석 대주교는 서울관구의 관구장을 겸한다. 서울대교구가 서울관구의 관구장좌 교구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1962년 교계 제도가 설정되면서, 서울․대구․광주 등 3개 교구가 관구장좌 교구인 대교구로 승격됐다. 서울관구는 서울을 비롯해 춘천․대전․인천․수원․원주교구와 이북의 평양교구 및 함흥교구를 관할하며, 대구관구는 대구․부산․청주․마산․안동 교구를, 광주관구는 광주․전주․제주 교구를 각각 관할한다.

제 목 : 교구장 주교

교구장은 개별교회인 교구의 사목을 책임진 주교로서 자기에게 맡겨진 교구에서, 사목임무 수행에 요구되는 일체의 고유한 직접적 직권이 있다(교회법 제 368조, 제 381조 1항 참조).

  1. 교구장 주교의 직권교구장 주교의 직권(직무에 법률상 결부된 권력)은 사목임무를 수행하기에 필요한 직권을 말하며, 이 직권은 하느님께 받은 것으로 거룩한 직무 수행에 필요한 일체의 권력을 뜻한다. 이 직권은 고유직권이므로 본인 이름으로 행사한다. 즉 교구장 주교는 그리스도의 대리이지 교황의 대리가 아니다. 그러나 교구장 주교의 직권은 주교단의 단장(교황) 및 단원들(주교들)과의 친교 안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교구장 주교의 직권은 법률이나 교황의 교령에 의해 교회의 최고 권위나 기타의 권위에 유보될 수 있다(제381조 1항).. 서품 받기에 무자격 및 장애에 대한 관면(제 1047조 참조). 성좌에 관면이 유보된 제재들(제 1370조 1항, 제 1378조1 항, 제 1382조 등). 본당 사목구 주임의 기한부 임명(제 522조 참조). 제 1심 재판에 단독 재판관 허용(제 1425조 참조)
  2. . 합의제 재판부에 평신도 재판관 선임(제1421조 2항 참조)
  3. ② 주교회의에 유보
  4. . 서품자 또는 수도자의 혼인 장애를 관면(제 1078조 2항 참조)
  5. ① 직권이 성좌에 유보되는 경우
  6. 2) 직권 유보
  7. 1) 직권 범위
  8. 교구장과 동등시되는 사람1) 성직 자치구장 : 성직 자치구는 정치적 여건에 따라 신자 수가 적은지역에 성좌가 설립한다.3) 대목구장 : 대목구는 교구로 설립하기에는 부족한 선교지역에 세워진 개별교회다. 대목구장은 교황 이름으로 사목한다.5) 교구장 서리 : 매우 특수하고 중대한 사정으로 교구로 설립 안된 개별교회를 직할 서리구라 하며 교구장 서리가 교황 이름으로 사목한다.
  9. 교구장과 동등시되는 사람이라도 주교품에 오르지 않았다면 서품성사를 집전할 수 없다.
  10. 4) 지목구장 : 지목구는 초기 선교지역에 설립하며 발전하면 대목구로 승격된다. 지목구장은 교황 이름으로 사목한다.
  11. 2) 자치 수도원장 : 자치 수도원구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수도원 주위 일정 지역을 교구와 동일한 법적 조건으로 수도원장이 사목 책임을 맡고 있는 개별교회다.
  12. 아래에 언급하는 기타 신자들 공동체를 영도하는 사람은 법률상 교구장과 동등시되나 본성상으로나 법의 규정으로 명백히 달리 규정하면 그렇지 않다(제 381조 2항).
  13. 교구장 취임2) 교구장의 교회법적 취임은 주교가 몸소 또는 대리인을 시켜 임명장을 그 교구 참사회에 제시하고 사무처장이 입회하여 그 사실을 문서로 기록하고 또 신설 교구라면 주교좌 성당에 참석한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임명장을 통보하여 참석자들 중 연장자 탁덕(신부)이 이를 문서로 기록하는 때부터다(제382조 3항).
  14. 3) 교회법적 취임은 주교좌 성당에서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례로써 하도록 권장한다.
  15. 1) 교구장에 임명된 사람은 주교축성을 받지 않은 경우 사도좌에서 임명장을 받은 후 4개월 이내에 또 이미 주교품에 오른 사람이면 임명장을 받은 후 2개월 이내에 정식으로 취임해야 한다(제 382조 2항).
  16. 교구장 의무2)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선교사 성소배양에 힘써야 한다(제 385조).4) 보편교회의 통일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모든 교회법률들을 준수하도록 강조해야 한다. 특히 말씀의 교역, 성사와 준성사 거행, 하느님과 성인들 경배 및 재산 관리에 남용이 스며들지 않도록 경계해여야 한다(제 392조).6) 5년마다 사도좌가 정한 형식에 따라 교구 현황을 사도좌에 보고하고, 로마에 가서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묘소에 참배하고 교황을 예방해야 한다(제 399조, 제 400조).
  17. 5) 교구내에 상주해야 하며(제 395조), 교구 전역을 적어도 5년마다 순시해야 한다(제 396조~제398조).
  18. 3) 매주일과 의무 축일에 백성들을 위한 미사(교중미사)를 바쳐야 한다(제388조).
  19. 1) 교구장은 신앙의 스승이요, 성덕의 모범으로 모든 성직자들을 포함한 신자들과 냉담자들 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을 이끌어야 한다. 특히 신부들을 특별한 염려로 보살펴야 한다(제383조, 제384조).
  20. 교구장 권리2) 담당하는 개별교회를 대표하고, 입법권과 집행권 그리고 사법권으로 교구를 다스린다(제 391조, 제 393조).② 집행권 : 교구장이 몸소 또는 총대리나 교구장 대리들을 통하여 법규정에 따라 집행권을 행사한다.④ 관면권 : 교구장은 자기의 구역이나 자기 소속자들을 위하여 보편법이든 개별법이든 신자들의 영적 선익에 기여한다고 판단하는 때마다 관면할 수 있다.
  21. 3) 여러 가지 사도직을 권장하고(제 394조), 신자 단체들을 인준하고 감독한다(제 299조, 제 305조).
  22. ③ 사법권 : 교구장이 몸소 또는 사법 대리나 재판관들을 통하여 법규정에 따라 사법권을 행사한다.
  23. ① 입법권 : 입권법은 교구장이 몸소 행사하며, 교구의 유일한 입법자다. 입법권은 법으로 달리 명시되지 않는 한 위임할 수 없다.
  24. 1) 모든 성사와 준성사를 장엄예식으로 집전한다9제 389조, 제 390조).
  25. 정년 퇴임2) 교구장이 건강 악화나 그 밖의 중대한 이유로 자기 직무를 수행하기에 덜 적합하게 되면 직무의 사퇴를 표명하도록 간곡히 권고한다.4) 주교회의와 교구장이 봉직하던 교구는 합당하고 상응한 생활비를 배려해야 한다(제 401조, 제 402조).
  26. 3) 직무 사퇴가 수리된 주교는 자기 교구의 명예 교구장 명의 보존하고, 본인이 원한다면 그 교구 내에 거주할 수 있다.
  27. 1) 교구장은 만 75세가 되면 교황에게 직무를 사퇴할 것을 표명하도록 권장한다. 이때 교황이 모든 상황을 검토하여 처리한다.

제 목 : 교종(敎宗)

교회의 근본이며 으뜸이라는 뜻으로 주로 교회내에서, 특히 기도서에서 교황을 지칭할때 사용된다.

제 목 : 교우

그리스도교 신앙을 믿고 따르며 가톨릭 교회에 소속된 사람. 신약성서(사도 11,26; 26; 28, 1베드 4,16)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열렬히 지지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분이신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인 신자는 모두 형제, 자매이므로 이런 명칭을 자주 쓴다.

제 목 : 교황대사(敎皇大使)

국제법상의 대사로서 주재국의 정부와 교황청과의 친료를 두텁게 하는 한편 주재국 교회의 현황을 감독하고 이를 교황에게 보고하기 위해 교황으로부터 파견된 자다.

1500년 베네치아에 대사관 설립을 시작으로 각국 정부에 사절을 파견하고 있다.

이들은 파견국 교회에서 추기경들보다 상위를 차지하며, 외적으로는 각국에 주재하는 외교사절단이라는 명예를 갖는다. 때로는 대사대신 '공사(公使)'가 파견되어 직무를 대행하기도 한다.

한국에는 1966년 '교황공사관'이 '교황대사관'으로 승격되었고 현재 교황대사가 파견되어 있다.

제 목 : 교회력

교회력은 흔히 전례력(典禮曆) 혹은 성력(聖曆)이라고도 하며 성주간과 성인들의 축일을 날짜 순으로 배열하여 작성한 교회의 달력이다.

교회력의 구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과 깊은 관련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매년 1월 1일에 시작되어 12월 31일에 끌이 나는 일반 달력과는 달리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 첫 주의 주일에 시작되고 성탄절, 부활절을 거쳐 연중시기로 끝이난다. 즉 교회력은 1년을 주기로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교회의 모습처럼 구성된 것이다.

교회력의 기준의 교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부활절이며, 대림 첫 주의 주일은 성탄 대축일을 기점으로 4주간을 거슬러 올라가 대개 사도 성 안드레아의 축일인 11월 30일 경이 된다. 또한 미사중의 거행되는 말씀의 전례 역시 교회력에 따라 3년을 주기로 편찬 되어있다.

초대 교회에서는 지방적인 특색이 강하여 교구마다 고유한 교회력에 따라 전례를 행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1568년 교황 비오 5세가 교회력을 정비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비오 5세는 여러 지역마다 서로 다른 성인의 축일을 정비하고 그 가운데 87명의 성인만을 교회가 기념해야 할 성인으로 지정하였다.

그후 새로운 성인이 탄생되면서 교회력은 다시 복잡해졌고 최종적으로 정비된 것은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 때의 일이다.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라 교회력을 재편하였다.

제 목 : 교황주일(敎皇主日)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교회의 최고 사목자이신 교황을 위한 주일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1930년부터 베드로 바오로 대축일(6월 29일) 다음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낸다. 이때 교황에 대한 강론과 교황을 위한 기도와 특별 헌금을 한다.

교황은 전세계 가톨릭의 본산인 로마 교구의 교구장이며 주교이다. 더구나, 그는 지상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떠맡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이며, 전세계 가톨릭의 영도자일 뿐민 아니라, 바티칸 시국의 원수(元首)이다. 로마는 베드로의 순교지이며 중심이었다. 때문에, 로마는 가톨릭의 본산이 되었다. 교황은 전세계 정신적인 지도자일 뿐 아니라 예수께서 열쇠를 준 초대 교황 베드로의 후계자이다. 현 교황은 예수님은 12제자 중 으뜸이었던 사도 베드로의 246대 후계자이다.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이름을 택했으며 2세란 그 이름을 택한 교황으로는 두 번재라는 말이다. 그는 주님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을 따라 교도권, 사목권, 사제권을 갖는다. 즉,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를 가르치고 성화하고 통치한다.

제 목 : 교도권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 임무를 유권적으로 이행하는 권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지체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하므로 복음선포의 임무를 진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황과 주교단을 통하여 구원의 진리를 유권적으로 교시할 뿐 아니라 평신도를통하여 그 교시한 자료를 발전시키고 체계화 한다.

일찌기 그리스도는 이 가르치는 직무를 사도단의 구성원인 사도들에게 주셨다(마태 28;18-20). 사도단의 단장이요(교회헌장 18-19) 최고 목자인(요한 21:15-17) 시몬 베드로에게는 그 형제들인 모든 사도들을 신앙안에 견고케하는 임무까지 맡겼다(루가 20:32). 교회 안에서 주교직을 계숭하는 주교들과 교황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단에게 주신 교도권을 이어받고 있다(계시헌장 7). 교도권은 계시의 곳간에서 새것과 옛것을 꺼내어(마태 13:52) 성령의 빛으로 밝혀 줌으로써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고 오류로부터 신앙진리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교회는 교도권을 행사하여 새로운 공적계시를 신앙의 유산으로 받아들이는것이 아니라(교회헌장 25)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유권적 해석임무"(계시헌장 10)를 이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보다 높은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고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그것을 거룩히 보존하고 성실히 진술한다.

교도권은 성직자단의 교도권과 평신도단의 교도권으로 구분되고, 성직자단의 교도권은 다시 그 행사상 장엄교도권과 통상교도권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교황이 교좌에서 선언하거나, 주교단이 공의회에 모여서 선언할 경우이다.이 때 그 선언 내용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것이면 그르칠 수 없다. 후자는 주교들의 유권적인 일반교시를 말하는데, 이는 회칙 형식이나 지역 주교단의 공동교서 형식으로 발표된다.

이밖에도 주교나 사제들의 설교, 신학자들의 교수 등을 통해서도 교회의 교도권이 표현된다.

평신도단의 교도권은 평신도가 성직자단의 교도권을 통한 가르침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이를 세속문화에 적응시키고 이해를 깊이 함으로써 그 진리를 옹호 설명하는데 공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순종의 동기는 교황이나 주교들의 인간적 지식이나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황과 주교들을 통하여 교회를 지도하고 지배하신다는 확신에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주교들의 오류를 가르치는 일이 없도록 또한 도와 주신다. 주교단이 오류를 제시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평신도단이 오류에 동의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85, p.117-118)

제 목 : 교리(서)

[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85, p.118]

넓은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의 메세지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가르침뿐 아니라 이를 교회가 권위를 가지고 그 뜻을 분명히 밝힌 모든 가르침을 가라키나 좁은 의미로는 교회가 그 가르침을 윤리, 사회, 선교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시킴을 말한다. 가톨릭 교회의 교리는 믿어야 할 교리와 믿는 바를 실천해야 하는 계명 및 하느님의 은총을 얻는 방법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보통이다.

* 교의

[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85, p.131-132]

성서와 성전에 기초를 둔 믿을 교리를 의미하는 용어로서 교회가 그리스도께 받은 권한으로 신자들에게 믿으라고 가르치는 진리들이다. 이 단어는 본시 그리스어의 '가르치다'(dokeo)라는 동사에서 유래되며 철학이나 법학에서 '가르침' '율령' '결의문'등의 의미로 사용되던 말이다. 신약성서에도 이런 뜻으로 쓰여진 예를 볼수 있다(히브 11,23; 루가 2,1; 사도 17,7). 초대 교회 교부들은 이 단어를 신앙에 대한 권위 있는 가르침, 즉 믿을 교리라는 뜻으로 썼다. 이 교리가 하느님의 계시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그 시대의 철학이나 이단의 가르침과 구별하고 교회 신앙교리의 우월성을 말하였다. 중세기에는 별로 뚜렷한 의미없이 다른 단어들(doctrina, assertio, sententia)과 같이 쓰여졌으며 계시된 신앙진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교의라는 단어에 부여하는 뜻은 제 1차 바티칸 공의회가 정의한 것이다. 공의회에서 통과된 신앙에 관한 장에는 "기록되었거나 전해 내려 온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교회가 엄숙한 판단으로 혹은그 통상교도권의 행사로써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신앙진리라고 제시하는 모든 것을 거룩하고 공번된 신앙으로 믿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즉, 하나의 진리가 교의로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성서나 성전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어야 하고 교회의 교도권이 가르치는 것이라야 하되, 이를 계시된 진리라고 가르치는 것이라야 한다. 여기서 '엄숙한 판단'이란 공의회의 결정 혹은 교황의 성좌에서의 선포를 말하고,'통상 교도권의 행사'란 세계의 모든 주교들의 공통된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가르침이 교의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의는 역사안에 살아 있는 교회가 한 문제에 대하여 자기 신앙의 의식을 결정적으로 표명하고 신도들에게 믿을 교리로 선언할 때 성립한다.

복음이 지니고 있는 진리를 역사안에서 그 시대의 요구에 따라 표현하고 고백하는 것이 교의이며, 이는 교회가 그 시대의 용어와 사상을 이용하여 가르치고 표현하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다.

제 목 : 그레고리안 성가

그레고리안 성가는 가톨릭의 전통적인 성음악입니다.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읊던 노래들이 초대 그리스도교에 들어오면서 그리스도교 전통인 전례음악으로 토착화되었고 7세기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그동안 구전되어 오던 성가를 모아 정착화시켰기에 그레고리안 성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주로 남자 수도원에서 발전시켜 왔으며 가사는 시편이 많았고 언어는 라틴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단성음악으로는 인류 최고의 형식으로 손꼽히는데 그 구성은 간단한 전례문을 노래하는 부분이나 복잡한 독창선율까지를 잘 배합하고 선율의 풍부함, 표현의 다양성과 직접성, 예술성으로 표현된 모티브를 잘 드러냅니다.그레고리안 성가는 전례적인 움직임을 숭고하게 잘 표현해주는 특성이 있습니다.

제 목 : 구세주

인류를 죄악과 파멸의 상태에서 구원하는 하느님을 지칭하는 말로 이 말이 생성된 것은 구약시대의 출애급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야훼 하느님이야말로 인류를 죄와 고통과 억압의 사슬에서 해방시킬 구세주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을 배반하여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고 이민족의 침입으로 또 그들의 지배하에 신음하게 되자 구세주에 대한 갈망과 함께 뚜렷한 구세주 의식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즉 구세주란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들의 압제와 수탈로부터 해방시키는 분 메시아라고 말입니다.

그러나,히브리인들의 이러한 개념은 너무 국수적인 해석이었고 실제로 구세주는 온 민족을 죄와 고통, 죽음과 마귀로부터 해방시키고 구원할 뿐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의로운 자를 세우시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통하여 악한 자를 벌한 심판자로서 부각됩니다.

구세주는 인류의 현세적인 해방자인 동시에 종말론적 심판자인 것입니다.

제 목 : 구원경륜

천지창조 이전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의지속에 감추어져 있던 구원 계획입니다. 이 계획은 인간의 저항과 방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안에서 하느님이 정하신 목적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즉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어 죄의 희생물로서 고통 받으시고, 죽으신 후 부활하심으로써 모든이를 위해 보편적인 구원을 성취하시고, 성부께로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입니다.

구원경륜은 구원 실현의 신비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하느님께서는 구원계획에 피조물을 참여시켜서 구속의 결실을 세세대대로 전파시켰습니다.

교회안에서 특히 위임받은 성사적 표징으로써의 구원행위는 시간과 공간안에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구원경륜의 개념은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의미하는데 이 신비로 인하여 자연과 은총, 양자의 세계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삼을 지향하게 됩니다.

제 목 : 구일기도

개인이나 공동체가 특별한 은총을 받기 위해 9일 동안 계속하여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서적인 근거는 사도들이 성모마리아와 함께 예수 승천 후 성령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하였던 데서 찾을 수 있으며 사회적인 근거로는 당시 그리스. 로마의 풍속에 의하면 9일간을 슬픔을 표시하는 날로 동시에 축제를 지내는 준비기간으로 9일을 보냈는데 여기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기도의 지향은 자유롭게 할 수 있으나 구원에 해가 되지 않는 것을 정하며, 구하는 것은 반드시 얻으리라는 신뢰심으로 겸손되이 항구하게 해야 합니다.

17세기부터 교회는 교회축일을 앞두고 9일기도를 바침으로써 특별한 은총을 얻도록 권장하였으며 특별히 성령강림대축일을 앞두고 각 본당별로 구일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제 목 : 공경지례

성인들께 드리는 공경을 지칭한다. 성모님께 바치는 공경은 특별히 '상경지례'라 한다.

제 목 : 구교

조상때부터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나 유아세례를 받은 신자를 구교우라 부른다. 구교라는 용어는 이미 오래전부터 쓰여져 왔다. 하느님의 백성인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을 구교라 일컬어 신약시대의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와구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가 개신교보다 면저 전래되었기 때문에 천주교를 구교로 개신교를 신교라 불렀는데 그리 바람직한 명칭은 아니다.

더구나, 종교개혁의 결과로 생긴 개신교를 신교로 그에 대해 가톨릭을 구교로 부르는 것은 더욱 온당치 못하다 하겠다.

제 목 : 기독교

기독이란 말은 '그리스도' 의 한자 표기이다. 그러므로, 유교와 불교를 대별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종파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가톨릭도 포함된다. 따라서 기독교와 예수교는 같은 말이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 모든 종파는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개신교란 신교(프로테스탄트)를 구교(천주교)와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란 소위 루터 종교 개혁 때 (1529)루터 일파가 주교들에게 프로테스탄드(Protest: 항의하다, 이의를 제기하다)했기 때문에 불려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전통적인 가톨릭에 항의한 자라는 뜻으로 지금까지 불리운다.

제 목 : 개신교 성찬례

가톨릭 교회에서 미사 중에 거행하는 성찬례는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셨고 또 행하도록 명하신 예배행위로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보통의 예배는 기도문이나 독서 등의 말씀과 앉고 서고 인사를 나누는 등의 행동이 따르는 데 비해 성찬례는 빵과 포도주, 물이라는 질료적 요소를 가지고 거행됩니다. 성찬례는 교회의 예배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형태 가운데 하나이며, 말씀의 전례와 함께 미사 전례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예배 형태입니다.

이 성찬례는 개신교에서도 거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톨릭 교회에서 거행하는 성찬례와는 세 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며, 이는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와의 일치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 신학적 문제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첫째,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믿음의 차이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찬례를 통해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고 가르치는 반면에 개신교는 교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주로 주님 현존의 상징적인 의미로써 거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 가톨릭 교회는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제사가 재현되고 그 효력이 드러난다는 제사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 반면에 개신교는 성찬례를 단순히 성찬의 식사로만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셋째,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제로 서품된 사람만이 성찬례(성체성사)를 유효하게 거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만의 고유한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점 때문에라도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의 성찬례를 완전히 유효한 성체성사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 목 : 꾸르실료 운동

꾸르실료란 스페인어로 '단기 강습회'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참된 크리스챤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1949년 스페인에서 시작된 신앙부흥운동입니다. 이 운동을 하는 자로 하여금 참된 크리스챤의 기본이 되는 것을 생활케 하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마요르카섬의 싸우다드 레알 교구장인 후안 에르바스 주교의 제의하에 평신도인 보건 형제가 성 호노라또 수도원에서 훈련을 가짐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의 대상은 싼디아고 깜포스또라 광장의 성 야고보 사도 묘소 성제 순례단의 안내자들이었습니다. 그 후 계속 액션 단체의 많은 지도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이 정신은 크리스챤 생활의 핵심에 뛰어들어 회개의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서 교회와 이웃을 위해서 자기 자신이 가진 이상, 순종,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고 하느님을 중심으로 신, 망, 애 삼덕의 정신과 생활을 꾀하며 주위의 그리스도화를 이루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6년 주안 미 평화봉사단 캐빈 오도넬이 준비하고 필리핀의 카이모 형제를 비롯한 20여명이 서울에 들어오므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용어중 꾸르실리스타란 꾸르실료를 한 형제 자매를 뜻하며 데 꼴로레스는 빛, 광명이고 울뜨레아란 몇 개팀의 집합체이며 빨랑카란 지렛대 즉 영적, 물적 선물입니다.

제 목 : 꾸리아

꾸리아란 고대 로마의 행정 단위의 하나였습니다. 이 꾸리아 안에는 집회소가 있어서 꾸리아 주민이 여리 모여 꾸리아의 중요 사항들에 대해 의논하였는데 차츰 행정단위를 가르키는 말보다는 집회소를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레지오 마리에가 결성되면서 조직의 단위를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꾸리아는 레지오 마리에의 최소단위인 쁘레시디움의 상부조직으로 지역 안에 있는 모든 쁘레시디움들의 간부로 구성되며 순회 지도하며 보고를 받습니다. 꾸리아의 상부조직은 세나뚜스입니다.

제 목 : 견진

견진 성사는 "성유와 안수로써 영세자를 은충으로 견고케 하여, 그리스도의 군사된 표를 주는 성사"이며, 성세 성사와 같이 인호를 박아 주며, 상존 은총을 증가시키고, 성령의 칠은을 주는 성사다.

