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신앙샐활

신앙 고백이 있는 삶

대 덕 2024. 4. 27. 09:29

우리가 믿는 신앙은 항상 고백되어져야 하고, 고백되어진 신앙은 우리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구원이 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3-19)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아니면, 선지자 중의 한 분이라고 합니다.

이 때까지 주님은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나서면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고 했다.

그 때, 예수님이 기뻐하시면서 칭찬해 주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렇습니다. 내가 믿는 신앙은 고백되어져 하고, 그 고백은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고백이 되어야 한다.

 

이단들도 신앙을 가졌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이단(異端)이다.

이단에게는 구원이 없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하고,

내 신앙이 올바른 신앙인지를 신앙고백을 통하여 검증받아야 한다.

나의 신앙 고백이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을 때 구원받은 신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을 향해서 고백되어 질 때, 이것을 신앙고백이라 하고,

우리의 신앙이 사람을 향해서 고백되어 질 때, 이것을 간증이라고 한다.

 

본문 (9-10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3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이라는 말이 3번 나온다.

기독교에서 제일 중요한 교리가 [구원 교리] 이다.

 

사람에게서 가장 귀한 것은 돈이나, 명예나, 학식도 아니고, 구원이 제일 중요하다.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 그러면,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네 입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다.

 

믿음에는 항상 믿음의 대상이 있고, 믿음의 내용이 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 믿음의 대상 : 예수 그리스도 이시고,

2) 믿음의 내용 :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고,

3) 믿음의 방법 :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마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고,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사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1) 첫째로,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

여기서 마음으로 믿으면 하는 말은 “칼디아” 라는 말인데 “전적 수락” Total Acceptance 라는 뜻이다.

전적으로 믿고,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구원 사건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구원도 없다.

 

중국이나, 이북 출신 사람들은 설교 말씀들은 후에 "오늘 말씀 전적으로 접수했습네다"고 말한다.

그렇다. 전적으로 접수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고,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 장롱 위에 아기를 올려놓고. 혼자 내려 올 수가 없다.

아빠가 장롱 앞에 서서 말한다. 내 앞으로 뛰어오라고 한다.

어떻게 뛰어 올 수 있나요? 아빠를 전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만일, 아기가 뛰었을 때, 아빠가 옆으로 피하면 아기는 어떻게 되지요?

아기는 크게 다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도 아빠가 있는 그 쪽으로 뛰어내린다.

이것이 아빠를 전적으로 믿기에 뛰어 안긴다.

“칼디아” = 전적 수락 [Total Acceptance]을 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은 다음에는:

2) 둘째로,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 말은 나의 신앙이 입으로 고백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나의 신앙을 부끄러워 말고, 공포(公布)하고 나타내는 것이다.

 

결혼식 순서 중에 제일 중요한 순서가 있다.

서약하는 시간이다.

당신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이 곁에 서 있는 사람 ( OOO )를 : 당신의 아내 (남편)으로 받아들이겠느뇨?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례 목사님이 공포(公布)(Public Proclamation)한다.

부부가 된 것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공포하노라.

 

(눅 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공개적 선언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공개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내 믿음을 고백하면, 이것은 신앙고백이다.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내 신앙을 공개하면, 이것은 신앙간증이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개인의 구세주 Personal Savior이시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나의 생활 태도도 거기에 맞게 행동하게 된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나, 일제시대 살던 부모님들은 핍박 받으면서도 그렇게 신앙을 고백하며 사셨다.

숨어서 말없이 예수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안 하셨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인 것을 드러냈다.

(13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도 역시 고백적인 것이다.

 

어떤 교인은 자신이 예수 믿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으려는 신자가 있다.

그저 조용히 믿겠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고백이 없다.

문제는 고백이 없으면 구원도 없다는 논리가 된다.

 

그러므로, 신앙은 고백적이어야 한다.

마음으로 믿는 것을 입으로 하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3) 셋째로, 신앙이 생활 속에서 삶으로 고백되어져야 한다.

