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신앙샐활

조상제사와 명절

대 덕 2023. 9. 23. 09:50

힌두교에서는 쥐를 번영의 중개자로 여겨 신성시하기 때문에 인도 사람들은 거의 쥐를 죽이지 않는데, 덫에 잡힌 쥐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풀어준다고 합니다. 인도 켈커타공원에서 쥐들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는데, 인도 곡물 생산량의 4분의 1을 쥐들이 해마다 먹어치운다고 합니다. 인도의 사회경제연구소(Indian Institute of Socio-Economic Studies)에 따르면 인도에는 쥐의 수가 인도 인구의 5배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과학자와 통계학자들에 의하면 인도에서 쥐에 의한 손실이 1년에 2억 4천만 달러를 초과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서인도 사막에 있는 라자스탄(Rajasthan) 주의 중심부에는 쥐들을 위해 만든 데쉬누크(Deshnouk)라는 고대 사원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2만 5천 루비(3,300달러) 상당의 곡식을 매년 사원에서 키우는 거룩한 쥐들을 먹이는 데 쓰고 있다고 합니다. 또 이 사원의 재정 관리인들은 사원의 쥐 숫자를 계속 늘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순례자가 실수로 쥐를 밟아 죽이게 되면 450달러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어야 하는데, 그 벌금은 죽은 쥐의 금상을 만들어 바치는 데 쓰인다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헛된 우상을 섬기는 데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랍의 그리스 악티움 신전에서는 매년 파리 신에게 황소를 제물로 드렸다고 합니다. 아마 이 사람들이 한국에 쥐 잡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고, 파리채를 들고 파리를 잡는 모습을 보면 기절을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더 낫습니까? 외국인들이 볼 때 해외토픽감입니다. 돼지 머리 놓고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일이 잘 되게 해 달라고 비는 것, 건축할 때 대들보에 북어를 매달아 놓고 그 앞에 두 손을 모아 비는 고사지내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입니다.

배움의 전당이라고 말하는 대학가에도 전통이란 이름 아래 ?천하 대장군??지하 여장군?두 장승이 수호신마냥 버티고 서 있는가 하면, 자동차, 컴퓨터 가동식에도 돼지 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에 점집 카페가 즐비합니다.

옛뱀의 독성을 쏘인 타락한 인간들의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기 위한 발버둥이 종교성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인간만큼 범사에 아덴사람들처럼 종교성이 많은 동물이 없습니다. 그 생각이 허망하여져서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꿔치기 해버렸습니다. 악한 마귀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도록 유혹합니다.

1. 명절 때면 조상제사에 대한 갈등
명절 때가 되면 성도는 조상제사와 충돌하게 되어있습니다.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는 조상제사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아버지의 본질상 신상에 절하거나 형상을 만들어 예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분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에게 제사하듯이 절하고 제사하는 것과 지방을 쓰고, 제상을 차려 올리고,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것 등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며, 그 외 어떤 존재라고 예배와 경배의 대상에 올려놓는 것을 우상 숭배로 여기는 것입니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 관습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이 같은 조상숭배 문제로 가족친족간에 커다란 대립과 갈등이 야기되었을 뿐 만 아니라, 조상숭배 문제와 결부되어 믿는 자는 가족과 친족에게서 따돌림 받고 고립되어 전도의 길이 막힐 뿐더러 복음전파에 거침돌이요, 극복해야할 과제가 되어 왔습니다. 지금도 전도하다보면 장손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야 함으로 교회에 나갈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조상제사에 분명한 성경적인 태도를 가지고 추석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1.조상숭배의 목적
조상제사에 심혈을 기울이는 데는 목적이 있으며, 이 목적이 또한 조상숭배사상으로까지 발전되고 하나의 민족종교로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1) 효의 연장사상이다. 효의 근본정신을 보답과 보은으로 볼 때, 부모생존시만이 아니고 사후에도 엄숙한 제사를 통하여 “죽은 이를 생존인과 같이 섬기듯하라”(中庸)는 전래의 교훈이며 죽은 이를 계속해서 받들어 공양함으로써 효를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를 “추양계효(追養繼孝)”라 했다. 최유환, op., cit. p. 230.

(2) 기복사상이다. 조상을 잘 섬기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오래 전래된 기복사상에서 조상숭배가 엄숙하게 시행되고 있는 것이며 임택진, 「기독교 가정의례지침」 ( 서울: 한국문서선교회, 1985), p.199. 사자(死者)를 잘 섬기면 생자(生者)를 잘 가호한다는 믿음을 지닌 기복적 사상에서 연유된 것으로 본다.