성령의 일곱 가지 은혜는

1. 슬기 - 하느님 공경과 영혼 구령 일에 흥미를 돋우어 주는 은혜

2. 통달 _ 교리를 믿음에 있어서, 그 믿음의 이치를 판단하는 은혜

3. 의견 - 성악을 올바로 분별하는 은혜

4. 굳셈 - 신앙에 반대되는 것과 싸워 순교까지도 할 수 있는은혜

5. 지식 - 교리 문제에 있어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하는 은혜

6. 효경 - 하느님을 우리의 참아버지로 받드는 은혜

7. 두려워함 - 범죄로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고 자기 영혼이 해를 입는

것을 두려워하는 은혜 등이다.

견진 성사에 관해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 주셧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안에 계시기 때문이다"(요한 14,16-17) 하시면서, 성령을 보낼 것을 언약하셨고, 사도들은 성령을 받는 견진 성사의 집행을 이와 같이 기록하였다.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성령은 받지 못했던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자 그들도 성령을 받게 되었다"(사도 18,16-17). 이런 사실로 보아, 성세 성사를 받은 다음에 견진 성사를 통해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실은 사도 시대부터 있었다.

견진 성사의 재료는 올리브 기름에 발사마 향을 섞은 것으로, 특별히 주교가 축성한 것이다. 기름을 바르는 이유는, 기름은 물체를 견고케 하고 투명하게 하고 빛나게 하며 부패를 방지하기 때문이다.견진을 받은 사람은 자기 신앙을 위해 견고해야 하며 모든 덕행을 갖추는 성령의 은혜를 잘 표현해야 한다.

견진 성사는 주교가 잽행하고, 주교가 없을 때는 교황의 특별한 허가를 받은 일반 신부가 집행할 수 있으며, 반드시 주교가 축성한 성유를 써야 한다.

견진 성사를 집행하는 주교는 바른손 엄지 손가락으로 이마에 십자 모양으로 기름을 바르면서,"내가 십자성호로 네게 인을 치며, 크리스마로 너를 견고케 하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인하여 하노라" 한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군사되어 세속과 육신, 악마와 싸워야 하니까, 굳은 신덕과 충분한 교리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오늘에 와서는, 견진 성사는 죽을 위험의 경우가 아니면 어린이들에게는 주지 않고, 적어도 모든 사리를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 받을 수 있다.

견진 성사도 세례 성사와 마찬가지로 대부.모를 세워야 하며, 인호가 박히는 성사이기 때문에 일생에 한번밖에 받지 못한다.

제 목 : 계명

십계명

야훼가 모세에게 계시한 열 가지 계명. 이는 두 개의 돌판에 새겨져(신명 4,13)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승되었고 그들의 사회와 종교생활의 규범이 되었다. 십계명의 연원은 출애급기 20장 1-17절과 신명기 5정 6-21절인데, 양자는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전자는 아내를 남편의 소유물에 포함시키나, 후자는 이를 구별하여 아내의 지위를 독립시키는 점, 둘째 안식일을 지키는 동기가 전자에는 야훼의 초월성이지만, 후자에는 그분의 구원행위인 점이 그것이다. 십계명의 형식은 고대 근동에서 일반화되었던 결의론적 형태가 아니나,십계명의 내용은 고대 근동에서 보편화되었던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이와 갖은 형식과 내용은 십계명이 이스사엘 민족과 깊이 관련되었으며 그 구성시기가 후기 예언자들의 시대(7세기)가 아니라 모세시대임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

출애급기 20정 17절에서 아내를 재물 속에 포함시켜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고 하는 하나의 계명이 신명기 5정21절에서 아내와 재물을 분리함으로써 두 계명으로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조문'(신명 4:13, 1-0:4)으로 표현한 이유는 '열'(10)이 전승적인 숫자였기 때문이다.

이 신명기의 전승은 서방교부들을 통하여 라틴교회에 계승되었다. 그리스도교회와 루터교회를 재외한 개신교는 십계명의 출애급기 구분을 따르면서 라틴교회의 제 1 계명을 하느님 흠숭과 우상 숭배 금지의 둘로 나누어 숫자 10을 유지한다.

십계명은 하느님과 그의 백성간에 맺은 계약의 핵심이요 선물이다. 인간편의 계약 당사자는 단체로서의 하느님 백성이므로 각 개인은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계약에 참여하게 되고 계약의 내용인 구원을 얻게 된다. 각 개인의 권리와 윤리적 의무의 근거는 구원의 공동체에 귀속함에 있다.

십계명의 첫 세개 계명(출애급기 전승에 따른 경우 첫 4계명)은 하느님과 인간의 수직관계를 규율한다. 이를 상삼계라고도 부른다. 제 1 계명은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이며 우상숭배 금지는 '하느님 흠숭'을 보호하고 떠받드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히 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킴은 하느님의 흠숭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나머지 일곱 계명(제 4- 제10계명)은 계약의 백성 상호간의 수평관계를 규율하는 내용으로서 하칠계라 부른다. 그 보호하는 이익은 생명, 부부의 신의, 재산, 증언의 진실성 등이다.

십계명의 편성은 성서기자가 처한 사회배경에 따라 달리할 수 있다. 이는 안식일의 동기를 달리표현하거나 아내의 지위를 독립시킨 사례를 통하여 인정된다. 그리스도는 십계명을 사랑의 계명 아래 통합시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의 사랑으로 요약하였고 산상설교(마태 5-7장)과 고별사(요한 14-17장)에 의하여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그리스도 교인에게 두어진 계명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주신 사랑의 계명이다. 이 사랑의 계명은 십계명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십계명을 포함하고 완성하는 것이므로 그리스도 교인에게 십계명의 준수의무가 면제되지 않음은 물론이다.(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85, p.750 십계명 참조)

제 목 : 겸손

* 겸손히 자기를 낮춤

1. 알고자 함은 사람마다 가진 천성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지식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자기 사정을 돌보지 않고 일월성령의 도는 길을 익히 연구하는 교오한 철학자보다도 하느님을 섬기는 촌 백성이 확실히 더 낫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스스로 낮추며 사람의 칭찬을 즐기지 아니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나를 행실로써 심판하실 하느님 대전에 내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2.너무 과히 알고자 하지 말아라. 거기서 큰 분심거리가많이 생기고 많이 속는다. 지식이 있는 자는 남에게 유식하게 보이고자 하고 지혜롭다는 칭찬을 듣기 원한다. 안다 해도 그다지 영혼에 유익하지도 않거니와 혹 아주 무익한 것도 많다. 자기 영혼 구하는 데 도움되는 것은 제쳐놓고 다른 사정에 열중하는 이는 실로 미련하다. 허다한 말이 영혼에 만족을 주지 못하지만 착한 행실은 정신을 새롭게 하고 조촐한 양심은 하느님께 대한 의뢰심을 준다.

3. 더 많이 알고 더 낫게 알수록 그만큼 더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 이 때문에 그만큼 더 중한 판단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무슨 기술이 있고 무슨 지식이 있다고 자랑하지 말 것이며, 차라리 얻은 지식에 대하여 두려워하라. 네가 스스로 많이 아는 것같고 무엇을 잘 이해하는 것같이 생각되거든 네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은 줄로 생각하라.

"두려워할지언정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읍니다."(로마서 11:20). 차라리 네가 모르는 것을 자복하라. 너보다 더 박학하고 너보다 법에 더 익숙한 자가 많거늘 어찌 네가 남보다 나은 줄로 생각하느냐? 무엇을 유익하게 알고 배우고자 하거든 남이 너를 몰라 주기를 좋아하고, 남이 너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김을 좋아할 줄을 배워라.

4. 제일 고상하고 제일 유익한 지식은, 자기 자체를 참되게 알고 자기를 낮추어 봄에 있다. 자기에게 대하여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남은 항상 좋고 고상한 줄로 생각하는 것은 큰 지혜요 고상한 완덕이다. 남이 드러나게 범죄하고 혹 무슨 큰 폭행을 하는 것을 볼지라도, 그래도 네가 가보다 나은줄로 생각지 말 것이니, 네가 얼마동안이나 그런 착한 지위에 항구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약하다. 그러나 너보다 연약한 자는 아무도 없는 줄로 알아라.

제 목 : 개종

사도 17:30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무지했던 때에는 눈을 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는 사람에게나 다 회개 할것을 명령하십니다.

에페 5: 7

전에는 어두움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읍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요나 3:10

이렇게 사람들이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을 보고자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내리셨던 재앙을거두시었다.

에페 2: 4

그러나 한없이 자비스러운 하느님께서는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읍니다.

사도 11:17-18

하느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그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겠읍니까?

이제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회개하고 생명에 이르는 길을열어 주셨읍니다.

요한 12:38-40

예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였으나 믿지 않았다.

이사야 예언:"주여, 우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으며 주께서 보여 주신 능력을 누가 깨달았읍니까?" 또"주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둔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눈을 가지고도 알아 보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여 끝내 나에게로 돌아오지 못하고 나한테 온전히 고쳐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마르 10:29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녀나 부모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 부모,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사도 5:34

율법 교사 가믈리엘의 말.

필립 3: 5

바울로의 개종 -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으며...

루가 12:51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제 목 : 관면

[교회법전, CCK, 1990, p. 561,563]

* 제 1079조 : 교구 직권자는 자기의 소속자들이 어디에 체류하든지 모든 소속자들과 또한 관할 구역내에 실제로 체제하는 모든 이들에게 교회법상의 모든 장애를 관면할 수 있다. 다만 관면이 사도좌에 유보되어 있는 장애들은 제외된다.

관면이 사도좌에 유보되어 있는 장애들은 다음과 같다.

1. 성품 또는 성좌 설립의 수도회에서의 정결과 공적 종신 서원으로 생긴 장애.

2. 제 1090조에 언급된 범죄 장애.

직계 또는 방계 2촌의 혈족 장애는 결코 관면되지 아니한다.

제 1079조 : 죽을 위험이 긴급한 때에, 교구 직권자는 자기의 소속자들이 어디에 체류하든지 모든 소속자들과 또한 관할 구역내에 실제로 체제하는 모든 이들에게 혼인 거행 중에 지켜야 할 형식과 공개된 장애든 은밀한 장애든 교회법상의 개개의 모든 장애들에 대하여, 관면할 수 있다. 다만 탁덕의 성품으로 생긴 장애는 제외된다.

제 1항에 언급된 것과 같은 상황에서 교구 직권자에게 신청할 수 없는 경우에만, 본당 사목구 주임이나 올바로 위임받은 거룩한 교역자나 제 1116조 제 2항의 규범에 따랄 혼인을 주례하는  사제나  부제도 동일한 관면권을 가진다.

죽을 위험 중에 고해 사제는 성사적 고백 행위안에서거나 밖에서거나 내적 법정에서 은밀한 장애에 대한 관면권을 가진다. 제 2항에 언급된 경우에 교구 직권자에게 전보나 전화로만 신청이 가능하다면, 이때는 신청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제 1080조 : 혼례 준비가 이미 모두 끝난 후 장애가 드러나고 중대한 손해의 개연적 위험이 없이는 관할권자로부터 관면을 얻을 때까지 혼인을 연기할 수 없는 때는, 그때마다 교구 직권자는 제 1078조 제2항 제1호에 언급된 장애를 제외한 모든 장애에 대한 관면권을 가지며, 은밀한 경우에 한하여 제2항과 제3항에 언급된 모든 이들도 그 조항에 규정된 조건들을 지키면서 관면권을 가진다.

이 관면권은, 혼인을 유효화하려 할 때 지체하면 위와 같은  위험이 있고, 사도좌에 또는 교구 직권자가 관면할 수 있는 장애에 관하여는 교구 직권자에게 신청할 시간 여유가 없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제 1081조 제 1079조 제2항에 언급된 본당 사목구 주임이나 사제 또는 부제는 외적 법정에서 준 관면에 대하여 교구 직권자에게 즉시 통지하여야 하고 그것을 혼인 대장에 기재하여야 한다.

제 1082조 성사 밖의 내적 법정에서 은밀한 장애에 대하여 준 관면은 교구청의 비밀 문서고에 보관되는 대장에 기재되어야 하고, 나중에 그 은밀한 장애가 공개된 장애로 되더라도 외적 법정에서 다른 관면이 필요하지 아니하다. 다만 참회 담당 법원(내사원)의 답서가 달리 조치하면 그러하지 아니하다.

* 관면

어떤 개별 사항에 대해서 직권자가 법률준수의 의무를 해제하는 것을 관면이라고 한다. 관면은 본래 법률에 대한 위배라고 할 수 있으므로, 관면이 유효하고 합법적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이유가 요구된다. 그렇다고 해서 면제의 경우만큼 중대한 이유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면제(excusatio)와 관면(dispensatio)이 어떻게 다른가 보자. 면제는 준법자 측에서 구실을 만들어낸다. 어떤 구체 상황에 처할 때에, -예컨데 병들었을 때에 - 나는 주일 미사에 참여할 의무에서 벗어난다고 스스로 판단한다. 그대신 관면은 해당 직권자가 부여한다(내가 소속한 사목자는 이러저러한 경우에 주일 본분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고 나에게 관면을 내리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윤리법이 우리가 윤리도덕을 인식하는 객관적 규범이 됨을 밝혔다. 지금까지 강조한 바 있지만, 윤리법을 입법자와 준법자사이에 끼여 있는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인 무엇으로나, 법규들을 집합해놓은 무엇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윤리법은 인간적 차원에서 실존적이고 생명력있는 관계를 표현해 놓은 것이다. 윤리법이 인격적 성격을 갖는다고 한 것은 그법이 하느님의 위격적이고 사랑이 담긴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까닭이다. 자연법이든 은총의 법이든간에윤리법은 크리스찬 각자의 심원한 인격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오직 일회적 인생으로서의 개인은 자기 천성과 받은 바 은총의 선물에 어울리는 법은 지키면서 인격적 자유를 향유하는 부름을 받은 것이다. 인간이 '인격적인 순종'을 바칠때에 그는 하느님의 '인격적인 소명'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인격적 관계의 존재론적 근거를 경시하면 안된다(아니면 현대 개신교 신학에서 흔히 내세우는 인격주의적 현행주의 (personalist actualism) 라는 극단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

여기서 존재론적 근거라고 하면 창조와 구속을 통해서 우리 인간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불변하는 본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법의'절대객관성'도 하느님의 본질에 근거가 있다.그것이 개개 인격의 내면 생활에 내밀한 부분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객관성을 갖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법의 근거를 이와 같이 해석하고 나면 자연법과 그리스도의 법이 일반적 형태로 성문화되어 나타나도 올바로 이해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유효한 법규는, 문제되는 그 구체 상황의 일부를 표현하기는 하겠지만, 그 전부를 밝혀내지는 못한다. 일반규범은 하느님의 구체적 명령이 '이런 것이리라'는 암시이자 한계선이며 일종의 조회장이다.

규범자체는 항상 존중하고 준수해야 하겠지만, 개인 실존은 일반규범을능가할 만큼 풍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법은 그것과 결부된 실재에서 분리될 위험이 있고, 순전히 형식적인의미, 즉 고정된 정식으로 귀착할 우려가 있다

만일 법의 정식만을 보고 그 근거가 되는 실재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율법주의의 윤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극히일반적인 규범(그것들은 일반적일수록 -막연할수록- 그만큼 소극적으로표현되기 마련이다)을 형식상으로만 지키고 나면 윤리도덕을 모두 완수했다고 자부하게 된다. 법을 아무리 훌륭하게 성문화해도 법의 이면에 깔려 있는 실재는 그 정식보다 훨씬 풍부한 것이다"(B.H ring)

제 목 : 관상(생활)

[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85, p.111]

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행위.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의 본성에 참여하여 친밀한 친교를 누리도록 부르시고 있다. 그 친교의 온전한 형태는 천국에서 지복직관을 통하여 이루어지나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 직관능력의 씨앗을 받게 된다. 관상은 그 씨앗을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싹트게 하며 꽃피우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교회내 많은 성인들이 영성생활의 '일치의 단계'에 도달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이를 실천하였다.

관상은 염경기도나 일반적 묵상기도와 달리 단순 본질의 직관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본질적인 것의 터득에서 오는 것이므로 직관의 기도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의 친교가 직접적이고 내재적인 일치로 발전한 나머지 하느님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 안에 특별히 긴밀한 양식으로 내재하는 하느님을 본질적으로 바라보고 직접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느님과 친교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언어와 개념과 이미지 등 매개수단을 사용한다. 그러나 친교가 깊어지고 하느님이 사람에게 가까이 현존하심에 따라 그러한 매체가 불필요해지며 마침내 하느님의 영이 사람안에 직접 내재하여 활동하실 때에는 사람의 사고와 감정과 상상은 하느님과의 '침묵의 일치'를 방해하는 소음이 되기에 이른다. 더우기 인간의 언어와 개념 등은 하느님이 인간안에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계시하고 활동하시려는 자유를 제한하기에 이른다. 관상은 이러한 단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관상자는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을 모두 침묵시키고 단순히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처럼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과 친밀한 친교를 체험하는 가운데 사람은 자신 안에 내재하는 하느님의 존재가 본질적인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도달해야 할 목적이라기보다는 삶의 주체요 내용이며 생명의 원리가 되기에 이른다.

관상은 이에 도달하는 양식에 따라 수득적 관상과 주부적 관상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개인의 노력으로써 직관의 능력에 도달하는 것으로 능동적 관상이라고도 한다. 마음을 가다듬어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깊이생각하여 무아정적의 경지에 몰입하는 불교의선은 이에 해당한다 하겠다(비그리스도교 선언문 2). 한편 후자 즉 주부적 관상은 하느님의 은혜로 인하여 신적영역을 체험하고 신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수동적 관상이라고도 한다. 일상생활 가운데 성령의 감화를 받아 하느님의 본성을 체험하는 경우가 이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구분에 대하여 과연 인간의 노력으로 관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의문스럽게 여기는 견해도 있어서 학설은 일치되지 않고 있다.관상은 완덕에 도달하는 하나의 수단이지 완덕 자체가 아니다. 모든 사람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완덕 자체가 아니다.모든 사람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완덕에 부르시는 하느님은 일반 신자들의 일상생활이나 활동수도회의 활동생활 가운데 관상의 경지에 도달하게 도와 주시기도 하고 교회내 관상생활을 위주로 하는 관상 수도회에 사람을 초대하시기도 한다. 관상은 본질적인 것과 '단 한 가지의 필요한 것'(루가 10,41)즉 하느님께 집중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더욱 겸손하고 관대하게 하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서 나오는 관상 및 관상기도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 관상생활

관상을 실천하는 생활. 모든 사람은 완덕에로 불렸으므로 완덕에 도달하는 수단의 하나인 관상은 세례받은 신자가 세속에 살면서 그 실질을 실천할 수 있다. 그러나 관상생활의 교회법적 형태는 교회법적 지위를 가진 수도회가 외적 선교활동을 하지 않고 전적으로 관상을 목적으로 하여 내적인 잠심속에 기도와 노동에 전념하는 생활, 즉 관상수도회원의 생활이다. '관상생활'이라 할 때 관상수도회원의 생활을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며 외적 선교활동을 하는 활동수도회의 '활동생활'과 구별하여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관상수도회의 수도자들은 관상기도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생활 전체를 관상화 하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수도회들은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지지 아니하는"(로마 12,4) 그리스도 신비체에 있어서 항상 뛰어난 역할을 감당한다.즉 "하느님께 탁월한 찬미의 희생을 드리며, 하느님의 백성을 성덕의풍부한 결실로 장식하며, 그 모범으로 인하여 그들을 감동시키며 신비스런 사도적 풍요성으로 그들을 성장케 하는" 것이다(수도자 교령 7).

관상생활을 하는 수도자는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보이고 공사적 기도를 드리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골로 1,24) 채움으로써 전 인류에게 개방된 마음으로 보편적인 사도직을 실천하고 있다. 관상수도회로는 카르투지오회, 가르멜회, 시토회, 글라라회 등이 있는데, 한국에는 현재 가르멜회, 글라라회가 있고 트리피스트회가 마산교구에 한국지부 설립을 예정하고 있다. 관상수도회에는 도미니코회와 베네딕토회가 있다.

제 목 : 공로

* 죄에는 벌이 따르듯이 착한 행동에는 공로와 공덕이 따른다.

이 공로에 대하여 한국 '천주교 요리 문답'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공로는 무엇인가? 공로는 상급받을 정당한 권리이다. 이것은 은총을 입어 선행을 함으로써 얻는 것이다. 우리 공로로 받을 만한 상급은 무엇인가? 우리 공로로 받을 만한 상급의 은총의 증가와 영생과 천국 영광의 증가이다."

인간이 과연 하느님께 무슨 권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원래 인간은 하느님께 아무 권리도 있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한 권리란,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허락으로 얻게 될 권리이다. 선행에는 반드시 상이 주어진다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성서의 여러곳에서 읽을 수 있는 말씀이다. 하느님께서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기만 하면 하느님으로부터 그 보답으로 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마태 5,12). "여러분은 신념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 신념에는 큰 상이 붙어 있습니다"(히브 10,35). "여러분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상으로 받게 되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골로 3,24; 마태 5,46;10,41-42;1고린 3,9;요한 1,8). 당연히 받아야 하고 당연히 주셔야 하는 것이므로, 이는 다만 하느님의 자비로만 주어지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만약 자비로만 주어지는 성질의 것이라면 주시든지 안 주시든지 그것은 하느님의 의로우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번 약속하신 이상 우리는 당연히 받게 되는 것이다. 즉 받을 권리를 얻게 되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2디모 4,7-8)라고 하였다. 즉, 공의로운 하느님이시므로 정의에 의거하여 당연히 주시리라는 뜻이다.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지금까지 성도들에게 봉사해 왔고 아직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보여준 선행과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히브 6,10). 그러므로 선행에는 보상을 주시겠다고 한번 약속하셔 놓고서 그 선행을 잊으신다면, 이것은 하느님의 공의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하느님께서는 절대 그러실 리가 없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채무자로 자처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명령하신 대로 다하였사오니 이제 허락하신 것을 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도록 하셨다"(De Verbis Apostoli,16)라고 하였다.

이 공로, 즉 권리를 얻으려면 '천주교 요리 문답'에 있는 대로 은총의 지위에 있는 자, 즉 영세한 자로서 대죄 상태에 있지 않으면서 선공을 쌓아야 한다. 선공이란 모든 선행의 총칭이다. 선공에는 본성적(자연적) 선공, 초성적(초자연적) 선공, 두 가지가 있다. 하느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하느님을 위하여 초자연적 목적으로 하는 선행은 초성적 선공이라 하고, 자기가 타고난 성향만을 따라서 일반적인 목적으로 하는 선행은 본성적 선공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로를 얻으려면 물론 초성적 선공이라야 한다. 바오로 사도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1고린 10,31)라는 말싶므은 일상의 모든 일을 초성적 선공이 되게 하라는 말씀이다.

선공에는 네 가지의 공로와 효과가 따른다. 첫째, 천상 영복을 얻게 하는 영복의 공. 둘째, 새고 은혜를 구하는 구은의 공. 셋째, 죄의 용서를 비는 하휼(下恤)의 공. 넷째, 죄의 잠벌을 면하게 하는 보속의 공이다. 예수께서 세우신 공로는 이 네가지 공로의 효과에 따라 모두 인간에게도 통용되지만, 사람이 세우는 공로로는 구은의 공과 보속의 공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통공될 수 있다.

사람의 공로는 하느님의 허락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서 기인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미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5). 뿌리와 줄기에서 생명을 받아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듯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기인한 은총을 받아 선행을 하고, 또 이로인한 공로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합하여 하느님 대전에 업드려 그 가치의 인정을 받는다. 사람의 공로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에서 기인된 것이므로 결코 자기의 공로를 믿거나 자랑하거나 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의 공로는 절대적으로 큰 그리스도의 공로와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하늘 나라에서는 각자 세운 공로에 따라 복을 받게 된다. 임종 때 겨우 영세한 사람이 받는 복과, 일생을 두고 선공으로 공로의 "재물을 하늘에 쌓은 사람"(마태 6,20)이 받는 복은 그만한 몫이 있게 된다.