오늘 설교 제목이 [신앙 고백이 있는 삶]이다.

나의 신앙이 삶 속에서 고백 되고, 나타나야 한다는 말이다.

신앙 고백이 없는 삶, 즉, 행함이 없는 신앙은 생명력이 없다.

죽은 신앙이다. 그 믿음이 헛것이라고 했다.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예) 원수 사랑, 용서, 기도, 성경읽기와 묵상 등등 나의 삶 속에는 어떤 모습의 신앙고백이 있는가?

 

예수님은 신앙고백이 있는 삶을 산상수훈에서는 이렇게 비유하셨다.

(마 7:24)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고 했다.

물론 말과 입으로 나의 신앙을 고백해야 하겠지만, 내 삶 속에서도 신앙이 나타나는 삶을 살아야 신자이다.

성도의 삶은 간증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

 

어떤 교인은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만, 신자의 모습이 전혀 없다.

정체 불명의 사람이다. 어떤 때는 신자 같고, 어떤 때는 무신론자 같다.

교회에서는 교인 같다가, 교회 문만 나가면 아닌 것 같다.

교회의 직분도 망각하고 그냥 산다.

직장, 점심 시간에 식사 기도도, 감사기도도 안하고 먹는다.

알송 달송한 교인이다. 정체성이 없다.

 

이런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신앙도 성장하지 않는다. 신앙의 열매도 없다. 생명력이 없다. 하나님의 축복도 없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구원도 없을 찌 모른다.

그 사람의 신앙은 그저 악세사리 정도이지, 정말 예수 믿는 자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가는 길이 분명하다.

사람들의 눈치를 봐 가면서 믿어서는 안 된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고 당당하게 말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20년간 예수 믿는다는 말을 안하고 살았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교회 중직자랍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깨닫고, 자기 직장에서 회개하고 공개했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정말 자유하더라고 간증했다.

 

성도 여러분 !

고백적인 신앙이 바른 신앙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신앙이다.

신앙고백이 있는 삶을 살아야 참 신자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 신앙고백이 있는 삶은 어떻게 나타나야 할까요?

(1) 성수 주일로 나타나야 한다.

반드시 주일을 지키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예배드리면서, 지은 죄가 있으면 회개하고, 말씀 들으면서 새 힘을 얻고,

신앙이 자라나고, 주님의 축복이 임한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놀라운 신앙 고백이다.

놀러 갈 곳도 많고, 만나고 싶은 친구도 많다. 사업상 바쁘기도 하다.

그러나, 주일을 성수하고 예배를 귀중히 여기는 신앙 고백적인 삶은 큰 축복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성수 주일과 예배 생활이 삶 속의 신앙 고백의 형태이다.

 

(2) 성례전에 참여함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신학적인 것이다. 세례받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신앙고백의 형태이다. 신앙고백이 종교의식에서 나타난다.

 

(3) 봉사와 섬김으로 나타난다.

주님의 이름으로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생활 속에서의 신앙고백이 있는 삶이다.

(4) 일상 생활에서 나타난다.

일주일 내내 월요일부터 토요일 그리고 주일까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신앙인의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신앙 고백적인 삶이 끊어져서는 안 된다. Pause 가 있어서는 안 된다.

 

매 순간, 순간, 사건 사건 속에서 신앙고백이 나타나야 한다.

성도의 삶이란 하루 하루가 간증의 연속이어야 한다.

매일 매일 일상적인 신앙고백 가운데 살다가 마지막 날에 천국가게 되는 것이다.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했다.

가끔 가끔 죽는 것이 아니다. 내일 죽는 것이 아니다. 어제 이미 죽은 것이다.

그리고 날마다 죽는 것이다 .I die everyday

 

(롬 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렇습니다. 삶이 영적 예배가 되는 것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

내 생활이 신앙 고백이요, 산 제사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다.

(결 론)

여러분의 신앙이 입술로 고백되고, 그 신앙은 다시 여러분의 삶 속에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앙 고백이 있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참 신앙이고, 여기에 생명이 있고, 신자의 행복이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