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12지파 창49:1-2, 28, 엡3:7-9
서론 : 하나님 구속사의 경륜이라 할 때
경륜은
① 일을 조직적으로 잘 계획한다.
② 천하를 다스린다.
③ 경험과 능력 그 솜씨
④ 하나님의 우주 지배, 작정과 예정, 섭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권세가 있으신 분이지만 예수님을 보내실 때 순리에 맞지 않게 그냥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믿음의 터전, 믿음의 마당을 닦으셨습니다. 아담부터 노아까지 1556년 또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490년 도합 2046년 만에 믿는 자 하나를 찾으셔서 인류를 구속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형성했던 이스라엘12지파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사의 경륜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2지파의 기원
12지파는 야곱을 통해서 형성이 됩니다.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김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적인 축복의 이름을 받았습니다.(창32:23-28) 이때부터 이스라엘 민족과 그 나라 이름들이 시작된 것입니다. 더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형성하는 뼈대가 된 12지파가 야곱의 12아들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창49:1-2, 28)
또한 계7장에 나오는 12지파는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만이 대 환난 가운데서도 반드시 보호 받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에는
① 자기 백성을 안다.(딤후2:19)
② 내가 너를 책임진다(계7:3)
③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한다(사43:1)는 뜻이 있습니다.
2. 12지파의 배경
12지파는 구원 받은 성도들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야곱의 12아들들이 성도들의 각양각색의 모형인 것입니다. 마1:1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계보를 따져 볼 때 예수님은 아브라함이후 42대 만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보통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순종의 조상 이삭, 행함의 조상 야곱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붙여진 명칭은 그냥 붙은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태어나서 100년 만에 처음으로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또 20대의 한창인 나이에 죽을 줄 d라면서도 100살 넘은 아버지의 손에 순순히 포박당하는 것이 그냥 순종하는 마음만 가지고 되는 것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 그 한마디에 이삭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서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묶여서 잡히시는 것을 이미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한 이삭의 아들이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7년 동안 일을 하면서 둘째 딸 라헬을 깊이 연모했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첫째 딸 레아를 먼저 주었습니다. 야곱이 항의하자 라반은 7년을 더 봉사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그 조건을 들어주는 대가로 라헬도 얻게 된 것입니다.
창29:31을 볼 때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총은 사랑할 총자입니다. 그러므로 레아에게 총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야곱으로부터 사랑에 대한 차별대우를 받은 사실을 암시합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간격을 줄여주고자 레아로 하여금 4명씩이나 아들을 낳게 하셨고 이를 질투한 나머지 라헬은 결국 레아와 경쟁이라도 하듯 자식을 낳는 대결을 벌임으로써 12지파가 탄생하는 배경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3. 12지파에 대한 축복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기 전에 자기 아들들을 축복하거나 유언 또는 예언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창49장을 볼 때 야곱은 그 아들들을 불러 단순히 축복만 한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분량대로 예언을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12지파에 대한 야곱이 축복한 것과 모세가 축복한 것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죄지은 지파는 축복의 대열에 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므온 지파 전체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딱 두 명 남녀가 죄를 지음으로 인해 지파 전체가 빠지게 되었습니다.
4. 12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우리는 12지파에 관해 말씀을 들을 때 출28장에 나오는 제사장의 옷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고 발견하고 깨닫게 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기 때문에 구별된 특별한 옷을 입습니다. 겉옷, 속옷이 따로 있고 에 봇이라는 겉옷이 더 있습니다. 에 봇은 앞판과 뒤판으로 구분된 조끼 같은 옷입니다. 그리고 앞판과 뒤판을 연결시킨 견대가 있는데 이것은 호마노라는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출28:6-12, 39:4-7)
에봇 두 견대에 호마노를 붙이고 그 양쪽 보석에 6개씩 지파 이름을 새겼습니다. 즉 제사장의 두 어깨(힘을 상징)에 12지파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견대뿐만 아니라 에 봇 앞에 있는 흉패에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견대는 호마노 하나에 6지파를 새겼지만 흉패에는 12지파를 상징하는 서로 다른 12개의 보석을 달고 그 안에 12지파의 이름을 하나씩 도장에 이름을 새기듯 다 새겼습니다.
흉패에 달린 보석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출28:17-20, 39:10-13)
첫째 줄 - 홍보석, 황옥, 녹주옥
둘째 줄 -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
셋째 줄 - 호박 백마노, 자수정
넷째 줄 - 녹보석, 호마노, 벽옥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법궤를 앞세워서 진행할 때 12지파가 각각 진을 치고 진행하였습니다. 고핫 자손이 법궤를 메고 나아갈 때 각 지파가 진을 치고 행한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민2:1-31)
제1대 - 유다, 잇사갈, 스불론 - 동
제2대 - 르우벤, 시므온, 갓 - 남
제3대 -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 서
제4대 - 단, 아셀, 납달리 - 북
흉패는 대제사장의 가슴에 달았는데 가슴이 상징하는 것은 사랑, 마음, 의지입니다.
즉 우리를 사랑하여 마음에 품고 잊지 않고 하나님의 뜻 속에 기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인을 새김같이 우리들을 그 마음속에 각인하셔서 어둠의 세계가 얼씬도 못하게 비켜주신 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출28:11-21, 39:6-14, 사49:15-16)
보석을 소홀히 다루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발견한 가장 희귀하고 찬란한 보석들은 대제사장의 에 봇 위에 붙였다는 사실은 바로 나와 여러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앞가슴에 새겨서 영원토록 간직하신다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론 : 12지파 내용
1. 르우벤 지파(묵시의 아들)1.(야곱의 장자)-12지파 출생순서 창49:3-4
서론 :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원은 야곱의 12아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도 이 계보를 간직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이 12아들의 출생 배경과 그들에게 허락된 야곱의 예언적인 축복 그리고 먼 훗날 또다시 모세를 통하여 이를 지파의 장래에 대해 축복하시고 그들 각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과 그 보석의 특성을 통해 각 지파의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진단케 함으로써 오늘 우리에게도 영적인 각성과 교훈의 기회를 제공해 주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순서에 따라 먼저 야곱의 장자 르우벤의 역사를 함께 점검하며 은혜 나누기로 합니다.
1. 르우벤의 출생 배경
창29:31를 보면 레아는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해 늘 괴로워했고 반면에 라헬은 남편의 사랑은 받았지만 자식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레아와 라헬사이의 심각한 사랑의 경쟁 배경 속에서 태어난 아들이 르우벤 입니다. 그 이름의 뜻(보라, 아들이라)에서 볼 수 있듯이 마침내 역전의 기회를 잡아 모든 인고의 세월을 절규처럼 내뱉는, 그리하여 그 모든 회한의 세월을 묻어버리고 당당히 승리를 선언하는 개선장군의 그것 같은 느낌을 우리는 이 외침에서 읽을 수 있지 않습니까?
레아는 사랑의 경쟁에서 소외되고 있었던 여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남편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던 그녀에게 찾아온 놀라운 기쁨의 소식이 임신이었고 그리하여 그 감격을 억제하지 못해 르우벤을 외쳤던 것입니다.
레아에게 있어서 아들 르우벤의 존재는 자기 축복의 근거와 동시에 구원의 소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신약에서 보라 아들이라 하는 이 감격의 표현이 영광스럽게도 우리 주님에게도 적용되는 사실을 발견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주,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의 선언이 바로 그것입니다.(사7:14) 이 예언이 성취되어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던 날 하나님은 이 사실을 다시 우리에게 선언해 주셨던 것입니다.(마3:16-17)
2. 르우벤에 대한 야곱의 축복
창49장에서 야곱은 자식들에 대해 후일에 당할 일을 예언합니다. 여기엔 축복도 있고 징계도 있는데 그 가운데 르우벤을 향해서는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끓음 같다는 성격진단에 대 한 말씀을 하십니다. 안전성이 없는 불안정 스러운 르우벤의 삶 전체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이런 성격으로 인해 그는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범죄 곧 아비의 침상을 범하는 죄를 짓고 모든 능력을 상실하는 비극의 길을 걷게 됩니다.(창49:4, 신21:15-17, 대상5:1-2)축복이 아닌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3. 르우벤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
광야의 아버지 모세도 야곱과 같이 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축복의 메시지를 남깁니다. 신33:6을 보면 르우벤 지파를 위한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르우벤은 살고 죽지 아니하고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은 르우벤이 비록 범죄 하였지만 르우벤 지파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다 거두어 가지는 말아달라는 모세의 강력한 열망과 기도라 하겠습니다.
죄는 우리의 모든 특권과 능력을 빼앗아 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상실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죄를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기만 하면 주님은 다시 우리를 회복시켜 살려주심을 보여주시는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자백만 하면 됩니다.
4. 르우벤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보석은 바다색으로 동요와 흔들림을 상징하는 녹주옥(에메랄드)이며, 녹주옥의 특성은 르우벤의 성격과 삶을 대변합니다(창49:2-4).
