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회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의 하나가 ‘은혜스럽게’일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말이 어떤 일을 적당히, 문제가 되지 않게,
대충대충 처리하는 걸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은혜스러운 게 아니라 적당주의입니다.
매사를 가장 정확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은혜스러운 일입니다.
역시 '기도해 보겠습니다"라는 말도 입장이 곤란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용어는 바르게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한국교회’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다른 나라 교회와 비교할 때라면 몰라도 한국 사람이 자기 나라 교회를 ‘한국교회’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쩐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이 말을 하는 자신은 마치 외국인인 것 같은 느낌을 주지요.
그보다는 ‘우리나라 교회’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찬송’과 ‘찬양’이라는 말이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
찬송(讚頌)은 ‘기릴 찬(讚),기릴 송(頌)’으로 찬양(讚揚)은 ‘기릴 찬(讚),오를 양(揚)’으로
둘 다 하나님을 높여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찬양대가 부르는 노래는 ‘찬양’으로, 일반 회중이 부르는 노래는 ‘찬송’으로 차별해서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든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교회일 하는 걸 ‘봉사(奉仕)한다’고 합니다.
‘봉사(奉仕)’란 말 그대로 받들고 섬기며 돕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찬양대원으로 봉사한다’는 말은 좀 어색합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의 행위가 봉사활동일 수는 없겠지요?
◇성경에서는 주님을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등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는 주님의 본명이며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이’ 즉 ‘구세주’라는 직책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그냥 ‘예수님’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 바른 표현입니다.
◇‘나귀 새끼’인가,‘새끼 나귀’인가?
말 그대로 나귀 새끼는 나귀의 새끼를 말하고 새끼 나귀는 어린 나귀를 말합니다.
어떤 이는 나귀 새끼라는 표현이 상스럽다고 합니다.
아마 그와 비슷한 욕이 연상돼서 그럴 겁니다.
그렇다면 나귀 새끼보다는 새끼 나귀라는 표현을 쓰는 게 좋겠습니다.
◇간혹 설교에 ‘장본인(張本人)’이란 말이 등장합니다.
‘장본인’은 ‘어떤 일을 꾀하여 일으킨 바로 그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로 부정적인 일을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도 ‘미담의 장본인은…’이라는 식으로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긍정적일 때에는 장본인이 아니라 ‘주인공’이나 ‘주역’이라고 해야 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성 프란체스코가 쓴 ‘평화의 기도’는 가사와 노래가 워낙 유명해서 교회에서 자주 불립니다.
그러나 가사 중에 “자기를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라는 표현은
선행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천주교의 교리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라는 식으로 고쳐 불러야 합니다.
◇“할렐루야!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목회자나 방송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인사말입니다.
이 말을 사용하는 이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할렐루야’가 사람들 사이의 인사말로 사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는 뜻이므로
기도하고 찬양할 때에 하나님을 향해서 정중히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성도들끼리 사용하는 말에는 우리말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가 많습니다.
‘태신자’라는 말이 좋은 예입니다.
어떤 사람을 신자로 기대하며 마음에 품고 기도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로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목사가 되었으면 하고 기도하는 대상을 ‘태목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태신자’라는 말보다는 그냥 ‘전도 대상자’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언어는 보편성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개 장로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대표기도를 해주시겠습니다.”
예배 시간에 흔히 들을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기도에 있어서 ‘대표’나 ‘대신’이란 말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대표가 될 수 없다는 게 만인제사장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개 장로님이 기도 인도해 주시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목사님,개업예배 좀 봐주세요”“이번주 구역예배는 집사님이 봐주세요”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
예배를 봐준다는 말은 자칫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예배를 봐준다는 느낌을 줍니다.
예배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하나님께 직접 드리는 행위이지, 누가 대신 드려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목사님,예배를 인도해주세요”라고 하는 게 옳습니다.
◇흔히 주일 낮에 어른들이 드리는 예배를 ‘대예배’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들이 드리는 예배를 ‘소예배’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예배에 큰 예배 따로 있고 작은 예배 따로 있을 수는 없지요.
예배에 등급이나 규격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한두 사람이 모여도 ‘예배’입니다.
‘대예배’라는 말보다는 ‘주일 낮 예배’ 또는 ‘장년부 예배’로 표현하면 어떻겠습니까?
◇“시간이 되었으므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말은 어떨까요?
예배를 시작할 때 인도하는 분이 이 말을 간혹 쓰곤 합니다.