"나는 너희 각 사람에게 자기 행적대로 갚아 주기 위해서 상을 가지고 있다"(묵시 22,12). 선행으로 공로를 많이 세운 사람일수록 그만큼 더 풍부한 하늘 나라의 영복을 받는다. 그러므로 잠깐왔다 가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선을 행합시다. 꾸준히 계속하노라면 거둘때가 올 것입니다"(갈라 6,9).

제 목 : 금육

도덕적 영적인 향상을 위해 육식을 억제하는 덕. 유태교에서는 육식을 금하는 날을 정했을 분 아니라 일상적인 육식에 있어서도먹어서는 안 될 고기의 종류를 상세하게 적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신약시대에 와서 폐지되고 다만 우상에게 바쳐서 더러워진 것과 목졸려 죽은 짐승의 고기와 피(사도 15,20)만을 금하고 있다. 그리스도교회에서는 초기부터 금육을 실천하였는데 예를 들면 이집트의 성안토니오(St. Antonius, 250-356)와 그 제자들은 빵, 물, 소금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관상수도회에서는 일년내내, 또는 거의 일년 동안 금육을 한다. 이 가운데 최근까지 지켜지던 금육재일은 재의 수요일,사순절 중 금요일과 일요일, 사계의 재일, 어떤 축일의 전날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금요일에 육식을 금하는 관습이 1세기부터 지켜져 내려오고 있다. 이전에는 이것이 일요일에까지 확대되기도 하였다.

1966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공포된 교령은, 금요일의 금육을 폐지하고 재의 수요일과 사순절 중 매주 금요일과 예수수난날에 한하도록 밝히고 있다. 물론 이 교령의 의미가 금요일 금육제를 완전히 의미가 없는 것으로 판단, 폐지한 것이 아니라, 금육을 하거나 그 대신 다른 선행을 행하거나 신자들이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금육재일에 신자들은 모든 육식을 금하나 계란과 우유와 육축의 기름으로 된 양념 등은 먹어도 상관이 없다. 금육재를 지켜야 하는 사람은 14세 이상의 모든 신자이다. 금육재란 옛말 '소재'의 바뀐 말이다.

제 목 : 거양 성체

<영어> elevation in Mass <라틴어> Elevatio

미사성체에서 축성하여 성체와 성혈로 변화된 면병과 포도주의 형상을 신자들이 처다보고 경배할 수 있도록 높이 올려 보이는 행위, 성체로 변화된 면병의 형상만의 거양을 거양성체라 부르기도 하였다. 성체거양은 13세기 초엽에 에우데스드 쉴리(Eudes de Sully) 혹은 그의 직후계자인 파리 교구장에 의하여 미사성제에 도입되어 50년이내에 서방교회 안에 널리 전파되었다. 그러나 성혈의 거양은 14게기에 보편화되었고 교황 비오 5세의 미사경본 (1570)에 규정되었다.

성체와 성혈을 거양하는 의미는 육신의 음식과 음료에 불과한 면병과 포도주가 축성의 말씀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였음을 주지시키고,일찌기 십자가상에 높이 달려 희생의식을 치른 제물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이제 아버지 하느님께 제헌하고자 하는 거향을 가다듬도록 촉구하며,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께 감사를 드리는 데 있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85, p.61)

제 목 : 감실(龕室)

성당 안에 성체를 모셔 둔 곳이다. 감실 안에는 성체를 담은 성합(聖盒)이 있으며 그 밑에는 성체포가 깔려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성체는 그 안전을 위해 집 안에 모셨으나, 4,5세기경부터 성체를 상당에 모셔 두는 관습이 생겨 8세기에는 제단을 모시게 되었다. 1251년 제4차 라테란(Lateran)공의회에서 이를 확정시키고 1918년 교회법으로 의무화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감살을 견고한 금속으로 정교하게 만들어 안전하게 잠글 수 있도록 했으며 적절하게 장식하여 성체를 모셔 두는 첫째 주목적은 노자영성체를 시켜 주는 데에 있고 2차적으로 목적은 미사 외에도 영성체를 시켜 주며 그리고 형상 속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게 만들고 또 성체를 많이 모실 필요없이 제대 중앙이나 성당 안에 단하나의 감실만을 두게 하였다. 감실 앞에는 성체를 모셔둔 것을 알리고 성체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작은 램프(성체불)를 켜 두도록 하였다.

신자들은 감실 앞에 자나갈 때 깊은 절을 함으로써 존경을 표시한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85, p.47-48)

제 목 : 간음(姦淫)

배우자에게 매인 이성과 육체적 관계를 간음이라 한다. 사음이나 간음이나 모두 대죄지만 간음이 더욱 큰 악이다. 배우자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한 편만 매인 몸이고 한 편은 자유의 몸인 경우에는 홑간음(Adult, simplex)이라 하고, 양쪽 다 매인 몸이면 겹간음(Adult, duplex)이라 한다. 고해 때 이를 밝혀야 한다.

첫째. 간음은 정덕을 거스를 뿐 아니라 의덕을 크게 거스른다. 배우자의 승낙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간음은 언제나 정덕뿐아니라 혼인의 권리와 불해제성(不解除性)을 크게 침범하기 때문이다. 비록 배우자의 승낙이 있을지라도, 그런 승낙은 무효다. 올바른 혼인 외에는 정주를 남용할 권리를 타고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승낙을 주고 받고 할 권리도 처음부터 없는 것이다.

둘째. 겹간음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의덕(義德) 침해가 겹친다. 따라서 고해 때 이를 밝혀야 한다.

제 목 : 공소(公訴)

본당(本堂)보다 작은 교회 단위를 의미하지만, 때때로 공소 교우들의 모임 장소인 강당(講堂)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공소에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미사가 집전되지 못하고 대신에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첨례를 보거나 공소예절이 행해지며, 정기적인 신부의 방문을 통해서만 성사(聖事)가 집행된다.

한국 교회에서는 신부가 1년에 두 번 춘추(春秋)로 공소를 방문했기 때문에 이를 '춘추공소 때'라 불렀고, 또 신부방문 때 주로 집행되는 성사가 판공성사(判功聖事)였기 때문에 신부가 봄에 방문하는 것을 '봄 판공', 가을에 방문하는 것을 '가을 판공'이라 불렀다. 그리고 신부가 공소를 방문하기 전에 공소 방문 일절과 교우들의 유의해야 할 점을 기록한 배정기(排定記)를 미리 공소에 보내는 것이 관례였고, 이에 대해 공소회장은 신부의 방문을 전후하여 공소의 상황을 적어 신부에게 보고하였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90, p.103)

제 목 : 공소예절(公訴禮節)

공소에서 미사 대신 겨행되는 전례, 미사예식 중 성찬의 전례가 빠진 미사형식으로, 공소에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주일이나 축일에 그 지역 교우들이 모여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이 예식을 행한다. 공소예절이 생기기까지는 교회에서 성찬 규식과 경문을 따라 첨례를 보았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90, p.103)

제 목 : 공소회장(公訴會長)

공소 교우들의 지도자로서 공소 교우들은 돌보며 공소에서 본당신부를 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공소회장의 직무로는 예비자 교육, 공소 교우들의 교리교육, 춘추판공(判功)준비, 교적정리,공소 재산 관리, 냉담자 권면, 전교(傳敎),공소예절의 주관 등이 있고, 이외에 신부를 대리하여 유아세례(幼兒洗禮, 대세(代洗), 혼인(婚姻) 등의 성사를 집행할 수 있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90, p.103)

제 목 : 교부

신앙이나 교회생활면에서 중대한 영향을 준 분으로, 사도들의 설교내용을 가르치고 증거한 교회 학자들을 말한다. 대체로 사도 시대에 가깝고, 그 시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교회가 전통적으로 인정한 자들이다(예: 6 7세기 대 그레고리오, 이시도로 성인 등).

이들은 사도 시대의 신앙 유산을 그 시대의 문화와 언어로 전해 준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이들을 통해서 그 시대의 문화와 사고방식, 배경, 언어 등을 보다 잘 알수있다. 이들은 성서 정신에 투철하였기 때문에 교의와 신학에서 뿐 아니라 생활규범, 전례, 영성면에서 창조적 효과를 내어 교회를 탄생시키고 성장케하는 아버지 역학을 했다.

때문에 교부 즉, 교회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것이다. 800년경 분도회 요한 수사는 4대 교부로 암브로시오(397년), 예로니모, 아우구스티노,대 그레고리오(604년) 등을 들었다.

제 목 : 굶주림과 목마름

굶주림과 목마름은 생명의 유지를 위한 하나의 기본적 욕구의 표현이기 때문에, 이것들은 또한 하느님 앞에서 인간 실존의 의미를 드러내어 준다. 즉 너무 포식하여, 굶주림과 목마름을 느끼지 못한 자는 하느님을 모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굶주리고 목마르게 되면 부끄러운 행동을 하게 된다(잠언 30,9). 굶주림과 목마름을 느낀다는 것은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게 해주는 긍정적인 체험이긴 하나, 굶주린 상태를 하느님께서는 바라지 않으시므로 마땅히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근이 든 경우처럼 굶주림이 집단적으로 업습해 올 경우도 있는데, 거기에는 천벌, 즉 하느님의 심판의 표징이 나타나 있다고 성서는 말한다.

구 약

1. 신앙의 시련인 굶주림과 목마름- 광야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굶주림의 시련을 주어 그들의 마음속을 헤아려 보신다(신명 8,1-3). 이스라엘은 자기의 전 존재가 야훼께 달려 있으며, 야훼님만이 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적 욕구를 넘어서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다 중요한 욕구, 즉 하느님에 대한 욕구를 찾아내야 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가 하느님의 입에서 나온 것, 곧 말씀과 백성들에게 생명의 원천이 되는 율법(신명 30,15-17;32,46-47)을 암시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에집트에서 먹었던 고기만을 생각하면서 "그때는 참 좋았었는데"(민수 11,4-5)하고 지껄인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굶주림에 의해서 구원을 주시려는 시련을 중지하시고 부득이 "코에서 고기 냄새가 나서 구역질이 날때까지"(민수 11,20),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게 된다.(참조 시편 78,26-31)

땅에 정착하여 풍요한 산물로 포만한 이스라엘은 사막에서 얻은 교훈을 망각하고, 이같은 풍요를 그들의 공로로 돌리며 하느님 앞에서 자랑했다(신명 32,10-15; 호세 13,4-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또 다시 당신의 백성을 광야로 끌어내셔야만 하셨다(호세 2,5).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목마름에 지치고, 잃어버린 곡식과 폐허가 된 포도밭 때문에 울면서(호세 2,11;14), 정신을 차리고(호세 2,16), 다시 "야훼의 말씀을 듣기를"(아모 8,11) 갈망하는 본질적 굶주림과 목마름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예언자와 현자들은 이같은 교훈을 받아들인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마련하신 좋은 것들에 대한 필요성과 욕구는 끊임없이 식사와 빵과 물과 포도주의 표상으로 표현된다. 사람은 야훼께서 당신의 산에서 모든 백성들을 위해 준비한 잔치에 입맛을 다시며(이사 25,6), 갈증을 풀어 주는 지혜를 목말라하고(잠언 5,15;9,5), 사랑처럼 취하게 하는 포도주(아가 1,4;4,10)를 갈망한다. 사람은 갈증을 풀어 줄 물과, 배를 채울 음식을 하느님으로부터 "무상으로" 받으러 달려간다(이사 55,1-3). 이때에 사람들이 희구하는 것은 그들이 목말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맑은 물과, 취해서 생명을 얻을 특별한 포도주, 즉 하느님 자신이다(잠언 42,2). 하느님 자신은 "다만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채워 주리라"(시편 81,11)고 준비가 되어있다.

2. 애덕실천을 호소하는 굶주림과 목마름- 시련으로서의 굶주림과 목마름은 예외적인 것으로 끝나야 한다. 지상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을 가난한 사람들(신명 15,11)은 그들과 가까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살아 있는 호소가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근본적인 의무중의 하나는 자기 형제와 동포에게 빵과 물을 주는 일인데(출애 23,11),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라면 누구에게나(토비 4,16-17), 자기의 원수에게까지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어야 한다(잠언 25,21). 이렇게 하는 것이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며(에제 18,7;16), 하느님의 뜻에 맞는 단식을 하는 것이다(이사 58,7;10). 결국 야훼님 그분이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채워 줄 잔치를 베풀 것이다(이사 25,6; 참조 65,13).

신약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메시아로서(루가 1,53)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배부르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루가 6,21). 그분은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의 처지를 손수 체험하시며 당신의 선교를 시작하신다. 사막에서 이스라엘이 당한 시련처럼 그분은 광야에서 시련을 당하시며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음식이 되고 삶을 유지시켜 주는(요한 4,32-34) 하느님의 말씀과 성부의 뜻(마태 4,4)이라고 선언하고 보여 주신다. 드디어 십자가상에서 "성부께서 그에게주신 잔"을 받아마셨던(요한 18,11) 그분의 목마름은 "성서의 예언으 이루시고"(요한 19,28) 성부께서 하시는 일을 완성시키며,"하느님 어전에서 보고 싶은"(시편 42,3) 간절한 소망과 분리할 수 없다.

2. 굶주림과 목마름을 해결시켜 주시면서도 유발시키시는 예수- 옛날 하느님께서 사막에서 행하하신 것처럼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배고픔을 채워 주신다(마르 8,1-3). 동시에 그분은 하느님의 말씀과 바로 그분 자신인 참된 빵(요한 6장)에 대한 갈망과 자신의 영인 생활한 물(요한 7,37-39)에 대한 갈구를 일깨워 주는 것에도 마음을 쓰신다. 그분은 이러한 갈증을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안에도 일으키신다(요한 4,1-4). 이는 마치 마르타로 하여금 오로지 필요한 것 한 가지인 그분의 말씀을 갈망하도록 재촉하는 것과 같다(루가 10,39-42).

3. 그리스도인과 굶주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의무가 전보다 더 강조된다. 자기집 문앞에 선 거지에게 먹을것 주기를 거절한 자에게는 게헨나의 고통에 찬 갈증이 기다리고 있다(루가 16,19-24).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에게 한 잔의물이라도 준 자에게는 반드시 상급이 있다(마태 10,42). 심판도 이 점을 기준으로 행해질 것이다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는 일아야 말로 형제를 통하여 예수님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덜어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마태 25,35;42). 그리스도인은 이웃의 갖가지 고통을 덜어주는 사랑의 행위를 언제나 목말라해야 한다. 하느님과 그 거룩한 얼굴을 보고 싶어 하고 참 생명을 얻으려고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이같은 사랑을 베풀수 있는 기회는 거저 열려 있다.

제 목 : 구세사

성서에 기록된 사건들은 하느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행위를 그 내용으로 하므로 성서의 역사관은 구세사라고 불려진다. 이는 성서적 관점과 신학적 관점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편하다. 성서를 보면,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곧 종교사요 구세사였고 그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며 구세주의 내림을 준비하였음을 알수있다. 구약시대 구세사의 내림을 준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구약시대 구세사의 개념을 깊이 인식하게 된 계기는 출애급의 경험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네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한 까닭이 야훼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주시기 위해서라고 확신했었다. 그들의 개인적 국가적 흥망성쇄가 야훼께 충성을 다하느냐 않느냐에 달렸음을 깨달으면서 그들은 구세사가 절정에 이르면 조상들과 맺은 옛 계약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으로 대치되어 완성될 것이라는 종말론적 믿음을 가졌다. 신약시대에 예수는 구약의 예언과 구원의 희망을 완성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

로 알았고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왕국이 자신의 임무로 알았고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왕국이 자신의 활약으로 도래해 있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구세사는 세상 종말에 부활과 심판 때에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미 도래해 있으나(히브 1,2) 아직 미래에 완성될 여지가 남아 있다(already but not yet)고 이해했던 것이다(사도 3,21). 이를 신학적 용어로 기현화종말론, realized eschatology)이라고 한다.

교의 신학적인 관점에서 구세사는 성서 주석의 기준이 되고 신학적인 명제로 이해된다. 성서 주석의 기준으로서 구세사는 하느님이 성서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의사를 표현함에 있어서 점진적으로 해 왔으므로, 주석자는 성서적 신앙이 유기적인 성장을 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시대를 구분하라, 그러면 성서 내용이 조화될 것이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신학적인 명제로서의 구세사는 '구세'와 '역사'라는 두 개념이 합쳐진 말이다.'구세' 또는 구원은 인간을 소극적으로 악의 지배에서 해방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느님과 재결합시키는 하느님의 행위를 말하고, '역사'는 인간사의 실재 과정뿐 아니라 그 기록을 의미한다. 구세사라 할 때 구세는 역사적인 것이고 그 역사는 구세적인 것임을 뜻한다.

구원의 역사성은 3가지 명제를 포함한다. 창조된 인간의 반역행위 때부터 구원행위는 새로운 창조행위로 인간 역사에 나타났다는 점, 하느님의 구원활동은 인간 역사의 전개 안에서 완성되어 간다는 점, 한때 행해진 하느님의 구원활동은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실현된다는 점

이 그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그리스도와 결합함으로써 구세사의 과정에 참여한다. 예수는 죄와 죽음을 이기심으로써 그를 믿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완전한 구원 계획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구원의 사건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안에서 지속됨으로써 현재에 사는 온 인류는 과거의 구원사건과 관련을 맺는 것이다.(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85, p.167-168)

제 목 : 관상수도회(觀想修道會)

영적 생활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는 관상을 목적으로 하여 고독과 침묵속에서 부단히 기도하고 하느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수도회를 관상수도회라고 한다. 카르투지오회, 시토회, 가말돌리회, 가르멜회, 글라라회 등이 이에 속하며, 관상생활과 함께 사도직 활동도 겸비하고 있는 활동수도회와는 구별된다. 왜냐하면 관상수도회는 사도직 활동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된다 할지라도 그러한 활동을 배제하고 관상생활에 전념하기 때문이다.

관상수도회는 "모든 지체(肢體)가 같은 기능을 가지지 않는다"(로마 12,4)라는 성서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있어서 뛰어난 역할을 한다.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는 관상수도회를 '천상 은총이 솟아나오는 셈'이라고 표현하고, 교회가 관상수도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교회의 영예'라고 찬양하였다(수도자 교령 7).

관상수도회는 그들의 고상한 목적을 이룩하기 위해 일찍부터 청빈, 정결, 순종의 복음적 권고르 실천하였다. 그런데 현대 세계에서 관상생활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단지 생애 대한 도피주의적 사고나 패배주의 경향으로관상수도회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관상수도회는 싸움으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진지한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마음속에서 승부가 날 때까지 싸우는 곳이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90, p.112)

제 목 : 구라주일

나병퇴치와 나환자를 위해 교회가 특별히 정한 주일로 매년 일월 네째주에 지낸다. 1961년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이날 2차 헌금은 나병환자를 위해 쓰여진다. 1993년 부터는 나병환자들 뿐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나누기위해 명칭을 '사회복지주일'로 변경하고 더 많은 나눔을 행하도록 하였다.

제 목 : 교중미사

교구장 주교와 본당 주임사제가 모든 주일과 의무적 축일에 마사예물을 받지않고 자기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위해 봉헌해야 하는 미사, 교중미사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의무를 가진 사제가 당일에 해당 본당에서 봉헌해야 한다. 또한 교중미사는 직책상의 의무이기 때문에 교구장 서리, 교구장 대행, 본당의 임시 주임사제에게도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교구장이 아닌 주교와 부주교, 보좌주교 및 부교구장과 교구청 근무 사제들, 본당의 보좌신부들, 신학교 교수신부들, 군종사제들에게는 의무가 없다(1951년 4월 23일자 교황청 추기워원회) 한국 교회에서는 포교지방의 특전을 얻어 본당사목에 종사하는 본당신부들은 일년 중 11번의 대축일에만 미사예물 없이 교중미사를 봉헌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즉 주의 공현 대축일(1월 2일부터 8부내 주일), 성 요셉 대축일(3월 19일), 예수부활 대축일, 예수승천 대축일(11월 1일),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 8일), 예수 성탄 대축일(12월 25일)에 교중미사를 지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중미사를 드리는 같은 날 혹 미사예물을 받고 다른 미사를 드렀다면 그 미사예물은 전부 교구장이 정한 목적에 희사해야 한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 교회사 연구소, 1990, p.133)

제 목 : 꿈

1. 초기 계시의 매체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 최초의 야훼와 맺은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먼저 그들에게 자기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분이 야훼라는 사실은 성서의 기록이 증거하는 바이다. 야훼께서 아브라함을 고향 땅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이 야훼의 주도권을 대변하고 있다. 또한 모세에게도 먼저 자신을 계시하시고, 나중 시나이산에서 운집한 히브리인들에게 자기자신의 신성 드러내보이신 분도 야훼이다. 우리는 가나안 정착 초기에도 이와 비슷한 신현들이 있었음을 듣게 된다. 판관 6,11에는 야훼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발현하여 이스라엘을 미디안 사람들의 지배에서 구하라고 명령하였다. 또 주의 천사는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나타나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판관 13,2이하). 또한 우리는 선포된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여 행동하는 입다의 이야기도 듣게 된다(판관 11,29 이하). 사무엘기 상권에서는 야훼께서 엘리에게 '나는 너희 조상들이 에집트에 있을때 그들의 집에 나를 계시해 주었노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2,27).

많은 경우에 있어서 계시가 꿈을 통해 매개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초기 종교적 사고에서 꿈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상기해 볼 때 이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는 꿈이란 수면의 공통적 양상이기 때문에 일상적 체험으로 생각되고 있다. 사실 수면이란 사람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후퇴하는 것이며 이때 정신은 자신의 모험에 젖어들게 된다. 그러므로 상상이 풍부했던 고대인들에게는 꿈이 신비스럽고 암시적인 성격을 띤 동시에 루돌프 옷토(Roudolf Otto)가 '전율할 신비'(mysterium tremendum)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고대 베델의 성소에서 야곱이 영의 세계와 접촉한 것이 왜 꿈이란 매체를 통해 표현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가 꿈에 보니 사다리가 땅위에 세워져 있고 그 끝이 하늘에 닿아 있었다. 또 보니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또 보니 주께서 그 위에 서 계셨다 "(창세 28,12-13). 이 말은 야곱이 하느님과 친교를 맺은 방법을 아주 실제적으로 묘사한 것이며 이것은 꿈의 영역과 그 언어로써만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야훼께서 아비멜렉에게 사라의 정체를 알려 주신 것도 꿈을 통해서였고(창세 20,3 이하), 또 후대에 와서 욥도 '하느님은 사람들의 깊은 잠에 떨어질 때 밤의 현시 속에서, 꿈 속에서 말씀하신다'고 할 수 있었다(33,14-15).

제 목 : 그리스도(예수)

나자렛(Naxareth)의 예수에 대한 칭호. '기름을 발라 축성된 임금, 대제관'이란 뜻을 지닌다. 이말은 그리스어 '크리스토스'에서 유래하였다. 70인역에서 '메시아'의 어원인 히브리어 마시아(masiah)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기름바른)로 번역되었는데 이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크리스투스이다.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의 왕은 '야훼의 기름 바른 자'라 불려졌다. 그리스도 강생 직전 세기에 유태인들이 다윗의 왕좌를 재건하실 분으로 기대했던 구세주는 '기름 바른 자' 메시아 혹은 크리스토스라 불려졌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를 약속된 구세주라고 여겼을 때 그분을 일컬어 그리스도라 하였다(마르 8,29; 사도 5,42). 그러나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자 크리스토스를 구세주의 이름들 중의 하나로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신약성서에는 정관사 없이 그리스도(로마 5,6;6,4), 그리스도 예수(사도 24,24), 혹은 예수 그리스도(마르 1,1)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제 목 : 그리스도인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덕에 나아가야 한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께 사랑의 계명을 받은 우리는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성인 성녀들의 모범을 따라 거룩한 생활을 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우리 자신에게 영원한 행복을 마련할 것이다.