출28장을 보면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보석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르우벤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은 석류석, 곧 에메랄드입니다. 이 에메랄드의 색상은 바다 초록색인데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보석입니다. 이유는 이 보석을 간직하면 풍파가 많아지고 흔들림과 동요가 생긴다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르우벤의 역사적 사실을 토로한 하나의 전승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바다 물결처럼 동요와 흔들림이 심한 존재, 그러나 큰 기대를 가지고 태어났던 존재가 르우벤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고 범죄를 통해 모든 특권을 상실한 존재가 르우벤입니다. 그러나 크신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의 역사를 통해 재기의 길이 허락되어진 존재가 르우벤입니다. 에메랄드 같은 존재, 이 보석을 보면서 우리는 깊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존재의 유연함을 마음속에 새기는 역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 오늘 이 순간에도 파도와 물결에 정처 없이 시달리는 에메랄드처럼 오늘은 주님, 내일은 세상을 향해 집시와 같이 전진하는 성도는 없습니까? 르우벤처럼 하나님의 큰 기대를 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삶을 누리면서도 악한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 그 모든 특권과 권세를 빼앗겨 버린 존재는 없습니까? 연약해지기 쉬운 인간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은 자기의 흉패 속에 그 깊은 가슴 속에 이 보석을 간직했습니다. 곧 르우벤 지파를 대제사장은 가슴에 품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자주 흔들리고 넘어지고 자주 쓰러지는 르우벤 지파 같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품고 기도하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르우벤 지파의 자리에서 떠납시다. 에메랄드 보서고 멀리 합시다.
(그 첫 번째로 야곱의 첫째 아들(창29:32)이었던 르우벤과 르우벤지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르우벤은 히브리어로 ‘보라, 아들이다’라는 이름의 뜻을 지녔고, 가장 희망적인 첫아들로서 축복 권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형제들을 설득하여 배다른 아우 요셉을 살려주었던 너그러운 사람(창37:18-24), 가나안 흉년으로 애굽에서 양식을 구하는 과정 중 베냐민의 안전 귀향을 약속하는 의미로 자신의 두 아들을 볼모로 삼겠다고 할 만큼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창42:37).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통간한 죄를 범하여(창35:22) 장자 권을 박탈당하였습니다(대상5:1).
이 때문인지 그의 후손들에게서는 사사도, 왕도, 예언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야곱의 유언 속에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창49:4)”라는 말 속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르우벤을 시조로 그의 아들인 하녹, 발루, 헤스론, 갈미의 후손들로부터 하나의 지파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르우벤 지파입니다(민26:5-11). 출애굽 할 때 르우벤 지파의 족장은 ‘엘리술’이었으며(민1:5,7:30-35), 그 때 지파의 인구수는 남자만 46,500명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 후 38년 뒤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의 인구수는 43,730명이었다고 기록됩니다(민26:7).
르우벤 지파는 므낫세 반 지파, 갓 지파와 함께 요단 동편 땅에서 하나의 단을 쌓아 서편지파들로부터 오해를 받았으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단이라고 해명하였고, 그 단의 이름을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는 뜻으로 ‘엣’이라 칭하였습니다(수22:10-34).
이들은 하갈 사람과의 전투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여 승리를 경험하였고(대상5:18-22), 다윗 왕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 일에 군사를 보내어 지원하기도 하였으나(대상12:37-39), 분열 왕국 시대에 예후의 통치 때에는 아람 왕 하사엘의 지배를 받았습니다(왕하10:32-33). 이처럼 르우벤 지파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모세에게 축복의 말에서도 종족의 수가 보존되는 축복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신33:6).
성도 여러분, 르우벤은 아버지를 노엽게 하는 죄를 지음으로써 장자 권을 박탈당하고 후에 그의 지파는 큰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장자 권을 지켜 후대에도 말씀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축복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시므온(들음, 얻음) 지파2. 창49:5-7
1. 출생 배경과 이름의 뜻
시므온의 뜻은 들으셨다. 들으신다. 라는 뜻입니다. 레아가 총이 없는 것과 레아의 간구함을 주께서 들으시므로 아들을 내게 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했습니다. 레아는 장남을 낳고서도 남편 야곱의 마음이 아직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열심히 하나님 앞에 기도를 계속하였던 것입니다. 마침내 그 아들을 낳으면서 그 여인은 주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인하여 내가 부르짖었더니 나의 기도를 마침내 들으셨도다. 그래서 그 아이가 바로 시므온이며 시므온 지파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서 그 역사적 경험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단어를 뽑아보면 보고와 듣다. 라는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그 백성들의 고통을 보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출3:7) 살아계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나의 눈물, 나의기도, 나의 괴로움과 아픔을, 고통을 보십니다. 유혹에 빠지려고 하는 나를 보십니다. 범죄 하고자 하는 나를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십니다. 기도의 힘이 없는 사람들 기도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 깨어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들 시험에 들어 세상 생활에 너무 괴로워서 기도가 안 나오는 사람들에게 인사 할 때마다 시므온 하세요. 주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 할 때 복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2. 모세의 축복
신33장의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모든 지파를 축복하는 가운데서 유일하게 생략된 지파가 시므온지파입니다. 물론 이름은 남았지만 시므온은 잊혀진 지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간주하지 않으시는 이 모습은 인간을 향한 최대의 형벌입니다. 그들은 당연한 논리를 가지고 처음에 출발했습니다. 비 신앙 적이고 비 성경적 방법과 수단을 간구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처절한 징계를 모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지 않으시는 이것은 벌 중의 벌입니다. 내가 주님을 안다고 하지만 내가 주님을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이 과연 나를 아시는 것이 문제입니다.(눅13:25-27)
3. 야곱의 축복
시므온 지파에게 별명을 붙인다면 잔해하는 기계입니다. 시므온과 레위 두 사람은 똑같은 사건에 같이 행동했기 때문에 둘을 같이 언급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의 질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기대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내 주변에 참되고 경건한 신앙의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인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민1:22-23)를 보면 시므온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5930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가 흘러가면서 이는 시므온의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22300명 이었더라(민26:14)했습니다. 여기에서 복수와 증오의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외면하시는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복수, 살인, 미움 등 잘못된 감정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할 때 이 지파는 심각하고도 어려운 고난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소수의 인구만이 밀집해 살고 나머지는 여기 저기 흩어져 12지파 가운데서도 고난의 길을 면할 수가 없었던 지파가 바로 시므온 지파입니다.
4.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시므온 지파의 보석은 강하지만 한번 깨지면 여러 갈래로 갈라져버리는 남보석(사파이어)입니다.(출28:17-20)
히브리어 사파이어는 단어의 어근이 됐는데 흠이 갔다. 라는 뜻입니다. 이 보석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질기고 딱딱하여 단단합니다. 한 번 갈라지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성격을 가진 보석이기 때문에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의 것과는 달리 옛날의 사파이어는 아주 어둡고 짙은 색상의 청색 보석이었습니다. 시므온 지파의 역사적 삶 전체가 그러 했듯이 좋은 가능성을 지닌 보석이지만 쉽게 갈라져 버리고 별 쓸모없이 끝장 날 수밖에 없는 보석입니다.
5. 영적 교훈
12지파 가운데 하필이면 이러한 지파가 섞여 있을까요? 그것은 오는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시므온처럼 살아 갈 어떠한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또한 거울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출발을 하고도 나쁘게 끝맺음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내가 아닌지 생각해보고 회개를 통해서 시므온 지파의 길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지난시간 르우벤 지파에 이어, 이번 주에는 레아가 낳은 야곱의 둘째 아들 시므온과 시므온 지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므온이란 이름은 ‘기도를 들으심’을 뜻합니다(창29:33).
시므온은 혈기가 매우 급한 성격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성품은 세겜에 의해 누이 디나가 치욕을 당하자 다른 형제들과 함께 복수하기 위해 세겜 사람들을 모두 할례 받게 한 뒤 상처가 낫기를 기다리는 동안, 레위와 함께 그들을 공격하여 남자들을 죽이고, 재물과 가축을 빼앗았으며, 여자와 아이들을 사로잡아왔던 것(창34:13-29)에서 알 수 있습니다.
칼을 들고 사람을 죽였던 이 사건으로 인해 시므온은 야곱의 책망을 받았으며(창34:30),
후에 야곱이 죽음을 앞두고 아들들을 축복할 때, ‘싸움을 좋아하며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일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스라엘 지파들 속에서 흩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습니다(창49:5-7). 한편 시므온은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 갔다가 애굽 총리가 된 요셉이 베냐민을 데려오라 했을 때, 인질로 잡혀있기도 하였습니다(창42:24,43:23).
시므온은 여무엘, 야민, 오핫, 야긴, 스할, 사울의 후손을 통해 시므온 지파의 조상이 되었지만, 시므온 지파는 그 세력이 매우 미약하게 되어갑니다. 이것은 시므온지파의 인구수나, 토지분배, 모세의 축복 등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는 그 자손이 59,300명으로 세 번째로 많은 수였으나, 가나안에 들어갈 때는 22,200명으로 가장 수가 적게 되었습니다(민1:23,26:14). 이것은 광야 생활 마지막에 요단 동편에서 바알브올 우상을 섬기고 음행하는데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재앙을 받은 결과이기도 합니다(민25:14).
