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학자 보비 커닝햄(Bobby B. Cunningham)의 [치유적인 용서의 역할]이라는 글을 보면
베쓰라는 30대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쓰는 신앙인 이었습니다. 성공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양 손목의 동맥을 면도칼로 그어 자살 기도를 하였습니다. 비서가 발견하여 겨우 목숨을 살렸습니다.
컨닝햄은 그녀를 만나 상담하였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심한 정서적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상대방을 몰아 붙이고, 참을성이 없으며,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일도 열심히 했지만 술도 열심히 마셔댔습니다. 그녀에게는 여덟 살 위인 오빠가 있었는데 온 가족으로부터 떠받듦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특히 그에게 모든 스포츠에서 최고가는 사람이 될 것을 늘 강요하였습니다. 베쓰의 오빠는 열 여섯 살의 생일을 맞아
자축하기 위하여 바다에 수영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 오빠가 물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그녀의 오빠는 익사한 것이 아니라 자살한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부모의 강요를 견디지 못하여 자살한 것이었습니다.
오빠의 죽음에 대한 슬픔에 잠겨 아버지는 이전보다 훨씬 자주 화를 내며 술을 마셔댔고, 어머니는 심각한 우울 증세를 보이면서
자신의 세계로 점점 더 고립되어갔습니다. 베쓰의 오빠가 죽은 후 가정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술고래로 변한 아버지는 그녀의 오빠가 죽은 후 몇 달이 지나서 베쓰를 성폭행 하였습니다.
그녀는 그 경험들이 수치스럽고 소름끼칠 정도로 싫었습니다. 다행히 그녀는 공부를 하여 사회적으로는 출세를 하였지만,
과거의 상처 때문에 늘 괴로워했고,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자살을 선택하였습니다.
한 때 받은 상처가 핵심감정이 되면 그 감정은 그 사람을 움켜잡고, 평생을 불행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사는 가격보다 그 유지비가 훨씬 더 많이 드는 물건입니다. 인간 영혼에 가장 강력한 독소로 작용하여 자신을 괴롭히고 인간관계에 불화와 갈등을 조장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쓴 뿌리는 정서의 독으로 주변을 오염시켜 스스로를 고립화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일생동안 과거의 끈에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자신의 육체와 인격을 파괴뿐 아니라, 신체적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불면증, 변비, 소화불량, 두통,
면역력 저하, 세포재생산 능력의 감소, 암 등 질병을 유발합니다.
용서하지 못한 마음은 상처를 만들어 내고 분노와 적개심, 복수심을 증가할 뿐 아니라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용서하지
못하는 당사자입니다. 용서는 힘이 있습니다. 심리적 치유효과가 있습니다.
정서적 고통을 완화해 주고, 우울과 불안을 감소시켜주며, 개인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며, 분노의 폭발을 막아주며,
분노와 죄의식으로부터 개인을 자유롭게 해 주며, 해를 준 사람으로 말미암은 증오심으로부터 해방시켜 줍니다.
용서는 신체적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건강을 촉진시켜주고, 혈압을 낮추며, 분노로 인한 고혈압과 같은 신체적 증상을
완화해 줍니다. 용서는 개인의 심리적 건강과 안녕의 회복을 가져올 뿐 아니라,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줍니다.
용서는 강력한 치료적 체계로서 개인의 변화와 성장을 증진시키고 창조성과 활력을 강화하며 진정한 자유를 얻게 합니다.
용서는 영적 힘이 있습니다. 용서를 통해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게 하고 진정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용서란 망각이 아닙니다. 망각은 상처가 치유되고 용서가 이루어질 때 가능하지만, 그것은 용서의 부산물이지
필수적인 결과물은 아닙니다. 상처를 정확히 기억하고 직면하고 이해함으로서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며,
타인의 행동을 묵인하거나 무관심해 버리는 것이 아니며, 시간이 흘러서 상처로 인해 생긴 분노가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능동적인 행동이며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는 과정입니다. 계속적인 발걸음으로 시간이 필요합니다.
용서는 행동이며 선택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느끼는지는 통제할 수 없으나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하여서는 통제할 수 있습니다.
과거는 한 조각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상처라는 것이 어차피 인생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고 그 해결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
용서입니다. 거세게 굽이치는 기억의 지류를 멈추게 하는 유일한 힘은 용서입니다.
용서는 고통스러운 상처를 지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하며 과거에 개의치 않고
앞으로 발을 내딛는 것으로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용서는 화해가 아닙니다.
용서는 개인적인 반응로로서 개인 내적인 해방인 반면 화해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적으로 결합하는 것입니다.
용서란 가해자에 대한 복수를 의도하지 않고 상대를 용서할 수 있으나 가해자의 행동이 바뀌지 않는 한 화해란 어려운 것입니다.
화해는 용서의 결과일 뿐입니다. 용서는 사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면은 법적인 행동으로서 처벌 당사자에게 처벌을 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무조건적인 것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덮어주겠다는 의도적인 결정이며, 잘못으로 인해
악한 감정을 갖는 다든지 관계를 단절하지 않겠다는 행위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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