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자료

원불교[圓佛敎]

대 덕 2024. 4. 24. 11:02

Ⅰ. 서론
한국에서 생겨난 종교들은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원불교는 불교에서 파생된 대표적인 종교로서 여러 종교들의 전통들을 혼합하여 만든 혼합 종교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원불교는 종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원불교가 한국에서 조직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들의 교리들은 과연 종파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가 등을 본 연구에서 알아보고자 한다. 특히 원불교의 교리 중 하나는 천지 만물이 모두 부처이므로 모든 것을 부처님을 대하듯이 경외심으로 모든 만물을 대하라는 가르침인 범신론으로 그것이 바탕이 되어 사회사업과 교육 사업을 통해 교세를 확장시켰다. 그러나 모든 만물에 신이 있다는 가르침은 성경의 가르침과 위배된다.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모든 만물은 다스릴 수 있는 대상으로 우리에게 주셨던 것이다.

Ⅱ. 본론
1. 원불교의 역사
1916년 4월 소태산(小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이 창시한 불교 계통의 신종교이다. 원불교의 서울회관은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전라남도 영광 태생의 소태산은 소년시절부터 구도생활을 시작하여 26세 때인 1916년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깨닫고 원불교를 창립하게 되었다. 소태산은 깨달음을 얻은 지 몇 달 후 40여 명의 신자를 얻었고, 이들 중에서 이재철, 이순순, 김기천, 오창건, 박세철, 박동국, 유 건, 김광선, 송 규 등 9명을 표준제자로 선택했다. 소태산은 처음 이들 9명의 제자들과 함께 저축조합운동, 영산방언공사, 혈인기도(血印祈禱)를 통해서 교단 창립의 기틀을 닦았다. 저축조합운동은 근검저축, 허례폐지, 미신타파, 금주단연, 공동단연, 공동출역 등의 새 생활 운동이다. 영산방언공사는 소태산의 탄생지인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지금의 백수읍) 길룡리 앞의 갯벌을 막아 농토를 개간한 간척사업이다. 혈인기도는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정신을 살리기 위한 서천기도(誓天祈禱)이다. 이러한 3가지 교단 창립의 기초 작업은 1916~19년에 이루어졌는데, 특히 혈인기도는 3·1운동과 거의 같은 시기이다. 1919년 늦가을 소태산은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 봉래정사로 들어가 원불교의 교리와 제도를 제정, 구상했다. 1924년에 이르러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지금의 익산시 신룡동)에 총부를 건설하고 '불법연구회'라는 임시 교명(敎名)으로 교화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 명칭은 1948년 '원불교'라는 정식 교명을 제정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2. 원불교의 창시자
원불교의 교주인 소태산 대종사(少太山 大宗師)는 1891년 5월 5일 전남 영광에서 평범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7세부터 자연현상과 인생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스스로 도(道)에 발심하여, 20여 년 간 구도고행을 계속하여 마침내 1916년 4월 28일(대각개교절), 큰 깨달음(大覺)을 통해 원불교를 창시하였다.
새회상 창립의 경제적 기초를 세운 2만 6천 여평의 정관평 방언공사, 인류구원을 위한 혈성(血誠)의 기도로 법계의 인증을 받은 법인성사, 법신불 일원상을 최고의 종지(宗旨)로 삼아 교리와 제도를 제정한 봉래제법, 교화, 교육, 자선의 중심지 익산 총부 건설 등 여러 가지의 일을 하였다. 그의 성은 박(朴)씨이며 이름은 중빈(重彬), 호는 소태산(少太山)으로 원기 28년(1943년) 6월 1일, 53세에 세상을 떴다.
소태산은 처음 깨달음을 얻은 후 옛 성현들이 깨우친 경지를 알기 위해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 등의 여러 경전을 열람했으며, 그중에서 〈금강경 金剛經〉을 보고 "석가모니불은 성현 중의 성현이요, 발심(發心)으로부터 구도(求道)와 대각(大覺)의 경로가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따라서 나의 연원(淵源)을 석가모니불로 정하고 장차 불법(佛法)을 주체로 하여 새 종교를 창립하리라"고 결심했다. 소태산은 불법을 주체로 하되 종교개혁, 인간개혁, 사회개혁을 동시에 수행하려 했다.
1924년부터 약 20년간에 걸쳐 소태산은 익산총부에 주재하면서 교리와 제도의 제정, 각종 교서의 편찬, 제자들의 훈련, 교세의 확장에 주력했다.