또한 가나안에 들어가 토지를 분배할 때에, 유다 지파에게 분배될 땅의 일부를 기업으로 분배받게 되었습니다(수19:1-9,대상4:24-33). 유다지파가 그 인구수에 비해 유난히 많은 제비를 뽑은 반면, 시므온 지파는 우상 숭배로 인해 지파의 반수이상이 줄었기에 많은 땅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또 다시 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모세가 12지파를 축복할 때(민33) 시므온 지파는 언급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시대에 이르러서는 유다지파의 영토에 흩어져 지파의 영토도 상실하고 지파자체도 이스라엘에 동화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시므온은 칼로 사람을 죽이고 그 지파는 우상숭배를 하여 하나님이 주신 기회도 붙잡지 못한 채, 그 세력이 미약해져버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깨닫고 행하여 온전한 축복을 받는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참고사항*
3. 레위지파(연합, 친함)3. (구약-제사장및 봉사) 창49:5-7. 신33:8-10
이번 에는 레아의 셋째 아들 레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위라는 이름은 '연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아들을 많이 낳아서 야곱과 연합하려는 레아의 심정을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훗날 레위는 그 이름의 뜻대로 시므온과 연합하여 히위 족속을 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성품이 거칠었고 일과 행동이 잔인하였습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이 세겜 성에 거할 때, 레위의 누이 디나가 히위족속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창34:2). 진노한 시므온과 레위는 아버지 야곱에게는 알리지 않고, 세겜 성 사람들에게 할례를 하면 결혼을 승낙하겠다고 전한 뒤, 그들이 할례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중에 세겜 성에 쳐들어가 칼로 성 안의 남자를 모두 몰살하였습니다(창34:14-26). 이 사실을 알게 된 야곱은 임종하는 침상에서 시므온과 레위에게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라(창49:5-7)'는 저주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주 받은 레위지파는 후에 하나님 편에 서서 일함으로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광야 생활 중 아론과 함께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일삼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모세를 원망했고, 이에 모세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외침에 레위자손들은 모두 모였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형제와 친구, 이웃을 칼로 도륙하였습니다(출32:26-28). 레위지파의 행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들이 온전히 하나님 편에 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충성의 보상으로 장자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제사장 직분이 레위의 아들들에게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지파를 구별하시면서 '레위 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서 난자를 대신 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민3:12)'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죄인일지라도 회개하고 그 행위를 돌이키면, 저주까지도 축복으로 바꾸어[전화위복(轉禍爲福)] 주신다는 사실을 레위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죄인이지만,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서 온전히 회개하고, 충성하여 장자의 축복을 받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유다 지파(찬송, 찬양)4. 창49:8-12, 신33:7
이 유다지파는 이스라엘 지파를 형성하는데 가장 영광스러운 역할을 차지했습니다. 유다지파가 거처했던 곳은 극 남단으로 에돔 지경까지 또 남으로는 신 광야까지였습니다.
1. 유다의 출생 배경과 그 이름의 뜻
레아는 유다를 낳으면서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라고 외쳤습니다.(창29:35) 유다의 이름에는 찬송함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자는 영광스러운 유다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보편적인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 이래로 히브리 백성들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유다라고 짓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는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이 다음 세대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2. 유다 지파에 대한 야곱의 축복
야곱의 축복은 단순히 아들들을 향한 바람이나 서원의 축복이 아니라 그들이 후일에 당할 일에 대한 예언적인 축복이었습니다.(창49:1)
야곱은 유다에게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 지라. 라고 축복하였습니다.(창49:8)
이는 유다라는 이름의 뜻이 찬송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야곱은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라는 축복을 했습니다.(창49:8) 이는 유다지파가 비록 맏아들은 아니지만 후일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강력한 권위와 힘의 상징인 사자로 비유되고 있습니다.(창49:9) 이는 우주와 만유의 통치자로 오실 메시아가 사자로 상징되는 유다지파를 통해 오심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습니다.(히7:14, 계5:5)
3. 유다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
모세가 12지파를 축복하는 장면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야곱이 12아들을 축복할 때에는 맏아들인 르우벤 부터 축복했지만 모세가 축복할 때에는 네 번째인 유다지파를 가장 먼저 축복한 사실입니다.(신33:1-) 모세의 축복은 유다지파의 찬양을 하나님께서 기쁘고 즐겁게 들으시며 이 백성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들을 승리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아름다운 약속이었습니다.(신33:7)
4. 유다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유다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은 홍보석입니다.(출28:17)
홍보석에는 아주 붉고 풍성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붉다. 라는 말은 단순히 붉은 것이 아니라 아주 화려하게 붉은 상태를 말합니다. 붉은 색은 실질적으로 장자의 복을 누렸던 유다를 상징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인해 왕권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5. 유다지파를 통한 영적 교훈
하나님께서는 12지파 중에서 유다지파를 세우시고 이 지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구원과 속죄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삶이 승리의 열매가 되고 감사의 열매가 되어 하나님 앞에 날마다 찬송하는 삶으로 변화하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계4:11) 이러한 하나님께서 내 삶의 분명한 목적과 뜻을 이루기 위해 나를 주장하시고 내 삶 속에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성도는 고통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찬송은 믿음 가운데서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도 예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의 삶 전체는 찬송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를 통해서 찬송의 가치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찬송하는 유다지파에겐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있었고 가는 곳에는 언제나 승리만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생활은 변화되고 감사의 열매가 맺혀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이 좋을 때만 아니라 고난 받는 중에서도 찬양을 해야 합니다.(히13:15)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늘 모든 생활에 믿음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는 산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엡5:19, 시57;7)
(지난시간 시므온 지파에 이어, 이번 주에는 레아가 낳은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와 유다지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다의 이름은 ‘여호와를 찬송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창29:35) 그의 상징은 ‘아기사자’입니다(창49:9). 유다는 넷째임에도 불구하고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가 죄를 지어 장자 권을 박탈당함으로 인해 장자가 된 사람입니다. 유다는 비교적 온화하여 요셉을 죽이려는 형들의 제안을 바꿔 상인들에게 팔도록 설득하였으며(창37:26-27), 애굽에 곡식을 사러갈 때에도 아버지 이스라엘을 설득하여 베냐민과 함께 애굽에 갈 수 있었습니다(창43:1-10). 또한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발견되자, 형들을 대변하는 대변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 사람이었습니다(창44:18-34).
후에 유다는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그의 12아들에게 한 축복과 예언을 통해 형제의 찬송을 받는 왕이 될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실 것을 들었습니다(창49:8-12). 이에 따라 그는 다윗의 조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마1:2,눅33:3,히8:7-13). 또한 모세를 통해서는 지파들의 지도자가 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승리할 것이라는 축복을 받기도 했습니다(민33:7).
유다는 엘, 오난, 살라 등의 후손을 통해 유다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유다지파는 애굽에서 나왔을 때, 그 자손이 74,600명으로 가장 많은 수였으며(민1:27), 가나안에 들어갈 때는 76,500명으로 다소 증가하였습니다(민26:19-22). 또한 유다지파는 가나안 땅의 분배 시, 그 인구수에 비해 많은 제비를 뽑아 많은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즉, 분배받은 가나안 땅의 경계는 동쪽으로는 사해, 서쪽으로는 대해(지중해)이며, 북쪽 경계는 요단 하구에서 시작하여 힌놈의 아들 골짜기를 거쳐 지중해변에 있는 얍느엘을 연결하는 지역이고, 남쪽 경계는 사해 남단에서 가데스 바네아를 거쳐 애굽 시내를 연결하는 지역입니다(수15:1-12). 가나안 남쪽 지방은 시므온 지파가 분배받았지만, 시므온 지파는 점차 유다에 동화되어 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유다지파는 인구수에 있어서나 땅 분배에 있어서나 많은 축복을 받은 지파였습니다. 동생(요셉)의 생명을 귀히 여기고, 위기에서 동생(므낫세)을 위해 대변하였던 유다처럼 온화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축복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5. 단 지파(신원)5. 창30:1-8, 49:16-17, 신33:22
1. 출생 배경과 이름의 뜻
자녀를 낳지 못했던 라헬은 남편에게 그의 시녀 빌하와 동침하기를 제안 합니다 이것은 물론 부당한 방법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적인 계획과 육신적인 뜻이 마침내 성공합니다. 라헬은 계획대로 진행하여 드디어 빌하를 통해서 아들을 얻게 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단입니다. 성경 아래 해석을 보면 단은 억울함을 푸심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하나님이 나를 판단 하셨다는 뜻입니다. 다니엘과 같은 이름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에서 엘은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이지만 단이라는 이름은 판단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라헬은 드디어 하나님이 나의 원통한 심정을 아시고 이 모든 상황을 판단해 주셨다고 생각하고 그의 이런 생각 그대로 아들의 이름을 판단이란 뜻을 가진 단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2. 야곱의 축복
창49:16-18 단이 그 백성을 심판 하리라는 것은 그리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자기의 백성을 닥치는 대로 친다는 심판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은 언제나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적극적인 개념은 공의로 무엇을 판단하여 올바르게 해방시킨다는 개념과 또 하나는 복수를 한다는 징계의 개념으로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창49:16-18에서 첩경의 독사처럼 남들에게 유해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대단히 불길한 징조를 이 지파에게 예언한 것입니다. 사사기에 기록된 단 지파의 모습은 전투하는 모습 또한 민족전체에게 우상숭배의 범죄를 하도록 유도하는 지파입니다.
