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보통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오래 기도하는 사람들이 신앙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맞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 틀릴 수도 있습니다. 기도를 오래 하는 사람들 가운데 영적인 교만이 들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에 갇힌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영적인 교만이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자신이 얼마나 죄인이고 초라한 존재인줄 깨달은 사람은 저절로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자세(attitude)에 대해 가르쳐주신 짤막한 가르침을 묵상해 봅시다.
1. 예수님은 기도할 때 이방인과 같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과 같이 기도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예수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 중언부언(重言復言)하지 말라. 중언부언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여러 성경번역들을 살펴봅시다.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동일하게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들은 중언부언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말이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말이고 또 한자를 사용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번역본들을 참조한다면 이 말의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번역과 공동번역에서는 “빈말을 되풀이 하는 것”, 즉 “의미 없는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쓸데없는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이라고 했고, 현대어 성경에서는“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것”,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헛된 반복을 하지 말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영문성경을 한번 살펴봅시다. NIV 번역에서는 “do not keep on babbling”, NLT 번역에서는 “don't babble on and on.”라고 번역함으로 이방인들처럼 계속 재잘거리는 기도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NASB에서는 “do not use meaningless repetition.”라고 번역하여 의미 없는 반복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러한 모든 번역들을 참조해서 생각해 본다면 의미 없이 재잘거리며 반복을 되풀이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방인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교인들 가운데서도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교인들 가운데 자신의 기도의 행위가 이런 모습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둘째,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렇다면 왜 이방인들은 이와 같이 중언부언하며 기도할까요? 그것은 그들이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생각하는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19절에서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즉 뜻을 알지 못하는 일만 마디의 방언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하시고 싶은 말씀은 깨달은 마음으로 명료하게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이며 이방인과 같이
무조건 이 말이든 저 말이든 많이 하면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과 상황을 이미 자세히 알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분이십니다. 즉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그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카락의 숫자까지도 알고 계신 세밀하신 분이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아주 세밀하게 알고 계시는 전지(全知)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와 같이 이해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모든 것을 그 분의 주권적인 뜻대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믿고 인정할 수 있다면
우리의 신앙의 수준과 안목은 달라질 것이며 당연히 우리의 기도도 달라질 것입니다.
둘째,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자리에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필요를 아뢰고 구하는 것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신에게 아뢰고 그 신으로부터 자신의 욕망을 들어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아뢰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기도를 통해 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는 그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기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나누는 영적인 교제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음성을 들으며 또한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들은 하나님과 교통(communication)하고 교제(fellowship)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소원을 아뢰고 하나님께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것 이상이라는 사실이며,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복을 주시는 자판기와 같은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와 교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뜻을 구하고 그 분의 나라를 먼저 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성도들이 필요한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글을 맺으며
예수님은 재잘재잘 거리며 의미 없는 말을 반복적으로 오래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하는 종교적 행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진 필요를 구하여 얻는 것 이상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영적인 교제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눕니다. 기도는 우리의 사정과 형편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과 나누는 것이며 또한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므로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듯이 이방인과 같은 태도로 기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오래 기도함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영적으로 우월하다는 영적인 교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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