3. 원불교 교리의 구조
우주와 인생의 근본 질서를 일원상(一圓相)이라 하고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4은4요(四恩四要)의 신앙과 3학8조(三學八條)의 수행으로 원만한 인격과 광대무량한 낙원세계 건설을 최고 이상(理想)으로 하고 있다.
4은이란 일원상의 진리를 구체적으로 현실화한 은(恩)에 입각한 4가지 존재분류이다. 이 세상과 나와의 관계를 은혜라고 파악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세계관 · 인생관으로서 천지은, 부모은, 동포은, 법률은 등을 말한다.
4요란 4은의 정신에 입각하여 평등의 윤리로 세상을 구제하고 인류사회를 향상 · 발전시켜가는 4가지 행동강령이다. 곧 자력양성, 지자본위(智者本位), 타 자녀 교육, 공도자숭배(公道者崇拜)를 말한다.
3학이란 일원의 진리에 바탕을 두고 원만한 인격을 양성해가는 3가지 공부길이다. 곧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를 말한다.
8조란 3학수행의 촉진제가 되는 신(信), 분(忿), 의(疑), 성(誠)과 3학 수행을 방해하는 불신, 탐욕, 나태, 어리석음을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4은4요의 신앙과 3학8조의 수행으로 일원상의 진리와 합일되는 인격자가 될 수 있고, 일원상의 진리가 지배하는 낙원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 원불교 교리의 핵심이다.
원불교의 근본교리를 종합하여 4대강령(四大綱領)이라고도 하는데, 4대강령이 실현되는 사회가 곧 원불교가 목적하는 최고의 이상사회, 정의사회, 낙원세계이다. 4대강령은 곧 정각정행(正覺正行), 지은보은(知恩報恩), 불법활용(佛法活用), 무아봉공(無我奉公)에서 결론을 얻는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원불교의 역사적 발전
일제강점기의 원불교는 국민계몽과 농촌생활향상에 주력했다. 총부 건설 이후 출가수행자들은 총부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교단의 창립과 발전을 위해 헌신 봉공 했다. 교단 초창기부터 산업부를 창설하여 과수원 경영, 야채·약초·묘목 재배, 양계·양돈·양토(養兎) 등의 축산업을 활발히 전개했다.
일제강점기에 총부는 모범마을이 되었고 전국 각처에서 산업부 시찰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943년 6월 1일에 소태산이 53세로 열반하고 수제자 정산(鼎山) 송규(宋奎:1900~62)가 후계 종법사가 되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원불교는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 차츰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소태산이 교단의 방향을 교화, 교육, 자선의 3대사업으로 설정한 데 근거하여 교화기관을 각처에 설립하였고, 또한 교당을 설립하였고, 교육기관으로 원광대학교, 원광고등학교, 원광여자고등학교 등을 차례로 설립했으며, 자선기관으로 병원, 고아원, 양로원, 복지관, 자선원 등을 설립했다.