왕상12:25-30에서 단 지파는 우상숭배를 유도하는 지파 일 뿐만 아니라 살고 있는 지역자체가 우상숭배의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삿16:1-21을 보면 단 지파 출신의 사사 삼손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판단을 통해서 인생을 비극적으로 마칩니다. 그러나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삼손도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다시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말씀을 야곱이 단에게 남긴 예언 창49:18과 연관해 보시기 바랍니다.
3. 모세의 축복
신33:22에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 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 했습니다. 단 지파의 별명은 뱀 또는 사자입니다. 그들이 가진 힘을 궁극적으로 사용할 때는 사자의 용맹하고 날쌘 힘을 연상하지만 그 힘이 잘못 사용되어 질 때는 남을 파괴하고 괴롭히는 뱀에 비유 될 수 있습니다. 단 지파가 가장 잘하는 것은 전쟁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지파는 승승장구 계속하여 번성하지는 않았습니다. 단 지파의 숫자는 역사가 흘러가면서 점치 줄어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계보를 찾아 올라가면 단 지파 출신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결국 계7:5이하를 보면 하나님이 역사의 마지막 환난 때에 단 지파의 언급이 없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 주님께서 무익한 종아 - 단 지파입니다.
4. 단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출28:20에 녹 보석이 단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입니다.
'정복과 파괴자'를 뜻하는 녹 보석(베릴)은 단 지파를 상징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긴 측 병사들이 달고 다니던 보석입니다. 이것은 좋은 의미로 정복자를 뜻하지만 정복을 당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힘을 발휘해서 번영하고 확장하고 성취하고 빼앗고 늘어나는 등 좋은 가능성을 볼 수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그늘진 운명의 마지막을 보게 됩니다. 우상숭배를 행했던 단 지파는 결국 구원받은 12지파 명단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5. 영적 교훈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하나님은 단 지파와 같은 지파를 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도 단 지파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쓰는 사람들의 말로는 얼마나 불행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한 승리자 정복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방법과 수단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과 계획에 의해서 무엇을 성공한다 해도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결국 실패라는 것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잔꾀, 수단, 방법 다 버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성령님의 뜨거운 역사로 이룩된다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깨달아야 하겠습니다.(잠21:4)
6. 납달리 지파(나의 씨름)6. 창49:21, 신33:23
1. 납달리의 출생배경과 이름의 뜻
야곱의 두 아내인 라헬과 레아는 남편의 호의를 사기 위해서 자기의 시녀까지 동원하여 아들 낳는 경쟁을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드디어 라헬의 시녀 빌하가 아들 납달리를 낳음으로써 라헬은 기뻐하면서 형과 경쟁하여 이겼다고 했습니다.(창30:7-8) 즉 납달리란 이름의 뜻은 경쟁하다. 씨름하다. 누구와 겨루다. 라는 뜻입니다. 경쟁 심리는 좋은 것이지만 주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경쟁해야 합니다. 육의 생각과 육신의 욕망에서 경쟁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는 악의 경쟁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아들을 낳기 위한 경쟁에서 라헬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부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계획을 관철시키려 했습니다.
반면에 역사 속에는 좋은 의미의 선한 경쟁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생활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더 잘 믿어보려는 경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구원, 영생의 복을 도, 많이 전하려는 경쟁, 기도를 더 많이 하려는 경쟁, 주의 몸 된 교회를 남보다 헌신적으로 받들겠다는 경쟁, 성경을 많이 보려는 경쟁은 얼마나 아름다운 경쟁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향한 선한 경쟁을 게을리 하지 말고 적극적인 신앙의 경쟁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2. 납달리 지파에 대한 야곱의 축복
야곱은 창49:21을 볼 때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 라고 납달리 지파를 축복했습니다. 따라서 납달리 지파의 별명은 암사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암사슴은 모든 짐승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짐승 중에 하나입니다. 이 암사슴이 산등성을 가러질러 그 아름다운 자태를 과시하며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롭게 신나게 달려가겠습니까?
시18:33과 합3:19을 볼 때 암사슴의 이미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인 자유를 상징하고 있습니다.(요8:32, 딤전2:4, 히10:26)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서야 할 길에 서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은 암사슴 같이 복음의 발을 가지고 목적을 잃지 않고 힘차게 달려갔습니까?(사52:7, 나1:15, 롬10:11-15) 주님의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얼 만큼 복음을 위해서 달려갔습니까?
전도를 힘차게 해야 됩니다.(사61:1, 막1:36-39, 눅4:42-44) 또한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게 될 것이라는 야곱의 축복은 그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납달리 지파가 살고 있는 지역을 통해서 가장 아름다운 구원, 영생의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파하시고 제자들을 불러 세우셨던 것입니다.(사9:1-7, 마4:12-25)
3. 납달리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
모세는 신33:23을 볼 때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찌로다 라고 납달리 지파를 축복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가 팔레스타인 땅을 분할 할 때 납달리 지파가 차지한 지역은 아셀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 사이의 갈릴리 바다가 있는 지역으로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이었습니다. 갈릴리를 중심으로 상업지대가 성행하게 되고 기후가 좋아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납달리 지역인 것입니다.
4. 납달리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출28:20에 여러 가지 보석 중 납달리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은 벽옥입니다.
이 보석은 약간 푸른빛을 내면서 노란색을 띠고 있고 대단히 투명하면서도 아주 화려한 색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4:2-3, 21:11을 볼 때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유리바다가 있고 또한 벽옥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즉 벽옥은 하늘나라를 상징하는데 쓰여진 보석입니다.
또한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납달리 지역에서는 주의 복음이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의 열매를 많이 거두게 되었습니다. 납달리와 벽옥의 보석은 천국의 확신을 가져다주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는 벽옥은 납달리 지파를 상징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납달리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5. 영적 교훈
납달리 지역은 잘못된 출생의 배경을 가진 사람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었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가장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로 예수님께서는 이 지역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들을 많이 행하시고 이 지파가 살고 있는 지역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출신은 천하더라도 벽옥처럼 아름다운 신화를 창조하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납달리 지파를 통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영접하시고 주의 말씀을 환영하며 이 말씀 앞에 응답함으로 신령한 납달리 천국의 상징이고 천국을 차지하는 벽옥 같은 보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12지파 중, 단과 납달리 지파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들 두 지파의 시조가 된 단과 납달리는 야곱의 아내였던 라헬이 야곱에게 준 여종 빌하에게서 낳은 아들들입니다. 라헬은 자식이 없자 그의 언니이자 야곱의 부인인 레아를 투기하여 자신의 여종을 통하여서 아들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게 여종 빌하를 통해 얻은 번째 아들이 단이고 두 번째 아들이 납달리 입니다.
먼저 단은 빌하를 통해 얻은 첫아들이자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는 다섯 번째 아들입니다. 그의 이름에는 ‘판단’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야곱은 임종 때 단에 대하여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창49:16-17).’고 예언하였습니다. 예언과 같이 단 지파는 사사시대에 가나안 최 북방인 라이스를 점령 하는 등(삿18:27-29) 전쟁시 돋보이는 역할을 하였지만, 라이스로의 이주 도중 미가의 우상을 약탈하고 결국에는 우상숭배에 물들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삿18:30). 신앙의 분별력 없이 우상숭배와 배반에 물들었던 단 지파는 결국 흩어지고 12 지파 중 하나님의 인 맞은 자의 수 14만4천에서 제외되게 됩니다.
다음으로 야곱의 여섯 번째 아들인 ‘경쟁’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납달리는 행동이 재빠른 자였습니다. 그는 행동이 재빨라 애굽 왕 앞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야곱의 임종시 축복을 받았으며, 그들의 지파는 분깃으로 비옥한 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사람들을 그대로 그 땅에 머무르게 함으로(삿1:33) 결국 그들 자신도 점차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땅은 늘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고 결국엔 가장 먼저 앗수르 왕에게 포로로 끌려가는 지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왕하15:29).
오늘 간략히 알아본 단지파와 납달리 지파는 우상숭배라는 죄를 범함으로 내쳐지고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의 땅에 가나안 인을 그대로 내버려둔 납달리 지파도 결국에는 우상숭배에 물들게 된 것을 볼 때에 오늘날 우리도 세상을 주저 없이 받아들이고 적당히 타협하려고 하는 것이 우상숭배의 얼마나 무서운 시작인지를 깨달아야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7. 갓(행운) 지파7. 창49:19, 신33:20-21, 출28:18
1. 갓 지파의 출생배경과 이름에 담긴 의미
레아는 이미 네 명의 아들을 낳았지만 라헬이 시녀를 통해서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자 아들 낳는 경쟁에서 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레아는 자신의 시녀인 실바를 통해서 아들을 얻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갓입니다.