(3) 사자(死者) 공포의식이다. 죽음은 그것으로 단절이 아니고 죽은 혼은 구중천을 헤매고 다닌다고 믿어왔다. 그 혼은 죽은 날 옛 집을 찾아와서 제사음식을 먹는다는 것이다. 후손은 그 주린 혼을 달래고 먹이고 섬기는 행위를 제사를 통하여 의식화한다. 그러면 그 혼은 후손을 가호하며 해를 주지 않는다는 사자 공포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고 후손들에게 가호와 복을 내려 달라고 조상들이 초대된다는 것이 제사인 것이다. 이정익, “전통 조상제사 의례와 복” 이처럼 조상제사에는 부모를 기림과 동시에 조상숭배의 사상도 있겠지만 조상제사를 잘 지내면 자신의 삶에 윤리나 도덕성에 관계없이 무조건 복을 받는다는 기복적 민간신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산사람은 복을 줄 수 없지만 죽은 귀신은 화복을 줄 수 있다고 믿는 미신 때문입니다. 조상신이 굶주려 방황토록 두는 것은 천륜을 거역하는 죄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조상신은 재앙과 축복을 조절하는 조상이라고 믿었기에,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조상신이 노하여 땅에 있는 자손에게 해를 끼치고, 제사를 지내면 복을 주고 재앙을 쫓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면 제사를 드리는 것은 효도가 아니라 순전히 이기주의적인 행동이 들어있습니다.

무속신앙에 있어 제사의 이유는 억울한 혼백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요절한 영, 땅에서 고생만 하다가 간 많은 영은 곧 바로 저승에 가지 못하고 평소에 고생하던 곳을 배회하면서 사람을 괴롭힌다고 믿었기에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잘 달래서 저 세상으로 보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례식장에서 문상 시에 사람들이 상주와 맞절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그것은 상주가 비록 어릴 지라도 그 가문의 복을 줄 수 있는 조상신(선친신)이 반드시 상주에 깃들여서 임해있다고 생각하기에 상주는 모든 조상을 대표한다고 하여 상주에게 절하는 것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조상제사의 유래
유교는 13세기 고려 말에야 성리학과 더불어 들어왔으며 사당을 짓고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조상제사나 제례도 없었습니다. 그 후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는 국교를 고려의 불교에서 성리학으로 바꾸었으며 집집마다 가묘를 만들고 집안에 사당과 신주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장려이유는 종교적이라기 보다 구테타로 집권한 태조 이성계의 교육적 목적과 정치적으로 민심을 잡기위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우리 역사의 "충"忠과 "효"孝를 정책으로 삼아 정치의 순복 화를 이루려 함과 비슷한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조상제사를 시작한 공자의 진정한 의도는 현재 남아있는 자녀들에 대한 걱정(특히 건강)을 마시고 선친의 평안한 영면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공자에게 있어서 젯상은 조상이 먹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남아있는 자녀들이 젯상에 올려놓는 5가지 음식(대추,밤,감,배,은행)으로(공자가 직접 해석한 상비약의 의미였음)인하여 지상에 남아있는 자녀들이 부모님께서 돌아 가셨어도 이 지상에서는 5가지 상비약으로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으니 평안히 영면하십시오라는 뜻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과 같은 동네마다 약국이 없는 그 시대에 돼지고지 먹고 체하면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것이니 제사상에 놓인 5가지 음식 중 하나인 (배)를 갈아먹으면 체한 것이 갈아 앉고 괜찮으니 부모님 평안히 영면하십시오라는 이런 뜻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샤마니즘(무속)의 영향이 유교와 불교를 어느새 변질시키면서 젯상을 조상이 먹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젯상에 부모님 드시라고 술(소주) 위스키, 바나나, 조기, 국, 밥, 수저, 심지어 바나나 그리고 앞으로는 아마 피자도 ........... " 공자가 오늘의 젯상을 보면 아마 통탄할 일일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이와 같이 변질된 잘못된 제사의 영향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집에 제폐를 만들어서 그것을 집안에 모셔 놓고 그 위에 위폐를 모시는 것으로 조상과 조상신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면 다만 하나님의 주권 속에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어떤 누구도 구천을 떠도는 조상신은 없다라고 성경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과거로부터 동네에서 접신, 초혼제를 하여 혹 영매가 조상신이 접신한다고 하였을 경우 그 조상신(부모라 할 지라도)은 예수 믿는 자녀는 싫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혹은 그리스도인 앞에서 접신 행위를 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모의 신이나 조상의 신이 아닌 조상신을 가장한 악한 영-귀신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조상제사를 금지하는 이유
하나님은 사람을 육체와 영혼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영과 육이 분리되는데 이것이 곧 죽음입니다. 영이 떠나면 육체는 부패되고 썩어져 흙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하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가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은 두 길이 있습니다. 한 곳은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가 가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불신자가 가는 지옥입니다.