이 말은 자칫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배를 시작해야 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물론 예배는 정해진 시각에 시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시각이 되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의무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기꺼이 자발적으로 전폭적으로 감격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인도하시는 분들은 시간이 되었다는 이유를 달지 말고 그냥 예배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어휘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축복해 주시옵소서”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축복(祝福)’은 복을 빈다는 뜻입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복을 내려달라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이것이 바로 야곱을 위한 이삭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복을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복을 빕니다. 다시 말해 축복을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축복해 주시옵소서”라는 말은 다른 신에게 복을 빌어달라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부탁하는 셈이 됩니다. “
하나님,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게 올바른 표현입니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주님,내가 여기 있사오니….”
우리말에는 자기를 가리키는 말로 ‘나’와 ‘저’가 있습니다.
상대방에 따라 잘 골라 써야 합니다.
존경하는 상대 앞에서는 자신을 ‘나’라고 하지 않고 ‘저’라고 낮춰 부릅니다.
기도나 찬양은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러니 자기를 ‘나’라고 하지 말고 ‘저’라고 해야 옳습니다.
“제가 주님을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옳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우리’를 낮춰 부를 때에는 ‘저희’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저희 나라’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주권국가는 다른 나라와 대등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하나님’을 ‘저희 하나님’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 ‘저희’라는 표현은 상대와 상황에 맞게 잘 선택돼야 합니다.
○…“당회장님께서 설교해 주시겠습니다.”
사람은 그 역할에 따라 호칭이 달라집니다.
자녀들에게는 아버지이지만 회사에서는 과장님,교회에서는 집사님이라고 합니다.
목사님도 제직회 때는 제직회장, 당회 때는 당회장이 됩니다.
그러나 예배 때에는 ‘당회장’이 아니라 ‘담임목사’라고 불러야 옳다고 봅니다. 회의가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웃을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요즘 교회 안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참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남을 위한 기도를 흔히 ‘중보기도’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중보(中保)’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중보자’라고 하지요.
‘중보’라는 말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께만 해당되는 말이니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중보기도’라는 말보다는 ‘이웃을 위한 기도’ 또는 ‘도고’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이웃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목사를 보통 ‘부목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목사’라는 말은 ‘조교수’‘부교수’‘정교수’같이 계급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신분을 뜻합니다.
안수를 받는 순간 목사가 되는 것이지 ‘副목사’를 거쳐 ‘正목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 목사가 되면 영원히 목사인 것입니다.
‘부교역자’나 ‘부목회자’라는 말은 몰라도 ‘부목사’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부목사’라고 하지 말고 ‘목사’로 호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면서도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또 주인과 종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에는 ‘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목회자를 포함하여 주님을 위해 일하는 모든 일꾼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간혹 ‘주님의 종’을 높여 부른다며 ‘종님’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지요.
‘종’은 종이지 ‘종님’이라고 하면 그는 이미 종이 아닙니다. 그냥 ‘주님의 종’이라고 하면 됩니다.
○…공중 기도를 하다보면 곤란한 경우가 있습니다.
목사 장로 등 사람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스럽습니다.
우리 어법에 따르면 더 높은 분 앞에서는 아랫사람에게 ‘님’자를 붙여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도를 하면서 담임목사나 장로, 성도에게 막상 ‘님’자를 붙이지 않으면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을 높이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표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일일이 간섭해주시고” 원래 ‘간섭(干涉)’이란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할 때 이 말을 사용합니다.
‘간섭’을 ‘참견’이라고도 하는데 두 말 다 남의 영역에 끼여든다는 느낌을 줍니다.
우리 삶은 전적으로 주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밖에서 우리의 삶을 참견하거나 간섭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저희 삶을 주관해주시고”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도전을 주셨습니다”
‘도전(挑戰)’이란 말은 서열이나 지위 등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겨루어 승부나 우위를 가리려 하는 것입니다.
또‘신기록에 도전하다’라는 말처럼 이루기 어려운 일이나 대상에 어려움을 무릅쓰고 맞닥뜨리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생활 자체가 도전의 삶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도전하셨다”는 의미로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전을 주셨다’는 말보다는 ‘내 마음에 도전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성경말씀을 봉독해 올리겠습니다.”
성경 봉독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감히 받들어 읽는 매우 중요한 예배의 순서입니다.
이 순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내려주신다는 매우 엄숙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에서는 이 순서에는 전 성도를 자리에서 일어나게도 합니다.
“봉독해 올린다”는 말은 인도자가 성도에게 말씀을 ‘읽어드린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배자들에게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받들어 읽겠습니다.”가 바른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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