갓이 출생하자 레아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기쁨이 있었고 이아들을 축복하고 싶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아들을 통해서 자신과 자신의 가문이 축복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레아는 갓이 태어났을 때 복되도다. 라고 말하고 자신의 문자적 의미는 군대를 뜻하며 뒤를 따르다. 추격하다. 라는 뜻도 됩니다. 레아는 아들 낳는 경쟁에서 라헬의 잔꾀, 그 수단과 방법을 따라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갓을 통해서 갓 지파를 형성하게 하셨고 갓이 군대처럼 왕성하기를 바라면 군대라는 별칭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갓의 후손을 통해서 갓 지파를 군대처럼 왕성한 지파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갓 지파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갓 지파처럼 왕성하고 전투적인 모습으로 복음을 위해서 싸우는 하나님의 전사들이 있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처럼 구약시대의 12지파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여러 가지 이미지와 성격을 대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표하는 숫자를 사용할 때마다 항상 12이라는 숫자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대표하는 완전하고도 풍족한 숫자의 개념이 12이라는 숫자로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에게 12지파 가운데서 특별히 갓이라는 지파의 형성을 통한 하나님의 교훈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도 갓 지파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앞으로 꼭 있어야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2. 야곱의 축복
갓에 대한 야곱의 축복 중에서 박격을 받는다는 것은 대들어 몰아냄을 당하지만(창49:19, 시62:2)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한다는 말씀은 일단 외세의 침입을 받지만 다시 그 뒤를 추격해서 승리한다는 갓 지파의 전투적인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군대라는 이 별칭이 유래된 최초의 배경은 라헬과 레아의 아들 낳는 경쟁으로 레아가 다시 추격하여 승리한다는 인간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으로 후일에 갓 지파가 떨칠 세력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파를 끊임없는 승리의 기질과 전투적인 기질을 가진 지파로서 계속적으로 축복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갓 지파와 같은 용기 있는 지파를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용기 있는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이며 민족전체가 하나의 군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세상을 이기기 때문에(요일5:4) 믿는 성도는 신앙에서 어둠과 싸워 승리 하겠다는 전투적인 기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시적으로는 추격을 받기도 하고 어두움 골짜기를 지나기도 하지만 결국 승리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위대한 신앙을 지닌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신앙적인 전투에서 용맹과 신실함과 용기를 가지고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끈질긴 의지를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로 갓 지파입니다.
3. 갓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
갓 지파가 전투에서 승리하여 확장되었던 원인은 갓이 강해서만은 아닙니다. 갓을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여호와는 전쟁이 능하시고 용사라고 했습니다.(시24:8, 출15:2-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능력을 허락해 주셨으며 축복된 거룩한 말씀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모세는 갓 지파가 승리할 수 있도록 그들을 더욱 능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축복했습니다.(신33:20-21)
갓을 암사자로 표현한 말씀에서 암사자와 같이 엎드려 공격목표가 나타나면 달려들어 팔과 정수리를 찢는 모습에서 갓 지파가 지닌 맹렬성과 용기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이러한 맹렬성과 용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신령한 말씀의 능력을 받아서 믿음을 가지고 모든 생활에 이김의 역사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4. 상징하는 보석
갓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은 홍마노입니다. 갓 지파는 군대를 뜻하며, 용맹하고 담대한 성격처럼 강하고 견고한 홍마노(다이아몬드)가 지파보석입니다.
성경은 강력함, 단단함과 같은 이미지를 설명하려고 할 때 언제나 다이야 몬드를 이용했습니다. 본래 다이야 몬드라는 말의 뜻은 견고하다는 뜻으로 역사적으로 다이야 몬드는 사람들의 용기와 충성스러움 혹은 승리를 상징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용기와 충성과 승리의 상징이 갓 지파입니다. 오늘 우리는 각자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고 어둠의 전쟁터를 향해서 출전 나팔을 불며 전진하고 있는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승리하고 있는 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슴 속에 12제자와 같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그의 삶을 품고 계십니다.
5. 영적교훈
우리는 지금 어떠한 보석으로 존재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가슴 속에 있는 나를 바라보시며 너는 홍마노 다이야 몬드처럼 강하여 믿음의 깨지지 않으며 맑고 아름답다 고 하시는 칭찬을 받고 있습니까? 우리를 능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분은 주님밖에 없으므로(요15:5)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강력한 능력을 받아 세상에서 승리하는 갓 지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갓의 생애와 성격에 대하여 예언한 성경 구절을 보면,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창49:19)”라고 기록되어 있다. 갓은 아마도 유혹하는 세력에 패하여 물러간 낙심자의 표상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위험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마침내 승리를 거두어 새 예루살렘의 진주 문으로 들어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이 지파의 성격은 시종 격정적이고 호전적이었다. “다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라. 그 얼굴을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대상12:8)”. 갓 지파의 열 한 용사들에 관하여 주어진 생생한 묘사는 이와 같은데, 그들 가운데 가장 나약한 자가 100명의 병졸과 겨눌 수 있고, 큰 자는 일천 명과 싸울 수 있는 용사들이었다. 그들은 요단 물이 넘쳤어도 겁내지 않고, 가장 큰 치욕과 곤욕의 시기에 다윗의 군대에 가담한 자들이었다(대상12:12-13). 하지만 무엇보다 갓 족속이 그들이 싸운 큰 전투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저희가 싸울 때에 하나님께 의뢰하고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들으셨다(대상 5:20)”고 하는 대전투 기록에서 볼 수 있다.
베드로가 자신이 걸어가던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셨다(마14:30,31)”. 마찬가지로 지난날에 승리해 왔던 시험에 굴복 당하고 있음을 깨닫는 사람은, 갓과 베드로처럼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만 한다면 즉시 구원함을 받을 것이다.
주께서는 낙심 자에게 다음과 같이 단 한 가지만을 요구하신다.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렘3:13)”.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요일1:9), 우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사1:18). 이것은 마지못해 하는 대우가 아니다. 주께서 그들을 직접 고치시고 즐거이 사랑하시는 것이다.
과거에 죄의 용서가 주는 화평과 기쁨을 맛본 사람이 어떻게 이런 용서와 사랑의 제의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도성으로 들어가는 문 하나에는 갓의 이름이 기록될 것이다. 그는 "군대의 박격"을 받아 한때 정복당했으나, 마침내 승리를 거둔 자였다. 144,000명 가운데 12,000명이 역시 갓의 이름 아래로 행진하여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들은 낙심과 패배에서 일어나, 자신들의 실수를 시인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자랑하면서, 어린양의 피에 그들의 두루마기를 빨고 승리한 자로, 임마누엘의 깃발 아래 하나님의 도성으로 들어가서 영생을 누릴 사람들이다(계7:14).
인간의 마음이 신의를 배반했거나 사랑과 우정을 버린 자를 본래대로 다시 회복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배역(背逆)을 치유하실 뿐 아니라, 즐거이 사랑하신다. 그분은 또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사43:25)"고 하신다.)
8. 아셀(기쁨, 행복) 지파8. 창49:20,신33:24-25
야곱의 12아들 중 아셀 이란 이름의 뜻은 기쁨입니다.
이아들은 비록 야곱의 아내인 레아의 몸종 실바가 낳았지만 레아를 대신하여 낳았기 때문에 레아는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라고 고백했고 이러한 고백이 담긴 이름이 바로 아셀 입니다.(창30:13) 그런데 기쁨이라는 우리말을 히브리 원어에 가깝게 번역하면 축복이라는 말이 적당합니다. 즉 참 복되도다. 는 뜻입니다. 이 축복 된 지파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형성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셀 지파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축복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야곱과 모세의 축복 내용
대단히 풍성함을 느끼게 하는 창49:20의 야곱의 축복은 후일에 역사에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아셀 지파의 땅에서 얻어지는 곡물이 왕의 식탁에 식물이 됨을 예언한 것입니다.
아셀 지파는 팔레스타인 북부 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곳은 사막인 팔레스타인의 남쪽 지방에 비해 비옥합니다. 이 사실은 아셀 지파가 대단히 풍성하고 기름진 축복을 받은 지파라는 것을 말합니다. 눅2:36-39에 의하면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 라는 선지자가 시집 간지 7년 만에 과부가 됩니다. 과부가 된지 84년 되는 때에 주님이 태어난 지 8일째에 성령님을 통해서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이것은 창49:20의 예언대로 신령한 열매가 되어 주님의 상에 자신을 바친 것입니다. 아셀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의 내용은
1) 다자 한 복을 받습니다.
2) 형제에게 기쁨, 즉 축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셀 지파도 축복을 받지만 다른 형제에게도 축복이 되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3) 그 발이 기름에 잠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4)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견고함과 튼튼함을 나타냅니다.
5)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샘에서 샘물이 계속해서 솟아나듯이 그러한 축복이 아셀 지파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아셀 지파의 별명은 곡물창고이고 지금까지도 아셀 지파를 상징하는 그림은 풍성한 곡물입니다. 아셀 지파의 이 풍성한 복을 받기만 하면 우리도 그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복을 나누어 주는 신령한 아셀 지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아셀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기쁨과 축복'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셀 지파의 보석은 '영광과 축복'을 의미하는 호마노이며, 이것은 본래의 뜻은 불꽃이고 짙은 붉은 색입니다. 고대의 히브리 민족과 중동 사람들에게 이 보석은 영광과 축복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대의 중동에서는 이 보석을 소유한 사람과 함께 있는 사람도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셀 지파를 호마노라는 보석으로 상징시킬 때 이 지파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하시는 교훈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아셀 이라는 말은 발음 그대로 아면 아쉐르, 입니다. 시편1:1에서 복 있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아쉐르, 입니다. 여기서 복 있는 사람이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한 인격,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경건한 삶, 인격적으로 바르게 사는 삶이 복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옛 사람들이 즉시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아셨기에 물질적인 축복을 통해서 복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후 그것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보다 높은 수준의 신령하고 영적이고 인격적인 축복을 가르치십니다.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마5:3-10)에서 복의 개념에 대하여 설명하고 계십니다. 거기에는 육신의 복인 물질적인 축복은 없습니다. 이 말씀에 나타나는 복은 진정한 축복인, 인격적이고도 영적인 복을 의미합니다.