해방직후에는 전재동포구호사업, 한글보급운동, 고아원경영 등의 건국사업을 전개했다. 1953년에는 제1대 성업봉찬대회를 열어 소태산의 성업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켜갈 것을 다짐했다. 1962년 정산이 열반하자 대산(大山) 김대거(金大擧)가 후계 종법사가 되었다. 송규는 열반을 앞두고 동원도리(同源島理), 동기연계(同氣連契), 동척사업(同拓事業)의 삼동윤리(三同倫理)를 최후 법문으로 발표하여 세계 모든 인류의 대동화합을 제창했다.
1971년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일원세계’라는 주제를 내걸고 개교 반백 년 기념대회를, 1991년 4월 소태산 대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대회를 열어 도덕상실의 현대사회에서 정신을 개벽하여 도덕성을 회복하고 일원세계(낙원세계) 건설과 일원문화(원불교문화) 창달을 선언했다.
원불교의 소의경전은 정전(正典), 대종경(大宗經), 정산종사 법어, 불조요경 등이다. ①정전은 원불교의 기본교리를 밝힌 경전이며, ②대종경은 소태산 일대의 언행록이고, ③정산종사 법어는 정산송규의 법문이며, ④불조요경은 원불교 사상과 관련이 깊은 불경을 요약한 경전이다.
원불교의 최고 통치자를 종법사라 하고, 최고 결의기관으로 수위단회, 중앙 집행 기관으로 교정원, 중앙 감찰 기관으로 감찰원을 두어 교단을 통치하고 있다. 교도들을 훈련·교화시키기 위해 각처에 교당을 두고 있으며, 교당에 주재하는 교화자를 교무(敎務)라 한다.
재가교도와 출가교도를 두고 있는데 출가교도를 전무출신(專務出身)이라 하여 교단에 헌신봉공하고 있다. 재가 출신과 남녀 권리와 의무에 아무런 차별이 없다. 중앙총부는 전체교단을 통할하고 있고 교당을 효율적으로 관할하기 위해 각 교구(敎區)를 두고 있다.
신정절, 대각개교절, 석존성탄절, 법인절 등 4축과 육일대재 · 명절대재 등 2재가 있어 이를 교단의 기념일로 하고 있다.
1992년 7월 현재 출가 교역자 1,400여 명, 훈련기관 11개, 문화기관 8개, 자선기관 42개, 산업기관 9개 등이 있다. 또한 1960년대부터 종교연합운동을 제창하고 있으며 미국·일본·캐나다·독일·오스트레일리아·카자흐스탄·프랑스 등지에도 20여 개의 교당이 있다.
원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종교적 성격과 사회 사업적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원불교에는 그 산하에 교역자 양성과 교육을 위한 기관, 사회사업 기관, 그리고 육성·의료 사업 등의 많은 기관들을 두고 있다.
(1) 교육 기관 : 원불교의 교육 기관은 다음과 같다.
즉 원광대학교, 원광중·고등학교, 해룡중·고등학교, 원광여중, 원광여중고, 해룡농업기술학교, 원광고등공민학교 등이다.
(2) 의료 기관 :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의료 기관으로는 익산시에 있는 이리병원이 있다.
(3) 사회 사업 기관 : 원불교의 사회 사업 기관에는 중앙양로원, 동래양로원, 전주양로원, 이리보육원, 양정원 등이 있다.

