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자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십니까?

대 덕 2023. 2. 4. 11:18

오늘날 교회의 예배 속에는 예루살렘식 예배(형식적)와 사마리아식(인본주의) 예배로 변질된 것은 없을까?
우리의 예배가 과연 하나님께서 참으로 받으시는 참 예배일까?

예루살렘식 예배는 율법으로 드리는 인본적인 <제의적 예배>이다.

외형적으로는 거룩해 보이고, 웅장해 보이고, 사람들이 볼 때에는 매우 신령한(?) 예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보다는 인간적이고 인본적인 것들로 채워지고 변질된 모습은 아닐까?
로마카톨릭 형식의 예배와 인간들의 무언가 만족(축복)시키려는 현대적인 예배가 있다.
과연 예수님이 오늘 교회에 오셔서 말씀하신다면 무엇이 문제라고 말씀하실까?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신령(神靈)과 진정(眞情)으로 뜻은 무엇일까?

[개역]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예수님은 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을까?

신령과 진정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무언가 의미심장한 뜻이 있을까? 아니면 
많은 경우 본문을 은혜롭게 해석하려다 보니 조바심 때문에 알레고리적 해석을 한다.
결국 그들의 해석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나씩 말씀을 살펴보자.

1.예배의 대상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개역한글)
우리의 예배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른채 예배하는 것(형식적인 예배)은 죽은 예배이다.

바울은 산제사, 살아있는 예배(영적 예배)를 드리라고 말한다.
죽은 예배는 <하나님을 모르고> 드리는 예배이다.
이방인들이 드리는 예배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해도 그 제사는 무의미할 뿐이다.

그들은 그들의 신에게 복을 받아내기 위해 애쓴다.

살아있는 예배
그런데, 살아있는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의미(롬1:1~11장)을 알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 은혜 안에서 드리는 예배이다.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이 말씀하신 참된 예배의 태도를 해석하고 적용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그 의미를 해석해서 새로운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그의 신학의 특징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두 가지입니다.
1)거룩해야 한다.
2)살아있는 예배이어야 한다.
"거룩한"은 예배는 구별된 예배,

세상사람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하는 것과 차별화된 예배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예수님이 하신 예배의 본질을 말한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이 드리던 예배(그리심산)는 성경에서 벗어났고

세상적인 예배이고, 허구적인 예배이다.

예루살렘의 예배(헤롯성전)는 형식만 남고 내용이 죽은 예배로 변질되었다.
이제 예수님은 이런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예배(요1서1:4)이다.
바로 예수님 자신이 살아있는 참성전이 되신다.

요한복음2장 21절,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 안에서 드려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요14: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가 없다. "
참된 예배는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해서"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러한 예배를 뭐라고 정의하는가?

그 분의 말씀 안에서, 그의 말씀을 깨닫고, 말씀을 이해하고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 λογικὴν [G3050: λογικός, 로기코스. 1)말씀의, 2)이성적인, 3)영적인]
형용사 로기코스는 로고스(G3056)에서 유래
(a) '말에 속한, 말씀의'
(b) '이성에 속한, 이성적인, 합리적인'.

형용사 로기코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사용(롬 12:1, 벧전 2:2).
(1)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바울은 성도들에게 "영적"이며 동시에 "이성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로기코스를 사용한다.

이는 예배의 본질에 카리스마적 예배가 필요하다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영적인"(spiritual)이란 <로기코스>가 1)'영적인' (spiritual)과 2)'이성적인'(rational)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되고 또한 이 두 가지의 부대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벧전 2:2,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영적인 혹은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로기코스를 'spiritual' (영적인, 한글개역)으러 해석했는데,

이 또한 말씀의(말씀을 이해하며 영적인 것을 함께 있는) 젖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게 보여집니다. (참조: G. Kittel; C. Brown).
나는 내 영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하며,

성령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거듭나지 않은 영혼이 드리는 예배는 형식적이고 죽은 예배입니다.

거듭난 신자가 자신의 예배 대상이신 "영이신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의 말씀하시는 바를 따라서 영으로 예배하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살피는 일은 참된 예배에 본질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2.예배 방법

[원문] ‘ἐν πνεύματι καὶ ἀληθείᾳ(엔 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
1)전치사 ‘엔(ἐν)’
‘~안에서’(in),
2)‘프뉴마티’ 와 ‘알레데이아’ =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예배는 예배자가 그의 마음을 드리며,

또 여호와의 뜻을 잘 깨달아 예배를 드리는 때가 올 것이라고 예고해 주신 것이다.
그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지금이다(23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우상에게 하듯,

제의적인 요소만으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입니까?
예배자의 예배 방법은 사람이 ‘마음으로 깨달아 여호와를 분명하게 알고’ 예배해야 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마리아 예배는 '죽은 예배, 껍데기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 예배'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절에 나타난 ‘
진정으로’의 정확한 뜻은

있는 모습 그대로 숨기지 않고’ 혹은 ‘사실을 정확하게 깨달아 알며,

여호와의 뜻을 잊지 않고’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된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개역한글)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이 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이다"라고 밀씀하십니다.

(a)신령 : ‘프뉴마티’

원형은 ‘프뉴마’로서 이것은 바람 등이 ‘불다’(마 7:25, 요 3:8) 라는 뜻의 ‘프네오’에서 유래하여 ‘영’(고전 15:45, 갈 4:6) 또는 ‘영혼’(마 27:50) 및 마음의 ‘중심’(막 2:8) 곧 인간의 내면 깊숙한 것을 뜻하는 ‘영으로’ 또는 ‘마음의 중심으로’ 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b) ‘진정으로’ : '알레데이아'

원형은 '란다노’는 '숨기다'(막 7:24, 눅 8:47) 또는 ’알지 못하다‘(행 20:26) 및 ’잊다‘(벧후 3:5, 8)를 뜻한다.

여기에 부정의 의미를 갖는 접두모음 ‘아(ἀ)’ 가 합쳐져 명사화된 단어이다.

따라서 그의 뜻은 가리워져 있지 않음, 숨김이 없는 상태, 공개되어진 상태 또는 어떤 일을 ‘깨달아 아는 것을 뜻한다.
개역 성경에서는 ‘알레디이아’는 ‘진리’(요 17:17, 벧전 1:22), ‘진실함’(엡 5:9)으로 번역되었다.
3)그리고 ‘카이’(접속사) 는 ‘그리고’(and)이다.
<참조>. 그랜드종합주석 요한복음 4장 pp649-650

'예배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배에 임하는 올바른 태도  (0) 2024.05.11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  (2) 2024.01.04
예배와 미사의 비교  (0) 2023.08.06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  (0) 2022.10.22
어원적 의미로 살펴본 예배  (0) 2022.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