실로 하나님께서 아셀 지파를 선택하셔서 복의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의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육신적, 물질적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보다 더 높은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복을 받았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께서 자신들만 복을 주셨다고 생각하여 그 복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복을 자신들만이 묻어두고 이방인을 멸시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복을 주셨는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차원에서 같은 불행이 계속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받은 축복을 가지고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물질적인 축복을 받았을 때 그것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구제입니다. 영적인 축복을 나누는 것은 바로 전도입니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바로 선교와 구제입니다. 복을 받아도 나누어 주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복을 다 거두어 가십니다. 왜냐하면 그 복을 나누어 주어 복의 근원이 되라고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3:9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복이 바로 우리의 복이기에 먼저 복을 받았으면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셀 지파는 물질적, 영적으로 큰 복을 먼저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다른 형제들에게 축복이 되는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12지파 가운데 한 지파의 조상이 될 아셀이 태어나자 야곱의 아내 레아가 복되도다. 라고 말했듯이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복되도다.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축복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그 복은 떠납니다. 우리는 축복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얼마나 응답자가 되었습니까?
3. 영적 교훈
12지파의 상징 보석 가운데 호마노라는 보석 위에 아셀, 이라는 이름이 씌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가슴에 두시고 축복하시며 또한 축복된 존재로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신 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복 받은 존재라면 그 복을 우리와 함께하는 자에게 나누어 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야곱의 여덟 번째 아들인 ‘아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레아의 하녀 실바가 낳은 그의 이름의 뜻은 ‘기쁨’입니다(창30:13). 아셀은 네 아들과 ‘세라’라는 딸을 낳았고, 아들로부터 그의 이름을 계승한 지파가 생겨났습니다(대상7:30).
아셀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아셀 에게 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창49:20)’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는 아셀 지파의 번영을 의미합니다. 후에 아셀은 모세에게도 축복을 받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그의 마지막 축복을 선포할 때, “아셀은 다자(多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찌로다.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신33:24-25)”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성령으로 씻은 발을 가진 사람은 사는 동안 어렵고 고된 길을 감사와 찬양으로 능수능란하게 지나갈 수 있습니다.
기름은 영양분을 위한 음식이지만, 철과 놋은 싸움과 왕국의 건축을 위한 광물들입니다.
그리하여 아셀의 영토는 대해(지중해)까지 이르렀고, 갈멜 산을 끼고 북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셀의 후손들은 다른 지파들처럼 용맹스럽거나 호전적인 경향이 없었기에, 정복한 땅의 원주민들을 내쫓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여(삿1:31-32), 이방인과 섞여 살았고, 마침내 약한 족속이 되었습니다.
아셀은 강한 지파였지만(민1:40-41), 다윗 시대에 와서는 너무나 약화되었기 때문에, 각 지파의 두령들을 뽑을 때 그들의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습니다(대상27:16-22). 하지만 그들 가운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진실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예루살렘에서 큰 유월절 잔치를 베풀고 온 이스라엘을 초청했을 때, 몇몇 지파들은 그 기별을 전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비웃었으나, ‘아셀 지파의 몇 사람은 스스로 겸비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렀다(대하30:10-11)’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러한 충성된 정신이 이들을 떠나지 않았기에, 후에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아는 영적 통찰력을 가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아셀 지파의 여선지자 “안나”였습니다(눅2:36-38).
성도 여러분들도 성령으로 씻은 발을 가지고 어렵고 험한 세상을 능수능란하게 이기시고, 끝까지 충성함으로써 주님을 알아보고 찬양할 수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9. 잇사갈(보상) 지파9. 창30:14-21,49:14-15
1. 잇사갈의 출생 배경
창30:14-17을 보면 잇사갈의 출생배경과 그 이름의 뜻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언니 레아보다 야곱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은 라헬이지만 그에겐 남다른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 받는 이의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고민이 라헬을 계속적으로 괴롭혀 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라헬은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합환 채를 얻어 그 어머니 레아에게 주는 광경을 보고 그것을 청구합니다.
합환 채는 중동지역에서 꽤 여성의 불임을 치료하는 것으로 믿어졌던 꽃 뿌리였기에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라헬에게는 복음과도 같은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라헬은 이런 합환 채를 얻는 조건으로 그날 밤 야곱을 레아에게 양보하는 제안을 하기에 이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치사하고 조금은 거북스런 장면이지만 사랑싸움에 눈먼 인간의 욕망을 생각한다면 능히 수긍할 수 있는 부분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수치스런 이야기 배후에 하나님의 역사의 손길이 개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마침내 야곱과 한밤을 지낸 레아는 다섯째 아들을 낳게 되고 합환 채를 값으로 지불하고 얻은 아들이라 하여 그 이름을 레아는 잇사갈(값)이라 명명하게 됩니다. 이런 배경에서 저 유명한 잇사갈 지파는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2. 잇사갈 지파를 향한 야곱의 축복
야곱은 말년에 창49:14-15를 통해 잇사갈 지파를 다음과 같이 축복합니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며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잇사갈 지파는 그 별명이 양의 우리에 꿇어앉은 나귀입니다. 이 이름 속에는 보상과 노동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건장한 나귀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에너지의 충만함, 일하려는 약동하는 생명력과 의지를 엿 볼 수 있습니다. 쉴 곳을 보며 좋게 여긴다는 표현도 노동 후의 값진 안식을 연상케 합니다. 열심히 제자리를 지켜 꾸준히 헌신 봉사, 충성하는 참 일꾼의 모습을 우리에게 새겨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잇사갈 지파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3. 잇사갈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
신33:18에서 모세는 잇사갈 지파에 대해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는 축복의 말씀을 예언해줍니다. 그런데 모세는 잇사갈 지파와 함께 스불론 지파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교회의 안과 밖을 공동으로 지키고 확장시켜 나갈 책임이 있음을 이 두 지파를 통해 우리에게 교훈해 주시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안과 밖의 조화, 내부와 외부의 사역의 조화를 하나님은 이 두 지파를 통해 그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불론 지파에게는 밖에서 일하게 하셨습니다. 즉 해외선교의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반면에 잇사갈 지파를 향해서는 장막에 머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충성스런 목회자의 사명을 맡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일에는 이 두 사람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4. 잇사갈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출28:15이하의 말씀에 나오는 보석 중 잇사갈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은 황옥입니다.
이는 '열심히 찾은 대가로 얻은 것'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잇사갈의 뜻도 '대가를 지불하고 얻다'는 뜻입니다. 황옥은 토파즈란 보석으로서 아름다움과 지혜, 장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또한 이 토파즈라는 말의 뜻을 보면 계속해서 찾는다. 란 의미를 안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보석은 홍해 섬 속에 많이 내장되어 있는데 이 보석을 찾아내기에 가장 적당한 날은 안개가 자욱한 날이라고 합니다. 안개가 자욱할 때 선원들이 섬을 향해 배를 저어 접근해 가면 이 안개 속에서 반짝이는 노란 불빛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빛이 바로 이 보석이 발하는 빛이라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값을 지불하고 노동의 대가를 지불한 후에야 얻을 수 있는 귀한 보석 그것이 바로 토파즈인 것입니다. 선원들이 땀을 흘리고 목숨을 건 후에야 보석을 갖게 되듯이 레아가 가장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난 후에 얻은 생명이 바로 잇사갈 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5. 영적 교훈
주인은 절대로 노동의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을 축복하지 않습니다.(살후3:10, 갈6:7)
잇사갈 지파가 남긴 영적 교훈은 값진 노동 후에 비로소 얻는 안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일할 때 비로소 결과는 얻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동과 상관이 없는 은혜로 값없이 얻어지는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되는 상급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 결과로서 보상받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정죄의 심판은 없지만(롬8:1) 보상의 심판은 있습니다.(고후5:10)
이 아름다운 보석 토파즈 지금도 대제사장의 가슴 깊이 품어져 있습니다.
10. 스불론(동거, 거주) 지파10. 창30:19-20, 49:13
1. 스불론 지파의 출생 배경
스불론 이란 이름의 뜻은 거함 또는 같이 거하다 는 의미입니다.