절대로 사람이 죽은 후 그 영혼이 구천을 떠도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을 차려 놓으면 조상귀신이 와서 먹는 것도 아닙니다. 죽은 자의 영은 절대로 이 세상으로 다시 오지 못합니다. 또 죽은 자 하고는 만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만나려는 시도조차도 성경은 일절 금하고 있습니다.

눅 16:19-31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이 지옥에 간 부자에게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했습니다. 따라서 죽은 자가 제사상을 받으러 지상에 올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귀신이 죽은 조상으로 위장해서 그 제사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귀신은 무엇입니까? 귀신은 하나님이 지으신 천사들 중에 타락한 천사들인데, 그 중에는 대장이 루시퍼 천사장며 영광스런 자리를 받았으나 하나님께 대적하다가 버림을 받고, 타락한 천사들 ⅓을 함께 끌고 추락하여 이 세상을 악으로 유혹하는 마귀와 그 귀신들이 된 것입니다.


2. 제사하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
20절에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
고린도 교회도 우리들처럼 제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제사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모든 제사는 모두 귀신에게 드리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 위해서 제사를 드린다면 그것이 곧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고 귀신에게 경배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왜 죽은 자들 위해서 드린 제사가 우상이고 귀신에게 드리는 것입니까? 제사라는 용어가 주는 의미 때문입니다. "제사"란 용어는 "예배한다" "신을 두려워한다" 라는 뜻입니다. 제사대 지방(紙榜)을 쓰는데,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쓰는데, 여기 신위(神位)라는 말은 신이 앉았다는 뜻입니다. 즉 돌아가신 아버지 조상신이 나타나 굽어 살펴 달라는 뜻이다.

위패를 모시고, 향을 피워놓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차려 놓았던들, 귀신만 기쁘게 할뿐 아니 더 나아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제사이기 때문에 그것은 곧 귀신에게 제사 하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사이거나 풍습이거나 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제사 행위는 생활 속에 자연히 귀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살게 되므로 자연히 그들에게 묶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사를 하면 그 제사를 받는 귀신이 생활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일상의 생활에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귀신과 교통하는 비참한 생활이 세속에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들은 모두 귀신에게 제사하는 정신 때문에 찾아온 귀신들의 장난입니다. 종갓집은 일년 내내 제사 지내는데 그런 가문을 보면, 영적으로 매우 혼란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어느 신문에 보니 이런 기사가 실렸다. "명절 금기 하나가 깨지고 있다. 명절 음식, 더 정확히 말해 차례상이나 제사상을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조상에 올리는 제사상을 맞춤으로 산다는 건 불경스러운 일이라 했습니다. 요즘은 전화 한 통화면 제사상이나 차례상이 집까지, 심지어 여행지 호텔이나 콘도까지 배달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도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데 죽은 조상이라고 못할 것이 뭐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엉터리 효도하지 말고 살아 계실 적에 부모님 잘 섬기는 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혹시 상 앞에 절은 했어도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말뿐이지 이미 그 영혼은 귀신에게 굴복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로 제사상 앞에서나 묘 앞에서 절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다스림을 받고 싶으십니까? 귀신의 다스림을 받고 살고 싶다면 절을 해도 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를 원하는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가문과 민족은 풍요롭게 사는 역사가 없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조상귀신을 잘 모셔 액땜을 하고 그 후손이 복을 받기 위한 것인데 제사를 드리는 민족들은 그 후손들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항상 가난한 것임을 역사 속에 분명히 봅니다.

하나님은 우상 앞에 절하는 자들에게 삼사 대까지 저주가 받게 하겠다고 십계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귀신한테 제사를 드리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하나님의 저주만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숭배자가 받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계21:8에 보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지옥)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출20:5에 보면 우상을 만들어 섬기거나 절하는 자에게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질병에 걸립니다 민25:1-9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모압의 신을 섬기다가 염병에 걸려 24,000명이 죽었습니다

3. 추도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자들은 제사하는 장소에는 참석하되 엎드려 절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경건하게 주님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형제들 간에 덕을 끼치고 화목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 믿으니 아예 제사지내기 싫다하여 가지 않거나 참석하지 않으면 가족끼리 불화가 되어 덕을 끼칠 수 없으며 가족전도가 어려워집니다.

내 의무는 잘 감당하면서 그러니까 필요한 경비를 다른 이들보다 넉넉히 지원하거나 일을 정성껏 도우면서 제사가 헛된 행위임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불신 가족과 친척들에게 복음전도를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 몇 가지를 말한다고 한다면 먼저 살아계신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극진히 봉사하는 것이다.