제 1 절 성덕에 불리운 하느님의 백성

"모든 완덕의 천상 스승이시며 모범이신 주 예수께서 친히 거룩한 생활의 원천이시요 완성자로서 신분의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제자들에게 생활의 성화를 요구하시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 하시었다.

사실 주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다하고 영신을 다하고 정을 다하며 지력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마르 12,30).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셨음 같이 서로 사랑하도록(요한 13,34;15,12) 내적으로 움직여주실 성령을 보내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스스로의 업적 때문에 불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계획과 은총으로 불리어 주 예수로 말미암아 의화 되었으며, 성세로써 하느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였기에 참으로 거룩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아 거룩하게 살아 받은 성덕을 보존하며 완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성인답게'(에페 5,3) 살고, '하느님께 간택되어 사랑받는 성인답게 자비로운 마음과 친절과 겸손, 온순과 인내'(골로 3,12)를 갖추며 성덕(갈라 5,22; 로마 6,22)을 지니라고 사도 바울로께서는 권고한다. 따라서 신분과 계급의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삶과 사랑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가도록 불림받았음은 자명한 일이다. 성덕은 현세 사회에 있어서도 보다 인간다운 생활양식의 촉진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완덕에 도달하기 위하여 신자들은 그리스도께 받은 힘을 다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며, 그의 모습을 닮아 모든 일에 있어 성부의 뜻을 따르고,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해 헌신해야 하겠다.

하느님 백성의 성덕은 교회사에서 많은 성인 성녀들의 빛나는 생활이 보여준 것처럼 풍부한 결실을 맺을 것이다"(교회 40).

완덕에 이르는 길

완덕이란 그리스도를 따라 '마음을 다하고 영신을 다하고 정을 다하고 지력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과 일치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성보나벤뚜라는 완덕에 나아가는 수덕의 길을 '삼중의 길'이라고 하였다.

첫째, 정화의 길 시기 : 인간의 나쁜 욕정을 극복하고 악습을 고치며 죄에 젖은 '묵은 사람의 옷을 벗어 버리고' 죄에서 멀어지는 시기이다. 비단 대죄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유의지로 범하는 소죄와 소죄로 기우는 경향까지도 끊어 버리려는 노력이 정화의 길의 특색이다.

둘째, 조명의 길 시기 : 부정적 색채를 띤 정화의 길을 지나 적극적으로 새로운 생활을 하고자 노력하는 조명의 길을 간다. 즉 낡은 인간을 벗어버리고 새 인간으로 갈아입은 새 사람은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와진다(골로 3,10 참조).

자유의지로 범하는 소죄와 이런 죄에 대한 경향을 끊어버릴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의식중에 저지르는 소죄, 충동적인 감정과 단점들까지도 극복하고 제거해 나가도록 힘쓰는 과정이다.

셋째, 일치의 길 시기 : 정화의 길이 끝나면 하느님과 일치하는 원숙한 상태에 이른다. 예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고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의 완전하심을 닮을 때 완덕의 정상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완덕에 이른 사람은 작은 허물이나 결점까지도 세심히 고쳐 나가며 언제나 기꺼이 주님의 뜻을 따르고 선택할 만한 능력을 갖는다. 우리는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신다"(갈라 2,20)고 말할 수 있게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제 목 : 극기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자신을 극복함.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고난받는 종'이 되어 마침내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셨다. 그리스도인이 스승 그리스도를 본받아 아버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인간에게 내재하는 이기심, 그릇되고 온당하지 못한 여러가지 정욕이다.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은 곧 이러한 사욕편정을 자제하는 것을 말한다. 자제하는 행위는 육신의 괴로움이 따르기도 하므로 고신극기라고도 하였다. 극기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일찌기 논어에서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라고 한 극기복례의 가르침과 비슷하여 인간의 공통적 상황을 알 수 있다.

* 금욕

인간의 오관을 삼가고 욕망을 억제하는 행위. 인간은 죄의 영향으로 악을 행하고 불합리한 쾌락에 이끌리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에페 4,21-24). 이러한 성향은 세례받은 신자들에게도 남아 있어서 하느님께로 나아가는데 장애요인이 된다. 이러한 경향을 금욕으로 극복할 필요가 있다.더구나 성서에서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하여 금욕이 요구된다. 이 금욕을 바울로는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음"(갈라 5,24)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종교 박해시대가 지나면서 정신적 순교로서의 금욕생활이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성인들이 보다 완전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생활로 성덕의 향기를 발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범속한 생활을 떠나 은둔생활을 하거나 엄격한 고행의 생활로 안일무사 주의와 향락을 피하고 그리스도의 뜻에 순응하는데 방해되는 모든 환경과 생활습성을 피하기로 노력한 것이다. 오관을 삼가며 인간의 바르고 맑은 정신과 판단을 위협한다고 생각되는 물욕과 명예욕과 성욕 등 욕망을 억제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에 민첩하게 순응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일반적으로 절식, 단식, 철야 등 육체적 고행을 할 뿐 아니라 속세를 떠나 입산을 하거나 사막이나 광야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모욕을 참으며 천대를 감수하고 고복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교회는 전례상 기도와 관련된 단식과 금육 등의 규정을 두어 신자들에게 금육의 정신을 실천하게 한다.

제 목 : 근심

창세 21,11

이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마음이 몹시 괴로왔다. 이스마엘도 자기 혈육이기 때문이다.

창세 45,5

형님들이 나를 에집트로 팔아넘겼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나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마음으로 괴로와할 것도 얼굴을 붉힐 것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요한 16,5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 돌아간다. 그런데도 너희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한 말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로마 9,2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끊임없이 번민하고 있습니다.

2고린 7,9

이렇게 여러분의 마음 아파한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된 일이니 결국 여러분이 우리로 해서 손해본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겪는 상심은 회개할 마음을 일으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을 후회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속적인 상심은 죽음을 가져올 뿐입니다.

필립 4,6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2고린 7,11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겪은 바로 그 상심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은 열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게 되었고 의문이 생겼고 두려워할 줄 알게 되었고 그리워하는 마음과 헌신하려는 마음이 생겼고 악을 징벌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잠언 10,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기쁨이요, 어리석은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다.

잠언 17,22

마음이 즐거우면 앓던 병도 낫고 속에 걱정이 있으면 뼈도 마른다.

마태 10,19

그러나 잡혀갔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주실 것이다.

마태 6,34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한다.

제 목 : 기적

* 초자연적인 계시의 표지로서 하느님이 비범하게 역사하시는, 감지할 수 있는 사건. 기적은 치유하고 구원하는 하느님의 종말론적 능력을 미리 계시하는 것이라는 의미와 이 계시를 모든 사람들이 깨닫기 쉽게 하기 위하여 감지할 수 있으면서도 비범하게 표현된 것이라는 표징적 기능을 지닌다. 기적은 질명의 치유와 같은 물리적 기적과 예언의 경우처럼 지적 기적 및 바울로의 개종 사례와 같은 윤리적 기적으로 구분된다. 구약에서는 두 시기 즉 하느님의 백성으로 설정되는 시대인 모세와 여호수아의 생애와 모세 계약의 재건자들인 엘리야와 엘리사의 생애 동안에 주로 기적 이야기가 집중된다. 이집트의 열 가지 재앙이나 사막에서의 기적들과 약속된 땅의 정복에 관한 전승적 이야기들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전능하신 하느님의 은혜로운 보호적 현존(여호 24,17)을 보여 주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기원이 창조사업에 비길 만한 기적이었음(이사 65,17)을 알게 된다. 구약을 통하여 기적은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선포한 하느님의 말씀을 뒷받침해 주므로 말씀에 종속해 있는 표징이며, 기적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일으켜 주므로 효력 있는 표징이다.

예수는 기적들로써 예언자들이 선포했던 메시아 왕국이 당신 자신의 위격 안에 현존해 있음을 보여 주셨다(마태 11,4-5). 그분은 당신 자신과 당신 안에 육화한 하느님 나라의 복음에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묻도록 유도하는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마태 8,27). 복음은 회개와 신앙에 의하여 받아들여지기로 되어 있는데(마르 1,15), 기적은 회개와 신앙을 일깨워주려는 의도를 지니었다. 그러나 믿기 위하여 그분의 기적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불완전한 믿음의 표현이다(요한 10,38).새로운 출애급의 정점인 부활의 표징(요한 13,1)은 교회를 설정하였고 구원의 완성인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였다(1고린 15,20).

오늘날에도 교회 내 성인들의 빛나는 업적 안에서 볼 수 있는 윤리적 기적들과 루르드의 기적과 같은 물리적 기적은 하느님의 말씀에로 우리의 주의를 이끌어 준다. 그러나 하느님께 자신을 개방하는 마음 자세가 없는 자는 기적의 증거를 거절할 것이다(요한 5,36). 이러한 마음 자세를 공관복음은 '기적에 선행하는 신앙'이라 보고 있다(마르 5,36;9,23).

역사상 기적이 가능한 자에 관하여 18세기의 근대과학은 기적을 자연법칙으로 환원시켜 설명하고 19세기의 합리주의는 이를 신화로 돌렸으나 제 1 차 바티칸공의회는 하느님의 계시가 성령에 의한 내적 도움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기적을 통해서도 드러난다고 하였으며, 비오 12세(1910년) 기적이 모든 시대의 모든 지성에 부합될 수 있다고 하였다.

제 목 : 까타꿈바

초대 교회 박해시대 그리스도 신자들이 피난처로 사용했던 지하묘지로써 여기서 전례를 거행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교인의 무덤을 가르키며 그 벽에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많은 벽화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들 벽화는 주로 하느님에 의한 구원,천국에 대한 희망을 암시적으로 드러냈으며 내세의 신앙, 그리스도의 신성, 세례, 성체, 죽은 이를 위한 전구, 모든 성인의 통공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 목 : 나눔

마르 15,24

주사위를 던져 각자의 몫을 정하여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루가 18,22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너에게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있는 것을 다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

화를 얻게 될 것이다"하셨다.

루가 3,11

요한은 "속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사람도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하고 대답하였다.

1고린 7,17

각 사람은 주님께서 나누어 주신 은총의 선물을 따라서 그리고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았을때의 처지대로 살아 가십시오.

로마 1,11

내가 여러분을 애타게 만나보려는 것은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게 힘을 북돋아 주려는 것입니다.

1디모 6,18

또 착한 일을 하며 선행을 풍부히 쌓고 있는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 주라고 하시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미래를 위하여 든든한 기초를 쌓아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라고 이르시오.

히브 2,4

하느님께서도 표징과 놀라운 일과 여러가지 기적을 나타내시고 또한 당신의 뜻을 따라 성령을 선물로 나누어 주심으로써 그들의 증언을 뒷받침해 주셨습니다.

사도 3,34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

이사 9,2

당신께서 주시는 무한한 기쁨, 넘치는 즐거움이 곡식을 거둘때의 즐거움 같고 전리품을 나눌때의 기쁨같아 그들이 당신 앞에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1요한 1,3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2열왕 4,43

엘리사가 다시 말하였다. "이사람들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야훼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 6,11

그때 예수께서는 손에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달라는대로 나누어 주셨다.

1사무 30,24

"결코 그럴 수는 없소. 싸우려 나갔던 사람의 몫이나 뒤에 남아 물건을 지킨 사람의 몫이나 다 한가지로 똑같이 분배해야 하오." 다윗이 그날 한 판결은 이스라엘의 관습법이 되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출애 16,17-18

이스라엘 백성은 시키는대로 하였다. 많이 거두어들이는 사람도 있었고 덜 거두어 들이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창세 32,9

야곱은 덜컥 겁이 나고 걱정이 되어 일행과 양떼와 소떼와 낙타떼를 두 패로 나누었다.

이사 58,7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체 하지 않는 것이다.

제 목 : 낙원

* 천국과 동의어. 폐쇄된 공원 혹은 유원지를 암시하는 고대 페르시아어 'pairdaeza'에서 유래되었으며, 히브리어 구약성서에서는 위의 의미로 세 번이나 사용되었다(느헤 2,8; 전도 2,5; 아가 4,13). 70인역 구약성서는 에덴 동산을 가리키는 말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 후기 유대문학에서 낙원은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랍비문학에서 많이 보인다), 정신적인 것이든 축복받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더 쓰이게 되었으며, 신약성서에서도 정신적인 의미로 세 번 사용되었다.신약성서에서도 정신적인 의미로 세 번 사용되었다. 신약성서에서도 정신적인 의미로 세 번 사용되었다. 신약성서에서 '낙원'은 루가복음서 23,43에서 처음 나오는데,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회심한 우도에게 낙원에 대한 약속을 한다. 또한 묵시록 2,7에는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라는 언급이 나오며, 바울로는 고린토 후서 12,4에서 낙원으로 붙들려 올라간 그리스도 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중세문학, 특히 후기에서 이에 대한 많은 고찰이 엿보인다. 근대에 있어서 낙원은 흔히 미래의 축복 상태를 암시한다.

제 목 : 낙태

* 부부애와 생명의 존엄성

[공의회 문헌, CCK, p.232-233]

부부생활을 조화있게 영위하고자 하면서도 어떤 현대적 생활조건 때문에 적어도 당분간은 자녀 수를 증가시킬 수 없는 환경에 놓인 부부도 있다는 것을 공의회는 알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충실한 사랑의 실천도 생명의 완전한 일치도 유지하기 어렵다. 깊은 부부생활이 중단되면 신의도 깨지기 쉽고 자녀의 행복도 위기에 봉착한다. 자녀 교육도, 자녀를 더 받아들이려는 용기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감히 부당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더구나 살해까지도 겁내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교회는 생명 전달에 관한 하느님의 법과 진정한 부부애를 보장하는 하느님의 법 사이에 참된 모순은 있을 수 없음을 일깨워 주는 바이다.

사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생명 유지라는 숭고한 임무를 인간에게 맡기시어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품위에 알맞는 방법으로 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생명은 그 수태되는 순간부터 성심껏 보호해야 한다. 낙태와 유아살해는 가증할 죄악이다. 인간의 성적요소와 생식기능은 하급동물에 비하여 놀라울 정도로 탁월한 것이다. 따라서 부부 생활에 고유한 행위가 진정 인간 품위에 알맞게 행해지면 엄숙한 것으로 존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부부의 사랑과 생명 전달의 책임을 조화시키는 인간 행위의 윤리성은 의향의 순수성이나 동기 평가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 행위의 본성에 바탕을 둔 객관적 기준으로써 결정되어야 한다. 이 기준은 상호 헌신과 인류 번식의 온전한 의의을 참 사랑에 곁들여 보전하는 것이라야 한다. 이것은 부부로서의 정결을 지키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 이 원칙을 따라야 할 교회의 자녀들은 산아 조절에 있어서 하느님의 법을 해석하는 교권이 금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생명과 생명 전달의 임무는 현세에만 국한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세의 관점에서만 평가되고 이해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언제나 인간의 영원한 목적과 관련시켜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하겠다.

제 목 : 노동

* 경제-사회 생활 전체를 지배하는 몇 가지 원칙

노동, 노동조건, 여가

물건을 생산하고, 교환하고, 경제적 써비스를 제공하는 인간노동은 경제 생활의 다른 요소들보다 훨씬 고귀한 것이다. 다른 요소들은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노동은 자가 노동이든지 고용된 노동이든지 직접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며 인격은 자연물에 자기 모습을 새기며 자연물을 자기 뜻에 굴복시킨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기 노동을 통하여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형제들과 결합되고, 형제들에게 봉사하며, 또한 노동을 통하여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며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협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노동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인간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참여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자렛에서 손수 일하심으로써 노동의 품위를 높여 주신 것이다. 여기서 충실히 노동해야 할 의무와 노동에 대한 권리가 각 사람에게 생기게 된다. 사회는 사회대로 현실정에 따라 국민들이 충분한 노동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또 노동의 보수는 각자의 임무와 생산성, 기업의 상황과 공동선을 고려해서 본인과 그 가족들에게 물질적,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생활을 품위있게 영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할 정도의 것이라야 한다(6).

일반적으로 경제 활동은 여러 사람들의 협동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어느 노동자에게나 피해를 입히게끔 경제 활동을 조직하거나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고 비인간적인 처사라 하겠다. 그러나 오늘에 있어서도 노동자가 자기 일의 노예같이 되는 경우가 가끔 생긴가. 이것은 결코 경제 법칙이란 구실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생산 노동의 과정전체가 인간의 필요와 생활의 요구 조건에 적응해야 한다.

먼저 가정생활, 특히 주부에 관하여 언제나 성별과 연령을 고려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하여 자기 능력과 인격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야 한다. 노동자가 올바른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시간과 힘을 노동에 바쳐야 하겠지만, 가정, 문화, 사회, 종교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휴식과 여가는 모든 노동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자기 직업적 노동을 통해서는 계발할 수 없는 능력과 기술을 달리 자유로이 연마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져야 한다. (공의회 문헌, p.249-250)

제 목 : 노인

* 가정의 노인들

[가정공동체, 요한 바오로 2세, CCK, p.48-49]

노인에게 대하여 특별한 존경과 큰 애정을 갖는 문화들이 있다. 그런 문화에서는 노인들이 가정을 떠나서 살거나 혹은 쓸모없는 부담으로만 취급되기는 고사하고, 그들은 젊은 가장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가정생활에서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은 우선 과거의 증인이 되고 젊은이와 미래를 위해서 예지의 원천이 되는 중대한 사명을 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문화에서는, 특히 무질서한 산업발전과 도시화를 뒤따라, 과거와 현재에, 노인들이 부당하게 소외되고 있다. 이 현상은 노인에게 극심한 고통을 야기하고 많은 가정을 정신적으로 가난하게 만든다.

교회의 사목 활동은 모든 이들을 도와가며 사회와 교회 공동체에서, 특히 가정 안에서 노인의 역할을 개발하고 잘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사실 "노인의 생활은 인간 가치의 폭을 명백히 하는데에 도움이 되고, 세대들의 연속성을 보여주며 하느님 백성의 독립성을 드러낸다. 노인들은 흔히 세대 격차를 메우는 특은을 가진다.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노인들의 눈과 말과 그 어루만짐에서 이해와 사랑을 발견하였던가! 얼마니 많은 노인들이 '자손은 늙은이의 면류관이다'(잠언 17,6)란 계시된 말씀에 자진해서 수긍하였던가!"

제 목 : 노자성체

이 말은 삶과 죽음의 두가지 긴 여행을 위한 영적인 준비, 즉 세례와 마지막 영성체를 의미합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임종하는 이를 위한 다른 종교적 의식과 기도를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은 죽음의 위험에 처한 신자에게 마지막으로 영해주는 성체만을 뜻합니다. 노자성체의 분배는 사제와 부제의 의무입니다.

노자성체의 경우 공복재를 지키지 않아도 되며 죽을 위험이 임박한 병자에게는 먼저 고백성사를 주고, 임종 전 대사를 베풀고 필요하면 견진성사를 집전하고 병자성사를 준 후 노자성체를 염해줍니다. 노자성체는 병자성사처럼 한번 이상 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목 : 냉담자

신자들의 6가지 기본의무인 주일을 거룩히 지낼 것과 단식, 금육재를 지키고 일년에 적어도 2번이상 고백성사와 성체를 영해야 되며 혼인법 등을 지켜야 되는 것 등을 3회 이상 지키지 않은 경우에 보통 냉담자라고 합니다.

제 목 : 니체아 신경

니체아 공의회에서 4세기경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 이단 사상 아리우스 주의를 배격하고 정통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채택한 신앙 고백문입니다.

이 신경은 성삼위에 대한 믿음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성자의 동일 실체, 그리스도의 강생, 죽으심, 부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 목 : 네스토리우스파 교회

네스토리우스파란 강생한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가지 분리된 인격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펴는 학파입니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 의해 이단으로 배척되었으며 이들은 페르시아와 소아시아 지방에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특히 중국에 들어간 교회를 경교(景敎)라 합니다. 이교는 14C 말에 소멸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제 목 : 대사

죄를 지은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 교회는 고백성사를 통하여 그 죄를 사면해준다. 그러나 고백성사를 통하여 죄는 사면되었다 할지라도 그 죄에 따른 벌, 즉 잠벌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잠벌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보속을 통하여 사면될 수 있는데, 현세에서 보속을 하지 못한 경우 연옥에서 보속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을 대사라고 한다. 대사는교황이나 주교들이 줄 수 있는데, 대사의 근거는 그리스도와 성인들이 쌓아 놓은 공로의 보고(treasury)에 있는 공로를 교회의 권리로 각 영혼들에게 나눠줄수 있다는데 있다. 이러한 대사는 보통 전대사(indulgentiae plenariae)와 한 대사(indulgentiae partiales)로 나눠진다. 전대사란 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전부 없애 주는 것이고, 한대사란 그 벌의 일부분을 없애 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전대사나 한대사를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을 위해 대신 받을 때 그것을 대원(suffrage)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대사제도는 초대 교회 박해시대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교회의 보속규정에 의하면 죄인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일정기간, 예컨대 40일, 혹은 80일, 300일, 혹은 몇 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자신의 죄를 보속하는 속죄기간을 거쳐야 그에 해당하는 벌을 사면받는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박해기간 동안에는 이러한 규정들을 지키기 힘들었고 후에 신자들이 다시 교회에 들어오는 데 일종의 장애요소로도 작용하였다. 이에 따라 특별한 경우 주교들은 속죄기간을 단축하여 주기도 하였다. 이 속죄기간의 단축이대사의 기원을 이룬다. 그 후 중세 초가 되면 속죄기간의 단축 대신 속죄를 사면(redemptiones)하는 관습이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른 속죄 규정서가 나왔다.

이것이 이른바 대사의 원형이다. 십자군운동이 일어나면서 대사는 십자군에 참가하는 자나 십자군을 위하여 재산을 기부하는 자에게 주어졌다. 십자군운동이 끝난 후에는 일정의 공익사업을 위해 기부하는 자에게도 대사가 주어졌다. 중세말이 되면 소위 '대사설교가'라는 사람들이 나타나 대사를 남용하면서 소위 '면죄부'라고 알려진 증서를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교회는 이의 규제를 등한시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규정을 만들어 대사의 남용을 규제하였다. 잇달아 교회법에 규정되었던 엄한 보속은 폐지되었고, 교황 바오로 6세는 대사에 대한 법을 제정하며 대사의 의미와 규정을 명확히 하였다. 이에 따라 대사를 받기 위해 신자들이 해야 할 의무들도 대폭 완화되었다. 즉 대사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신자로서 고백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고, 성당참배를 하고, 교황의 뜻이 이뤄지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보통 대사는 성년에 베풀어지지만 성년이 아닌 경우에라

도 교황이 정하는 바에 따라 벌의 사면에는 효과를 갖지만 죄 자체를 사면하는 효력은 없다.

제 목 : 달란트

라틴어로 중량의 단위 혹은 재능, 능력, 천재를 나타냈습니다.

중량을 나타내는 경우 20.4kg. 통화의 경우 로마의 은화로 따지면 6천 데나리온입니다.

구약시대에는 3천 세켈에 해당하며 중량은 34.7kg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도 주인이 종 각자에게 능력에 따라 탈란트(금전)를 맡기고 활용하여 이익을 올리도록 명했다는 비유에서 정의하여 천부의 재능을 의미하게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서 오늘날은 재능있는 사람을 표현하여 텔레비전 출연자를 탈렌트라고 합니다.

제 목 : 대교리

첫째, 천주 존재교리로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느님이 계심.

둘째, 상선벌악 교리로써 하느님은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심.