라헬과의 계속되는 남편을 사이에 둔 사랑의 삼각관계 속에서 언제나 패배의 쓴잔을 맛보아야만 했던 레아는 여섯째아들을 낳게 되자 이제는 남편이 계속적으로 그와 함께 거할 것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소원을 그 아들의 이름을 통해 고백하게 됩니다. 이 이름에서부터 거한다는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음을 보게 되는데(요1:14) 헬라어 본뜻은 장막을 친다. 거처를 마련한다. 는 의미로써 하나님이 인생들과 함께 인생 가운데 장막을 치고 거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을 위해 언제나 장막을 가지고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 중 쉬어야 할 때가 되면 지파별로 정렬을 한 후 그들 한가운데에 장막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지시를 얻기 위해선 이 장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대제사장은 장막의 지성소에 들어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을 만나 그들의 죄에 대한용서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지시를 받습니다. 백성의 잘못을 용서치 않을 때 하나님은 대표자 대제사장을 치시고 그의 생사여부를 장막 밖에서 숨죽이고 기다리는 백성들을 위해 대제사장 예복 맨 아랫부분에는 방울 달았던 것입니다. 방울소리가 계속 울리면 이는 대제사장이 살았다는 증거이고 동시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받으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따라서 이 방울 소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복음의 소리였습니다. 장막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의 가치를 깨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더 높은 차원의 열망으로 이를 승화시켜 나갔으며 결국 하나님은 임마누엘을 그들에게 선언하시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마1;20)
남녀의 삼각관계에서부터 비롯되었던 이 단어가 마침내 놀랍고도 위대한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마지막 결론짓는 단어가 되었다는 이 사실보다 더 엄청난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2. 야곱의 스불론을 향한 축복
야곱은 창49:13에서 스불론이 후일에 당하게 될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합니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 까지리로다. 해변 가에 흩어져서 거하는 모습을 야곱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스불론 지파가 갈릴리해변에서 지중해 연안까지 혹은 지중해와 맞닿은 해안 연안을 타고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게 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예언대로 스불론 지파는 사방에 퍼져서 전 세계를 향하여 진출하는 웅진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예언은 마4:12-16에서 그 성취를 맛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스불론 지파의 활동무대였던 갈릴리를 주 사역 장소로 선택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갈릴리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스불론의 영광이 얼마나 엄청난 것입니까? 복음과 전도의 요람 그곳이 바로 스불로 지파였던 것입니다.
3. 모세의 스불론 지파에 대한 축복
신33:18에서 모세는 스불론 지파를 향해 다음과 같이 축복합니다.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모세 역시 나가라고 스불론을 향해 명령합니다. 그리고 이를 기뻐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지중해 건너편과 요단강 건너편 등 두 개의 선교 지역이 있었는데 이 모두를 장악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스불론 이었던 것입니다. 잇사갈 지파는 해변 안을 사수하고 스불론 지파는 밖을 향해 전도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이 공동의 노력의 장을 하나님은 양 지파를 통해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스불론 지파는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여러 지역을 돌며 가장 귀한 영혼의 보배를 수확해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첫 음성이 발하여진 장소가 바로 이 스불론, 그리하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영혼의 보화들이 수확되는 바로 이 스불론 이라면 우리 모두 다 신령한 스불론이 되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4. 스불론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창28:17에는 녹주옥이라는 보석이 나오는데 이것이 스불론 지파로 상징하는 보석입니다.
스불론 지파의 보석은 석류석으로 '반짝거리다'라는 의미인데 항구근처에 위치한 그들에게 등대 불빛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는 영원한 소망의 등불이신 주님을 나타내기도 합니다(마4:13-16).
5. 영적 교훈
주님은 마5:14-16에서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빛의 근원이시고 우리는 그 빛을 받아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온 천하만국에 이 복음의 빛을 발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해야 합니다. 물질을 소비하고 시간을 투자해서 전도해야 합니다. 어디서나 반짝 반짝 죽어가는 영혼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 보석을 지금도 대제사장 되시는 주님이 그 품에 품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1. 베냐민(오른 손의 아들) 지파11. 창35:16-20,49:27,신33:12
1. 베냐민의 출생배경과 그 이름의 뜻
라헬은 길을 가다가 베냐민을 난산하였는데 그녀는 혼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 아이의 이름을 슬픔의 아들을 뜻하는 베노니 라고 불렀습니다. 곧이어 야곱은 아이를 오른손의 아들을 뜻하는 베냐민이라고 고쳐 불렀습니다.(창35:16-20) 그것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라헬이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 슬픔을 듣고 아주 씩씩하고 강하고 힘 있는 아들이 되어 달라는 한 아버지의 기대를 나타낸 것입니다. 베냐민이 태어난 베들레헴에서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출생하였습니다. 그들은 바로 예수님과 베냐민 그리고 다윗과 같이 구약으로부터 신약에까지 이어지는 역사적인 분들이었습니다.
2. 베냐민 지파에 대한 야곱의 축복
야곱은 베냐민에게 베냐민은 물 어 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창49:27)라는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는 모두 별명이 있습니다. 베냐민은 이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이 동물의 맹렬한 기상과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가는 공격적인 성격을 말합니다. 야곱의 베냐민에 대한 축복은 그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 목표를 성취하려는 이리와 같은 강인한 힘과 승리 욕을 지녔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야곱의 축복은 구약과 신약에 걸쳐 성취됨을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에훗 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모압 왕 에글론 으로부터 많은 고통을 받았고 조공까지 바쳐야 했는데 에훗은 이러한 상황에서 그의 용맹성을 발휘하여 에글론 왕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고통에서 구하게 되었습니다.(삿3:15-20) 그는 혁명적 애국자였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잔인하게 대들었으며 용맹성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위해 싸웠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도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삼상9:27) 그도 에훗 처럼 혈기왕성하고 용맹한 사람이었으나 그가 축복을 받았음에도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하였기 때문에 그의 말로는 처참했습니다. 그는 축복을 잘못 사용하여 자신을 파괴하였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인물은 에스더의 양부인 모르드개 입니다. 그는 냉철하고 굴복하지 않는 냉혹할 정도의 끈질긴 집념으로 나라를 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질을 아름답게 사용하여 하나님의 큰일을 담당했던 것입니다.(에2:5-8)
마지막으로 신약의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 되기 전의 사울은 맹렬하고 집념과 야심 그리고 승리 욕이 강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은 후 그는 자신의 기질을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혈기 왕성한 성격으로 그는 세계복음화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갈2:11-16을 보면 바울이 선배 된 베드로를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바울의 진리 앞에서의 단호한 열정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야곱이 축복한대로 베냐민의 사람들은 모두 용맹스럽고 시원한 성격을 소유하였으며 그것을 남을 위해 나누어 줄 줄도 아는 인물들이었습니다.
3. 모세의 축복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길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신33:12)라고 모세는 베냐민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어깨는 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일을 했던 자들이 바로 이러한 자들인 것입니다.
4. 베냐민을 상징하는 보석과 영적 교훈
대제사장의 가슴에는 네 줄의 보석이 있는데, 셋째 줄에는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자수정이 바로 베냐민을 상징하는 보석인데 색상은 보라 자주 빛입니다.
베냐민 지파의 보석은 희귀보석인 자수정인데 이는 문제를 예방할 어떠한 권력이 개입되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고대 중동지방에서 이 보석은 구하기 어렵고 제련 과정이 몹시 힘든 보석입니다. 그러나 힘들게 구하고 만든 만큼 가장 귀하게 쓰임 받고 높은 가치를 갖기 마련이었던 것입니다. 자수정으로 상징되는 지파가 있는 것을 오늘날 그와 같은 성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대가가 필요합니다. 베냐민은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대가로 태어났고 상징하는 보석 또한 많은 노력과 일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들을 통하여 얻을 영적 교훈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은 희생이라는 대가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으며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그가 아내의 죽음이라는 값비싼 대가였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고 하였습니다.(시126:5)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얻기 위해 고향과 친척을 버리는 희생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창12:1-4) 그는 백세에 얻은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바쳤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창22:1-12) 라합도 죽음을 각오하고 정탐꾼들을 숨겨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은 희생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으로 이어졌습니다.
5. 영적 교훈
희생하면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고 생명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 올릴 수 있습니다. 그분의 희생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역사적인 구원계획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깎이고 깎이는 희생을 기초로 보라, 자주 빛을 발하는 영광스러운 보석이 되고 대제사장의 가슴에 새겨지는 영광이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성도님에게는 모두 주님의 기대가 머물러 있고 그분의 소원물입니다.(빌1:6, 2:13)
('오른손의 아들'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베냐민은 야곱과 라헬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베냐민을 출산하던 라헬은 산고 끝에 죽고 말았고, 베냐민은 형인 요셉과 함께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게 됩니다.
야곱의 임종 시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로서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라'는 예언을 받았습니다(창49:27). 이는 싸우기를 좋아하며 야생적이고 공격적인 베냐민 지파의 성격을 예언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리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다릅니다. 이는 체구가 작으면서도 강인하고 힘세고, 목표를 성취하고야 마는 동물의 공격적인 성격을 묘사하는 것 입니다. 실제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용감하게 이스라엘의 외적으로부터 지키는 데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베냐민 지파 출신인 에훗은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이리같이 적을 공격하여 자기민족을 구출 하였습니다(삿3:15-22). 이밖에도 요나단과 에스더, 모르드개 등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들의 모든 힘과 능력을 바치고 헌신 하였습니다. 그러나 공격적이고 고집을 잘 부리는 베냐민 지파는 범죄 한 기브아 사람들을 옹호하고 이스라엘 총회와 전쟁을 벌여 동족상잔의 비극을 만들기도 했습니다(삿20:13-14).
