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로 사는 삶

방언이란?

대 덕 2024. 6. 20. 07:01

방언이란 고전12:4-11에서 말하고 있는 성령의 은사들 가운데 하나이다. 방언의 은사는 방언통역이나 예언과 같이 음성과 말의 은사라 할 수 있다. 방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신 말이다. 그러나 말하는 자나 듣는 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 특징이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친히 인간에게 임하셔서 외적, 가시적, 신체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방언통역의 은사를 통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약에서 방언의 은사가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 것은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과 고린도전서 12장-124장이다. 오순절에 임했던 방언은 모인 자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것(행2:6)이 특징이었고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알아듣는 자가 아무도 없는 것(고전14:2)이 특징이었다. 현대의 방언에 대한 입장들은 가지각색이다.
본 연구에서는 성경적인 방언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방언

1) 방언의 어원
방언의 어원은 헬라어에서 glwssolaria(그로쏠랄리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어나 독일어로는 혀(tongue, zunge)로 번역되어 있으나, 헬라어에서는 glw'ssa(글로싸), 즉 '말'과 '혀를 움직여서나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방언은 언어로서 말을 하는 것이지 혀로 불분명하게 횡설수설하는 것이 아님을 언어학적 측면에서 보아도 알 수 있다.

2) 방언의 출처
방언의 출처는 오직 성령뿐이다. 행1:8의 지상 명령이 방언을 통하여 언어의 장벽을 깨뜨림으로 일차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그러나 사탄이 주는 방언도 있다. 이것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내는 소리이며 심리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때에는 이성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며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환상과 황홀경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참된 방언의 출처는 오직 성령이시며 성경의 질서대로 잘 분별하여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3) 방언의 가치성
오순절에 많은 사람들의 흥분과 관심을 모을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방언을 하는 자의 주위 사람들에게 성령 역사의 조짐으로서도 가치가 충분하다.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덕을 세우라(고전14:4)고 했다. 어떤 이들은 방언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깊이 임재하심과 자유함을 느끼기도 하고 평안함과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신비함을 체험하고 성령의 역사를 깊이 있게 체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 방언은 너무 자신에게만 몰두함으로 주관적인 체험과 경험에 빠지게 하고 교회를 섬기는 데 소홀하게 할 우려가 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방언은 단지 기도의 일종인 성령의 사역을 소홀히 할만큼 중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 오순절과 고린도 교회의 방언

1) 오순절에 나타난 방언
오순절의 기적은 방언으로 시작되었다. 오순절을 통해 교회에 방언이 처음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도들과 그이 동역자들은 성령이 그들에게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국의 실질적인 사용어로 말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그곳에 모인 가 나라의 많은 사람들(행2:9-11)은 자기들의 본국어로 말을 듣게 되었다. 사도들은 일련의 영적 경험들을 통해 영적 능력을 얻어 복음의 새 역사를 창출하기에 이르렀다.

2) 고린도교회의 방언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은 오순절에 임한 방언처럼 각 나라 말로 하지는 못했어도 하나님을 향해 방언으로 말하게 되었다. 바울은 방언을 금하지 않고(고전14:5,39)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또한 그는 방언의 통역을 권하였고(고전14:23), 방언보다 예언의 은사를 더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나 에베소 교회보다 고린도 교회는 유독 방언으로 인해 문제가 되었다. 때론 교회를 소란케 하고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3. 방언에 대한 재평가

방언이 개인 신앙과 교회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한국 교회의 전통적인 방언교리는 사도 시대 이후에 끝났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방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긍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직도 일부 교파에서는 방언을 구원받은 증거로 삼거나 성령세례의 필수조건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방언을 통해 구원이 이뤄지거나 성령세례의 필연적 증거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1) 긍정적인 평가
① 예수께서는 방언에 대하여 직접 말씀하셨으며(막16:17), 사도 바울도 그것에 대하여 교훈했다(고전14:5; 12:11,28). 실제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문도에게 성령이 그들에게 방언을 말하게 하셨음을 인정해야 한다. ② 바울은 방언이란 성령께서 우리 인간이 이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영으로 기도하게 하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하나님과 직접적이며 온전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③ 방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는 부족하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방언을 통해 깊이 있게 기도 생활을 할 수 있고 영적인 성장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2) 비판적인 평가
바울은 공중 앞에서나 통역함이 없이 방언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통역 없이 방언을 하는 것은 무익하기 때문이다(고전14:9). 즉 통역 없이 방언을 하는 것은 신자나 불신자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신자는 신앙의 도를 깨닫지 못하게 되며 신자는 그 기도에 참여할 수가 없게 된다. 방언은 예배에서 공적으로 나타내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사적으로, 또는 통역과 함께 사용되어야 한다(고전14:19,28)

방언은 오순절에 가장 강하게 나타난 은사이며 가장 많이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비난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14:39)고 명했다. 오늘날 방언이 남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방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방언의 창조자는 하나님이시며 방언을 주시는 이는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방언을 모방, 위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령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모든 은사들 가운데 특별히 노골적으로 모방하기 쉬운 것이 방언이다. 각별히 유의할 것은 방언 은사의 소유자들이 영적인 교만과 우월적 자세를 가지고 남을 지도하려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려는 사람들은 겸손하여져서 말씀에 깊이 뿌리내려 더욱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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