세째, 상위일체 교리로써 하느님은 한 분이시나 세 위력, 즉 성부, 성자, 성령이심.

네째, 강생구속 교리로써 인간이 죄로 인하여 하느님을 잃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셨기에 누구든지 세례를 받음으로 천국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교리입니다.

임종때 비상세례(대세)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이러한 가톨릭의 4가지 기본교리만은 알고 믿어야 합니다.

제 목 : 대림절

대림절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전 4주간을 말하며, 이 시기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전례적으로는 두가지의 내림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서의 탄생과 세말의 심판을 위한 재림을 뜻합니다.

중세기의 사상에서 세말이란 엄한 심판의 날로서 엄격한 기분이 보이나 여기에는 기다림의 기쁨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림절이란 교회와 신자 각자가 구세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준비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대한 희망의 시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제 목 : 대림초의 의미

대림시기에는 성탄을 준비하며 희망을 갖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의미로 '대림초' 를 켜는데 싱싱한 사철나무 위에 4개의 초를 마련합니다. '대림환' 이라고 부르는 사철나무는 우리에게 내려질 싱싱한 하느님의 새로운 생명을 뜻하고, 4개의 초는 구약의 4천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구세주가 어느 정도 가까이 오셨는지 알려줌으로써 마음의 준비를 갖추도록 매주 촛불을 하나씩 늘려 켜나갑니다.

다양한 대림 풍습

이밖에도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풍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은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이듯이 사람들도 이것을 모방해서 서로 사랑을 나누는 정성이 담긴 선물을 주고 받거나, 사랑과 화해의 글이 담긴 성탄 카드를 주고 받습니다.

또한 각 가정에서는 성탄 나무 장식을 꾸미기도 합니다. 그 아래에는 예수 성탄의 구체적인 상징으로서 흔히 작은 구유가 놓여집니다.

제 목 : 대림시기

대림시기는 예수성탄 대축일 전 4주간 동안입니다. 4주간은 구약에서 약속된 구세주를 기다리던 기간을 상징합니다.

대림은 구세주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으로서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탄생 기념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심을 해마다 경축하고 기념합니다. 2천년 전의 사건이지만 이 사건으로써 인류는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되었고, 그 구원의 은총은 개개인에게 이르고 있으니 마땅히 경축해야 합니다.

우리의 지성과 마음으로는 헤아릴 수 없지만 창주주 하느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인류역사와 함께 간접으로 예고(창세 3,15)되어 온 사실이지만 너무나 엄청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성탄일을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그 이유가 '나'안에서 성취되었는지 깊이 반성하면서 성탄을 준비할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재림 고대

예수님은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마태 24,30).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서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려 오시리라 믿나이다"하고, 미사 때마다 "복된 희망을 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위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희망의 기쁨 속에서 권능을 떨치며 오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우리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영광 중에 오시는 예수님은 세말에 교회를 완성하실 것이고, 각 개인의 경우에는 각자가 죽을 때 오셔서 그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세주의 재림을 고대하던 사람, 즉 맞갖는 준비로써 그리스도를 기다린 사람은 예수님을 기쁘게 맞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은총을 받지 못하여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피해 갈 것입니다. 늘 새롭게 오시는 주님과 함께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어 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샐활에 오심

주님은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공동체와 우리의 착한 생활 속에 오셔서 함께 사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는 성사 안에서 우리에게 다시 오셔서 현존하십니다. 특히 성체로 주께서 친히 우리 각자에게 더욱 친밀한 방법으로써 오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께서 함께 계심을 체험함에 무뎌져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살이에 너무 골몰해 있고, 현세적 쾌락과 욕구에 집착하여 주님의 뜻과 사랑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활>

우리가 대리시기를 따로 마련하여 우리 존재 전체가 주께 향하도록 기도와 선행과 극기를 하면서 성사의 의미를 다시 인식하고 주께서 우리 생활 속에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구세주와 선구저인 세례자 요한이 어떻게 기디릴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이 길을 고르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매워지고 높은 산과 작은 언덕은 눕혀져 굽은 길이 곧아지며 험한 길이 고르게 되는 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루가 3,4-5)구세주를 모시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리는 교만(산과 언덕)을 깎아 내리고,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음을 잊고 아무렇게나 사는 골짜기르 메우고, 형편대로 적당히 살겠다는 굽은 정신을 곧게 하고, 온갖 잠념에서 응어리진 험한 마음을 고르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회개이고 이 회개는 고백성사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제 목 : 대림환

대림환은 독일 선교사 비허(Wicher)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는 4개의 초를 푸른 나뭇가지로 엮어 둥근 모양으로 장식한 것이다. 이처럼 모양이 둥글다 하여 '환'이라는 말을 쓴다.

4개의 초는 동서남북, 즉 온누리의 어둠을 밝히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1주간마다 1개씩의 촛불을 켜게 된다.

한주간마다 한개씩의 초를 더 키는 것은 주님의 구원계획이 순리적으로 완성되어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림환에 사용되는 초는 원래 붉은색 2개, 노란색 1개, 흰색 1개였다. 여기서 붉은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를 상징하며, 노란색은 영혼과 육신의 생명력을, 흰색은 신적 영광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했다.

요즘은 보라, 연보라, 분홍, 흰색의 초가 주로 사용된다. 이런 색상의 변화는 회개와 보속을 뜻하는 사제의 보라색 제의에서 연유한 듯 하다.

보라, 연보라, 분홍, 흰색의 순서로 한주간 마다 촛불을 켜는데 어두운 색에서 밝은 색으로의 변화는 어둠을 밝히러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가까와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 목 : 대림시기의 전례는 연중시기와 어떻게 다른가

예수 그리스도님의 성탄과 재림을 준비하는 대림시기의 제1주일은 오실 구세주를 깨어 기다려야 하는 교회의 종말론적 자세를 강조하고, 제2주일은 구세주의 오심에 회개하도록 촉구하고, 제3주일은 구세주께서 오시 띵날이 가까웠으니 기뻐하고 권고하며, 제4주일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와 그분이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이 시기의 미사와 성무일도의 기도문들은 주로 이사야 예언서와 세례자 요한의 설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사야 예언서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백성들을 위로하고 메시아의 구원 시간의 도래를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예언자로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세주가 오셨음을 선포하여 신약의 시간을 여는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입니다.

대림시기에는 제대 주위의 화려한 장식을 피하고, 대영광송을 하지 않으며, 사제는 사순시기와 같이 속죄와 회개의 의미가 담긴 자주색 제의를 입게 됩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이러한 전례를 지내는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님의 탄생을 기억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제 목 : 도유와 성유

도유란 주교나 사제가 교회 안에서 성사를 집행할 때 축성된 기름을 바름을 말합니다. 기름은 인간에게 영양을 제공하고 상처 치료에 효과를 주며 부패를 방지케 해줍니다. 이처럼 도유는 우리 신앙 생활에 하느님과 연결시키며 신앙을 항구케 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성유는 크리스마 섬유(올리브에 향유를 섞음 : 성서예절, 영세 후, 견진, 주교 서품시 사용)와 병자성유(순수 올리브 기름: 병자성사, 종 축성 등에 사용) 그리고 성세성유(순수 올리브 기름: 영세전, 사제서품, 제단 축성, 제왕 축복 등에 사용)가 있습니다.

이 기름들은 성 목요일에 사제단과 함께 주교좌 대성당에서 주교가 축성을 합니다.

제 목 : 독서(대)

독서란 교회 전례시나 기타 공식 예절시 성경을 낭독함을 말하며 특히 미사의 말씀의 전례시에 한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낭독함을 말합니다.

이때 신자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서 듣습니다. 독서는 구약 성서 중에서 혹은 서간 중에서 하나 혹은 둘을 읽고 이를 마친 후에는 봉독자가 "이는 주의 말씀입니다" 하면, 모든 신자들은 "천주께 감사" 하고 대답한 후 이어서 응송과 알렐루야를 노래합니다.

독서대는 독서할 수 있도록 마련한 대를 말하며, 보통 제단의 오른편에 설치합니다.

제 목 : 독서직

부제로 서품되기 전에 수여받는 직으로 차부제품 이하의 모든 품급이 폐지되면서 새로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직을 받은 자는 말씀의 전례에 사제를 도와 함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제 목 : 독성

거룩한 것을 의식적으로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거룩한 것이란 하느님께 속한 것으로 하느님을 위해 바쳐진 사람(성직, 수도자)이나 물건(성해, 성경, 제의, 성상, 성구)을 말합니다.

이 밖에도 대죄를 지은 사람이 성체성사를 받는 행위나 성직 매매도 독성이 됩니다.

제 목 : 동방교회

동방교회, 서방교회라는 명칭은 지리적 의미를 가졌으나 사실 역사적 유래에 의해 호칭됩니다. 동방교회들 중에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교회는 역시 정교회들로서 2억 이상의 신자를 헤아립니다. 로마제국의 동서방은 언어, 인종, 문화 등의 차이가 심했고 거리문제로 있었지만 로마제국은 600년경 모슬렘 족속에 의하여 비잔티움이 중심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서방 황제들의 정치적 야심으로 인한 간섭과 당시 건전치 못한 교황들의 잘못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동서방이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직접적인 원인은미카엘 첼루라리우스 총주교가 성령의 성자로부터의 출발을 부인하고 빵의 누룩의 유무 논쟁과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의 우위성을 들고 나옴으로써 동 서방 교회가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동방교회는 여러 제국에 분리되어 퍼져나갔습니다.

동방교회는 베드로의 성좌 즉 교황청과 교계적 친교와 일치를 이루지 않지만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서품도 유효하며, 성체성사 등 참된 성사들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제 목 : 동방박사

흔히 현인 혹은 삼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삼왕들은 별의 인솔로 유대인의 왕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으로 인도되었습니다. 외교인인 이 동방의 세 박사가 아기 예수께 경배한 이유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의 탄생에 대하여 그들에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며 그들이 바친 예물은 황금과 우향과 몰약입니다. 황금은 왕에 대한 예물로서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왕이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우황은 기도의 상징이고 몰약은 장례에 사용되는 것으로 예수의 죽으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제 목 : 동정

남녀 모두 신체적으로 순결성을 지키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신체적인 경우와 정신적인 경우, 그리고 현실적인 경우와 의도적인 경우로 구분된다. 동정성은 신체적인 순결에 죄가 될 만한 성욕의 만족감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것이라고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이성과의 성행위를 체험하지 않는 자는 신체적으로 처녀나 동정인 것이다. 정신적인 동정성은 성적 쾌락에 의식적으로 동조하지 않은 것을 뜻하지만, 이 경우도 엄밀히 말해서 이성을 상대로 하여 성적 쾌락에 동조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현실적으로 동정성이라는 것은 그 때까지 성적 쾌락을 구하지 않고, 그것에 빠지지 않았던 것을 의미하며, 의향에 있어서의 동정성은 위에서 설명한 바에 근거하여 성적 쾌락을 결코 구할 뜻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동정생활은 '하늘나라를 위하여'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에 의해 장려되었으며, 번거로운 세속으로부터 벋어나 하느님께 마음을 바칠 수 있기 때문에 바울로의 찬양을 받았다. 가톨릭 교회에서 자발적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동정을 지키는 자는 성직자나 수도자인 것이 보통이다. 사제직과 가톨릭 교회의 수도생활은 동정생활을 요구하고 있다.

제 목 : 독신

독신이란 결혼하지 않는 상태로 있는 것을 가리키나 교회에서는 한번도 결혼한 일이 없는 사람을 독신자라 한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평신자의 독신생활과 성직 수도자의 독신생활을 구별하고 있지만 어느 경우나 종교상의 이유에서 자유의사로 독신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평신자의 독신제는 그리스도교의 초기인 1세기부터 시행되어 왔다. 이들을 남자는 금욕자(continents), 여자는 동정녀(virgines)라 하고, 수덕자라고도 불렀다. 이들은 사도 바울로의 가르침을 따라 살았는데,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이 없는 여자나 처녀는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쓴다"(1고린 7,32-34).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자의 독신생활을 장려하여 왔다.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자가 성성에 도달하는 방법 가운데 훌륭한 길로서 독신생활을 강조하였다.

성직 수도자의 독신제는 절제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에서 오는 당연한 결론이다(마태 19,10-12). 일생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생활로써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남녀에게 있어서 독신제는 수도생활의 초기부터 수도자가 자신에게 스스로 과하는 의무였다. 교회법은 사제와 부제는 서품되기 전에는 아내를 가질 수 있지만, 서품된 후에는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을 철칙으로 하였다. 주교는 독신이 아니면 절대로 될 수 없다. 이것은 일찌기 306년 엘르빌라 교회회의 때부터 로마 교회 불변의 원칙이다.

386년 성 시리치오 교황은 '사제와 레위인'에게 독신제를 지시하였다. 이 법규가 성 인노첸시오 1세 교황(재위 ; 402 417)에 의하여 인정되었다. 이 법규는 엄밀히는 지켜지지 않았고, 어떤 곳에서는 반대의 소리도 높았으나 가톨릭 교회는 사제의 독신제에 대하여 변함없는 입장을 취하였다. 1918년의 교회법전에 규정된 성직자의 독신제는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변경되지 않았다. 이 공의회가 공포한 <사제의 임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은 다음과 같다.

"독신제는 처음에는 사제들에게 권고사항이었으나 그 뒤 라틴교회는 성스러운 서품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법으로써 의무화하였다. 이성스러운 교회회의는 이 법률을 사제를 원하는 자에게 거듭 승인 비준한다"(동 교령 16).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는 수도자가 실행해야 될 복음의 권고에 있어서 정결을 첫째에 두고 있다.

제 목 : 등잔

믿음이 우리의 어두운 인생 행로를 비추는 빛이 되며, 하느님 말씀은 어두운 이 세상을 비추는 빛과 같기 때문에 등잔은 믿음과 말씀을 상징합니다.

제 목 : 디다케

그리스어로 가르침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성서에 기록된 계시 내용의 교훈적 부분을 지칭합니다. 또한 사도시대 직후에 저술된 문헌을 가르키기도 하는데 이는 "12사도의 가르침"으로 불리어 지기도 합니다. 당시 전례 문헌을 모아 저술한 것으로 초대 교회의 규범이나 교령의 전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저자는 알 수 없으며 시리아 지방에서 기원전 60년에서 4C 경에 저술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사도시대 직후의 문헌으로 기원전 100년에서 150년 경의 것으로 보여집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의 생활과 신앙을 잘 묘사해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 목 : 동태복수법

원시사회나 고대사회에 적용되던 형벌원칙으로 피해자에게 입힌 상해. 손해를 가해자에게 정확히 그대로 보복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체상해의 경우 가장 흔히 적용되었습니다.

동태복수법은 그 이전 '피의 보복원칙'이 발전된 형태이며, 그뒤 사회가 복잡하게 됨에 따라 점차 '금전적 보상'이라는 형태로 바뀌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폐기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악행과 학대를 당할 때 보복하지 말라고 가르쳤으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대신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원칙을 제시하셨읍니다.

제 목 : 디아스포라(diaspora)

'이산'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헬레니즘과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그리스도와 로마 세계로 흩어져 살았던 유태인을 가리킵니다.

초기에는 아시아지역, 특히 아프메니아와 이란에 한정되었으나 나중에 이집트, 소아시아, 그리스, 이탈리아 등 로마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들은 헬레니즘 문화가 디아스포라의 유태인들의 사고에 침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국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성전세를 내고 그들의 종교와 율법을 충실히 따르며 야훼 하느님을 모시며 살았습니다.

제 목 : 디아코니아

그리스어로 "봉사"를 뜻합니다. 이는 어느 행위 주체가 교회 전체나 특정 개인의 선익을 위하여 수행하는 모든 공적인 직무나 사적인 협력을 지칭합니다.

이 용어는 교회를 위하여 부제나 사제처럼 특별히 서품된 자, 수도자, 가난한 자나 환자에게 봉사하고 가르치는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봉사함을 가르칩니다.

교회에 봉사직으로 서품받은 남자를 부제 즉, '디아코누스'라고 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제 목 : 단식과 금육

* 단식

신자들에게 극기와 희생의 의미와 죄보속의 정신을 키워주기 위해서 사순절 첫 수요일과 수난 금요일, 이틀동안 하루에 한끼를 먹지 않도록 함입니다.

이 규정은 21세부터 60세까지 지켜야 하는데 병자나 허약자, 임산부 또는 중노동자들에게는 면제됩니다.

* 금육

매주 금요일에 육식을 하지 않으며 만 14세부터 죽을때까지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잔치에 초대받은 경우나 외식을 하는 경우는 면제가 됩니다.

제 목 : 달레(1829-1878)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신부이며 교회사가인 그는 1829년 10월 18일 프랑스 디종의 동북부에 위치한 랑그르에설 출생하였습니다.

랑그르의 소신학교를 거쳐 대신학교를 수학하던 중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1850년에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 1825년 사제 서품을 받고 인도 마이수르 지방의 선교사로 포교에 전념하면서 저술활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업적 중 하나로 한국 주재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보낸 자료와 보고서 및 편지들을 중심으로 한국천주교회사를 편찬, 2권의 책으로 출판하여 한국천주교회를 서방에 알린 큰 공로를 쌓기도 하였습니다.

제 목 : 대목구

정식 교계제도가 설정되지 않은 지역의 교구로서 교황청에서 직접 관할하는 교구입니다. 정식 명칭은 교황대리 감목구이지만 일반적으로 대목구라고 하며 이 교구의 장을 대목 또는 대목구장이라고 합니다.

대목은 교황청에서 임명하며 교황을 대리하여 정식 교구의 주교와 같은 권한을 대목구에서 행사합니다.

대목구란 그 관할 구역을 말하며 주로 포교지에 많았고 장차 정식 교구로 설정될 수 있는 지역입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13개의 정식 교구가 있으며 서울, 광주, 대구는 대교구가 되어 대주교 관구로 나뉘어져 교계 제도가 확립되어 있습니다.

제 목 : 대부모

교회가 세례를 받고 입교하는 사람에게 신앙생활의 길잡이가 되어 줄 사람을 선정하여 세례자의 영신적인 어버이와 같은 관계를 맺어준 자로 대부모는 먼저 영신적 모범을 보여주며 대자녀들을 깊은 신앙생활로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대부모들은 대자녀들이 세례를 준비하는 동안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뿐 아니라 일생동안 한 후견인으로 영신적인 모든 것을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대부모는 견진성사를 받은 자이어야 합니다.

제 목 : 대사

죄를 지은 사람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 교회는 고백성사를 통하여 그 죄를 사면해줍니다.

그러나 고백성사를 통하여 죄는 사면되었다 할지라도 그 죄에 따른 잠벌은 여전히 남게 되는데 이 잠벌은 보속으로서 사면됩니다.

그런데 이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을 대사라고 합니다. 대사는 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전부 없애주는 전대사와 벌의 일부분만을 없애주는 한대사가 있습니다.

제 목 : 대송

교회법상 신자들에게 정해진 의무를 지키지 못한 자가 그것을 대신해서 바치는 기도입니다. 예를들어 주일 미사대신 주님의 기도 33회를 하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기도대신에 바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는 환자를 위해 대신 바치는 기도도 이에 속합니다.

제 목 : 당가(當家)

당가란 일가(一家)의 재정을 맡아본다는 뜻으로 당가신부는 경리담당 신부님, 흔히 교구나 신학교의 경리담당신부를 가리킵니다.

제 목 : 도그마(Dogma)

원래는 신념이나 의견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칸트는 교훈, 설교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계시된 진리나 규정된 신앙의 조항들을 구체화했다고 생각하는 명제를 믿는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도그마를 신조(信條), 교리(敎理), 교의(敎義), 학설(學說), 신앙(信仰), 신념(信念) 등으로 번역합니다.

제 목 : 돔(Dom)

1) 라틴어 'Dominus'(主)의 약칭으로 베네딕도회나 시토회 수도자에 대한 전통적 경칭입니다.

2) 독일어의 'Dom'은 대성당 즉 주교좌 성당(Ecclesia cathedralis)을 뜻하는 말입니다.

제 목 : 띠

사제가 장백의를 입을 때 길이가 긴 장백의가 끌리거나 벌어지지 않게 허리에 매는 끈.

띠의 길이는 3-4미터이며 양쪽 끝에 장식술이나 고리가 달려 있습니다. 띠의 색은 보통 흰색이나, 그날에 해당하는 제의색과 일치하는 것은 환상적으로 안좋습니다. 띠는 일, 싸움 등의 결의의 상징으로 악마와의 투쟁, 극기의 필요성을 각성케 합니다. 사제는 띠를 매면서 입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여 조찰함의 띠로 나를 매어 주시고 내안에 사욕을 없이 하시어 절제와 정결의 덕이 있게 하소서."

제 목 : 대신덕

인간이 하느님과 갖는 기본관계의 덕으로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제 목 : 대자녀

교회는 성세와 견진성사를 받는 자에게 성사 받은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오랜 신앙생활을 거쳐 신심이 깊은 신자를 신앙의 후견인으로 삼아 서로 신친관계를 맺게 하였습니다. 이 관계에서 신앙 후견인을 대부모라고 하고 피후견인을 대자녀라고 합니다. 피후견인 가운데 남자를 대자, 여자를 대녀라 부릅니다.

제 목 : 대세(代洗)

일반 성인들은 세례를 받기 위해 몇 개월간 교리강습을 받아서 신앙인이 무엇이며, 세례의 깊은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죽을 위험이 있는 사람들은 일반 사람처럼 교리를 배울 수없습니다. 그런 경우 비상 조치로 주는 세례를 "비상 세례"(대세)라고 합니다.

대세전 꼭 알아야 할 4대교리

비상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다음의 멎 가지 기본교리를 일러 주고, 그것을 믿는다는 표시를 받아야 합니다.

첫째, 천주 존재 -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계심을 믿어야 하고

둘째, 상선 벌악 - 그 하느님은 윤리의 주인공으로 착한 사람에게 상주고 나쁜 사람에게 벌주시는 공의 하신 하느님을 믿어야 하고

세째, 삼위 일체 교리 - 한 분이신 하느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을 가지신 하느님임을 믿어야 하고

네째, 강생 구속 - 하느님의 두번째 위격이신 성자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씻어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주시기 위해 십자기에서 죽으셨고 그분의 공로로 세례를 받으면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대세주는 방법

집전자는 병자가 원하는 세례명을 부르며 성세를 베풉니다

" + 나는 성부와 [이마에 첫번째 물을 붓고], 성자와 [두번째 물을 붓고], 성령의 이름으로 [세번째 물을 붓고] 0 0 0(세례명)에게 세례를 줍니다.."

조건부 대세

위에서 말한 네 가지 교리를 다 가르칠 수 없고 별써 환자가 의식을 잃었을 경우에는 그분이 옛날에 하느님을 믿을 뜻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조건부로 임종 비상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조건부 세례는 이렇게 합니다.

" 0 0 0!(세례명을 부르며) 만일 당신이 세례를 받을 만하면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

비상 세례는 누구든지 줄 수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그 의식을 알고 그 내용을 알면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세례 성사는 그 성사의 사효성에 의해 하느님의 은혜가 내리기 때문입니다.

대세후에 할 일

1) 대세문서 제출

대세문서는 되도록 빨리 본당신부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문서제출은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뜻도 있겠지만 교회의 일원이 되었음을 공적으로 인정받게 되고 본당신부는 널리 알림으로써 더 많은 이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방문하여 격려하도록 배력하게 됩니다.

혹시대세자가 사망하였다면 장례 절차에도 필여하고 보례를 받게 될 경우 더욱 필요한 것이 문서입니다.

2) 환자가 사망한다면

가족들에게 교회의 장례 절차를 알려주고 되도록 많은 신자들에게 알려 연도하도록 주선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족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며 희생과 봉사는 유족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좋은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유족의 반대로 교회 예식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된 경우에도 본당신부에게 사망신고를 하여 문서작성을 하도록 할 것입니다.