조상제사를 지내지도 않고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사람들은 무엇이라 하겠는가?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불신자들보다도 훨씬 더 살아계신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을 공경해야 한다. 부모님께 대한 효성과 가족간의 화목은 자신의 가정은 물론 이웃에게 큰 감화력을 준다. 자녀인 경우 부모님께 대한 극심한 효성으로 그 전도의 결실을 기대해야 할 것이고 부모의 경우 그 자녀에 대한 애정과 덕행으로 감화시킴으로써 그들을 주께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기독교가정이 모범적인 생활의 모습이 있어야겠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이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 1:5-7.는 권면을 하였다. 이것은 바로 귀한 신앙뿐 아니라 성도의 생활을 모범 있게 할 것을 권면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이와 같니 생존해 있는 우리 자신이 신앙생활을 보다 더 철저하게 해나갈 때, 신앙으로 말미암은 생활이 곧 복음 전파의 계기가 될 뿐만이 아니라, 기독교 윤리로 다져진 덕있는 기독교인들이 된다면, 전통적으로 유교문화에 있는 한국인들을 향한 전도는 훨씬 더 효과적이 될 것이다. 제사 대신에 추모예배를 드리고 조상의 묘지에 대한 정성어린 관심과 생존해 계시는 부모 및 친척 이웃들에게 예의와 기독교의 훌륭한 덕의 모습을 갖추어 생활할 때, 복음전파의 효과는 클 것이다.

다음에 믿는 신자들은 추도예배를 드립니다. 음식을 차리고 사진을 놓고 절을 하는 제사와는 달리 가족, 친척,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고인이 생전에 하신 일을 돌아보고, 이 땅에 계실 때에 부탁하신 일을 자손들이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가족들이 예배 후에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하는 하되, 제사상처럼 차리지는 않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신 후 처음 맞이하는 추도 예배 때는 교역자를 모시고 예배를 드릴 수 있으나, 그 다음부터는 가족들 중심으로 하는 것이 원만합니다. 시편이라든가 특히 다시 만나는 희망의 성경 말씀이 좋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소망은 돌아가신 분과 훗날 다시 만난다는 희망입니다. 즉 부활입니다. 세상 제사는 부활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추도예배를 드리면서 다시 만날 감격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효도관은 부모님 살아 생전에 주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드리면 약속있는 5번째 계명에 의해 후송들이 땅에서도 복 받는 역사가 있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신후 묘지를 크게 꾸미는 것은 모두 자기 안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으시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부모님 전도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가장 큰 효도인 것이다.

강원도 어느 산골에 부모님께 끔직히 효도 잘하는 예수 잘 믿는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명절 때마다 혹은 기일이 될 때마다 예수 믿는 불효자들 때문에 가정이 망했다는 둥 죽어서 제사 밥도 못 얻어 먹게 되었다는 둥 하며 핍박이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얻어 하루는 시아바지가 대청마루에서 주무시는 앞에다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상복을 입고 한참 울다가 "아버님 제사를 드세요" 주무시던 시아버지가 일어나 보니 제상을 차료 놓고 며느리가 상복을 입고 우는데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를 부르면서 이게 웬일이야 너 예수 믿고 교회 나가더니 미쳤구나 하면서 야단이었습니다. 이때 지혜로운 며느리는 "아버님께 밥상을 차려놓고 한 시간을 드시라고 해도 주무시기만 하시는데 하물며 돌아가시면 제사 밥을 어떻게 드시겠습니까?" 시아버지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더니만 이상스럽게 시아버지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예 죽은 자가 뭘먹는다는 거냐 다 부질없는 짓이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쭉 기도를 드린 것이 때가 되어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이어서 시아버지는 “그러지 않아도 제사가 다 헛일 같았는데 에이 마침 잘됐다.” 하시고 다 훌훌 떨쳐버리고 며느리 따라 교회를 나왔다고 합니다.

산 부모와 죽은 부모와는 동일시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중요 시 하는 것은 인격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은 인격신으로 믿습니다. 그런데 죽은 부모는 인격이 아닙니다. 살아 계실 때는 인격으로 존중하고 공경을 표하지만 죽은 다음에는 기억에 불과합니다. 절하는 것도 인격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죽은 부모에게 절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죽은 부모에게 절하지 않는 것은 효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사는 우상 숭배이므로 신앙이 있는 성도는 세속문화에 끌려가는 것이 되고 맙니다.

특히 옛날에 전도하다보면 예수는 믿고 싶으나 조상제사 때문에 곤란합니다. 나는 장손이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이 불가능해요. 우리 부모님들 돌아가시고 나면 예수 믿을게요. 라는 핑계가 단순한 핑계만은 아닙니다.

성경은 본문에서 조상제사를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고전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