5. 원불교의 기본교리
1)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원불교의 개교 표어이다. 개교의 동기를 간략한 표어로 나타낸 것으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로 표현된 개교표어는 소태산 대종사가 대각 후 당시의 시국과 사회상황을 살펴보고 물질문명과 정신문화의 균형 있는 발전을 천명한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요 만물은 사람의 사용물이다. 인도는 인의(仁義)가 주체요 권모술수는 그 방편이다. 사람의 정신이 능히 만물을 지배하고 인의의 대도가 세상에 서야 한다. 그러나 근래에 그 주체가 전락하고 권모술수가 세상에 횡행하여 대도정의가 크게 어지럽다. 안으로 도학을 촉진하여 정신문화를 발전시키고, 밖으로 과학을 촉진하여 물질문명을 발전시켜야만 영육이 쌍전하고 내외가 겸전하여 바람직한 세상이 될 것이다. 물질문명에만 치우치면 육신은 완전하나 정신이 병든 불구자와 같고, 정신문화에만 치우치면 정신은 건전하나 육신이 병든 불구자와 같다. 그러므로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이 병진 된 시대라야 평화 안락한 세계가 될 것이다."

2) 처처불상 사사불공
이 세상 곳곳에 부처님이 계시니, 하는 일마다 불공의 정신으로 하자는 뜻으로 신앙과 수행을 병진하는 원불교의 특색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표어이다.
처처불상은 신앙의 자세로서 이 세상 만물이 다 부처의 화신이라는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까지도 다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주만유는 다 진리불이요 부처의 화신이다. 따라서 처처불상의 신앙은 인생으로서 가장 경건하고 엄숙한 생활자세요, 항상 부처를 모시고 사는 생활 이다. 사사불공의 수행은 인생으로서 가장 성실하고 부지런한 생활자세다. 처처불상이므로 사사불공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육근 동작이 모두 불공이므로 항상 선업을 짓게 되고 언제나 헌신 봉공하는 생활이다. 처처불상이 견성이요 정각이라면 사사불공은 솔성이요, 정행이다. 처처불상이 시불이요 기도하는 생활이라면 사사불공은 활불이요 성실한 생활이며 속이지 않고 부지런한 생활이다. 따라서 처처불상 사사불공은 신앙과 수행을 병진하려는 원불교인의 이상적 생활자세요, 가장 크게 완성되고 잘 조화 된 종교인의 생활태도이다.

3) 무시선 무처선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고 항상 계속하는 선공부, 곧 생활 속의 선, 행
동선, 활선, 상행삼매, 보행삼매, 유희삼매를 말한다. 순간순간, 동작 하나 하나가 모두가 선이다. 걸어가는 것, 잠자는 것, 밥 먹는 것, 사무 보는 것, 노래하는 것, 주판 놓는 것, 밭가는 것, 운전 하는 것 등 모두 선 아님이 없다. "육근이 무사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유사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한다" 이것이 무시선 무처선의 강령이 된다. 무시선 무처선 공부를 잘하고 보면,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있는 곳마다 다 성지가 된다.

4) 동정일여
동과 정이 한결같아서 잠시도 도를 떠나지 않는 것이며,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것이다. 동은 육근이 일 있을 때, 정은 육근이 일이 없을 때 일여는 동정간 자성을 떠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동과 정은 본래 서로 다른 것이 아니며 하나의 진리에 대한 표리 관계의 설명이다. 일원의 진리 즉 자성 그 자체는 동이라고 할 수 없고 정이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 그 진리를 체와 용으로 구별해 볼 때 그 체를 정이라고 하고 그 용을 동이라 한다. 그러므로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아 동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고 정하여도 정하는 바가 없이 마음을 작용하면, 동하여도 분별이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아 육근의 동정 모두가 다 공적영지의 자성에 부합된다. 이가 곧 동정일여의 경지이다. 동정일여의 공부법은 육근의 동과 정에 끌리거나 구애됨이 없이 끊임없는 삼학수행으로 삼대력을 얻어 나가는 무시선의 공부법이다.