3)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면

계속해서교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의 일생과 성사를 가르칠 것입니다. 여유가 있다면 성령의 활동과 하느님의 계명을 비롯한 다른 교리도 가르칩니다.

준비가 잘 되었다고 판단되면 본당신부에게 알려 보례를 받게 하고 고백성사와 성체성사를 받게 합니다. 필요하다면 본당신부의 판단에 따라 견진성사와 병자성사도 받게 될 것입니다.

제 목 : 대주교

한개의 교구나 그 이상의 교구를 통치. 관할하는 주교입니다.

대주교는 관의 회의에 주교를 소집할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 그의 관구의 주교중 한 사람이 내린 판결에 대한 첫 상소심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나 직접적인 행정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그 자신의 교구에 한합니다. 한국에는 서울, 광주, 대구가 있습니다.

제 목 : 뗏세라

레지오 마리애의 기도문과 그림의 복사로서 이루어진 인쇄물의 라틴말입니다. 이를 흔히 까떼나라고도 하비다.

원래의 뜻은 친한 벗들끼리 또는 자손들끼리 상대편을 알아내기 위하여 나누어 갖던 패를 가리키는데, 로마 제국 당시에는 새발통문으로 통용되던 암호가 실린 네모난 글판을 가리켰었습니다.

제 목 : 대칙서

가장 장엄한 격식을 갖춘 교황문서를 말합니다.

이 문서를 원형의 납도장으로 봉인하는데 봉인 앞면에는 베드로와 바오로의 모상이 뒷면에는 해당 교황명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제 목 : 대품

7품 가운데 상위에 속하는 주교직, 사제직, 부제직을 대품이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7품 가운데 대품을 제외한 나머지 품을 폐지하였습니다.

제 목 : 두려움

* 두려움에서 사랑에로

"어떤 사람들은 악마와 더불어 지옥의 영원한 불 속에 내던져지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하느님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두려운 마음이 사랑을 실천하도록 준비시켜주지만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직도 벌이 무서워서 주님을 사랑한다면 아직도 그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을 삼가려고 애쓸 뿐이지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악을 피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여러분 자신을 개선하여 선을 열망하기 시작합니다. 선을 열망하기 시작한다면 이 두려움은 순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순수한 두려움이란 무엇입니까? 선한 모든 것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잘 알아들으십시오. 지옥에 빠지지 않으려고 하는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그분에게서 멀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악마와 더불어 지옥에 떨어져 처벌받지 않도록 여러분을 방어해주는 두려움은 아직 순수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아니라 처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연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현존이 여러분에게서 멀어지지 않을까 하여 여러분이 주님을 두려워한다면 여러분은 그분을 맞아들이고 향유하기를 열망하는 것입니다"(성아우구스티누스, [요한의 첫째 편지에 대한 주해], 9,5).

제 목 : 덕

* 넓은 의미로 완전히 계발된 인간 능력, 또는 인간에게 있는 존재론적 가능성들이 완전 개화한 상태를 말하나 좁은 의미로는 윤리선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덕은 그 기원과 성격, 목적과 획득 양식에 따라 편의상 자연덕과 초자연덕으로 구분된다. 자연덕은 인간이 일반적 노력으로 얻어지는 선행의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즉 반복되는 행습으로 얻어지는 하나의 숙달이며 일정한 선행을 기꺼이 또 쉽게 하게 만든다. 그 예로 오랫동안의 행습으로 판단력을 키우면 상황에 따라 쉽게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초자연덕은 인간이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초월자이신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베푸시는 덕을 의미하며 이는 인간이 타고난 자질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거기서 인간이 자기의 구원을 바라고 초자연적 행위를 할 능력을 얻는다. 이는 하느님이 성세성사때 주입해 주시는 것이기에 주부덕이라고도 한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습득하는 수득덕이 아닌 만큼 친숙하게 기꺼이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로 초자연적인 행동이 나올 수 있는 적성과 가능성을 조성해 준다. 이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데는 은총의 도움을 입어야 할 뿐 아니라 인간편에서도 받은 은혜에 자신이 응답함으로써 현실화의 과정에 기여해야 한다. 이 때 수득덕이 주부덕의 작용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신앙의 차원에서 볼때 순수 자연이나 순수 초자연은 실제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와 같은 이론적 구별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므로 이와 같은 이론적 구별이 필요없다는 견해도 있다. 초자연덕에는 대신덕과 윤리덕의 일부가 있다.

제 목 : 독서자와 성가대원

독서자를 위한 고유한 직위가 수세기 동안 존재해왔다. 오늘날 하느님 말씀의 선포는 예외없는 규율이며 그리스도인이면 직위없이 혹은 특별한 훈련없이도 그러한 직무를 떠 맡을 수 있다. 그러나 성서를 읽을 줄 안다고 해서 누구나 다 훌륭한 성서 봉독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성서를 봉독하거나 혹은 방음장치가 잘 되어있지 않은 성당에서 마리크를 잡을 때 할 몸가짐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연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의복과 자세도 나름대로 중요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이유 때문에 신중해야 하고 경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성가대원들은 실제로 공동체 안에서 노래하려면 좋은 목소리와 정확한 음악적 훈련, 그리고 음악적인 소질이 필요하다. 성가대원의 기능에 대한 본질적 의미를 놓고 볼 때, 성가대원의 임무는 독서자에게 맡겨진 임무와 동일하다.

옛 교회는 두개의 단상이 있었는데, 하나는 복음과 강론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서 봉독을 위한 것이었다. 앞의 것은 사제나 부제가 이용한 반면, 뒤의 것은 성서 봉독자가 이용했거나 때로는 성가대원이 이용했다. 성서 봉독자와 성가대원은 전례의식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실천하고 있는 사실이 신빙성이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임무수행 방식 뿐 아니라, 그 말씀을 생활해 나가는 방법도 중요하다 할 것이다.

제 목 : 라디오 바티칸

바티칸 시에서 송신되는 가톨릭 복음방송입니다.

교황 비오 11세가 1931년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을 개국, 1962년부터는 단파 100Kw 출력으로 하루 23.5시간 세계 31개 국어로 방송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방송국의 설립목적은 가톨릭 사상을 전파하는데 있었으나 점차 그 기능이 확대되어 가톨릭 정보 매체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제 목 : 라디오 베리따스

약칭은 R.V.O.S 이며 필리핀에서 송신되는 가톨릭의 아시아 지역 복음방송입니다. 1964년 교황 요한 23세의 뜻에 따라 서독정부와 미세레올, 그리고 미시오의 지원으로 설립되어 필리핀의 케손시티와 말로로스에 송신소와 제작 스튜디오를 설치하였습니다. 방송의 목적은 아시아지역의 선교활동을 돕고 나아가 전 세계를 그리스도교화하고, 전세계에 소식을 전하며, 교육을 심어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입니다.

제 목 : 라떼란 공의회

* 제1차 라떼란 공의회는 교황 갈리스도 2세가 1123년에 소집한 공의회입니다. 목적은 보름스 정교조약을 재확인하여 임직권 논쟁을 종결하려는데 있었습니다. 이 공의회는 전세계에 시작된 교회의 개혁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제2차 라떼란 공의회는 1130년의 교황선거에서 인도첸시오 2세는 아나클레토 2세가 이중으로 선출되어 일어난 분영대립이 후자의 죽음으로 종식 되자 교회일치를 확인하고 교리와 규율문제를 논의키 위해 인노첸시오 2세가 소집하였습니다.

목적은 1차 공의회와 같이 전세계부터 시작된 교회개혁으로 교리와 권위, 주교, 성직자, 수도자 교회들의 권리 등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 제3차 라떼란 공의회는 3대 대립교황에 의한 교회분열이 교황과 황제 조약으로 종식되면서 알렉산데르 교황이 소집하였습니다.

이 공의회는 교황권의 상승과 교회개혁, 그리고 교회법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법규는 교황선거에 관한 것으로 선거를 추기경단만이 할수 있게 하였으며 이상의 다수표를 얻어야 교황으로 선출케 되었습니다.

* 제4차 라떼스 공의회

중세공의회중 중요한 공의회로서 중세 교황권의 융성의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십자군 소집과 이란 알비파를 추방키 위해 인노첸시오 3세가 소집하였습니다. 최초로 교황명의로 선포한 70개의 교회법 외에 십자군 원정에 대한 교령이 발표되었으며 성체교리에서 '실체변화'라는 말이 공식 사용되었고 신자는 적어도 1년에 1번 고백성사를 해야됨을 명시한다는 것이 특색입니다.

* 제5차 라떼란 공의회

프랑스 루이 성왕에 의해 소집되었던 피사공의회에서 공의회 수위설이 우세해지자 회의 교령들을 무료화 시키기 위하여 교황 율리오 2세가 소집하였습니다.

이 공의회에서는 교회법이나 교령이 선포되지는 않았지만 교황헌법이 교황의 권위하여 공포되었습니다.

제 목 : 라떼란 대성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성 멜키아데스 교황에게 라떼란 궁전과 함께 기증한 성전입니다. 이 성전에서 12-13C 공의회가 4번이나 열렸으며 당시 모든 교황들의 대관식과 착좌식이 거행 되었고 최근 1929년에 교황과 이탈리아 왕국 사이에 이루어진 재정적, 종교적 협약인 라떼란 조약도 이곳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지금은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예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축성일은 11월 9일입니다.

제 목 : 라틴어

원래는 이탈리아 라시움 지역 주인들이 사용하던 용어였으나 3세기 그리스어 대신 서방교회에서 공용어로 사용하였습니다. 이후 가톨릭 교회의 공용어로 사용되어 전례용어로, 또는 신학교에서의 수업과 모든 교과서에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전례, 특히 미사를 드릴 때의 기도문까지도 자국어로 행하고 있기에 많이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제 목 : 라파엘 대천사

축일은 9월 29일 입니다.

토비트의 이야기에서 주요임무를 수행하는 천사이며 '하느님의 낫게 하였다'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이름인 라파엘을 성서중 토비트서에만 나옵니다. 라파엘이 베네치아 교회의 주보가 된 것은 7세기의 일이며, 그의 축일미사는 17세기에 와서 많이 지내게 되었습니다.또한 라파엘을 소재로 한 예술이 16세기 이래 다양해졌으며 여행자의 주보로 널리 묘사되고 있습니다.

제 목 : 랍비

구약성서에서 '랍'의 칭호를 가진 사람은 관직을 가진 훌륭한 사람을 말합니다. 랍비는 문자 그대로 '나의 주인'을 뜻합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를 가리켜 '선생님'이란 뜻으로 불렀던 사도시대 이후에는 '유대교 성직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제 목 : 로마교회

일반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라하며 로마교회라는 받은 로마 주교의 관할 아래 있는 지역교회 또는 동방교회에 대립되는 서방교회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종교개혁 이후 분리된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보편적인 교회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으며 트리엔트 공의회는 로마교회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황, 주교, 사제로 이어지는 가시적 제도로서의 교회이며 칠성사의 집행으로 생명을 얻고 유지하는 교회로서 미사를 신앙 생활의 중심으로 하는 교회며 성서와 성전에 동일한 권위를 부여하고 있고 성지 순례와 수도생활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 교회로서 로마교회는 교황청아래 세계의 여러 교구를 둔 중앙집권적 조직을 갖고있는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교회라고 할수 있습니다.

제 목 : 로만칼러

가톨릭 교회에서 성직자가 성당 밖에서의 공식복장을 표시하기 위하여 목에 두르는 아마포로 된 희고 빳빳한 칼러를 말합니다. 수단이 성직자의 정식제복이라면 로만 칼러를 하고 검은 양복을 입은 것은 약식제복입니다.

제 목 : 로사리오 성월

10월은 로사리오성월이다. 우리 교회가 로사리오 기도를 보화로 여기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기원은 비오 5세(1566-1577년)교황님에게도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은 터키와 회교도들에 의해서 점령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교황님은 유럽의 모든 신자들에게 로사리오 기도를 요청하였다.

그 결과 1571년 10월 7일 그리스 앞바다의 레판토에서 그리스도 군대가 회교도 군대를 격멸시킴으로써 대승전하였다. 그후 성모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10월 7일을 "로사리오의 성모" 기념일로 재정하였고, 레오 13세(1878-1903)교황님께서 10월을 "로사리오성월"로 재정하신 것이다.

로사리오란 장미화관, 장미꽃다발, 한자 용어로는 묵주, 매괴의 뚱을 가진다. 이 기도는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는 데 있다.

로사리오의 내용은 중요한 신덕도리인 사도신경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주님의기도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전한 인사말씀인 성모송

                  하느님을 찬미하는 영광송 등으로 교회의  핵심적인

기도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로사리오 기도는 복음 전체의 요약"(마리아 공경 46항)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10번의 성모송을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은, 레코드판이 반복되어 돌아가는 가운데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듯이, 예수님의 생애를 깊이 묵상하도록 이끄어 주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로사리오 기도에 많은 영적인 힘을 주고 계시므로 로사리오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생활을 구원에로 이끌어 나가자.

제 목 : 로사리오

'로사리오'란 말은 로사 (Rosa),장미꽃에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본래의 정확한 발음은 로사리움(Rosarium) 즉 장미나무 또는 장미꽃다발이란 뜻이다.

로사리오 기도란 우리가 성모님께 장미꽃다발을 선물로 바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고유의 용어로는 매괴신공이라고 한다. 이 '매괴'란 본래 중국에서 나오는 붉고 아름다운 돌의 일종이며 동시에 매괴꽃을 뜻한다.

로사리오 기도의 기원에 대해서 두가지 전해 오는 설이 있는데 첫째는, 13세기경 성모님이 도미니코 성인에게 나타나셔서 당시 '알비파'라는 이단을 없애는 무기로 묵주를 주셨고 알비파는 묵주의 기도로 사라졌다는 하는 설이다.

둘째는, 초대 교회 신자들이 구약 150편의 시편을 외기 위해서 150개 구슬이 붙은 줄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150편의 시편을 외면서 쓰던 그 150개의 구슬로 초대교회 일부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지어 주신 기도문인 '주님의 기도'를 150번씩 바치 기도 했다는데 이 기도를 '가난한 자들의 성무 일도'라 불르기도 했다. 이것이 성모송으로 대치되면서 로사리오가 시작되었다는 설이다.

이와 같은 기원을 가진 오늘의 로사리오 기도는 쉬운 기도이면서 아름다운 기도이기에 아무라도 손쉽게 할 수 있는 기도이다. 기도를 하는 방법에 있어서 로사리오는 15단을 한번에 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작은 꽃다발을 바치는 의미로서 1단(주의기도와 성모송 열번)으로도 로사리오 기도는 유효하다.

제 목 : 루가

복음사가로서 축일은 10월 18일 입니다.

의사요 바울로의 '동료'로서 바울로의 죽음직전 함께 남아있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교 전승에 의하면 세째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로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루가는 미혼이었고 84세 일기로 아카이아에서 별세했는데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나플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 처화에서는 대개 저술가 또는 그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를 소의 상징으로 표현된 것은 침착하고 강인한 성품때문이라고 합니다.

제 목 : 루르드의 성모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루르드에 발현하신 성모마리아를 얘기합니다. 프랑스 루르드에 있는 마사비엘르의 동굴위에서 14세의 시골 소녀 벨라뎃다에게 발현하시었고 마지막 발현때는 자신을 일컬어 '나는 원죄없는 잉태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발현이 있었던 자리에 샘물이 솟아났으며 이 샘물로 목욕하거나 성체강복 예절을 할때 질병 치유의 기적이 일어날 뿐 아니라 영적생활에 있어서 기적적인 회개와 은총을 체험하는 등 신앙적인 기적이 일어나곤 한다. 교회는 1862년 이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고 발현하신 성모의 요청에 따라 성당을 건립하였는데 루르드는 지금은 유명한 성지가 되어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듭니다.

제 목 : 루터

1483년 10월 10일 독일 튀링겐 지역의 작센 공령에 위치한 아이슬레벤에서 부 한스 뤼데르와 모 마르가레테 린데만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20세에 철학과 법학박사 학위를 획득하였으며 1505년 뇌우속에 번쩍이는 번갯불에 놀라 마지막 고해성사도 받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성녀안나에게 도움을 청하며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후 탁발수도회에 들어간 그는 1507년 사제품을 받고 몇년간 학생들을 가르키기로 했습니다. 그의 초대 관심사는 '나의 구원'이었고 이러한 구원에 대한 관심과 갈망은 그를 소심한 수도자로 만들었으며 구원에 있어서 신의 은총보다 인간을 과대평가하는 유명론적 윤리관의 영향을 받아 수도자로서 거의 완벽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루터는<로마 1,17>의 말씀에서 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간을 엄벌하는 존재로 생각함으로서 내적갈등을 겪었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수도원의 탑실에서 계속 연구, 묵상을 통해 '의인은 신앙에 산다'는 말씀에서 신의 수동적 정의를 발견하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는 '신앙에 의한 의화'의 교리를 주창하면서 인간 구원에 있어서 교회, 성사, 사제직 등의 필요성을 거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또 성 베드로 대성전의 재건을 위해서 대사부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대사 설교지시를 하였을 때 신자들이 그 의미와 가치를 망각하고 대사부를 면죄부로 착각하여 남용하는데 충격을 받고 대사 남용에 대해 항의하는 '95개항의 신학명제'를 작성하여 대주교와 교구장에게 보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대해 루터는 자기 주장이 성서에 의해서 잘못되었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승복치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후에는 교황권의 신수설과 공의회의 무류성을 거부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루터를 1521년 1월 3일 교황교서 'Decet Romanum Pontificem'공포로 공식적으로 파문했습니다.

그후 교회는 루터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에 대한 가톨릭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에 대한 반론'으로 1503년 협상에 니섰으나 루터의 반대로 실패하였고 루터를 따르는 사람들의 루터파 교회는 독일뿐 아니라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미국, 스칸디나비아 등 여러나라에서 국교로 되어있다.

제 목 : 림보(LIMBO)

성세를 받음으로 우리는 원죄와 본죄까지 사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못받고 사망한 아기들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들은 본죄는없지만 원죄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죄없이 단죄를 받는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노 때부터 림보라는 교리가 주장되었습니다. 이는 즉, 림보란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아기들이 가는 곳이며, 여기세는 천국의 복락은 없고 다만 자연의 행복만 있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체계화 했고 신학자들은 현재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고성소의 일종이라고 말합니다.

제 목 : 레퀴엠

죽은 자를 위한 미사를 말합니다.

레퀴엠이란 말은 위령미사의 입당송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는 첫 귀절의 첫마디를 말하는 것이며 영원한 안식을 뜻합니다.

위령미사중 장례미사는 의무적 대축일과 대림, 사순, 부활절의 주일이 아니면 어느 날에나 다 드릴 수 있고 사망 소식을 들은 다음 첫미사, 장례가 있는 제 1주년 기일미사는 재의 수요일과 성주간이 아닌 모든 평일에 있더라도 이런 위령미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제 목 : 레지오 마리애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활동단체로, 회원을 적어도 일주일에 2시간 사목활동을 도와 세상 죄악의 권세에 대항하고 교회에 봉사하는 신심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1921년 아일랜드의 더블린 시에서 20대의 젊은 여성 15명이 빈인원의 환자 방문 계획을 세우기 위해 모인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을 마리아의 깊으신 겸손과 순명, 친절, 끊임없이 기도와 흠없으신 정결과 고행 등의 정신을 본받아 활동하여 전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53년 목표에서 시작하였으며 조직은 꼰칠리움, 쎄나뚜스, 꾸리아 쁘레시디움으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단원을 활동을 하는 행동단원과 정해진 기도로 봉사하는 협조단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 목 : 로고스

"말한다"라는 그리스어에서 나왔으며,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째,삼위일체의 제2위 곧 "예수"를 가리키며 하느님의 말씀을 뜻하고 둘째,그리스 철학에서는 만물을 이성적으로 관철하여 지배하는 법칙을 뜻하며 셋째, 이성적인 지능에서 출발하여 표현된 여러활동들 네째,일반적인 뜻으로 말, 의미, 이유, 논리 등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 목 : 로마교회

일반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라하며 로마교회라는 받은 로마 주교의 관할 아래 있는 지역교회 또는 동방교회에 대립되는 서방교회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종교개혁 이후 분리된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보편적인 교회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으며 트리엔트 공의회는 로마교회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황, 주교, 사제로 이어지는 가시적 제도로서의 교회이며 칠성사의 집행으로 생명을 얻고 유지하는 교회로서 미사를 신앙 생활의 중심으로 하는 교회며 성서와 성전에 동일한 권위를 부여하고 있고 성지 순례와 수도생활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 교회로서 로마교회는 교황청아래 세계의 여러 교구를 둔 중앙집권적 조직을 갖고있는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교회라고 할수 있습니다.

제 목 : 마태오

12사도의 한 사람으로 마르코 복음 2장과 루가복음 5장의 두 군데서 그를 레위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완전한 성명은 '레위 마태오'라 볼 수 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이고 예수에게 불려가기 전까지는 로마제국을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카파르나움의 관리였었습니다.

성령 강림 후 팔레스티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축일은 라틴교회에서 9월 21일, 동방교회에서는 11월 16일, 군프트 교회에서는 10월 9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복음사가로서 마태오는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인간 혹은 천사로 상징되고 있으며 사도로서는 책, 칼 또는 창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제 목 : 마티아

축일은 5월 14일이며 12사도의 한 사람입니다.

마티아는 12사도의 한 사람이던 배반자 유다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요셉과 함께 추천되어 제비를 뽑음으로써 사도로 정해진 분입니다.

그의 활동과 죽음에 관해서는 확실히 기록되어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처음에 유다에 이어서 이방지역인 이디오피아에서 전교했다고 합니다.

죽음에 관해서는 십자가형, 참수, 석살 등 여러 설이 있습니다.

라틴 교회에서는 그가 십자가형을 당한 후 도끼나 미늘창으로 시체가 토막내어져 순교했다는 전설에 따라 그를 순교자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제 목 : 만과

성무일도의 저녁기도와는 별개의 기도로 매일 저녁 교우들이 바치던 기도입니다. 만과에는 제 1양식과 제 2양식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1864년 이후 1972년 까지 한국 교회의 공식기도서로 쓰였던 '성교공과'에 그 기도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972년 '가톨릭기도서'가 간행되면서 이름이 저녁기도로 바귀었고 기도의 순서도 반성의 기도, 통회의 기도, 신 망 애 삼덕송의 5개 부분으로 축소되었습니다.

제 목 : 만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하에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가는 동안 하느님으로 부터 받은 음식을 말합니다.

이 만나는 하얀 물질로서 이슬과 함께 내려졌으며 안식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내려졌다고 합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식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을 광야의 만나와는 다른 진정한 삶의 양식이라고 가르치셨으나 고린토 전서나 다른 곳에는 그리스도교 성체의 예표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제 목 : 만찬미사

성목요일 최후의 만찬 때 성체성사를 세우신 사실과 이에 관련되는 빠스카 신비를 기념하기 위하여 드리는 미사를 말합니다.

만찬미사를 봉헌하는 관습은 예루살렘에서 유래하였으며 교황 비오 12세의 성주간 전례서에도 복구되었습니다. 이 전례서에 따라 이날 각 본당과 수도원에서 미사를 1회만 봉헌함으로써 성체성사 집전의 단일성을 강조합니다.