이 일로 베냐민 지파는 징벌을 받게 되지만, 그 이후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자로 변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신33:12). 모세의 축복 예언으로 베냐민 지파가 실수를 범하여 거의 진멸당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의 출신인 사도바울 또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지만,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 불같은 성격과 정열을 가지고 전 세계를 복음으로 뒤집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과 베냐민 지파는 자신의 성격처럼 열정을 가지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참된 승리는 어떤 지파나 물려받은 성향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데 있습니다.
만약 바울이 모든 일에 유하기만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그가 전 세계를 누비면서 전도하는 엄청난 일을 시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의 후손들은 위대한 역사를 장식했지만 그들은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연단의 시간을 인내로 이겨내며,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온전한 축복이 임한다는 것을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2. 에브라임(창성함)지파.(요셉(더함)지파)손자에서 아들로(창48:5,17-20)-영적 장자
1. 에브라임의 이름의 뜻과 출생배경
요셉은 둘째 아들을 낳으면서 나를 그동안 고생하고 수고했던 이 땅에서 창성하게 하신다. 즉 번영하게 하신다. 축복되게 하신다. 고 고백합니다.(창41:52) 그 고백에 의해서 요셉은 둘째 아들의 이름을 에브라임 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에브라임의 단어의 뜻은 창성함, 갑절로 열매가 맺어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어둠의 세월이 지나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통해서 요셉은 은혜를 누리기 시작합니다.
2. 에브라임지파에 대한 야곱의 축복
창48:17-20에서 야곱은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합니다. 이스라엘의 전통과 규례에 의하면 장자인 므낫세가 갑절의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에브라임을 더 크게 쓰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시고 판단하실 권한이 있으신 주권적인 주시라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절대 후회함이 없습니다.(민23:19, 롬8:28, 11:29) 우리들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들어갈 때 완전무결하고 훌륭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는 것입니다.
3. 에브라임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
므낫세는 천 천의 축복을 에브라임은 만만의 축복을 받았습니다.(신33:17) 이스라엘 12지파의 인구조사에서 에브라임 지파는 40,500명, 므낫세 지파는 32,200명입니다.(민1:32-35, 창48:17-20, 신33:17)의 말씀대로 에브라임 지파 가운데 20세 이상의 장정수가 므낫세 지파의 장정수보다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에브라임 지파가 므낫세 지파보다 더 장성해 나가는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4. 에브라임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에브라임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은 호박입니다. '고난 후에 찾아오는 영광'을 상징하는 호박(히아신스)입니다. 이 보석의 특징은 닦기가 대단히 어려워서 오랫동안 정성을 다해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호박이라는 보석이 닦기는 어렵지만 다듬어 놓으면 아름다운 황금색의 광채를 발합니다. 이는 고난의 밤을 지난 사람들에게 영광스러운 새벽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 보석은 한번 다듬어 놓으면 그 다음에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됩니다. 본래 에브라임은 동생이나 형보다 더 존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약자를 들어 강하게 쓰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고전1:26-28) 내가 남들보다 좋은 조건을 갖지 목하고 탁월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해서 불평하거나 낙심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에브라임을 쓰시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5. 영적 교훈
우리는 주변에서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저주한 것이 아니라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내 삶을 어떻게 쓰실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들 가운데는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도 있다고 말합니다.(딤후2:20)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다른 달란트를 주셔서 각각 다르게 쓰신다는 사실로 시비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성과 계획 섭리 속에서 스스로 행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그릇이냐를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느냐는 것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그릇으로 쓰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질그릇이 되어 금 그릇보다 못한 존재인가? 하나님 저를 금 그릇으로 만들어 주세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창조의 조건은 끝났기 때문입니다. 단지 자기의 주어진 조건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합니다. 오직 헌신과 충성이 있을 따름입니다. 또한 우리가 금 그릇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금 그릇에게는 더 많은 책임을 묻는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심판 때에 금 그릇이라 해서 더 많은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금 그릇으로 만들었는데 금 그릇의 좋은 조건을 가지고 얼마나 나의 일을 했느냐 고 하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질그릇을 향해서 너는 왜 금 그릇처럼 향동하지 않았느냐 라고 심판하시지는 않습니다. 주어진 환경, 상황, 조건, 달란트를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마지막에 보상 받는 상급은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 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라고 같은 칭찬을 하셨습니다.(마25:14-30)
13. 므낫세(잊어버림)지파 손자에서 아들로(창48:5)육적장자 창48:5-6,신33:13-17
야곱의 12아들 가운데 요셉의 장자 므낫세와 차자 에브라임 지파를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실은 12지파 가운데 요셉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셉 지파라 하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이스라엘의 12지파에 들어갑니다.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를 통해서 형성된 므낫세 지파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므낫세 지파가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성경에 므낫세 반지파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두 지역 중에 한 지역만을 지칭할 때 므낫세 반지파라고 표현합니다. 므낫세 지파는 요단강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발전해간 지파가 있고 좌측으로 발전해간 지파가 있습니다. 므낫세 지파는 그 형상이 요단강을 중심으로 나뭇가지처럼 되었기 때문에 나무로 상징됩니다.
1. 므낫세 지파의 출생과 그 이름의 뜻
요셉은 두 아들의 이름을 논리적으로 지었습니다. 첫 아들의 이름은 므낫세이고 둘째 아들의 이름은 에브라임입니다. 창41:51에 보면 므낫세의 뜻은 잊어버림, 에브라임은 창성함 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잊어버림 후에 시작되는 축복을 시 사 하는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 원망과 실패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 과거에만 묶여 있다면 전진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를 잊어버린 사람만이 미래의 새로운 영역을 향한 모험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첫 아들을 낳고 하나님께서 모든 고난을 잊게 하신다고 생각하여 첫 아들을 므낫세 라고 이름을 지었던 것입니다. 둘째 아들을 낳고서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을 생각한 것입니다. 요셉은 두 아들을 통해서 잊어버림 후에 새롭게 전개될 축복을 기대하였습니다.
2. 므낫세 지파에 대한 야곱의 축복
이스라엘에서는 장자에게 동생보다 갑절의 많은 재산을 상속시키고 축복하는 것이 관례라고 합니다. 그러나 장자의 축복이 므낫세가 아닌 에브라임에게 돌아갔습니다(창48:1-6)
우리는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통해서 야곱과 에서의 관계처럼 유사하게 되풀이 되는 역사의 반복을 보게 됩니다. 본문 말씀은 야곱이 축복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상 그 행동은 요셉이 한 것입니다. 이때 야곱의 축복이 당연히 므낫세에게 와야 하는데 에브라임에게로 간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므낫세는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며 므낫세는 그 나름대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원대로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지 않고 다른 사람을 쓰신다고 해서 불공평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쓰신다고 할 때 다른 사람들을 저주한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므낫세는 므낫세 대로 후일에 축복을 하십니다.
요셉은 지금까지 많은 험난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요셉이 아들 므낫세를 낳으면서 고백을 하기까지 요셉이 겪었던 고통과 아픔 많은 눈물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아들을 얻으면서 하나님이 나로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집안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고 요셉은 고백하고 있습니다.(창41:51)잊어버림이란 용서입니다. 누가 나에게 잘못했던 과거를 내가 잊을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을 정말 용서해가고 있는 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라 당신들의 판자라 ...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 앞서서 애굽으로 보냈다 고 고백합니다.(창45:4-5)우리는 그 많은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요셉의 고백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창50:20을 보면서 지금까지 요셉이 당했던 그 고난스럽고 절망적인 모든 일들이 결국에는 협력하여 선을 이룬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그 삶의 현장에서 잘못된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존재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소중한 사실은 잊어버림의 축복입니다.
창40장에서 요셉은 그 모든 시험과 고난을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며 마침내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요셉의 태도를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늘에 살아야 합니다. 오늘 현재가 중요합니다.(빌3:13-14)
우리가 앞에 있는 것을 잡기 위해서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려야만 한다고 바울은 교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때 우리의 과거를 다 잊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내 자신 또한 이웃의 잘못을 잊어버리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므낫세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
신33:16-17을 보면 므낫세 지파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담당하면서 발전해 나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므낫세 지파는 유다 지파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거느리고 발전해 나가는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쓰시고자 할 때 신령한 므낫세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동생 에브라임이 만만의 축복을 받고 므낫세는 천 천의 축복을 받았지만 므낫세는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므낫세는 자기 나름대로의 축복을 받으면서 발전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4. 므낫세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과 영적교훈
출28:19을 보면 므낫세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은 백마 노, 입니다.
므낫세 지파의 보석은 원석자체가 거칠어 가치가 없지만 공들여 다듬으면 영롱한 색으로 기쁨을 주는 백마 노(아가테)입니다. 이 보석은 강철보다 강하고 깨지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오래 둘수록 더 좋은 보석이 됩니다. 또한 이 보석은 여러 가지 색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보석에서 날이 갈수록 발전해 가는 므낫세 지파의 운명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나보다 더 내 주변 사람들을 까닭 모르게 축복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므낫세 지파의 교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므낫세 지파가 받아야할 몫이 에브라임에게 돌아간 것에 대해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지파는 더욱 발전하고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좋지 못한 환경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신령한 므낫세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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