5) 영육쌍전
정신과 육신을 아울러 건전하고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원불교의 생활종교적 특징의 하나이다. 종교가 영혼구제에 치우치다 보면 육신관리를 소홀하게 되어 현실생활을 무시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삼학으로서 영혼을 구제하고, 의식주의 풍부한 생활로서 육신관리를 잘 하자는 것이 원불교의 입장이다. 영육 쌍전은 원불교의 실천적이고 실학적이며, 실증적이고 실용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6) 불법 시 생활, 생활 시 불법
불법으로서 생활을 더욱 향상시키고, 생활 속에서 불법의 진리를 찾아가자는 것이다. 생활과 불법을 분리해서 보지 않고 하나로 보아서 조화를 이루자는 것으로 소태산 대종사가 불교를 개혁한 뜻이 잘 나타나 있다. 불교는 기독교에 비해 비생활적이라 현실도피적이요 현실 생활에 소극적인 면이 많았다. 불교가 오랫동안 현실도피적이요 현실생활과 유리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는 생활 속의 불교를 표방했던 것이다. 생활불교란 사회생활과 불법수행의 이치 조화를 의미한다. 의식주를 구하려는 사회생활과 수양력, 연구력, 취사력의 삼대력을 얻으려는 불법수행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법수행을 위해서 생활을 떠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의 뜻은 불법을 세속생활로 끌어내리자는 뜻이 아니라 세속생활을 불법의 심오한 경지까지 끌어올리자는 것임을 또한 잘 알아야한다. 생활 속의 불법은 다시 말해서 생활속의 종교이다. 따라서 소태산 대종사는 불교의 개혁만이 아니라 종교의 개혁을 의도하였다. 결국 진리와 생활의 일치를 통한 종교의 생활화 생활의 종교화로 활불을 만들고 불국세계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7) 이사병행
이사병행의 사상은 종교의 생활화 즉 생활종교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종교수양과 일상생활의 조화발전을 가져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종교는 현실과 유리된 것도 아니고 현실 도피적이거나 현실에 대해 소극적이어서는 안된다. 현실참여, 현실개조를 통한 생활종교라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는 사회발전의 방해요소가 아니라, 사회발전의 선도자가 되어야 한다. Ⅲ. 마치는 말
앞에서 원불교에 대한 역사와 창시자 그리고 교리적인 부분에서 부분적으로 서술하여 놓았다. 원불교는 한국의 전래 종교들 중 불교에 가장 근접해 있는 종교이다. 이름이 원불교인 점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불교에서 파생된 신흥 종교이다. 한국의 다른 종교들이 그러하듯이 원불교도 하나의 고유한 시조와 경전, 그리고 한 뿌리를 가진 종교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종교적 전통들을 혼합해서 만든 종교이다. 그러므로 원불교는 종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보편성, 구원성 등이 결여된 종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원불교는 이런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불교에서 유래한 교리, 생산적 공동체 건설, 농민운동과의 결합 등의 여러 요인으로 말미암아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교육 기관과 사회사업 기관 등을 바로 이 원불교에서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점을 보아도 원불교는 조직적으로 크게 성장되고 체계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적 입장에서 몇 가지 교리에 대한 비판을 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1) 법신불일원상
원불교의 최고 종시는 법신불일원상이다. 원불교의 교리는 불법(佛法)을 주로 하되 모든 종교 교시도 종합 활용한다는 내용이 그 골격을 이루고 있다. 이런 교리는 그 최고 종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종교혼합주의와 다름이 없다. 기독교는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유일신 신앙을 갖고 있다(고전8:6). 그러나 원불교를 비롯한 한국의 전래 종교는 기본적으로 우상 숭배일 뿐만 아니라 그 우상마저도 혼합하여 숭배하는 종교혼합주의에 물들어 있다.
2) 모든 것이 부처라는 교리
천지 만물이 모두 부처이니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부처님을 대하는 경외심으로 모든 만물을 대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는 범신론, 즉 세상 모든 만물 속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신 분(창1:1)이지, 결코 세상과 동일시되는 분은 아니다(행7:48). 세상은 지음받은 존재이니 예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 만물에게 예배하는 것이 곧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 숭배이다(출20:1-6). 세상은 예배할 대상이 아니라 다스리고 지배할 대상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창1:28).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구별되시는 한 분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예배드려야 한다.
3) 지은 보은(知恩報恩)
지은 보은이란 네 가지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자는 교리이다. 이 네 가지 은혜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이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이 네 가지는 분명 고마운 것이로되 그렇다고 하여 그것들 스스로가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 네 가지 은혜 위에 그 은혜를 주신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모든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고전15:10; 엡3:7). 또한 이 은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베풀어진 은혜이기도 하다(살후1:12; 롬1:7).

우리에게 있어서 예배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며 은혜를 주시는 이도 한 분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신 만물에게 예배하거나, 그 만물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마땅히 배척해야 할 이단교설일 뿐이다. 또한 우상 숭배와 종교혼합주의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출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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