만찬미사의 고유문은 이날 기념하는 여러 사건을 언급하는데 즉 입당송으로 구세주의 수난과 축문으로 유다의 배반을, 독서로는 성체성사의 건립을 낭독하고, 응송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명하신 그리스도의 순명과 그의 부활을 기리며, 복음말씀은 주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모습을 마음에 새기며, 영성체 후 축문에는 주님을 기억하며 예를 행하라는 분부 등입니다. 미사 후 성체를 다른 장소에 설치된 무덤제대로 옮기고 제대보를 벗기는 예절을 통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벗은 몸을 상기시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만찬미사는 공동집전으로 봉헌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제 목 : 말세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정치, 도덕, 풍속 등이 매우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또는 망해가는 세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가 탄생한 때부터 재림할 때까지의 세상을 지칭하며 '말세'라고 합니다. 이 개념은 '마지막날'이라는 개념과 밀접한 유사성을 가지며, '날들의 마지막'이라는 구약성서 개념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최후의 시기' 또는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이 말에서 가톨릭의 입장에서의 '종말의 완성'에 대하여 얘기한다면, 현세의 끝과 그리스도의 역할의 결말로서 이 세상의 쇄신을기함을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이 세상의 끝남과 함께 성스러운 삼위일체에 의한 완전한 지배가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 전체의 목적이며, 인간의 역사 전체의 종국적인 의미인 것입니다.

제 목 : 말씀 전례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말씀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 구원을 얻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말씀의 전례' 기원은 구약시대 시나고가(synagoga)라고 하는 유태인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성서 봉독을 한데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말씀의 전례 형식은 성금요일 전례의 첫 부분과 부활축일 전야에 거행되는 말씀의 전례입니다.

이 말씀의 전례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기도를 올리는 것이므로 이를 구성하는 요소는 독서, 시편노래, 강론, 신자들의 기도로 짜여져 있습니다.

제 목 : 망덕

대신덕의 하나로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고 기대하는 희망을 의미합니다.

이 망덕으로 우리는 역경을 이겨내고 절망을 극복하며 인간적인 약점으로 인하여 사죄(= 죽을 죄)에 빠졌을 때에도 회개할 용기를 얻고 구원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제 목 : 망부활

부활성야, 혹은 성토요일이라고 말한다.

이날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기다리는 밤이다. 복음의 권유에 따라 손에 등불을 밝히고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주인이 돌아올때 까지 깨어 있어,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도록 마음을 가다듬는 밤이다.

부활성야 예식은 빛의 예식과 새불과 부활초의 축성, 부활 찬송,독서, 그리고 전야 미사로 이루어진다.

이날 예식은 날이 밝기 전에 마쳐야 하며, 이때 영성체한 신자는다음날 부활 미사 때도 영성체 할 수 있다.

제 목 : 망첨례

교회가 대축일 전날을 기념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은 '축일 전야'란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전야를 지내는 축일은 예수 성탄, 성령강림, 세자 성요한 탄생, 사도 성베드로와 바오로, 성모승천대축일 등의 다섯 축일입니다.

이 모든 대축일 전야미사는 오후에만 드릴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본축일과 같은 색의 제의를 입습니다.

제 목 : 매괴

'매괴'란 장미, 염주를 의미하는 옛말로서 흔히 아름다운 구슬을 지칭합니다. 천주교의 용어로는 '로사리오' 즉 묵주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 목 : 매괴 신공

옛 교구들이 사용하던 말로서 현재는 '로사리오 기도'란 표현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제 목 : 매리지 엔 카운터(Marriage Encounter)

대화를 통해 부부관계를 새롭게 하며 결혼생활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케 함으로써 가정뿐 아니라 나아가 교회와 사회를 쇄신시키려는 운동으로서 1958년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 신부와 몇몇 평신도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 동기는 문제 청소년의 대부분이 가정문제로 인해 탈선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부부의 참된 만남만이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길임을 인식하여 이 운동을 제창하게 된 것입니다. 이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1976년에 소개되었습니다.

메리지 엔 카운터 본부는 서울에 있으며 각 교구별로도 조직되어 있습니다.

제 목 : 매일 축일표 (=매일첨례표)

교회력에 따른 축일과 주일 및 연중 매일의 독서와 복음을 월일별로 표시한소책자입니다.

제 목 : 메시아(messiah)

히브리어의 구세주란 뜻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가리키며 그리스어에선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는 말로서 쓰여져 왔습니다.

구약시대에 예언자, 사제, 왕들은 즉위할 때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의식을 행하는 관습이 있었으며 그리스도는 예언자, 대사제, 왕중 왕으로서 신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고 인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신 '구세주'이르모 '메시아'라는 말은 구세주를 뜻합니다.

또한 유태교와 그리스도교의 종말 사상과 결부되어 '종말론적 구원자'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교의 메시아 관념은 종교사적인 관점에서 보아 본질적으로는 유다이즘의 메시아 관념을 발전 시킨 것이나, 사상적으로 중요한 것은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상과 예수와의 결합에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즉 메시아임을 왕적인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통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종으로서 고난의 길을 걷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며 이 세상은 자기 나라가 아니라고 전제한 것입니다.

이 고난받는 자로서의 메시아 사상은 그리스도교의 독자적인 메시아 사상을 형성합니다.

고로 유다이즘과 같이 정신적 구제 행위, 즉 신에 대한 속죄와 정치적인 메시아로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신이 직접 지배하는 나라로서의 메시아 사상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부활에 의하여 하느님의 메시아가 되었으며 모든 원수와 죽음을 정복할 때 까지 그리스도, 즉 메시아의 통치는 이 지상에서 지속될 것입니다.

제 목 : 마니피캇

복된 동정녀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예수의 잉태를 예고받고 예수를 잉태한 몸으로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부른 노래며 하느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역사하신 위대한 일과 이스라엘에 베푸신 구원에 감사하고 찬양한 내용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루가 1, 46) 시작되는 이 노래는 불가타 역본에서 '찬양한다'를 뜻하는 라틴어 마니피캇으로 시작되므로 마니피캇이 마침내 이 노래를 지칭하는 곡명이 된 것입니다. 성무일도에 인용되어 있고 전례를 집전하는 여러 경우에 곡을 붙여 부르기도 합니다.

제 목 : 마르코(Marco)

복음사가이며 그의 이름을 딴 마르코 복음서가 있습니다.

그는 초기에 바울로와의 의견차이로 대립한 적도 있었으나 후에 바울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의 곁에서 위로가 되어준 적도 있습니다.

베드로의 일행으로 로마에 있었던 마르코는 베드로에게 '나의 아들'이라 여겨질 정도로 친근한 동료였습니다.

그리스도교 회화에서 마르코는 대개 복음서를 지니고 날개달린 사자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 사자의 모습은 세례자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표현한데서 유래하는데, 예술적 전승은 그 소리를 사자의 울음으로 비유했던 것입니다.

날개는 네개달린 '생물체'에 관한 에제키엘의 환시를 네 복음사가에 적용 이해한데서 비롯됩니다.

전승에 의하면 알렉산드라의 주교를 역임하였고 거기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축일은 4월 25일입니다.

제 목 : 마리아

마리아란 "가장 높으신 분, 존귀한 분, 권력있는 귀부인, 친숙하고 사랑스러운 부인"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기에 이러한 존귀한 이름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갈릴래아 지방에서 태어난 마리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원죄없이 잉태되셨고 처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셨고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느님께는 흠숭을 마리아께는 상경지례를 성인 성녀들께는 마리아 다음으로 공경지례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구세주의 모친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리아께 기도드림은 마리아께서 아들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셨고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어머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 주시므로 우리의 기도를 당신 아들에게 잘 전달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명하므로써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통적으로 마리아를 새 이브, 평생 동정녀, 특별히 복받은 여인 및 하느님의 모친으로 여겨 왔으며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 생활에서 중개자, 전구자, 영적 모친 및 교회의 어머니로 존경을 드리고 있습니다.

제 목 : 무류성(無謬性)

무류란, 말 그대로 오류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그르치지 않는다는 말이다(마태 16/18). 이는 교회의 일치를 유지하고 교회를 신앙고백과 생명의 일치 안에 보존케 한다. 무류성은 한 성직자나 한 교황의 개인 생활과는 무관하다. 다만,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권을 행사하면서 믿을 것과 행할 것, 신앙과 도덕에 관한 것에 한하여 가르칠 때 그리침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황이 교좌(敎座)에서 교권의 공식행사를 할 때만 해당한다. 이는 교리의 계시나 성서 구절의 통달이 결코 아니다. 교회는 주님의 진리를 대변하는 사명을 띠고 있기 때문에 성서나 성전(聖傳)에서 직접 간접으로 계시된 진리의 정확한 의무를 무류권에 의해서 가르친다. 교황은 이를 기초로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온 교회의 목자로서 완전, 최상, 보편의 권한을 소유한다(교회 헌장22). 이 권한은 다른 주교들의 권한을 힘있게 하는 것이지 결코 장애가 되거나, 그들을 단지 교황의 대리자로 만

드는 것은 아니다.

교황은 주교단의 일원이며, 그 머리로서 주교들을 일치시키는 직능과 가르치는 임무와 무류성의 특은을 갖는다. "이것을 주교단의 으뜸인 로마 교황이 모든 신자들의 최고 목자요 스승으로써, 그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루가 22/32)신앙과 도덕에 관한 진리를 결정적으로 선포할 때 그의 직무상 향유하는 무류성이다"(교회헌장 25). 그렇다고 해서 교황은 교회와 일치함 없이 신조(信條)를 선포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분은 교회와 그리스도와 사도들로부터 받은 계시 내용을 선포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 가르치는 직무는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봉사하는 것으로써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를 경건히 듣고 세심히 수호하며 충실히 설명한다. 계시헌장 10장에는 "교황이 온 교회에 대하여 교리를 전달하려는 의향을 결정적으로 명백히 표명할 때, 이 발언에는 하느님의 영의 진리가 충만함이 확실하며,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교회의 일치에 완전히 참여하기 위한 하나의 시금석"이라고 했다. 교회의 일치에 완전히 참여하기 위한 하나의 시금석" 이라고 했다. 고로 교도권(주교단과 교황)이 무류적 선언을 내릴 때 그 선언은 영구적이고 유효성을 갖는다. 이는 취소할 수 없으며, 개정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계

시된 진리를 보다 깊이 통찰하고, 여러 시대와 상황의 요구와 가능성에 맞추어, 그 진리를 보다 알맞게 표현해 보고자 하는 일은 가능하고 합당하다.

제 목 : 무릎을 꿇음

공손히 꿇어 앉음을 장궤라고도 합니다.

교회는 흔히 장궤할 수 있는 장궤틀이 있습니다. 이 틀에 무릎 위의 몸을 세운채 꿇는 동작을 의미하며 이는 당신은 지존하신 하느님이시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고백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손을 합장하고 허리를 깊이 굽히는 우리 고유의 동작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제 목 : 무신론

무신론은 즉 신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 학설과 생활 태도를 총칭합니다. 이런 무신사상은 신성 혹은 신적인 것에 대한 거부이기 보다는 위격적 존재이며 인간과 우주에서 구별되는 초월적인 존재, 창조주이며 섭리의 존재인 신 인간에게 자기를 나타내고 인간은 그에게 기도하고 희생을 바쳐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신을 거부하는 사상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런 무신론은 그리스도교적 그리스도교적 신에 대한 무신 사상입니다.

무신론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실천적 무신론과 체계적 무신론으로 나누며 더 세분하면 적극적 무신론과 소극적 무신론으로 구분됩니다. 그러므로 무신론의 규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무신론의 범주도 달라집니다.

제 목 : 무염시태

옛 교우들이 사용하던 말로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원죄에 물듦이 없이 잉태되었음을 뜻합니다. 현재는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란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 목 : 무혈제

피의 흐름이 없는 제물로 드리는 제사로 제사에 쓰이는 희생과 그 희생을 드리는 방법면에서 제사를 구별하여 일컫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 양이나 소같은 희생제물을 피흘려 죽여서 바치는 제사를 유혈제라 부르며 밀가루, 유향, 빵, 포도주 등을 제물로 삼아 드리는 제사를 무혈제라 합니다. 신약시대의 무혈제는 미사성제를 십자가의 제사와 구별하여 일컫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 양이나 소같은 희생제물을 피흘려 죽여서 바치는 제사를 유혈제라 부르며 밀가루, 유향, 빵, 포도주 등을 제물로 삼아 드리는 제사를 무혈제라 합니다.

제 목 : 물고기

이는 로마 박해시대 신자들이 서로를 알아보던 암호로서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인 구세주이십니다"라는 희랍어의 첫 글자를 따서 모으면 "물고기(익투스)"라는 뜻을 지닌 희랍어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들 안에서 물고기를 그림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표시로 통용되었습니다.

제 목 : 밀의 종교

밀의란 '입술이나 눈을 닫다'라는 그리스어 동사 '뮈에인'에서 유래된 단어로 어떤 절차를 통해 그 단체의 회원이 된자만이 참석하는 비밀의식을 가리키는 말로, 밀의 종교란 이러한 의식을 거행하는 종교를 지칭합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유행했었으며 종교체험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보통 공동식사, 공동의 춤, 공동의 의식을 거행하며 일체감을 형성합니다. 밀의 종교가 성행하던 시기에 로마를 비롯 지중해 연안에 전래된 그리스도교는 그들과 함께 발전하였습니다.밀의 종교는 그뒤에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종교자유가 시작된 후 급속히 쇠퇴하였습니다.

제 목 : 맹세

'맹서'(oath)에서 온 말인 '맹세'에는 목표나 약속을 꼭 실현 또는 실천하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며, 특히 신불 앞에 약속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 신 앞에 또는 성인의 이름을 입에 올림으로써 어떤 일을 행하도록 명령 또는 요청받음을 말할 때 이를 'adjuration'이라고 하며, 이러한 맹세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첫째 신의 이름 또는 성인의 이름을 사용해야 하며, 둘째 그 목적이 합법적인 것이어야 하고, 세째 신 또는 성인명을 부를만한 중요한 기회라야만 한다. 교회가 그 신자에게, 특히 사제로부터 이따금씩 요구되는 선서를 맹세라고 할 경우인데, 이때는 'sworn oath'로 지칭된다. 예를 들면 신학교에서 배우는 자에게 '근대주의 반대선서'가 교황 성 비오 10세게 의해 의무적으로 요구되어 내려오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서약'의 경우 진술 그 자체가 죄여서는 안 되고, 밝혀서는 안 될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어서도 안된다. 가톨릭적으로 볼때, 하느님을 과거 또는 현재의 사건(어떤 범죄가 범해지지 않았다는 것)의 증인으로서 호출되었을때 성실함을 보증하기 위하여 하는 맹세 즉 '선서'는 단언적 선서(asertive oath), 장래 행위뿐 아니라, 어떤 일을 행하거나 행치 않거나 하는 의향에 대하여 하느님을 증인으로서 부를때, 예컨대 자신의 직무상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약속의 증인으로서 하느님을 부를때의 맹세는 약속선서(promissry oath)이다.

맹세는 또한 기구(invocatory)의 선서와 저주(imprecatory)의 선서로도 나누어지며, 전자는 하느님을 진실의 증인으로서 부를 때, 후자는 거짓에 대한 보복자로서 부를 때의 맹세이다. 오늘날 흔히 쓰이는 용법은 "주님이 저를 도와 주시도록 비나이다"(so help me God)가 대표적인 것이다.

제 목 : 명예

가난은 참을 수 있어도 멸시와 천대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 인간다운 긍지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있어 명예는 품위의 상징이며 정신적 생명과 같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육체적 생명은 상대적이다. 인간이 살아 있어도 죽은 것만 못한 삶이 있고 죽더라도 삶보다 훌륭한 죽음이 있다. 이것은 곧 정의와 명분에 따라 결정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생명을 바칠 수 있을때 자유인이며, 육체적 생명의 연장을 위하여 명예도 의리도 저버릴 때 비굴한 자가 되며 바른 평가를 받지 못한다.

1. 명예의 개념

가) 일반적 의미

명예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인간이 생활하는데 있어 스스로는 떳떳함을 유지하는 것이고 이웃으로부터는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삶이라고 서술할 수 있다. 평판이 좋다고 하여 칭찬을 받는다는 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칭찬은 상대적일 수 있으나 명예는 옳은 평가를 전제로 한다.

나) 명예의 내용

한 인간이 명예를 누린다는 것은 실제로 양면성을 갖는다. 즉 스스로 보유하고 있는 인정받을 수 있는 가티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가치이다. 여기서 편의상 객관적 명예와 주관적 명예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양자간에 조화와 일치가 있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긴장 관계가 성립될 수도 있다. 인간 상호간의 가치 기준과 차이, 오류나 착각으로 인한 평가 등으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참된 명예를 추구해야 할 것과 참된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다.

명예는 한 인간이 사회 생활에서 누리는 영광이고 윤리적 힘이며 존재의의의 기초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잃는다는 것은 사회적 죽음이나 매장과 같다. 그러나 사회가 바르지 않아 옳게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평가하지 않을 때에 의연하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 또한 큰 명예의 원천이고 기초이다. 그는 빼앗길 수 없는 가치가 된다.

2. 그리스도인과 명예

겸손과 온유가 그리스도인의 특유한 덕목이고 수덕의 과정에서 겸손을 강조하고 명예를 추구하지 말라고 할 뿐 아니라 명예를 추구함은 오만에 빠지기 쉬우며 위험스런 것이고 유혹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 뿐 아니라 성서에서도 극히 경계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도 당신의 정당하나 명예는 옹호하셨고 무례함에 대하여 꾸중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명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종교심이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 없이 허영심이나 자애심으로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오만과 착각에 빠질 수 있으므로 헛된 공명심을 경계하여야 한다.

둘째, 인간의 평판과 이성은 그릇될 수 있으므로 자기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며, 전지하시고 엄위하신 하느님 앞에 자비와 은총을 구하는 자세가 명예를 구하는 것보다 소중하다.

셋째, 인간의 참된 명예는하느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선물로서 인간의 품위 자체이며 하느님이 아시고 인정해 주시는 데 있다.

넷째, 하느님이 은혜로이 주신 명예는 순수한 정신적인 것만도 아니고 현실적이고 사회적 의미만도 아니다. 이는 육화의 신비를 지닌 것으로 진리의 증인이 되는 것과 하느님의 자녀임과 구원에 불리움이다. 이 명예는 죽음으로라도 지켜야하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3. 명예를 돌볼 의무

명예에 대한 바른 이해가 됐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자신과 이웃의 명예에 대한 의무와 책임도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이러한 명예를 돌볼 의무를 가진다.

첫째, 건전한 명예심을 기를 의무가 있다. 명예심을 키우지 않으면 인간은 비굴하기 쉽과 주관도 없으며 자신의 품위를 망각하게 된다. 명예심을 갖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둘째, 자신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 이는 겸손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겸손의 미명 하에 비굴함이나 연약함을 숨겨서는 안된다.

셋째, 이웃 사랑이 요청되거나 공선과 공익이 요청되는 경우는 자기의인간적 명예를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이웃을 위하여 봉사와 희생이 요구되는 것과 같다.

넷째, 자기의 명예가 소중한 것 못지 않게 이웃의 명예를 돌보과 보존할 의무가 있다. 명예 훼손이 없도록 조심해야 되고 혹시 명예를 실추시킨 경우라면 회복시켜 주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섯째, 명예를 걸고 결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합당치 않다. 결투로써 하느님의 정의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평등성이나 용기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건강과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므로 외적이고 인간적 명예를 위하여 생명을 무릅쓰는 것은 지혜로운 판단이 못된다.

제 목 : 미드라쉬

성서를 구체적인 상황에 적응시킬 목적으로 성서에 대한 설교적 주석을 시도한 유대문학의 유형을 일반적으로 일컫는 용어입니다.

쿰란문학에서는 '연구' '주해'로, 랍비문학에서는 '성서주석'의 뜻으로 이 말이 사용되었으며 3C 이후에는 학문적 성서 주석보다 설교적 성서주석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오늘날 '미드라쉬'는 문학 유형을 일컫는 말이 되었고 2C에서 13C까지의 랍비적인 주석문학을 표현하는 술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미드라쉬의 특징은 성서를 주제로 하여 사변적인 연구보다는 실천적인 설교를 하는점에 있습니다.

미드라쉬의 형태는 그 내용에 따라 성서를 법적인 관점에서 논한 할라카와 교훈적으로 해설한 하가다로 구분됩니다.

제 목 : 미사

미사는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를 말하며 미사(missa)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미사는 가톨릭의 가장 성대하고 엄숙하며, 거룩하고 존엄한 고유의 의식입니다.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제사를 새롭게 하며, 죽음에서 영원한 삶에로의 빠스카 신비의 재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최후만찬의 기념제로 우리 인간들과 함께 그리스도 자신을 완전한 제물로서 하느님께 바치는 신약의 유일한 제사며 성찬입니다.

또한 제사의 행위중에는 제물로 바쳐진 것을 함께 나누어 먹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봉헌된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는 행위는 제물을 받으시는 하느님과 제물을 바치는 자들과의 일치와 통교가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구원과 진리와 생명을 주시고, 당신 자신을 주시며 인간은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 승천을 기념하며 그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성찬의 잔치를 베푸는 미사성제는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성스러운 잔치이며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중심이며 원동력입니다.

제 목 : 미사경본

미사성제를 봉헌할 때 사용하는 경문과 취하는 예절이 수록된 전례서입니다. 모든 미사에 공통되는 통상문과 전례 시기나 축일에 따라 변하는 고유문이 전례주년의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습니다.

현재 사용중인 미사경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개정된 것이며 교황 바오로 6세가 '미사전문'도 모국어 사용을 허가함으로써 모든 나라에서 모국어 미사경본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목 : 미사예물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에게 드리는 예물. 이 예물을 드리는 신도는 사제에게 특별한 지향을 가지고 미사를 봉헌해 달라고 청하고 사제는 그 지향에 따라 미사를 봉헌합니다.

초대교회에는 주교가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참례한 가운데 미사를 드렸고, 평신도가 가져온 빵과 포도주를 미사의 제물로 사용하였으며 제물로 쓰고 남은 것은 성직자와 가난한 이웃의 생활비로 이용하였습니다. 그후 빵과 포도주는 다른 예물로 대치되었습니다.

신도들의 예물은 미사의 제물과 성직자의 생활비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나신도 개인의 특수 지향으로 미사가 봉헌되지는 않았었습니다.

미사예물의 성격은 초대 교회에 신도들이 제물로 바치던 빵과 포도주에 상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제물의 성격을 지닐뿐 아니라 교회 운영에 기여하며 성직자의 생활과 사목활동을 경제적으로 돕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미사 예물에 관한 규정을 두어 일반적인 원칙을 세웠으나 미사예물의 액수, 지급방법, 용도, 미사봉헌의 시기 등 구체적인 시행관습은 시대마다 또 교구마다 다릅니다.

대체로 장엄미사의 예물은 평미사의 예물보다 많으며 신도들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미사 예물의 액수가 다양합니다.

제 목 : 미사주

미사를 드릴 때 사용되는 포도주로서 성사적인 축성의 말씀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됩니다.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체 성사의 재료의 하나로 선택된 포도주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라고 하신 그리스도 자신을 생각합니다.

수많은 포도 알맹이에서 제조된 한잔의 포도주는 신비체의 지체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일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최후의 만찬때 그리스도께서는 희랍에서 비롯되어 팔레스티나에서 일반화된 관습을 따라 포도주에 물을 혼합했는데 이 의식은 미사때 반복됩니다.

교회법에 의하면 미사주는 포도에서 제조된 천연의 포도주여야 하고 부패되지 않은 것이어야 합니다. 포도주의 빛깔은 제한은 없으나 16세기 이래 성작 수건의 사용이 일반화되자 백포도주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목 : 미사종

미사가 집전되고 있는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성체 축성의 부분(성변화)에 성당 안의 모든 이들에게 성변화의 신비를 알리기 위해 치는 종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성변화의 거룩한 순간을 맞아 성체 앞에 흠숭을 드리도록 하는 신호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때 사제는 축성된 성체를 한참 동안 높이 들고 신자들이 흠숭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소규모의 단체 미사나 능동적으로 참례하는 미사는 종을 치지 않아도 됩니다.

제 목 : 미사 통상문

교회 전례력에 따라 미사때마다 그 내용이 변하는 미사 고유문과 구별되어 어느 미사에나 같은 내용으로 부르거나 낭송하는 부분을 말합니다. 즉 기리에(자비를 구하는 기도), 글로리아(대영광송), 신경(사도신경), 쌍투스(거룩하시다), 미사전문(성찬기도), 주의 기도, 아뉴스데이(천주의 어린양), 영성체 부분, 영성체 후 폐회식 등입니다.

14C 이후 다성 음악으로 작곡되어 17C까지는 미사통상문의 모든 내용이 다성 음악으로 작곡되었습니다.

1969년 미사통상문이 다소 개정되었는데 사제편에서 외던 부분과 함께 미사순서가 좀더 합리적으로 조정 되었고 각 기도문들도 간략하고 다양성있게 수정되었습니다.

제 목 : 미색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칠죄종의 하나로 비정상적이고 불규칙적인 성 행위를 미색이라 합니다. 인간은 남녀로 나뉘어 있고, 남녀의 육체적인 결합으로 인류가 자녀보존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생식과 관련된 성행위는 정당한 것이나 그와 반대되는 것은 본성상 악이라는 것이 성행위와 관련된 도덕률입니다.

그러므로 간음, 간통, 강간, 혼전 성행위 등은 미색에 의한 죄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미색이나 간접적인 미색이나 모두 의지의 무질서에 기인한 것이며 정결의 덕을 위반한 것으로 대죄가 됩니다.

제 목 : 미카엘 대천사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 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성서에서 미카엘은 가브리엘을 도와 페르시아 호국신과 겨루는 자로 극도로 어려운 때에 이스라엘을 지켜주는 자로 나타나며, 대천사로서 모세의 시체를 차지하려는 악마와 다투는 자로 부하 천사들을 거느리고 사탄인 용과 부하들을 무찌르는 자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미카엘은 동방교회 내에서 병자를 돌보는 천사로 공경받고 4세기부터 교회의 주보가 되었으며, 성방교회에서는 천상군대의 우두머리이며 병사들의 수호자로 공경받았습니다. 미카엘에 대한 회화, 조각 등의 예술품은 참으로 많으며 날개를 달거나 왕관을 쓰기도 하고 정의의 거울을 들거나 사탄에 대한 승리의 칼을 잡고 있는 모습 등 다양합니다.

보통으로는 젊고 건강하며 갑옷을 입고 맨발에 샌들을 신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축일은 9월 29일입니다.

제 목 : 메타노이아

'회개' 또는 '참회'를 뜻하는 그리스어입니다.

이는 그리스어 신약성서, 특히 복음과 사도들의 설교에서 사용된 말입니다.

회개는 믿음과 세례와 죄의 고백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신앙을 갖고 죄를 끊어버리며 덕행을 신천하는 완전한 변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회개로서의 메타노이아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기본이 되고 성령강림날 베드로의 설교에서 제일 먼저 부각된 내용이며 그리스도교 완덕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제 목 : 면속구

지역교회에 예속되지 않고 교황청에 직속되어, 대수도원장 혹은 고위 성직자가 교구장에 준하는 자치권을 행사하는 자치지역으로 면속수도원구와 면속 고위 성직자구로 구분됩니다.

오늘날 면속수도원구는 수도회의 선교활동에 의하여 면속 고위성직자구는 신자 수효가 적거나 정치적 이유로 인한 임시조치로 각각 설립될 수 있으며 설립허가는 교황청에서 하게 됩니다.

면속구는 적어도 3개본당이 있어야 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특별법이 적용됩니다. 면속구장은 대상의 제한은 있으나 교구장 주교가 갖는 권한과 의무를가지며 주교 예식서를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0년 1월 12일에 덕원 면속 수도원구가 설립되었고 이를 오늘에 이르기까지 존속시킴으로써 침묵의 교회를 위하여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제 목 : 면죄부

대사를 뜻하는 라틴어의 원뜻을 잘못 옮긴데서 비롯된 말입니다.

원뜻은 '관용을 베푼다'는 의미와 '관대, 호의, 은사'의 뜻인데 이 단어에서 가톨릭 교회의 '대사'를 의미하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정확히 번역하려면 '대사부' 또는 '대사령'으로 해야 옳을 것입니다.

'대사'는 사람이 범죄한 다음 참회나 혹은 고백성사로 죄사함을 받고 그 죄를 따라오는 잠벌을 그리스도의 무한한 공로의 힘으로 교회를 통해서 사해주는 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목 : 명도회

한국 천주교회 초기에 중국인 주문모 신부에 의해 세워진 평신도들의 교리연구 및 전교단체로서 명회라고도 불렀습니다.

명도 회원들은 우선 본인들이 천주교에 대해 깊은 지식을 알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다음으로는 그것을 교우와 외교인들에게 전교하며 서로 격려와 도움을 주었습니다.

초대 회장으로는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이 임명되었으며 이 회는 점차 전국으로 보급되어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내용이 엄격한 '명도회규'도 주신부가 직접 만들어 시행하였으나 오늘날 전해져 내려온 것은 없습니다.

주신부에의하여 임명된 명도회의 사회자는 회원들에게 매월 그 달의 주보성인 지정되어 있는 회원권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 회에 가입절차이기도 한 회원권 제도를 당시 신자들은 보명이라 불렀습니다.

보명이란 열심한 신자를 신부에게 알리면 신부가 교회의 성인 이름을 따라 이름을 지어 보내고 연말에 가서 신자의 부지런함 여부와 전교한 성과 등을 신부에게 보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관한 기록을 황사영 백서에 언급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그 활동이 침체될 수밖에 없었으나 1827년 순교자 이경언이 명도 회원들에게 보낸 서한 등으로 미루어 그후에도 지속되었음이 확실합니다.

제 목 : 마돈나

'나의 귀부인'이라는 뜻으로 성모마리아의 조상(彫像)이나 회화(繪畵)에 관련하여 예수의 모친에 대해 쓰이는 호칭입니다.

제 목 : 마라나타(MARANATHA)

'주여 어서 오소서'의미를 지닌 아람어입니다.

제 목 : 마소라본(MASORA 本)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구약 히브리어원본(일부는 아라메아어)을 말합니다. 유다에는 성서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빌로니아 유배 전후에는 예언자 및 판관들이엇고, 그후 예루살렘 멸망까지는(AD 70년) 율법학자와 사제들이었으며, 기원후 600년까지는 랍비들이었고, 1200년까지는 마소려 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성서 텍스트를 보관하고 연구하며 가르쳤던 자들로서 원래 자음으로만 이루어진 히브리어 텍스트에 모음을 만들어 읽기쉽게 하는 등 공적을 남겼습니다.

제 목 : 명오

이 용어는 가톨릭 교회에서 주로 사용하던 옛말의 하나인데 예를 들면 "일곱, 여덟 살에 명오가 열린다"고 보는 주장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깨달음이 시작됨'을 뜻하기도 합니다. 또한 사물에 대하여 밝게 인식하는 일로, 그런 힘을 가리키는데 '명오'라는 단어를 써왔습니다.

반면 지성, 이성, 이해력 등의 비물질적 고차원의 사고 기능을 의미함도 있습니다.

제 목 : 명의주교

교구의 사목자로서 주교품을 받았으나 그 교구에 대하여 재치권을 행사할 수 없는 주교를 말합니다. 대주교의 경우일 때는 명의 대주교라 합니다.

명의 주교의 임명은 교황청에 위임되어 있으며 재치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교구를 가진 주교와 같은 특전과 영예를 갖고 있습니다.

명의 주교의 예로는 교황청 각 부서의 직책을 가진 주교, 대목, 보좌주교, 은퇴한 주교 등입니다.

오늘날 한국천주교회의 주교들 가운데 은퇴한 주교들이 명의 주교라 할 수 있습니다.

제 목 : 모고해

고해성사를 모독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고해가 성립되는 경우는 고해자가 고해 신부 앞에서 죄의 고백을 할 때 기억에 떠오르는 죄를 고의로 숨기거나 중죄의 경우 하등통회조차 하지 않고 고백할 때를 말합니다.

이 경우 죄를 용서받지 못할 뿐 아니라 다시 온전히 고백을 해야 하며, 모고해한 사실도 말해야 됩니다.

제 목 : 모관

가톨릭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이 머리에 쓰는 작은 사각 모자를 말합니다. 13세기 이후 관례적으로 사용되었는데 교황은 흰 색을, 추기경은 빨간 색을, 주교는 보라색을 쓰고 그 밖의 사제들은 검은색을 씁니다.

제 목 : 묵상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 몰두하여 하느님의 현존속에서 하느님과 관계된 모든 일에 관해 생각에 잠기는 것을 말합니다. 즉, 묵상은 '생각만으로 드리는 기도' '정신의 기도'라 할 수 있으며 지적인 행위와 의지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묵상의 주제로는 신앙의 신비들, 예수의 일생, 교회의 가르침, 성서의 내용, 성인들의 생애 등이 될 수 있는데 이러한 주제들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신앙을 보다 깊이 통찰하게 되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게 됩니다.

묵상은 신앙이 깊지 않은 신자들도 할 수 있는것으로 조금씩 진보하여 하느님과의 보다 깊은 친교를 이루고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제 목 : 밀떡(제병)

미사때 제물로 사용되는 밀가루 빵을 말합니다. 이 빵은 누룩이나 다른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밀로 만들어진 빵인데 최후만찬때 예수께서도 이 빵을 사용하셨습니다. 현재는 얇고 둥근 형태로 이용됩니다.

제 목 : 목자

목자는 양을 치는 사람으로 교회에서는 신자를 지도하고 보호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참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그분의 양떼인 신자들을 이끌어나가는 주교와 사제 등을 목자에 비유합니다.

제 목 : 모상(模傷)

하느님의 모상(라틴어. Imago Dei, 영어.Image of God)을 말하는 것으로 하느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수단입니다. 인간은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지만 그분의 모상을 통하여 하느님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완전한 모상으로 우리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도 역시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는 달리 인간은 하느님을 불완전하게 닮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느님의 완전한 모습을 닮고자 노력해야 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닮은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줍니다. 즉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그만큼 존귀한 존재이며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인간을 존경하고 사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제 목 : 모령성체

성체성사를 죄사함을 받지 않고 영함으로써 성립되는 중죄입니다.

영성체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과 피를 나누어 먹고 마심으로써 일치와 사랑을 드러내고 구현하는 것이므로 영성체를 하기 위해서는 은총의 지위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은총의 지위에 있지 않은 신자가 스스로 중죄 중에 있음을 알면서도 영성체를 하는 경우 모령성체가 됩니다.

파문 당한 자, 성체성사를 정지당한 자, 중죄 중에 있는 자 등은 은총의 지위를 잃은 자이며 이들은 영성체를 하기 전에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받고 교회와 화해를 해야 합니다.

제 목 : 모세오경

오경이란 이름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 펜타레우코스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각각 5개의 두루마리로 나누어서 5개의 항아리 같은데에 보존하였다는 데에서 펜타테우코스란 명칭이 유래합니다.

모세가 앞에 붙어 모세오경이라고 일컫게 된 것은 그가 오경의 저자라고 믿은 데에서 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유태인들은 모세오경을 간단히 토라라고 하였으며 이것은 본래 법이라기 보다는 생활의 가르침과 지침을 함께 뜻합니다.

모세오경의 특징이라면 우선 내용에 있어서 천지창조부터 모세의 죽음까지 다루어졌으며 이야기와 법이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용과 지향은 전체적으로 보아 하느님 백성의 구현과 구성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삶의 근거가 되는 하느님의 법의 계시를 역사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목 : 모후

일반적으로 임금의 어머니를 지칭합니다.

성모님이 우리의 모후임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제 목 : 매일 해야 할 기도

하루의 연속이 평생이기 때문에 하루를 잘 살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기 위해서는 매일 다음의 기도들을 제때에 정성껏 해야 할 것입니다.

아침기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성장하고 기쁨을 느끼며, 하느님 안에서 그 분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하루의 첫 순간을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침기도의 내용은 새 날을 주신 몸과 마음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할 것을 다짐하여 이에 필요한 은총을 구하는 것입니다.

저녁기도

하루를 무사히 마치도록 함께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우리가 하루 동안 애써 뿌린 씨앗이 영원한 결실을 맺게 하여 주시길 빌며 혹 하루 동안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사언행위(思言行僞)를 하였는지 살펴 용서를 청하며, 내일을 허락하신다면 더욱 충실히 살 것을 다짐하고, 자는 동안도 지켜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이 저녁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이 한데 모여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를 서로 나누고 격려한 후 함께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그 자체가 하느님의 축복이라 하겠습니다. 가톨릭 기도서를 따라 하되 가족이 함께 하는 경우 자유기도나 성가를 넣어 더 풍부히 하면 좋겠습니다.

삼종기도

삼종기도는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께 감사들며 우리 구원을 비는 기도입니다.

아담이 하느님께 죄를 짓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것에 비해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여 성사를 잉태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천사를 통해서 마리아에게 당신의 뜻을 그대로 받아 들이셨으며, 그 결과로 성자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게 되었습니다.

이 복된 사건 즉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써 우리 구원이 분명해진 이 사건을 거듭거듭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 번 즉 해돋을 무렵, 정오, 해질 무렵에 삼종기도를 드립니다.

부활시기(에수부활 대축일부터 성심강림 대축일까지)에는 부활 삼종기도를 바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그분의 신성과 그분의 말씀이 진실되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도 부활하리라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교회는 부활시기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는 예수의 부활을 함께 기뻐하고자 하루 세 번 씩 부활 삼종기도를 바칩니다. '알렐루야'는 '하느님을 찬미하라'는 뜻입니다.

삼종기도를 할 때는 무릎을 꿇고 합니다. 부활 시기와 토요일 저녁과 주일은 서서 합니다. 이것을 부활의 기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주일은 예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고, 토요일 저녁은 주일이 가까이 다가 왔으므로 주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와 그리고 삼종기도는 받드시 암기하여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제 목 : 모든 성인의 날(11월 1일)

성교회는 1년을 통하여 매일같이 성인들을 기념하고 있다. 그런데 11월1일은 교회력에 지정되지 않은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들을 총합하여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다.

이 축일의 유래는 609년 교황 보나피시오 4세가 로마의 이교 신전인 판테온을 교회용으로 축성하여 성모 마리아와 모든 성인들에게 봉헌하면서 이 날을 제정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5월 13일에 지켜졌는데 교황 성 그레고리오 3세(재위 731-741)가 성 베드로 대성당 안의 한 부속성당을 특별히 모든 성인들에게 봉헌하면서 11월 1일로 날짜를 변경시켰다. 이후 835년 교황 그레고리오 4세(재위 827-844)에 의해 전교회에 보급되었다.

이날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양한 계층에 있었던 성인들을 통하여 세상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성인들을 찬미하면서, 그들의 전구를 청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덕행을 본받기 위하여 우리 자신도 반성하게 된다.

성 아우구스띠누스는 '성인 성녀들은 사람이다. 그리고 나도 사람이다. 그들이 할 수 있었다면 나는 왜 못할 것인가?'하셨다. 실제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이런 기백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무선 전화로 수만리 떨어진 사람과 통화할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하늘 나라와 성인들과 상통하는 방법을 마련해 주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 있는 성인들의 가르침을 받자.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들은 절대로 우리를 돕는 데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제 목 : 몬시뇰

가톨릭 교회의 고위 성직자에 대한 경칭이며 '나의 주인'이란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에서 유래됩니다.

이 칭호는 아비뇽 체류시대에 프랑스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오늘날은 재치권을 행사할 교구를 갖지 않는 교황청 고위 성직자와 주교품을 받지 않은 자로서 덕망이 높은 성직자에게 교황청에서 주는 명예의 칭호입니다.

교회법상 특권은 없으며 의식때 수단 위의 빨간 띠를 두르거나 단추를 달 수 있습니다.

제 목 : 몽소승천

성모의 승천을 가르키는 용어입니다.

성모의 승천은 '부르심을 받은' 승천이란 의미를 지닌 '몽소' 승천이라 부름으로써 이를 예수 승천과 구별합니다.

제 목 : 메시지

소식, 통신, 서신등의 뜻으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기쁜소식 즉 복된 말씀을 의미합니다.

제 목 : 메시지 전달방법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부모는 자녀에게 부모의 느낌, 의사 및 의도가 이해되도록 하면서 의견을 충분히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녀들이 귀담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부모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녀가 귀담아 듣지도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하는 것은 자녀로 하여금 귀머거리가 되도록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가 충분히 전달되고 있지 않다고 느낄 때 부모들은 흔히 강압적인 방법으로 자녀들을 통제하게 된다. 그러나 자녀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비난이나 공격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즉 부모 자신의 느낌,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체의 상황을 분명히 밝히는 연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네가 깨끗한 옷을 입고 흙장난을 하게 되면 옷이 쉽게 더러워지거든. 그러면 엄마는 그 옷을 또 다시 빨아야 하니까 힘이 든단다" 라는 식으로 부모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의 전달 방식은 이야기하는 사람의 느낌을 나타낸다는 뜻에서 비언어적인 요소(표정, 어조)가 아주 중요하게 된다.

그렇다고 절대로 부모가 화를 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상호존중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면 가끔 화를 내는 것은 청량제 구실을 할 수도 있으며 의사소통을 증진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문제는 '화' 가 아니라 '화' 라는 방식을 이용해서 자녀를 부모의 마음대로 통제하고 억누르려는 강요인 것이다.

제 목 : 미사지향, 영성체, 고해 의무

미사 지향(84조 - 85조) : 세례받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도 미사 지향을 두고서 미사를 집전할 수 있다.

영성체(78조-83조)

* 영성체 횟수 : 같은 날 여러 대의 미사를 참여해도 두 번까지만 영성체를 할 수 있다.

* 영성체 의무 : 영세 받은 신자는 적어도 1년에 한번 이상 영성체를 하여야 하며, 가능하면 부활 영성체 - 재의 수요일부터 삼위일체 대축일 사이에 하는 영성체를 하도록 한다. 이 시기에 영성체를 하지 못한 경우에는 성탄시기에라도 하도록 한다.

* 첫영성체 시기 : 10세(초3년)전후에

고해성사(87조 - 96조):모든 신자는 적어도 1년에 한번은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의무고해성사는 부활영성체에 맞추어 판공고해성사를 거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사는 언제나 교회공동체 전체와 연관된 행위이고, 미사지향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믿는 교회공동체의 예배 중에 그 지향을 마음에 담아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세례받지 않은 비신자를 위해서도 얼마든지 그 지향을 두고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대의 미사에 한가지 지향으로 미사를 드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미 지향이 들어 와 있다면 그 때는 그 봉헌자의 동의를 구해서 합동미사를 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미사와 연미사는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교회는 모든 신자들에게 자주 고해성사를 보고 자주 영성체하기를 권합니다. 그런데 신자들의 영신적 사정에 따라, 또는 개인신상의 이유로 인해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대해 교회는 가장 기본적인 신자 생활을 위해 적어도 1년에 한번은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할 것을 의무로 제시합니다. 이러한 영성체 의무를 이행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신비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활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영성체하는 것을 부활 영성체라고 하는데 재의 수요일부터 삼위일체 대축일 사이에 영성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기에 영성체하지 못한 신자는 성탄시기에라도 영성체하도록 권합니다.

제 목 : 미신

일반적으로 미신이란, 잘못된 또는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도 없는 것을 종교적 신앙처럼 맹목적으로 믿는 일을 가리킨다. 그리스어 ''라는 단어는 중립적인 의미로 쓰일 수도 있고, 좋은 의미로 쓰여 신에 대한 합당한 존경과 숭배와 두려움을 가리킬 수도 있고, 나쁜 의미로 쓰여 신들에 대한 지나친 또는 근거없는 두려움을 가리키거나, 망령된 믿음에 집착하는 사고와 행동을 가리킬 수도 있다. 즉 상대적인 의미를 갖는 단어라서 사실상 널리 다의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즉 종교학이나종교철학에 있어서는 종교의 진리성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진리성에 반하거나 혹은 진리요소가 빠져 있는 잘못된 신앙을 지칭하여 미신이라고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미신을 '진정한 경신의 잘못된 모방자'(verae pietatis falsa imitatrix, Sess, XXII, de sacrificio Missae)라고 규정하였다. 미신은 경신의 덕에 대립하며, 또는 현대의 강신술 같은 것도 그리스도교의 신앙 그 자체에 대하여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런 경우는 주로 미신가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하느님의 전능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작용을 피조물에 귀속시키려고 하는 때에 발생하며, 물건이 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도덕적인 퇴폐의 일종임은 물론이다. 이와 같은 미신의 윤리적인 과오는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 말고도, 하느님에 대한 신뢰의 결여와 특히 많건적건 간에 의식적인 사고나 행동을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의 이탈 또는 배반을 초래하게 된다. 이리하여 신뢰의 결여 때문에, 마술에 빠지게 되거나, 우상숭배, 점복 등에 의하여 미래의 일이나 비밀 따위를 미리 알려고 조바심하게 되고, 미신적인 풍습에 좇아서 소심한 이기적 방법으로 자기의 구령과 운명까지도 자기 수중에 장악해 보려는 경향으로 치달리게 된다.

독일의 언어학자 그림형제(Jakob Grimm과 Wilhelm Grimm)는, 신앙의 한계선을 '지난' 또는 그 '이상'의 것이라 하여 'Oberglaube'= Uberglaube'라는 낱말로 표시하고 있으며, 어떤 학자는 Hinterglaube(신앙배후) 또는 Unterglaube(신앙이하)로 표현하기도 한다. 대체로 참된 신앙의 빛에 대하여 눈을 가리거나 또는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가능 한계를 뛰어넘어서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을 경우, 비이성적인 미신에 떨어지기 쉽다. 섭리에 대한 신앙이 결핍되거나 쇠퇴하였을 때, 미신이 으례 만연한다. 그러나 미신에는 인간적인 요소가 짙다. 긍정적인 종교의 거의 모든 체계에 부착되어 있는 부착물들 주변에는 미신으로 볼 수도 있는 것들이 많으며, 이런 것들은 한편으로는 그 종교를 본래의 형태에서 대단히 돋보이는 형태로 바꾸어 버리며, 다른 한편으로는 추상적 관념들을 다루는데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런 마음이 놓여지도록 하게 할 수도 있다.

중세기는 일반적으로 두드러지게 미신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으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적어도 그것들의 영향력이 뻗어나간 한, 미신에 대하여 치명타를 주었던 것으로 보통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사회의 몇몇 부분에서 르네상스와 동행하고 있던 고대의 무분별한 제의가 미신적 공상들과 새로운 종류의 의식들을 담고 있었거나, 또는 장려하였다

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인간은, 지적인 이유 없이도, 항상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그가 알 수 있는 것 이상을 알기를 갈망하며, 비록 실제로는 신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전통적인 제재력을 가지고있는 권위에 보다 더 기꺼이 복종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현상적인 면에서 본다면, 종교신앙에는 진리요소가 적고 반면에 미신적인 요소가 많은 것, 또는 광신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적지 않다. 이런 것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는 순수한 경신을 늘 강조하고, 종교적인 진리의 입장에서 비판, 시정할 필요가 있으며, 미신을 물리치고 하느님에 대하여 신뢰를 갖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좁은 테두리의 합리주의나 과학주의 관점에 서서, 모든 종교신앙을 부정, 그것을 미신이라고 하여 배척하는 경우가 역사상에도 있어 왔고, 또 오늘날도 아직 남아 있으나 이는 종교의 진리성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볼 때, 도리어 좁은 의미의 이성과 과학을 과신하는데서 얻어낸 결론이라고 보아 일종의 미신으로 여기는 견해도 있다. 용어적으로 미신과 이단 사설이 엄밀히 구분됨은 물론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교회사 연구소, p.421-422)

'종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몰몬교  (1) 2025.04.17
한국의 종교 인구 현황  (0) 2025.03.06
이단에게 있는 7가지 특징  (2) 2024.12.12
교회를 기업화하지 말자  (0) 2024.12.01
천주교는 기독교와 완전히 다릅니다  (1)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